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24화 (124/252)

< 단편 : 발렌타인 데이 in 우치무라 >

-펜타곤 소프트 제 2 개발팀 부장 강준혁.- 전철 안에서 나는 명함을 가방 안에 쑤셔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비록 미유키의 피규어를 강준혁이라는 사람에게 건네주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마 그 사람이라면 유키씨에게 잘 전달해 줄 것이 분명 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이 허전하지만, 대신 항상 빈곤했던 지갑만큼은 웬일인지 두둑하다.

설마 내가 만든 피규어 하나가 덮밥집 아르바이트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줄이야..

거기다 그 사람에게 받은 새로운 게임의 카트리지도 있다.

그것도 아직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펜타곤 소프트의 최신작!!

그 이름도 아름다운 ‘발렌타인 데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운 미소녀들이 초코렛을 들고 나에게 달려올 것만 같았다.

슈퍼 패밀리의 카트리지는 전작인 패밀리의 카트리지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회색빛의 카트리지의 전면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슈퍼 패밀리에 카트리지를 장착해도 전면 부착된 타이틀 스티커를 가리지 않아 보기 만해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전철에서 내린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주 들리는 도시락 집에 들렀다.

오늘은 지갑도 두둑하니 조금 비싼 도시락을 사볼까?

“어머, 우치무라군. 오랜만이네. 오늘도 돈까스 도시락 하나?”

언제나 제일 싼 돈까스 도시락만 먹다보니 이젠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 주시는 구나.

하지만 오늘 만큼은 다른 메뉴를 선택해야지.

“아뇨. 훈제 연어와 소고기 스테이크 도시락으로 주세요.”

“오늘 월급날이야? 그래~ 가끔은 돈까스 말고 고기랑 생선도 먹어야지. 아줌마가 반찬 많이 담아 줄게~”

“감사합니다~”

곧이어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한 소고기의 풍미가 나의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 어서 빨리 발렌타인 데이를 플레이 해볼 생각뿐이었다.

“자, 여기 1,480엔~”

항상 480엔짜리 돈까스 도시락만 먹다가 천 엔이 더 붙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 사치쯤이야. 지금 내가 가진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나는 빳빳한 1만엔짜리 지폐로 계산을 마친 뒤, 묵직하게 전해져오는 도시락 비닐을 손에 든 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어~!! 우치무라형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요다 녀석이 나를 보자 마자 달려와 재잘 거리기 시작했다.

“형, 형~!! 나 형이 준 바하무트로 이 동네 애들이랑 배틀 해서 다 이겼다. 굉장하지?”

“어, 그래. 대단하구나.”

어서 집으로 가고 싶었던 나는 요다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발길을 돌렸다.

“뭐야~ 오늘따라 왜 이리 차가워?”

“형이 오늘 좀 바빠서 그래.”

“저번에도 배틀 한번 해달라니까 요상한 인형 옷 만든다고 안 놀아줬잖아~!!”

‘솔직히 내가 너랑 놀아줄 나이는 지났지.’

나는 자꾸만 내 팔에 엉겨 붙은 요다 녀석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에 놀아줄게.”

크으~ 방금한 손동작은 내가 봐도 멋지군. 쿡쿡쿡..

쿨하게 녀석을 스쳐 지나 집으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요다 녀석의 벙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형 요즘 이상해..”

&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나가려면 지금부터라도 눈을 붙여 둬야하지만, 새로운 게 임을 이대로 방치해 두는 건 ‘죄악’이나 다름없기에 나는 서둘러 TV를 켜고 슈퍼 패밀리의 카트리지에 발렌타인 데이를 꽃아 넣었다.

‘아차차.. 게임도 좋지만, 소고기 스테이크가 식어버리면 맛이 없어지잖아. 안 그래도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시작하자.’

우선 식사를 먼저 하기로 생각을 바꾼 나는 곧 조그만 1인용 밥상을 가져와 상다리를 펼쳤다.

“이거 참. 정리 좀 하고 살아야지.. 피규어 만들기 시작하고 부턴 집이 완전 난장판이네..”

그도 그럴 것이 바닥에는 어제부터 도색을 기다리는 나나세의 피규어 부품들이 스티로폼 위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나나세 피규어도 어서 작업을 시작해야하는데..

최초로 만든 하세가와 미유키의 피규어가 어마어마한 가격에 입찰되었을 때 느낌 쾌감을 떠올리자, 눈앞에 있는 피규어 들이 갑자기 돈 줄로 보이기 시작했다.

‘잘 만 하면 덮밥 집에서 밤새워 아르바이트 하는 것 보다 더 큰 돈을 만질 수도 있겠어. 그러려면 다음 피규어도 빨리 제작해야겠지?’

결국 나는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식사와 동시에 나나세의 도색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어떤 식으로 그녀의 옷차림을 꾸밀지 생각해두었기에 밥알을 씹어 삼키면서도 작업은 매우 순조로웠다.

최근에 캐릭터 상품의 인기가 치솟아 오르며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모두 공장에서 도색을 입혀서 그런지 제품들의 퀄리티가 각양각색이었다.

아무리 원작자가 직접 감수를 한다고 해도 그 많은 제품을 일일이 손볼 수 없겠지.

하지만 이렇게 직접 피규어 도색 작업을 해보니 생각보다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나는 이 작업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없는 거리’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가느다란 붓으로 나나세의 눈썹을 그린 나는 에나멜을 굳히기 위해 차가운 입김을 불었다.

그때.. 바람에 스치듯 조그만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거기서 뭐해...?-

“보면 몰라? 피규어 도색하고 있잖…….”

헐.. 뭐지? 방금 무슨 목소리가?

-여기 좀 봐 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TV 화면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순간.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끼야야야아아아악~!!-

“우으아어으라어아아아아아악!!!!!!!!!”

입안에 있던 밥알이 다 튀어 나오며 손에 들고 있던 붓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아아아! 으아아아!!”

‘기철초풍’이라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한 말일까?

TV에 나온 귀신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명만 지르고 있는데, 옆집에서 쿵쿵 거리며 벽을 쳐대었다.

결국 당황한 나는 TV의 전기 코드를 잡아 뽑아버렸다. 그러자 틱 소리와 함께 TV가 꺼지고 조용한 적막이 찾아왔다.

“허억.. 허억.. 뭐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TV에 귀신이 씌었나? 아마 평생토록 트라우마가 남을 것만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분명히 전원을 내려둔 슈퍼 패밀리의 전원부에 녹색 빛이 들어와 있었다.

“이게 왜 켜져 있지? 고장 났나?”

고개를 갸웃 거리며 전원 버튼을 올렸다가 내리자, 다시 전원부의 불빛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혹시 고장 난건가 싶어 TV의 전원 코드를 다시 꽂아 넣고 스위치를 올리자, 잠시 후 TV 스피커에서 소름끼치는 BGM이 흘러 나왔다.

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설마 이 게임. 공포물인가?”

그런데 이거 제목이 왜이래!?

순간 방안의 공기가 싸늘해지는 기분에 나는 서둘러 전원을 끄고 게임 카트리지를 뽑아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에 내려놓았던 도시락을 비명을 지르다가 발로 걷어 차버렸는지 한쪽 구석에 뒤집어져 있었고, 나나세의 얼굴은 차마 봐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에게 게임 카트리지를 건네며 실실 웃던 강준혁 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제목만 보고 미연시냐고 물어본 나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라니, 용서할 수 없다.

난 놀이공원 가면 귀신의 집에도 못 들어간다고!!!

&

사람의 호기심이란 말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할 때도 있으니까.

대충 걸레로 방안을 치우고, 나나세의 얼굴을 아세톤으로 말끔히 닦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고 다시 슈퍼 패밀리에 카트리지를 꽂아 넣었다.

“그래. 고작해야 게임이야. 그것도 체험판.”

양쪽 뺨을 몇 차례 내려친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곧이어 예상대로 잡음이 섞여 있는 소름끼치는 BGM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라는 장르에 도전해보았다.

물론 이전에도 비디오 가게에서 무서운 영화를 빌려본 적은 있지만, 게임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왜냐하면 영화야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 영상물을 ‘감상’하면 그만이지만, 게임은 정해진 스토리를 따르기 위해 직접적인 ‘조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작자가 준비한 온갖 공포요소를 다 겪어 내야지만 이야기의 끝인 ‘엔딩’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일단 달리기 버튼과 숨 참기. 그리고 사용하기 버튼이군..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 상하키를 이용해 몸을 숨길 수 있다. 좋아 시작하자.’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었지만, 이 게임은 정말 시작부터 플레이어의 심장을 콱 움켜쥔 채 놓아 주지 않았다.

거꾸로 몸이 뒤집은 채 파닥거리며 지나다니는 귀신은 어찌어찌 책상 위로 몸을 숨겨 피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어두컴컴한 학교 안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귀신들이 기괴한 각도로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귀신이었다.

그 녀석이 근처에 다가오면 특이한 효과음이 들리는데..

쿵. 쿵. 쿵. 쿵.

바로 이 소리!!

처음엔 나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정체를 알고 까무러칠 뻔했다.

옥상에서 머리부터 떨어진 그 귀신은 거꾸로 몸을 꽂꽂히 세운 채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나타나면 무조건 높은 곳으로 도망쳐야 했는데, 플레이어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가 더욱 빨라져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 시간이 흘러 겨우 구교사를 빠져나오자, 저 멀리 흔들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사람인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걸어오는 모습에 일반인이라는 걸을 확신한 나는 서둘러 주인공을 조작해 불빛으로 달렸다.

게임 안에서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공포심이 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푸른색 경비 복을 입고 있는 수위 아저씨였다.

그는 잠시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다시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후레쉬라도 들고 있으니 더 이상 어두운 복도는 안 걸어 다녀도 되겠다 싶어 말을 건네자.

주인공을 돌아보는 수위아저씨의 목이 180도로 꺾여 돌아가며 화면 가득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여기 있었구나..?-

"...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세요.."

&

다음 날. 새벽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서랍에서 ‘발렌타인 데이’의 카트리지를 꺼내들고 강준혁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려보았다.

-플레이 해보시고, 저에게 연락 한 번 주시겠어요?- 평생 기억에 남을 무서운 경험이었지만, 정말로 대단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이런 게임을 만들어 낸 펜타곤 소프트라는 회사가 굉장하게 느껴졌다.

최근에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펜타곤 소프트라는 곳에서 인력을 많이 뽑는다고 하던데..

어쩌면 어제의 인연으로 이곳에 취업할 수도 있잖아?

그곳에는 나의 우상인 모리타씨도 있으니까.

“연락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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