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38화 (138/252)

< 단편 : 사이킥 포스 in 우치무라. >

딩동~

벨이 울린다.

“음식 배달 왔습니다.”

12시 15분.

오늘도 정확한 시간이다. 그렇다는 것은 가게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겠지?

새하얀 종업원 차림의 남자는 내가 문을 열어주자, 능숙한 손길로 나무로 된 배달통에서 우동 한 그릇과 야끼교자(군만두)를 꺼내어 내 손에 들려주고는 휑하니 돌아가 버렸다.

계산은 할 필요 없다.

이미 펜타곤 소프트에서 이 달치 분을 전부 결제 해두었을 테니까.

뜨거운 우동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나는 서둘러 그릇에 씌워진 랩을 벗겨 내었다.

“역시 여기 우동이 가장 맛있는 것 같아.”

우동을 먹기 전에 바삭하게 튀겨진 야끼교자를 한입 베어 물자, 안에서 기름기를 잔뜩 머금은 육즙이 툭 터져 나왔다.

“어뜨~~ 후훕~ 허어~ 뜨거”

내가 생각하기에 만두란 계란에 비견할 만 한 완전식품이다.

어떻게 얇은 피안에 고기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만두란 그저 쪄도 맛있고, 끓은 물에 넣어도 맛있지만, 그중에서 최고는 바로 이 야끼교자(군만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더불어 뜨거운 육즙을 고기와 함께 씹다보니 예전에 조그만 단칸짜리 아파트에서 컵라면만 먹던 시절이 떠올랐다.

잠시 고개를 돌려 내 방 안을 바라보자,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은 햇살이 거실 가득 들어와 있었다.

어느새 봄이 지나고 밖은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지만, 내 방은 에어컨으로 인해 늦가을처럼 선선하기만 하다.

이게 다 펜타곤 소프트의 강준혁 부장님을 아니지.. 내가 없는 거리 행사장에서 유키씨를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현재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윤택하게 살고 있다.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배달이 오는 음식과 쾌적하고 넓은 작업 공간.

이곳의 월세도 펜타곤 소프트에서 절반을 내주고 있다.

1LDK라는 형식으로 1개의 방과 거실 그리고 키친으로 나뉘어져 있는 오피스텔 구조는 독신인 나에게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매주 새로운 작업물들이 소포로 배송이 오면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뜯어 정성스레 작업에 임한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본사에 전화 한통만 넣으면 전문 수거 반이 찾아와 내가 만든 피규어를 상자에 잘 포장해서 가져가는데, 그에 대한 수당은 매월 중순에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강준혁 부장님은 피규어 제작에 대해 굉장히 새로운 유통 방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독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만 프리미엄 피규어에 대한 홍보를 한 뒤에 전액을 선 결제하고 예약 티켓을 받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고객에게서 수주가 들어가면 전문 피규어 조형사가 색이 입혀지지 않은 물건을 나에게 보내주고 나는 그때마다 조금씩 수정하여 채색을 입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하나의 제품이 완성 되는 시간은 대략 7~10일 정도.

하지만 이게 또 솔 찬하게 예약이 들어와, 아직도 작업할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현재 내가 치중하고 있는 피규어 작업은 ‘내가 없는 거리’ 히로인들. 작년 가을 이후로 민텐도와 법적 공방에 들어간 상태지만 아직 지적 소유권은 우리 펜타곤 쪽에 있으므로 프리미엄 피규어를 만드는 데에 아무런 법적 제제가 없었다.

프리미엄 피규어는 타마고 샵 바로 옆에 생겨난 펜타곤 캐릭터 샵에 전시하여 예약을 받는데, 한 종류의 피규어 마다 딱 20개만 만들고 있어, 콜렉터들 사이에 굉장히 경쟁이 심하다고 들었다.

가격은 피규어의 퀄리티에 따라 개당 60,000엔에서 150,000엔 선이라는데, 이마저도 일단 생산이 종료되고 나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오른다나?

확실히 소량 생산이라 그런지 도색이 되지 않은 기본 조형 자체도 따로 손볼 곳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배달 온 우동을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교자를 입에 털어 넣으며 작업실로 향했다.

보통 침실로 이용하는 이곳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에 피규어를 도색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태양의 직사광선은 피규어의 변색을 유도하기에 피해야할 기피대상이니까..

“후우.. 그럼 밥도 먹었으니 작업을 시작해볼까?”

부장님은 원하면 회사 안에 따로 작업실을 마련해 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했던 나는 차라리 이곳에서 도색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직원이 가장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설령 자택이어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작년 여름에 비하면 천국이구나..”

더구나 여기는 내가 비명을 지르더라도 방음 시설이 완벽했기에 괜히 옆집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작업대에 앉아 최근에 도색 작업을 시작한 12인치 미유키의 피규어를 파츠 별로 꺼내어 정리해 두고 있는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누구지? 배달부가 그릇을 벌써 찾으러 왔나? 아직 설거지도 안했는데?’

배달을 시켜 먹을 땐 편하지만, 그릇은 꼭 씻어서 내놓는 것이 예의였기에 조금은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찾으러 올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 거리며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야자키씨?”

그녀는 자기 몸집만한 검은 색 박스를 양손에 받쳐 들고는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우치무라씨~”

“어라?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강준혁 부장님께서 우치무라씨에게 특별히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요.”

“저한테요?”

“잠깐 들어가도 되요?”

“아, 뭐..”

나는 미야자키씨가 들고 있던 검은 색으로 포장된 박스를 대신 받아 들었다.

순간 내 예상을 벗어난 박스 무게에 허리에 힘이 번쩍 들어갔다.

‘뭐야. 이거 엄청 무겁잖아.’

전혀 힘든 내색 없이 들고 있던 터라 가벼울 줄 알았더니, 그렇다고 남자인 내가 모양 빠지게 낑낑 거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박스를 거실의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나를 따라 들어온 미야자키씨는 식탁에 놓인 그릇들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통 점심은 시켜 드세요?”

“회사에 얘기했더니 그렇게도 가능하다 길래 근처에 음식점에서 한 달 치를 미리 끊었어요.”

“헉 한 달 치나? 질리지 않아요?”

“뭐 그냥 밥 차려 먹긴 귀찮고, 편의점 인스턴트식품 보다는 나으니..”

“뭐, 그것도 그렇네요.”

“그런데, 이 검은 박스는 뭔가요?”

“아, 피규어에요. 강준혁 부장님이 특별히 우치무라씨에게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네에? 대체 무슨 피규어 길래, 이렇게 무거운 건가요?”

“글쎄요. 저도 내용물은 모르고, 뭐라더라. 디, 디오... 아!! 디오라마!! ...라던데요?”

“디오라마라구요!?”

“근데 디오라마가 뭐예요? 우치무라씨는 알고 계세요?”

디오라마는 피규어보다는 영화 세트장에서 쓰는 단어였다.

흔히 특촬물이라 불리 우는 ‘고지라’ 라던가, 지구방위대 후레쉬맨(초신성 플래시맨)을 보다보면 거대 괴수와 싸울 때 도시를 조그맣게 꾸며 그 위로 사람이 직접 괴수의 탈을 쓰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디오라마는 그런 조그만 미니어쳐들로 만들어진 세트장이라 볼 수 있었다.

나는 궁금해 하는 미야자키씨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 설명을 해주었고, 그녀 역시 후레쉬 맨의 전투장면을 본 적이 있는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디오라마라면, 대체 무슨 게임의 디오라마지? 설마 이제 와서 내가 없는 거리의 디오라마를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설마 발렌...타인 데이인가...?’

발렌타인 데이는 이곳에 이사 온 직후 펜타곤 소프트에서 보내준 정식판을 플레이 해본 적이 있었는데, 게임의 연출도 연출이지만, 특히나 마지막 반전이 어마어마했던 작품이었다.

마지막 초콜렛 상자를 주고 학교를 빠져 나올 때. 게임 속에서 내내 잠겨있던 과학실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방금 초콜렛 상자를 놓고 온 자리의 주인인 히로인이 직접 쓴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

과학실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는 내용을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그럼 나도 귀신이었던 거야?’

그 순간 화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이 굉장히 섬짓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스도 시커먼 게 뭔가 불길해. 그렇다고 안 열어 볼 수 도 없고, 미야자키씨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사람 몸통만한 거대한 박스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반대편에 서있던 미야자키씨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와아~”

‘와아~ 라니.. 그럼 발렌 타인 데이가 아닌가?’

살짝 감았던 눈을 뜨고, 검은 상자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정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우선 디오라마의 내용물이 담겨 있던 검은색 박스는 그 자체가 세트장 바닥 역할을 하는지 아스팔트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박스를 바닥으로 옮겨 모서리의 고정 장치를 제거 하자 상자가 열십자로 펴지며 하나의 교차로를 만들었고, 상자의 뚜껑 부분에는 4장의 교차로 주변에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바닥 틀이 들어있었다.

“허어.. 대체 이게 뭐지?”

나는 잠시 뚜껑을 한 쪽에 치워 두고 우선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아직 도색 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부서진 오토바이의 잔해와 박살나 버린 자동차가 한 대. 그리고 반쯤 무너진 건물들(이것 때문에 더럽게 무거웠구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의 체형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담긴 봉지가 8개씩이나?

이거, 공들인 티가 너무 나는데?

“여기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박스 안에 담겨 있는 높은 빌딩 안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소리에 미야자키씨가 입을 열었다.

나는 미야자키씨에게서 건물 모형을 넘겨받은 후 밑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뭔가 밖으로 열어젖힐 수 있을 뚜껑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 보니 안에는 부직포 재질로 만들어진 족자가 담겨져 있었다.

아마도 디오라마의 완성 씬을 나타내는 일러스트 인 모양이다.

촤락 하고 말려있던 족자를 펼쳐 본 순간 나와 미야자키씨는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사이킥 포스?”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다. 설마 펜타곤 소프트에서 또 다시 신작을 출시하려는 건가?

족자에 그려진 일러스트에는 가죽 재킷에 라이더 복장을 한 숏컷 머리의 여성이 부서진 오토바이에서 굴러 떨어졌는지 옷이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공중에서 몸을 비튼 상태로 바닥을 등진 채 양 손에 들고 있는 권총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그 위에는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있는 변태 같은 녀석이 폭발 직전인 자동차에서 뛰어 올라 그녀를 쫓고 있었다.

“멋지다.”

족자에는 그들 말고도 무너진 건물 끝을 받쳐 들고 있는 거한이나 그 틈을 노리고 파고들고 있는 미모의 여 닌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체는 모리타 선배님의 솜씨인데?”

건물마다 담겨진 족자에는 하나의 공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일러스트가 실려 있어 총 8명의 캐릭터가 사거리에서 난투극을 펼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아, 건물에 들어 있는 족자마다 앵글이 달라지는구나.’

모리타 선배님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온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부품을 도색해서 일러스트처럼 꾸며 달라 이거군.

“아, 맞다. 이건 부장님께서 드리는 메시지에요.”

“메세지?”

미야자키씨가 건네는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 편지가 한통 담겨 있었다.

-우치무라씨에게-

무리한 부탁인 건 알지만, 라온의 런칭 전까지 부탁 좀 드려요.

펜타곤 소프트의 이름으로 첫 출시하는 아케이드용 대전 액션 게임입니다.

라온 런칭 시에 홍보할 예정이니 멋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사이킥 포스.. 어딘가 패밀리의 사이킥 배틀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거기다 일러스트를 보아하니 이 능력 배틀 물인가? 재밌겠는데?’

< 단편 : 사이킥 포스 in 우치무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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