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22화 (122/252)

<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4) >

“저게..? 뭐죠?”

밧줄에 목이 걸린 채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 것은 누가 봐도 정상 적인 캐릭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을 지나갈 때는 숨을 참고 지나가야 돼요. 들키면 골치 아플 테니..”

나의 충고에 미야자키는 호흡 게이지를 체크한 뒤에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다행히도 밧줄에 목이 매달린 녀석은 등을 돌리고 있어, 주인공이 다가가는 걸 모르고 있었다.

끼이익... 끼이이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복도 가운데서 흔들리는 녀석을 스쳐 가면서 플레이 중인 그녀도 함께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디 가..?-

“꺄아아악!!!”

TV에서 흘러나온 소름끼치는 음성에 깜짝 놀란 미야자키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인공의 호흡을 담당하는 Y버튼에서 손이 떨어졌다.

“달려요!!”

이미 귀신에게 들킨 순간 다시 호흡을 멈춰 봤자 소용이 없다.

미야자키는 나의 외침에 B버튼을 눌러 주인공을 복도 끝으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그 순간 목을 맨 시신이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지더니..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처럼 몸을 뒤집은 채 네 발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꺄아아악!!!”

기괴한 몸짓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에 놀란 미야자키는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거기 계단!! 빨리 2층으로 올라가요!!”

미야자키씨는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서도 내 말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주인공을 조작해 계단을 올랐다.

그 순간 화면이 바뀌며 어두컴컴한 2층 복도가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주인공을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어떡해요?”

“교실에 들어가 숨어요.”

그녀는 눈앞에 있는 교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렬로 줄지어 있는 교실로 장소가 바뀌었다.

“일단 방향키를 조작해서 숨어요. 위를 누르면 책상 위로, 밑으로 누르면 책상 밑으로 숨을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판단은 책상 밑이었다. 어라? 그건 별로 안 좋은 생각인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드르르륵..

교실의 문이 열리자 미야자키씨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탁.. 탁.. 탁... 주인공이 숨어 있는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온 귀신은 잠시 그 앞에서 왔다갔다 맴돌기 시작했다.

“흡.. 흡..”

게임 속의 주인공처럼 숨을 멈춘 채로 어깨만 들썩이던 그녀는 잠시 후. 귀신이 교실 밖을 빠져나가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Y 버튼에서 손을 뗀 순간..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미칠듯한 효과음과 함께 녀석이 교실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책상 밑에 숨어 있던 주인공과 눈이 마주친 순간.

-찾.. 았다..-

거꾸로 뒤집힌 채 피 눈물을 쏟으며 웃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 클로즈 업 되며 화면이 붉게 물들었다.

-GAME OVER.-

“어때요? 미야자키씨..?”

하지만 그녀는 내 질문에도 양 손에 패드를 꽉 움켜쥔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미야자키씨?”

그녀를 부르며 어깨에 손을 올리자.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녀의 몸이 스르르 소파 옆으로 쓰러졌다.

허억!! 기절했어!?

“미야자키씨!? 미야자키씨!!”

“부장님.. 으윽.. 흑.. 어누앵요..”

“네??”

“너무하다구요!! 이런 게임에 어떻게 ‘발렌타인 데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을 수 있어요!?”

그야.. 재밌으니깐..

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다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 프롤로그 도입부의 테마음이 울리자, 미야자키는 서 둘러 슈퍼 패밀리의 전원 버튼을 내려버렸다.

아무래도 충격이 좀 큰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럼 제가 의도한 바는 성공이네요.”

휴게실 불을 환하게 켜자, 미야자키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슈퍼 패밀리에서 카트리지를 뽑아내 가방에 챙겨 넣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퇴근하셔야죠?”

“부장님. 우치무라씨는 괜찮을까요?”

“아마.. 몇 번 하다보면 내성이 생길 테니 괜찮겠죠?”

“제가 보기엔 겁이 좀 많아 보이던데..”

“아.. 그러고 보니 그 얘기를 깜박했네.”

“네? 무슨 얘기요?”

“이 카트리지.. 계속 슈퍼패밀리에 꽂아두면 안 되거든요.”

“왜요?”

“카트리지 안에 전격 송출 장치가 있어서.. 장시간 꽂아두면 조금 재밌는 일이 벌어져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음.. 그러니까. 전원이 꺼져있는 슈퍼 패밀리가 자동으로 켜진다고 해야 하나?”

“히익..”

“정식 판에서 넣을까 말까 하는 기능인데, 일단 체험 판에는 넣어 두었거든요. 우치무라군. 정말 괜찮으려나..?”

그날 밤. 결국 나는 미야자키씨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발렌타인 데이의 괴기스런 일러스트는 타마고 몬스터 공모전의 영향이 컸다. (모리타에게 일러스트 한 장을 맡겨 봤는데, 남자의 양기를 다 빨아 먹게 생긴 굉장히 색기 넘치는 요괴의 모습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타마고상에 필요한 귀여운 디자인의 몬스터 말고도 괴기스런 몬스터 그림을 별도로 취합해두었던 나는 공모전이 끝난 후 따로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그중에서도 발군의 센스를 지녔던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그린 ‘뒤집힌 여자’라는 작품은 일러스트 한 장만으로 꽃놀이의 분위기를 와장창 깨부술 만큼 충격적인 일러스트였다.

그리고 그것을 모티브로 만든 귀신이 바로 미야자키씨를 기절하게 만든 녀석이었다.

학교라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장소를 통해 온갖 괴담을 뒤섞어 만들어낸 이 작품은 특히나 사운드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다.

빈약한 슈퍼 패밀리의 사운드 칩을 어떻게든 쥐어 짜내어 녹음했지만, 역시나 퀄리티 유지가 힘들었던 탓에 나는 일부러 사운드를 뭉게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일부 잡음이 섞여 있는 ‘발렌타인 데이’의 사운드는 중간 중간 지직 거리는 잡음이 섞여 더욱 괴기 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소 뒷 걸음 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 뭐..’

다음 날. 펜타곤 소프트에 도착한 나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채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지난 여름. 허름한 4층 건물의 전체를 사용하던 펜타곤 소프트는 신식 빌딩으로 이사를 완료했다. 타마고 몬스터 디자이너들의 합류로 직원도 기존보다 3배가 늘어났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직원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

어찌 보면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전문 학원과 대학교를 대상으로 한 ‘입사하고 싶은 회사 베스트 10위’ 안에 펜타곤 소프트가 들어가게 되었다.

펜타곤 소프트는 굳이 직원들의 출근을 강제하지 않았다.

출근 시간도 직장인들의 러시아워를 피해 오전 11시로 잡아 두었다. 점심시간은 1시부터 2시 반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었고, 회사 근처에 지정된 식당을 이용할 때는 모든 식대는 회사에서 결재한다.

퇴근은 오후 5시 30분.

그 이후에는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모두 반드시 퇴근을 해야만 했다.

물론 직원이 원할 경우엔 작업 계를 신청하고 업무를 연장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른 추가 수당도 확실히 지급되고 있어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퇴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퇴근길에 러시아워도 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있지만, 가정이 있는 직원들은 대부분 정시에 퇴근하는 편이었다.

8시 이후에는 점심시간과 마찬가지로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 할 수가 있었기에 집에 돌아가 혼자서 밥을 차려먹는게 싫은 직원들은 일부로 남는 경우도 있었지만..

물론 이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직원들의 복지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카와 구치 대표가 걱정했지만, 현재 펜타곤 소프트가 벌어들이는 총 수익과 근무하는 직원들의 수를 비례해보면 그들은 한 명당 회사에 천만엔 이상의 수익을 올려주고 있었기에 나는 전혀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민텐도. 아니.. 1983년으로 타임리프하기 전부터 만약에 내가 한 회사를 이끄는 오너라면 꼭 이루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억지로 회사에 앉혀놓아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면 그 직원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강압적으로 쥐어 짜내는 결과물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저해 시킨다.

그래서일까? 작년보다 직원이 3배가 늘었어도 펜타곤 소프트는 사내 분위기는 굉장히 부드러웠다.

굉장히 엄숙한 직장 분위기를 지향하는 일본의 풍토와는 조금 맞지 않지만, 그래서 인지 몰라도 펜타곤 소프트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ID카드를 체크하고 사무실에 설치된 자동문이 열리자 카와구치씨의 비서를 겸하는 사유리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강준혁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사유리씨.”

“아, 부장님. 방금 전에 민텐도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카와구치 대표님께서 부장님이 출근하시면 대표이사실로 꼭 와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손님이요? 혹시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민텐도 소속의 니세코이 군페이씨입니다.”

으잉? 군페이씨가 펜타곤 소프트에? 나이도 있으신데 먼 길 오셨군.

하긴 이쯤 되면 민텐도에서 뭔가 연락이 올 것만 같았기에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다.

올해 초에는 ‘내가 없는 거리’ 그리고 여름에는 ‘타마고 몬스터’가 대 히트를 기록하며 펜타곤 소프트는 현재 게임 업계에서 절대로 무시 할 수 없는 한 ‘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얼 노리고 찾아 왔는지 대충 감이 오긴 하는데..’

나는 사유리씨에게 알려줘서 고맙단 인사를 건네고, 내가 근무하는 제 2 개발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은 아침.”

“아~!! 부장님!!”

개발실에 들어오자마자 예상대로 모리타와 하야시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부장님. 지금 대표이사 실에 누가 와계신지 아십니까?”

“알고 있어. 군페이씨가 오셨다며?”

펜타곤 소프트에 입사 후 나는 모리타와 하야시에게 말을 놓았다.

상사가 존칭을 써주는 건 고맙지만, 자기들 마음이 불편하다나?

사이킥 배틀 이후로 내가 없는 거리까지 셋이서 어울려 다닌 것도 벌써 3년째가 되다보니 이젠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알고 계셨어요?”

“응. 들어오는 길에 사유리씨가 알려줬어.”

“그렇구나..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군페이씨 같은 중역이 직접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일 일까요?”

“뭐 별거 있겠어? 카마우치 사장이 꼬투리 좀 잡아오라 시켰겠지.”

민텐도 입장에서 펜타곤 소프트는 현재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니까.

뭔가 딜을 걸어오지 않을까? 일단 카와구치씨에게는 최종 결정권이 없으니 이야기를 질질 끌고 있을게 뻔하다.

“그럼 대표이사 실에 좀 잠깐 다녀올게.”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야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대표이사 실로 향했다.

제 2개발 팀과 대표이사 실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꽤나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가볍게 노크를 시도하려는 찰나. 방 안에서 군페이씨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뿌아아아악!!!”

... 보통 ‘으악’이나, ‘으아악’ 아닌가?

‘뿌아아아악’이라니 내 살다 살다 저런 비명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군.

군페이씨의 비명소리만 들어도 안에서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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