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33화 (133/252)

< EP. 21 : CEO 게임 (4) >

‘근데 이거 정말 괜찮으려나?’

하지만 나사구멍이 있다는 것은 열어볼 수 있다는 뜻이잖아?

일단 뚜껑만 열어보고 뭔가 아니다 싶으면 도로 덮어 놓자.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조심스레 게임 & 워치의 뒷면을 열어보았다. 일단 겉 케이스를 열어본 내 소감은...

‘딱히 특별한건 없네?’

일단 전력을 담당하는 배터리 동선을 시작으로 메인보드 형식의 녹색 기판이 달려있었다.

사실 모든 전자기기는 컴퓨터의 기판을 베이스로 하기에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메인 보드에 붙어 있는 CPU와 그래픽, 사운드 장치. 휴대용 게임기에는 디스플레이까지 달려있기에 배열이 조금 더 복잡하긴 하지만...

나는 양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메인보드의 나사까지 제거한 후, 드라이버를 이용해 조심조심 기판을 들어올렸다.

“어..?”

1/3 정도 기판을 들어 올렸을 때기기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호기심에 조금 더 기판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이 부분부터는 뭔가 뻑뻑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래선 내부를 들여다보기엔 각도가 너무 좁아..

‘이러다 부러지는 거 아냐?’

혹시나 미처 제거하지 못한 나사가 있나 싶어 다시 살펴보았지만, 딱히 메인 보드를 고정하는 다른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잡아 뜯는 다면 뜯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랬다간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아 결국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괜히 망가뜨렸다가 2015년에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면 어쩌냐..

사실 지금에 와서는 타임슬립 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란 또 모르는 것이니까.

“아~ 결국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내는 건 무리였나?”

쉽게 풀리는 게 없네.

탁자 위 공구함에 드라이버를 던져 넣은 나는 의자에 기대어 두 눈을 부볐다.

차세대 콘솔을 휴대기기용으로 전향하게 된 것은 사실 첸드라의 의견 때문이었다.

두 대의 거치기를 결합시키는 기존의 방식은 부피가 너무 커질뿐더러 CD를 사용하는 거치기가 나오면 기존의 카트리지 방식 콘솔이 굉장히 거추장스러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던 중 타마고상에 들어가는 액정 표시 디스플레이를 연구하던 첸드라가 신형 게임기의 제작 방향을 휴대기기 쪽으로 제안했다.

두 장의 얇은 병열 유리판 사이에 액정을 주입해 전류 압력으로 액정 분자의 배열을 바꾸는 이 방식은 주로 전자계산기에 사용 되었으나, 군페이씨의 아이디어로 인해 게임 & 워치가 만들어 졌고, 휴대용 겜보이에서 부터는 유동적인 액정 표시가 가능해졌다.

첸드라의 제안은 당시에선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휴대용 겜보이가 1987년 겨울에 판매가 시작되면서부터 액정 표시 장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였기에 최근에는 컬러 액정 디스플레이가 개발 되며 미래 산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첸드라의 의견을 100% 수용하기에는 처리해야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실은 이 시기에 풀 컬러 휴대용 게임기를 제작 중인 회사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NEGA사에서 개발 중인 ‘플레이 기어’가 그것이었다.

8비트 CPU에 160x144의 해상도를 가진 액정화면은 풀 컬러인 것도 기가 찬데, 한발 더 나가 백라이트 기능까지 덧씌워 버렸다. (어찌보면 진정한 혁신이 여기서 시작 될 수도 있었던 시대를 앞서간 기능이긴 하지만...) 덕분에 건전지를 6개나 사용하는 배터리 귀신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문제는 6개의 배터리를 사용하고도 플레이 시간이 3시간을 넘지 못해 유저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건전지가 6개가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휴대기기라 부를 수 없는 무게긴 하지..’

나는 미래에서 가져온 게임 &워치의 분해 작업을 잠시 쉬며 새로운 휴대기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텐도의 겜보이와 NEGA의 플레이 기어에서 필요한 기능과 필요 없는 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로 휴대기기에서 백라이트 기능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베터리 문제가 너무 심해지니 1세대에선 패스..

두 번째로 16비트 CPU 이 부분은 라이텍스를 이용해 슈퍼 패밀리에 박아 넣은 CPU를 커스텀 화시켜 재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운드 부분과 배터리 부분까지 전부 체크를 마치고 나니 새로운 차세대 기종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는데?’

하지만 가장 거대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바로 가격이었다.

아무리 싸게 잡아도 민텐도의 휴대용 겜보이처럼 이윤을 추구할 수가 없잖아..

그 순간 번뜩 내 스스로의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본래 콘솔이란 적자 안고 판매하는 기기다. 콘솔에서 이윤을 얻기 위해 기기의 성능을 제한하는 것은 민텐도의 방식이잖아? 무얼 위해 타임 슬립을 해온 건지 잊어버린 거냐?’

카마우치 사장한테 저승길 노잣돈 얘기까지 꺼내면서 투자 좀 하라던 게 작년이었는데,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딱 그 꼴이잖아? 창피한 줄 알아라. 강 준혁.

현재 내가 가진 모든 자본을 쏟아 부어서라도 최고의 기기를 만든다.

이제부터 내가 걸어가는 길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콘솔의 역사와는 달라지 게 될 것이다.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

거대한 콘솔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니까...

나는 체크해둔 서류를 한쪽으로 치우고 게임 & 워치의 조립을 위해 다시 드라이 버를 꺼내들었다.

메인보드 자체를 뜯어본 것도 아니었기에 몇 번 나사를 조이자, 게임 & 워치는 금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녀석 기판만 뜯어 볼 수 있었다면 오버 테크놀러지의 극한을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경첩을 열어 전원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빛이 들어오며 정상적으로 기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별 이상 없네..

어라? 잠깐만..

‘이거 화면이 두 개잖아? 그럼 메인 보드가 안 달려 있는 위에 화면은 탈착이 되려나?’

나는 재빨리 게임 & 워치의 전원을 끄고 이번에는 상판 케이스를 뜯어보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역시 사운드와 메인 화면을 담당하는 윗부분은 탈착이 가능하다!!’

나는 일자형 드라이버로 조심스레 경첩을 통해 전달되는 링크 단자를 뽑아내고 게임 & 워치의 디스플레이를 들어내었다.

‘됐다!! 됐어!!’

그렇게 나는 미래에서 가져온 게임 & 워치에 오버 테크놀러지 중에 하나를 손에 넣었다.

&

끼이익.

잠시 후. 라이텍스 공장 앞에 차가 멈춰 서고, 나는 어스름 불이 밝혀져 있는 라이텍스의 본사 건물 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첸드라를 비롯한 인도 친구들은 라이텍스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늦은 밤에도 그들을 만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강준혁 왔구나.”

“수고 많았다. 첸드라.”

“사실 내가 한 것은 별 거 없다. 이게 전부 네가 가져다준 액정 디스플레이 덕분이니까. 하지만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대체 어떻게 그런 물건을 손에 넣은 건지. 정말로 그것과 같은 기술을 이용해도 별 문제가 없는 건가? 이미 특허를 내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기술이던데?”

“걱정 마. 특허 소송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우리가 기술 특허를 내야지.”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거냐?”

라이텍스에서 만들어낸 저 전력 액정 디스플레이는 비록 백라이트 기능이 없기에 빛 반사에 약하지만, 320 x 280의 해상도로 인해 민텐도 겜보이 보다 가독성과 그래픽이 뛰어 났다.

테스트용인 프로토 타입 액정을 실제 슈퍼 패밀리에 연결하여 구동 시키자, 잠시 후 내가 없는 거리의 타이틀 화면이 떠올랐다.

“훌륭한데?”

“화면이 작아 졌지만, 도트 배열까지 작아져서 그래픽이 더 좋게 보이는 이점이 있다.”

이정도 그래픽이 휴대기기에서 돌아가는 것 자체가 게이머들에겐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

타마고 몬스터 역시 풀 컬러로 즐길 수 있을 테고, 서드 파티 몇 군데에서 제대로 도와준다면 해 볼만 하겠어.

&

다음 날. 펜타곤 소프트에서 차세대 휴대용 콘솔 발표가 있고 난 후. 게임 업계가 뒤집어 졌다.

그중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다름 아닌 민텐도였다.

새로운 콘솔의 싹을 짓밟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서드 파티에 대한 로열티를 대폭 감소하고, 카트리지 단가까지 낮추며 견제 하였는데, 막상 발표한 기계가 휴대용 기기였다니..

회의실에서 불같이 화내고 있을 카마우치 사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라온이 휴대 기기라는 것 발표한 시기는 1991년 1월 12일이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새로운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 발표쯤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 날짜는 민텐도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외통수도 작용했다.

왜냐고? 그래야만 2월 14일에 발매될 ‘발렌타인 데이’의 출시에 차질이 없을 테니까.

슈퍼 패밀리 게임의 카트리지 제작은 약 한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기에 만약에 그전에 라온을 발표해 버리면 민텐도에서 카트리지 제작을 거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는 1991년 1월 4일 무사히 민텐도의 승인을 얻고 카트리지 제작에 돌입된 상태이기에 현재 상황에서 민텐도는 발렌타인 데이의 카트리지 제작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라온의 발표가 얼마 지나지 않아. 1991년의 1월 말.

민텐도에서 굉장한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데, 일단 라온이 휴대기기라는 것이 확실해 지자, 민텐도는 1991년 2월을 기점으로 그동안 서드 파티들의 숨통을 풀어 주었던 로열티 부분을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회사는 민텐도의 새로운 조건에 반발했지만, 민텐도는 서드 파티와의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한정기간을 들먹이며 특유의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만일 새로 출시한 라온이 별다른 호응이 없을 경우 다시 로열티를 올리기 위해 한정기간 운용이라는 말을 명시해 두었던 모양이다.

서드 파티들은 민텐도의 횡포에 굉장히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미 개발 중인 게임의 플렛폼을 바꿀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타이밍에 새로운 휴대기기인 라온의 개발 툴이 담긴 킷(kit)을 서드 파티에 무료로 배포해 주었다.

민텐도의 횡포에 당황하던 서드 파티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펜타곤에서 개발한 라온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법 서드 파티들 중에서 알아주는 거대 기업이 움직였다.

게임 잡지 기자들은 가장 먼저 펜타곤과 손을 잡은 서드 파티의 발표에 굉장히 놀라운 반응을 보였고, 그것은 2월 12일 발렌타인 데이 출시 이틀 전에 유저들에게 공표 되었다.

-횡스크롤 액션 게임 ‘파이널 파이트 89’로 유명한 캡코사. 새로 출시하는 라온의 런칭 타이틀에 ‘파이널 파이트 89’ 이식과 더불어 ‘스트리트 파이어 2’ 가정용 콘

솔 최초 이식 결정!!!-

< EP. 21 : CEO 게임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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