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30화 (130/252)

< EP. 21 : CEO 게임 (1) >

&

산업 스파이..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타 기업의 기술 관련 기밀 정보를 고의로 유출시켜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자.’ 라고 알고 있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저부분에 해당 될 만큼 민텐도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물론 저 예문은 산업스파이에 대한 핵심일 뿐이고, 좀 더 넓게 보자면 내 죄목은..

그래, ‘이중 공작’ 이라고 해야 하나?

타임 슬립하기 전인 2015년에도 회사 몰래 아르바이트로 다른 회사의 코딩을 짜주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거야 소소한 용돈 벌이로 끝나는 일이지만, 내 경우는 스케일이 좀 남다르긴 하지..

그래서 일까? 내 앞에 앉아 있는 담당 변호사 후세씨 역시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참.. 미묘하군요.”

“그렇죠?”

“어떠한 행위가 있다면 그에 대한 손해가 있어야하는데, 이건 도리어 이익이 발생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 굉장히 까다로워요. 민텐도 측에서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정도까지 밖에 못 벌었다.’ 라고 물고 늘어지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더 큰 이득을 보장한다고 장담하기도 힘든 문제라.. 이 경우에는 아무래도 준혁씨의 근로 계약서 사항을 살펴볼 수밖에 없군요.”

“제 근로 계약서요?”

“회사 규정 중에 재직 중인 사원의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에 대한 사항이 명시 되어 있다면 조금 곤란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을 만들 당시 혹시 민텐도의 카트리지 공장이라던가, 민텐도 소유의 기물을 이용한 적이 있습니까?”

“아뇨. 카트리지는 후세씨도 아시다시피 트라이앵글 소프트를 인수하는 와중에 손에 넣은 부진 재고 카트리지를 이용했습니다.”

“그건 잘 됐군요. 민텐도의 설비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빈틈 하나는 발견한 셈이니까요. 그럼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민텐도 재직 중에 펜타곤으로 출시한

‘내가 없는 거리’ 군요.”

“그 부분을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민텐도의 근로 계약서 조항 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일단 자택으로 돌아가 민텐도 재직 당시의 근로 계약서를 한번 살펴보길 권해드립니다.”

후세씨의 조언에 나는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물었다.

“후세씨.. 혹시 쉽고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 제작에 들어갈 게임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있습니다.”

“정말요? 그게 뭔가요?”

“깔끔하게 민텐도의 제안에 따라 세컨드 파티로 들어가는 거죠. 그럼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

“물론, 그건 싫으시겠죠? 사실 이건 개인 적인 소견이지만, 왠지 제 느낌은..”

눈가에 주름을 깊게 패이며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후세씨는 탁자에 양손을 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민텐도의 카마우치 사장은 준혁씨와 대화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네?”

“사실 민텐도가 정말로 준혁씨를 고소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런 경고조차도 하지 않았겠죠. 내용을 전해들은 즉시 곧바로 실행에 옮겼을 겁니다.”

하긴 듣고 보니 후세 씨의 말도 일리가 있다. 카마우치 사장이 성격 하나는 대쪽 같으니까.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책상위에 있는 전화기만 바라보았다.

“저기, 전화 한통만 써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원하신다면 자리를 피해 드릴 테니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그럼 잠시만 자리 좀..”

잠시 후. 후세씨가 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비우고, 혼자 남게 된 나는 괜스레 문 쪽을 한번 살핀 후에 가방에서 게임 & 워치를 꺼내들었다.

“후우.. 요새 하도 바쁘다 보니 너도 참 오랜만에 본다. 그런데 이거 배터리는 남아 있으려나?”

마지막으로 시장 정보나 살펴 볼 겸 열어봤던 게 두 달 전..

게임 & 워치는 시계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수은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단 배터리 시간이 굉장히 오래가는 편이었다.

83년도로 넘어와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배터리 교환 해본 게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으니..

살짝 불안한 마음에 덮개를 열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화면에 푸르스름한 빛이 들어왔다.

다행이다. 제대로 작동하는군. 음.. 어라? 전에 봤던 스폰서 게임이랑은 조금 다른데..?

잠깐만, 이 인터페이스 화면은..

‘마치 삼국지 같잖아..’

그랬다. 게임 & 워치 안에는 거대한 가상의 대륙이 떠올라 있고, 그 안에는 현재 발매된 콘솔들이 가상 대륙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는 민텐도였다.

패밀리와 슈퍼 패밀리, 그리고 휴대용 겜보이까지 가상의 대륙에 2/3를 거머쥐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삼국지의 위나라를 연상케 했다. (그러고 보면 카마우치의 행동이 조조를 닮은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오른쪽 아래 부분에는 민텐도 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거대한 영토를 갖추고 있는 콘솔 업계 2위인 NEGA는 삼국지의 오나라와 이미지가 겹치는군..

마지막으로 촉나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PC-엔진이라던가, MSX같은 저물어 가는 콘솔 회사의 기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직 이쪽은 군웅 할거의 시대인가..

-CEO 게임을 시작하겠습니까?-

회사원 게임으로 시작해, 각 업체들의 고민을 파악하고 도와주었던 스폰서 게임을 거쳐, 이제는 CEO 게임인거냐?

황당함에 기가 찼지만, 이미 스폰서 게임으로 진화 과정을 한번 겪어본 터라 그리 놀라울 것은 없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대륙의 끝자락에 펜타곤이라는 아주 작은 영토가 생겨났다.

이번 CEO 게임은 인터페이스 자체가 예전에 많이 즐겨보았던 삼국지와 닮아 있었기에 적응하기가 더 쉬웠다.

잠시 동안 게임을 살펴본 나는 이내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삼국지에서 군주가 부하장수의 능력치를 살피듯 스폰서 게임에서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능력을 한눈에 살펴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모리타 녀석을 클릭해보니 직업란에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표시와 함께 다양한 정보가 표시 되었다.

‘몬스터 디자인 Lv.2에 미소녀 디자인 Lv.8 그리고 섹시 디자인 Lv.10이라.. 아주 정확하군..’

그때 모리타의 능력에 대해 살피던 중 스킬 옆에 깜박거리는 레벨 업 버튼이 신경 쓰이던 나는 호기심에 그것을 눌러보았다.

-모리타의 섹시 디자인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아이템이 필요 합니다. ‘요시하라 사토시의 성검 란그릿사 캐릭터 일러스트 Vol. 2’- 어라? 요시하라씨의 일러스트 북? 지금 서점에서 팔고 있는 그거?

아이템이라 길래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필요할 줄 알았더니, 이건 무슨 공부하는 학생에게 참고서 사다주는 것 같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첸드라를 클릭해 보니 모리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킬 정보가 떠올랐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먼저 살핀 것은 첸드라의 다른 능력보다 이것이었다.

-플래시 메모리 개발 연구 Lv.1-

“아!!”

순간 나도 모르게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다!! 이거야!!’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모든 정보가 이 안에 담겨 있었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잠시 억누르고 일단은 게임을 좀 더 살폈다. 이 가상의 대륙이 콘솔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게임 소프트를 의미하는 장소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게임화면에서 나는 게임 소프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의심이 가는 아이콘을 찾아내었다.

-지저 세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콘을 클릭해보니 가상의 대륙을 떠받치는 지저 세계가 펼쳐졌다.

수많은 게임 소프트 개발 업체들로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이곳은 한눈에 봐도 가상대륙의 기반을 다지는 곳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단번에 알아 낼 수 있었냐고?

그거야 지저세계의 80%에 해당하는 회사들의 연결표시가 가상대륙에서 민텐도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중에 우리 펜타곤은 지저세계에서 꽤나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민텐도를 떠받치는 가장 큰 줄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민텐도의 휴대용 겜보이는 타마고 몬스터 덕분에 가장 큰 공헌도를 자랑하고 있었고, 두 번째 슈퍼 패밀리에서 내가 없는 거리 역시 적지 않은 공헌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말은 즉슨.. 이 두 개의 줄기가 민텐도와의 교섭 포인트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책상위의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게임 & 워치를 다시 가방 안에 넣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그것은 카마우치 사장의 비서를 통하지 않은 직통 전화 번호였다.

잠시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카마우치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군이냐? 안 그래도 10분만 더 기다렸다가 전화 한통 없으면 곧바로 고소장 넘으려고 했는데, 운이 좋구나.”

전화를 받자마자 나란 것을 알아챘는지 카마우치 사장의 목소리에 여유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되려 잡아먹힐 수 있다는 걸 느낀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타이밍이 좀 기가 막히죠?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사장님.”

“녀석. 어제 발표회장에서 그딴 발언을 하고 잘 지내냐고 물어보다니. 네 녀석의 그 입심과 뻔뻔함은 여전하구나.”

다행히 카마우치 사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후세씨의 말대로 카마우치 사장은 나와 대화를 원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뒷공작으로 라이텍스 공장을 인수했던 것까진 모르는 것 같군.

하긴 그것까지 알았으면 대화고 나발이고 무조건 고소장부터 넣었겠지..

“그래도 건강해보이시니 다행이네요.”

“당연하지. 고작 그딴 발표 내용에 흔들릴 만큼 우리 회사가 부실하진 않거든?”

“맞는 말씀입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카마우치 사장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조금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다.”

“저도 민텐도를 떠나 이런 소식을 전해드려 안타까운 심정이긴 하네요. 일단 전화로 이런 중요한 대화를 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죠?”

“그렇지. 역시 뭘 좀 아는 구나. 그럼 기다리고 있으마.”

“그럼 내일 오전 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스케쥴 비워 두세요.”

카마우치 사장과 전화를 마친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네. 나이가 들었어도 특유의 강단이 있어..

그때 마침 식사를 마치고 후세씨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 오셨어요?”

“네, 혹시 제가 식사하는 동안 민텐도 측과 이야기는 해보셨나요?”

“네. 후세씨 말대로 카마우치 사장님은 저와 대화를 원하시더군요. 내일 오전에 교토의 민텐도 본사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흐음 잘 해결 됐으면 좋겠건만..”

“음.. 어쩌면 쉽게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내일 오후 쯤에 사무실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후세씨에게 상담에 대해 감사 인사를 마친 뒤 사무실을 나섰다.

&

다음 날. 새벽 첫차로 신칸센에 오른 나는 오전 10시 교토의 민텐도 본사를 앞에 두고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 EP. 21 : CEO 게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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