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5) -4권 끝- >
똑. 똑.
가볍게 노크를 마치고 대표이사 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내 눈앞에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의 군페이씨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군페이씨.”
“어? 어어, 강군. 오랜만이군.”
슈퍼 패밀리의 게임 패드를 내려놓으며 식은땀을 훔치는 군페이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카와구치씨 역시 입주변이 실룩거리는 걸보니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번에 펜타곤 소프트에서 제작중인 게임이라고 해서 플레이 해봤는데,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네.”
비서가 가져온 음료수를 삼키던 군페이씨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름끼치는 BGM에 치를 떨면서도 한편으론 감탄하고 있었다.
“고음질의 사운드를 포기하고 일부러 사운드를 뭉게 뜨려 놓음으로서 분위기를 더 긴장시키다니. 민텐도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강군의 아이디어는 항상 기발하군.
시게군도 플레이해보면 분명 깜짝 놀랄 거야.”
군페이씨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슈퍼 패밀리의 전원을 내린 후.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카마우치 사장님이나 시게씨는 잘 지내시나요?”
“물론이지. 지난 여름에 출시된 타마고 몬스터 덕분에 현재 휴대용 겜보이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거든. 최근에 카마우치 사장님조차 타마고상을 플레이하고 계시더군.”
“카마우치 사장님도요? 그 것 참 의외네요.”
“자네가 만든 작품이라니까 굉장히 좋아 하시면서도 한 편으론 굉장히 서글퍼 하시더군. 자네를 끝까지 붙잡지 않은 걸 굉장히 후회하시는 모양이야.”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네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아, 그렇지. 사실 이번에 민텐도 내부에서 회의를 한 결과. 펜타곤 소프트에 굉장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네.”
“좋은 소식이요?”
그러자 군페이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펜타곤 소프트가 우리 민텐도의 세컨드 파티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네.”
“네에!?”
카와구치 사장도 군페이씨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컨드 파티..
이 용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콘솔 게임 업계에는 ‘퍼스트 파티’와 ‘세컨드 파티’ 그리고 ‘서드 파티’가 존재한다.
그 외로는 1인 개발이나 2~3명이서 제작하는 인디 게임도 있지만, 이것은 논외로 치고..
우선 퍼스트 파티는 콘솔을 제작한 업체가 자사 브랜드로 출시하는 게임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시게씨가 만드는 슈퍼마리지와 카린의 전설. 동킹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콘솔을 만드는 회사에서 직접 게임을 만드는 만큼, 퍼스트 파티의 게임이 다른 콘솔로 컨버젼 되어 출시할 확률은 0%다.
어릴 적 슈퍼 패밀리를 가지고 놀면서 왜 NEGA 드라이브의 ‘슈퍼 소니크’가 출시되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것만 나와 준다면 최강의 게임기가 될 수 있을 텐데..
그 당시에 슈퍼 패밀리의 인기를 정말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에 언젠가 ‘슈퍼 소니크’가 출시 될 거라 기대했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서드 파티’
왜 세컨드 파티가 아닌 서드 파티를 먼저 설명 하느냐고 묻는다면 보편적으로 게 임을 만드는 회사들은 바로 이 ‘서드 파티’에 소속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드 파티는 퍼스트 파티와는 달리 어느 회사의 콘솔로든 자유롭게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다.
여건과 기술력만 받쳐준다면 슈퍼 패밀리와 NEGA 드라이브용 게임을 동시에 제작해 출시할 수도 있었다.
또한 유저들의 요청에 따라 차후에 다른 회사의 콘솔로도 비교적 자유롭게 게임을 출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서드 파티였다.
물론 90년대 초반인 이 시대에는 민텐도의 독주체제라고 해도 될 만큼 모두가 민텐도에 충성하던 시기였기에 서드 파티라곤 해도 거의 대부분 슈퍼 패밀리로 게임을 출시하곤 했었다.
하지만, 서드 파티의 단점이 있다면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민텐도에 엄청난 금액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기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에 큰 돈을 투자한 게임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그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망해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패밀리 시대 때 엄청나게 생겨났던 게임 회사들은 이제 준 메이저급 이상만 남기고 거의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런 와중에 새로 생겨나는 소프트 회사도 넘쳐 나긴 하지만..)
현재 펜타곤 소프트의 위치는 위에 두 가지 부류 중 ‘서드 파티’에 속해 있었지만, 민텐도에서 출시한 콘솔 게임만 제작하고 있었다. 드래곤 워리어를 제작하는 피닉스 소프트처럼 서드 파티 치고 민텐도에서 만드는 콘솔에 꽤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세컨드 파티’가 남았는데..
여기까지 들었으면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세컨드 파티’란 서드 파티인 회사가 퍼스트 파티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명을 그대로 유지 하되 그 회사에서 출시하는 게임은 무조건 퍼스트 파티가 만들어낸 콘솔용으로만 제작해야하며 다른 콘솔로 컨버젼이 불가능하다.
대신 민텐도에게 건네는 로열티를 최소화 시킬 수 있고, 민텐도의 이름과 함께 출시되는 만큼 인지도가 생겨 어느 정도 판매수익이 보장되어 있었다.
현재 수많은 게임 회사들이 바로 이 민텐도의 세컨드 파티가 되고 싶어 했는데, 그 이유는 어차피 ‘서드 파티’로 남아 있더라도 제작하는 게임은 전부 슈퍼 패밀리용을 제작 중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 최고의 인지도와 보급률을 가진 ‘슈퍼 패밀리’의 파급력을 무시 할 수 없었기에 얼핏 군페이씨의 제안이 굉장히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카와구치씨 역시 군페이씨의 솔깃한 제안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다시 민텐도 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세컨드 파티가 되면 민텐도로부터 투자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제작기간이라던가 게임의 스토리, 컨셉, 장르에 대해 일일이 보고 해야 하는 강제성을 띄게 된다.
‘즉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게임의 출시는 꿈도 못 꾸게 되겠지.’
카와구치씨는 군페이씨의 제안에 고심하는 척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런 카와구치씨를 향해 살짝 코끝을 문지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라는 사인.
“펜타곤 소프트가 저희 민텐도의 세컨드 파티가 되어 준다면 카마우치 사장님께서도 그에 상응하는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번 체결은 현재까지의 게임 역사상 가장 유래가 없는 최고의 파트너 쉽이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내 사인을 알아차린 카와구치 대표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민텐도의 제안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때였다.
-끼야야야야아아아아악!!!!!!!!-
“으어어억!!”
“뿌아아아아아악!!!!!”
“씨발!!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한국어가 튀어 나왔다.) 슈퍼 패밀리에 꽂혀 있던 발렌타인 데이의 체험판 카트리지를 제거하는 걸 깜빡한 결과. 자동으로 슈퍼 패밀리의 전원이 켜지며 화면에 뒤집힌 여자의 끔찍한 얼굴이 튀어나온 것이다.
“어휴.. 놀래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는 서둘러 슈퍼 패밀리 슈퍼 패밀리의 전원 버튼을 올렸다 내린 뒤 카트리지를 뽑아 내었다. 그러자 카와구치 대표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주.. 준혁씨. 아무래도 저 기능은 그냥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하하.. 제가 만들었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네요. 심장 마비 걸리는 줄 알았네. 죄송해요 군페이씨.”
하지만 군페이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군페이씨?”
“…….”
“큰일 났다. 대표님 빨리 119 불러요!! 군페이씨!!! 정신 차려요!!”
나는 넋이 나간 군페이씨를 서둘러 소파에 눕히고 힘차게 가슴을 내리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커헉!! 쿨럭.. 어억!!”
다행히 군페이씨의 정신이 돌아왔다.
우와.. 이 정도로 놀랄 줄이야. 하마터면 살인자가 될 뻔했어..
&
삐뽀.. 삐뽀.. 삐뽀..
제정신을 차렸지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군페이씨는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나와 카와구치씨 역시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이 있었기에 차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 내옆에 타고 있던 카와구치씨가 나에게 물었다.
“어째서 군페이씨의 제안을 거절하신 겁니까? 현재 모든 서드 파티가 원하는 것이 민텐도의 세컨드 파티가 되는 것인데, 준혁씨의 결정에 조금 이해가 안가는 군요.”
“카와구치씨가 궁금해 하시는 부분. 저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멀리 봐야 해요.”
“조금 더 멀리?”
“지금의 민텐도는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최고의 콘솔 기업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가 영원히 가진 않을 거예요.”
“네? 그 말은 설마 민텐도가 무너질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왕좌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면 말이죠. 세상의 모든 게 하찮게만 느껴질 때가 옵니다. 민텐도는 너무 오랫동안 왕좌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현재의 게임 시장에 아무런 긴장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마땅히 그들과 대적할만한 기업이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현재는 민텐도가 최고의 콘솔 기업입니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올 겁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겁니다.”
“새로운 바람이라..”
카와구치씨는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하긴 내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으니깐..
&
“니세코이 군페이씨 보호자분?”
“아, 네!!”
간호사의 목소리에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나와 카와구치씨가 서둘러 달려갔다.
“환자분께서 굉장한 쇼크를 받으신 것 같아서 일단 진정제 놓아 드렸습니다. 오늘 하루 푹 쉬시고 내일 퇴원하시면 되실 거예요. 그런데 환자분이 쇼크를 받은 원인이 무엇인가요?”
“네? 아, 그게 게임 때문에..”
“게임이요?”
간호사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차트에 무언가를 작성하고 돌아갔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는 말에 나와 카와구치씨는 크게 안도하며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군페이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허허.. 이거 참 창피하군. 그깟 게임 화면 하나 보고 혼절하다니. 그런데 그 슈퍼 패밀리 전원을 꺼두지 않았었던가?”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게임화면이 나온거지?”
“그게, 카트리지 안에 전격 송출 장치를 넣어 두었거든요. 시간이 흐르면 카트리지 안에서 발생한 전기 쇼크로 저절로 슈퍼 패밀리에 전원이 들어오도록..”
“그런 것이 가능한가?”
“눈으로 직접 보셨잖아요.”
“허허.. 직접 봤지만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이것도 강군 자네의 아이디어인가?”
“네. 그런데 아무래도 그 기능은 제거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군페이씨처럼 기절 하면 어떡합니까..”
“그래. 장난 치곤 조금 심하더군.. 하하하~”
그래도 나와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라 그런지 군페이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음에도 그저 웃어넘기려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역시 강군은 지금도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저들의 약을 바싹 올려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하하~ 그래.. 아마도 그때부터겠지? 드래곤 엠블렘을 만들어 냈을 때부터 말이야..”
“네?”
“강군. 이 내 눈이 옹이구멍으로 보이나? 내가 비록 나이는 먹었어도 바보는 아니라네. 드래곤 엠블렘에 사용된 커스텀 칩. 그리고 그 의문의 이 메일 주소.. 숫자는 모르겠지만, kjh라는 한국인 개발자가 자네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네.”
“아..”
“자네가 힌트를 너무 많이 주었지.”
“그런가요? 하하.. 그럼 혹시 시게씨나 카마우치 사장님도?”
“아니. 내가 보기에 그들은 거기까진 모르는 것 같더군.”
“하긴 알았으면 카마우치 사장님이 가만 놔 둘리 없으셨겠죠.”
군페이씨는 빙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비록 나이차가 많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오다보니 그간 많은 정이 쌓인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군페이씨. 아까 병원에 오면서 카와구치씨와 이야기 해보았는데, 저희 펜타곤 소프트는 민텐도의 제의를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 어째서? 현재 모든 게임 회사들이 우리 민텐도의 세컨드 파티가 되기를 원하던데..”
군페이의 질문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야 민텐도로 가버리면..”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결국 빙긋 웃으며 뒤에 말을 이었다.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게임을 만들 수 없잖아요.”
그러자 군페이씨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저는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만들고 싶거든요.”
<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5) -4권 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