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26화 (126/252)

< EP. 20 : 제작 발표회 (2) >

"그럼.. 시작합니다."

나름 짧고 굵게(?) 인사를 마친 내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무대 위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타마고 몬스터의 홍보 영상이 재생되었다.

“오오~!! 굉장한데?”

"귀여워~"

어제 직원들과 함께 보았던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이 종료되자, 곧이어 타마고 몬스터의 탄생 100일을 기념하며 타마고 샵에서 10회 방어에 성공한 챔피언들의 명경기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단연코 최고의 명승부는 바로 바하무트와 포로리스의 대결이었다.

이 극한의 심리전을 보여준 두 명의 플레이어가 우치무라와 타카시 라는 사실에 나는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역시 극 강의 플레이어끼리 붙여 놓으면 알아서 명장면이 탄생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리에 앉는 대신 행사장의 한쪽 구석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로 하였다. 카와구치 대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지 어느새 내 곁에 서서 회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들 경쟁사들인데도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군요.”

“그러니 다들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겠죠. 너무나도 좋아하니까. 자신이 만든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그렇게 보면 준혁씨는 여기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겠군요.”

나는 카와구치 씨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지금의 내가 굉장히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타마고 몬스터의 홍보 영상이 끝나고 내년 봄 애니메이션 방영 예정이 란 문구가 떠오르자 모두들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작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전작인 내가 없는 거리는 OVA로 제작 되었지만, 타마고 몬스터만큼은 TV 애니로 제작 될 거 같더라니..”

“타마고상의 브랜드 콜라보 우리 회사도 나가볼까? 수익금 분배도 확실하다던데..”

“그보다 팀장님. 우리 회사에 저 자리에 낄만한 캐릭터가 있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네..”

어디선가 들려온 대화 내용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타마고 몬스터의 콜라보레이션은 현재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와 비밀리에 출시된 드래곤 엠블렘의 타마고 이 두 종류뿐이다.

하지만 홍보영상 종료 후 관계자들에게 타마고 몬스터의 수익 분배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주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타마고 몬스터는 판매 금액의 원자재비와 기타 생산비를 제하고 나면 약 500엔 정도의 순수익이 남는다. 현재는 500엔에 대한 수익을 모두 펜타곤에서 챙기고 있지만, 만약에 다른 회사에서 콜라보레이션을 제의 할 시에 해당 타마고의 생산 대수에 대해 개당 200엔의 수익을 가져갈 수가 있었다.

단지 타마고 몬스터에서 자사의 캐릭터 사용을 허가해 주는 것으로도 부가적인 수익과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반대편 쪽 문이 슬쩍 열리더니 미야자키씨와 우치무라군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예상 보다 조금 늦었지만, 타이밍이 나쁘지 않네..

그들은 회장의 분위기에 눈치를 보며 비어 있는 테이블 쪽으로 서둘러 달려가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며 조명을 담당하는 직원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오케이 사인을 그리며 조명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어둠이 깔리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뭐지?”

“정전인가? 아무것도 안 보여..”

나는 어둠속에서 바닥에 표시해둔 야광 스티커를 확인하고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펜타곤 소프트의 최신작. 발렌타인 데이의 홍보 영상을 재생하려고 합니다. 다소 충격적인 영상일 수 있으니 모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피처럼 붉은 글씨가 스크린에 떠오르자, 다른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벤트 홀에 있는 일부 여성들은 스크린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의지에 서둘러 안대와 귀마개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끼이익.. 끼이이익.. 끼기긱.. 끼익..

신경을 내리 긁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 되며 어두운 복도의 천장에 목을 맨 시신 한구가 좌우로 흔들거리고..

“아우.. 난 못 보겠다..”

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혀를 차며 안대에 손을 내민 순간.

스크린 안에 시신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옆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려올 정도로 정막이 흘렀다.

3.. 2.. 1.. 스타트.

“끼야야아아악!!!!!!!”

특수 분장한 여성의 소름끼치는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자, 동시 다발 적으로 온갖 종류의 비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어어아아악!!”

“뜨어억!!”

“어억!!”

“흡!!”

그중에는 안대를 착용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비명을 내지르자, 덩달아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비좁은 이벤트 홀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차오르고, 그와 중에 나를 비롯한 펜타곤 직원들은 어둠속에서 배를 움켜쥔 채 웃고 있었다.

우리야 한 번 봤으니 이 상황이 웃길 수밖에..

다들 고개를 숙인 채 키득거리는 모습이 내 눈에 훤히 보인다. 보여.. 킥킥..

-너만 없으면 내가 전교 1등이야!!-

-그래서 날 죽였니?-

-널 좋아해..-

-그러니까 어서 나와 함께 죽어줘..- 각종 소름 끼치는 영상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후. 또다시 긴 정적이 찾아왔다.

끝났나 싶어 사람들이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기괴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까드드득.. 까드드득...

쿵.쿵.쿵.쿵.

까드득.. 까득..

쿵.쿵.쿵.쿵

정체를 알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와 심장 박동소리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회장 안을 가득 메우고..

그 순간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던 귀신이 순식간에 스크린 앞으로 다가오자, 테이 블의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어깨가 절로 움츠러 들었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히히히히- -1991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출시..- -발매 기종 : SFC (슈퍼 패밀리 컴퓨터)- 출시일에 대한 문구가 지나고, 조명 팀에서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 회장 안이 다시 밝아졌다.

그제 서야 긴장을 놓은 사람들이 저마다 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와.. 진짜 놀랐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연출 진짜 장난 아닌데, 오줌 지릴 뻔했네..”

“아.. 심장 떨려..”

그때였다.

“우와아아아악!!!”

“뭐야!? 갑자기 왜 그.. 허어어억!!”

“꺄아아악!!!”

“끄아아악!!”

밝은 조명 아래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냐고?

“초코렛 받으세요..”

귀신 분장을 한 채로 사람들에게 초콜렛을 나눠 주는 저 분 덕분이지..

상냥한 목소리와 대조되는 섬뜩한 분장에 사람들은 초코렛을 받으면서도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직 충격과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도 더러 있었기에 행사 직원은 조심스레 사람들에게 초코렛을 나눠주고 있었다.

“발렌타인 데이 초콜렛입니다~ 초코렛 받으세요~”

귀신 분장을 하고도 저 발랄한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카오리인가?

그녀가 속으로 얼마나 웃고 있을지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려 놓고 사악하시네요.”

“그런 대표님도 웃고 계시잖아요.”

“아, 그런가요? 이거 표정 관리 좀 해야겠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스피커에서 파이널 프론티어의 메인 테마곡이 흘러나왔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따듯한 음색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었다.

“파이널 프론티어다.”

“드디어 SFC로 나오는 건가?”

“피닉스사의 드래곤 워리어5 보다 먼저 출시하려나?”

사람들의 반응에 피닉스 소프트 테이블을 바라보니 유우지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파이널 프론티어 1이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드래곤 워리어의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별로 선전하지 못했지만, 시리즈를 거치며 파이널 프론티어는 드래곤 워리어와는 확실히 다른 자신만의 색(色)을 지닌 대작이 되어 있었다.

팬 층도 상당히 두텁고 어떤 의미에서는 드래곤 워리어보다 그래픽이 뛰어 나다는 세간의 평가에 일본의 국민 RPG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우지씨 조차 긴장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내년 여름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간 카와구치씨의 파이널 프론티어 4는 굉장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용기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물론 시리즈의 메인이 되는 크리스탈에 대한 이야기로 굉장히 거대한 스토리 구조를 다루고 있었다.

이윽고 순백의 화면에 FINAL FRONTIER IV 라는 문구가 떠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캬~ 드디어 나오는구나!!”

일본 RPG의 양대 산맥중 하나인 최고의 타이틀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기 충분했다.

차세대 기종의 스프라이트 기능을 충분히 활용한 덕에 파이널 프론티어 4는 패밀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2D 그래픽 성능이 올라가 있었다.

새들과 함께 창공을 날아오르는 비공정의 모습..

그리고 뱃머리에 우뚝 서있는 검은 용기사의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래픽이 장난 아닌데?”

“패밀리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군..”

“그래픽도 그래픽이지만 BGM이 진짜 끝내주는 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파이널 프론티어 4의 아름다운 그래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 머릿속에 발렌타인 데이에서 겪었던 공포는 사라진 듯 해보였다.

“이거 출시만 되면 하드 캐리 제대로 하겠는데?”

“역시 이번 세대도 민텐도가 다 움켜 쥐는 구나. 보나마나 드래곤 워리어도 슈퍼 패밀리로 나올 거 아냐? 그럼 끝이지 뭐..”

제국군 용기사들의 투쟁과 우정. 그리고 사랑을 그리고 있는 파이널 프론티어 4의 홍보 영상이 거의 마지막에 이르자, 곧이어 새하얀 화면에 출시일 발표 문구가 떠올랐다.

-1991년 여름 발매 예정-

“여름? 생각보다 늦게나오네?”

“지금이 90년 가을인데, 언제 기다리지?”

하지만 그 다음 화면에 떠오른 문구에 아쉬워하던 좌중의 분위기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출시 기종 : 미정.-

“뭐라고!!?”

“미정? 설마 슈퍼 패밀리가 아닌 건가?”

“에이 설마.. 저 그래픽은 NEGA 드라이브론 불가능할 텐데?”

당연히 슈퍼 패밀리로 출시할 거라 믿었던 모두의 예상이 뒤집어지자, 회장 안은 다시 또 패닉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뿐이었지만, 나와 카와구치씨는 준비된 모든 영상을 마칠 때까지 단상에 오르지 않았다.

나는 점점 과열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서둘러 다음 영상을 진행 시켰다.

그러자, 바람 찢어내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 속에 펼쳐진 하늘에서 묵색의 부러진 검신이 떨어져 내렸다.

쐐애애액!!! 카아앙!!!

“뭐지. 저건? 설마 출시 예정작이 또 있는 건가? 대체 내년에 게임 몇 개를 출시하려는 거야?”

그때 화면 속의 부러진 검신을 용케도 알아본 남자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친구인 준페이였다.

“저거!! 저건!!”

놀라움에 차마 다음 할 말은 떼지 못한 채 ‘저건!!’ 만 반복 하던 녀석의 입에서 겨우 다음 대사가 터져 나왔다.

“드래곤 엠블렘 크로엘의 검이다..”

촤아앙!!

녀석이 말을 마치자, 두 개의 검격이 서로 맞부딪히며 새하얀 스크린에 타이틀명 떠올랐다.

-DRAGON EMBLEM II-

< EP. 20 : 제작 발표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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