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21화 (121/252)

<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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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카트리지를 받아 든 우치무라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미야자키와 함께 타마고 샵으로 돌아가던 중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게에 돌아가도 점심시간 곧 다가오니 직원들과 식사 교대 해주려면 간단히 먹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주 단지 마냥 정성스럽게 포장된 ‘하세가와 미유키’의 피규어를 들고 아키바를 활보하니 여기저기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적어도 쇼핑백이라도 좀 싸서 줄 것이지.’

내가 들고 있는 가방은 서류 가방이기에 피규어를 넣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부장님. 귀여우신데요.”

“하하.. 저기 어디든 좋으니까. 빨리 가게 안에 들어가죠.”

결국 타마고샵 근처의 소바집에 들른 나는 테이블 위에 미유키의 피규어를 올려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피규어 하나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

“저기, 저도 그 피규어 잠깐 봐도 되요?”

미야자키의 말에 나는 차가운 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피규어에 도르르 말린 비닐을 벗겨 내고, 미유키를 꺼내 들었다.

“와아.. 이렇게 보니 진짜 잘 만들긴 했네요. 색조 표현도 좋지만, 어떻게 피규어에 기모노를 입힐 생각을 했을까? 유키씨가 받으면 좋아하시겠어요.”

“글쎄.. 차라리 나나세 였으면 더 좋아했을 텐데.”

“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미야자키는 유키와 동갑내기로 둘이 굉장히 친했다.

타마고 샵을 오픈하고 첫 번째 주말에 유키는 새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타마고 샵을 찾아왔다.

비록 판매 경험이 없어 서툴렀지만, 매장을 방문한 아이들에게 타마고 몬스터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유키의 모습에 때마침 직장을 구하던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야자키씨.”

“네?”

“혹시 요 며칠 사이에 조금 특이한 타마고상을 가지고 온 플레이어가 있었나요?”

“특이한 타마고상이요? 아뇨, 그런 건 본적 없는데요?”

흐음. 지금쯤이면 한 두 개 정도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네.

그러자 미야자키는 내가 한 말이 신경 쓰였는지 나에게 되물었다.

“혹시 새로운 타마고상이 출시 됐나요?”

“아, 그건 아니구요. 하긴 미야자키씨는 아이들에게 타마고상을 설명해주는 직원이니 미리 알아두셔도 괜찮겠네요. 사실 지난달에 굉장히 소량으로 한 종류의 타마고상이 풀렸어요.”

“정말요? 그것도 콜라보레이션 타마고 인가요?”

어라? 미야자키씨도 촉이 좋은데?

“네. 맞아요.”

“안 그래도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만 있어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엔 어느 게 임과 콜라보했나요?”

“음.. 혹시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 알아요?”

“아.. 들어본 적은 있어요.”

하긴 드래곤 엠블렘도 출시한지 벌써 4년이 흘렀으니, 그녀가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특히 드래곤 엠블렘은 ‘유통 구조’가 굉장히 독특했기에 최근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의 게임이 되어 버린듯하다.

중고로 풀었던 카트리지들은 다들 그대로 소장중인지 지난 해 부터는 아예 시장에서 찾아볼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일까?

드래곤 엠블렘은 지난달 패미통신에서 현재 가장 구하기 힘든 레어 아이템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녀석의 중고 거래 금액은 데이터를 복구 시켜주는 추가 확장팩을 포함해 부르는게 값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물이 전혀 없는 희귀품이 되었다.

2위는 ‘내가 없는 거리’의 히로인 카트리지 전부 수록된 초회 한정판.

3위는 뭐냐고?

조금 황당하겠지만, 사이킥 배틀의 초회 데모 카트리지 였다.

시중에 발매된 게 아니고, 소량으로 제작 하여 비매품으로 증정했던 물건이었기에 사이킥 배틀의 매니아들에게 고가에 거래되는 중이라나?

모름지기 콜렉터라면 1부터 10까지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법.

그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괜히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거 모으려고 한 사람들 돈 깨나 깨졌겠다. 어느 하나 쉽게 구할 만한 것이 없네..’

현재 드래곤 엠블렘은 슈퍼 패밀리 유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차기작에서 만나고 싶은 기대 타이틀 1순위를 매달 기록하고 있었다.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유저들과 개발자의 소통은 이렇게 잡지의 설문 조사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저들의 바램을 담아 제작 한 것이 바로 ‘드래곤 엠블렘의 타마고’였다.

까칠스러움에 극을 달리는 성격과 주변에 적정 온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제멋대로 사망하는 ‘검은 타마고상’은 지금쯤이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부디 그 타마고상이 ‘드래곤 엠블렘’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이에게 닿았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당장 내다 버리고 싶을 만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니까.’

나는 미야자키씨와 식사하며 ‘드래곤 엠블렘의 타마고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기존의 타마고상이랑은 육성법이 완전히 다르네요. 좀 더 매니악하다고 할까?”

“맞아요. 혹시나 검은색 타마고에 대해 물어보시면 제가 알려드린 대로 설명하면 될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드래곤 엠블렘 타마고상을 구하기 위해 경쟁이 과열 되지 않을까 걱정 되네요.”

미야자키씨의 물음에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제가 따로 생각해둔 부분이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부장님은 유키씨한테 들은 대로네요.”

“네?”

“뭔가 항상 꿍꿍이 속을 감추고 계시다고 들었거든요.”

“유키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저번에 같이 밥 먹다가 부장님 이야기가 나와서..”

미야자키씨는 부끄러운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아까 전에 우치무라씨에게 준 카트리지는 뭐예요? 제목이 좀 특이 하던데.”

“발렌타인 데이 말인가요?”

“저도 펜타곤 소프트 소속이다 보니 신작이라니까 조금 신경이 쓰여서요.”

그러고 보니 미야자키씨도 게임을 좋아한댔지. 스스로 키워낸 타마고 몬스터로 샵에 놀러오는 아이들을 상대로 몬스터 배틀을 플레이하는 그녀의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아직 내 가방 안에는 여분의 카트리지가 하나 더 준비 되어 있었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미야자키씨도 플레이 해보실래요?”

“정말 저도 해볼 수 있어요?”

“휴게실에 슈퍼 패밀리가 있으니 퇴근하고 플레이 시켜드릴게요.”

&

발렌타인 데이.

얼핏 들으면 우치무라의 예상처럼 미연시 물이 아닐까 착각이 들겠지만, 사실 이 게임은 내가 어렸을 때 플레이 했던 ‘시계탑의 살인마’라는 게임과 국산 게임 중 하나에서 영감을 얻은 ‘호러물’이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끼리 카드를 주고받는 날인 발렌타인 데이의 취지에 입각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시도하려는 내용인데, 게임의 내용은 굉장히 심플하다.

발렌타인 데이의 전날 밤인 2월 13일 밤.. 친구들 몰래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한 주인공이 편지를 들고 학교에 숨어들어 그녀의 책상에 편지를 넣고 돌아오면 된다.

달랑 그게 끝이냐고?

물론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말이지..

그 날 밤.

모두가 퇴근한 뒤 미야자키씨가 기대에 찬 얼굴로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장님. 모두 돌아갔어요.”

“수고 하셨어요.”

“그런데 휴게실이 왜 이리 어둡죠? 전등이 나갔나?”

“미야자키씨.”

“네?”

“혹시 공포영화 좋아해요?”

내 물음에 미야자키씨는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갑자기 공포영화는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나는 대답과 동시에 카트리지를 슈퍼 패밀리에 꽂아 넣으며 그녀에게 소파를 권했다.

“저기 앉으세요. 저는 옆에서 미야자키씨의 플레이를 보고 있을게요.”

잠시 머뭇거리던 미야자키씨가 천천히 패드를 집어 들자. 나는 살짝 웃으며 전원 버튼을 올렸다.

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딩딩딩딩~ 발렌타인 데이의 체험 카트리지는 타이틀 화면 없이 소름끼치는 BGM과 함께 그대로 게임이 진행 되었다.

본래라면 고백하고 싶은 여성 캐릭터에 따라 등장하는 ‘귀신’이 달라지지만, 체험판 패키지에서는 히로인을 택하는 프롤로그 스토리를 배제하고 곧바로 학교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장님.. 이거 설마 공포물인가요?”

옆에 서있던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야자키씨는 울상을 지으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속았다..”

하지만 때는 늦었지.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우선 ‘발렌타인 데이’는 2D 횡스크롤 형식을 따르고 있었다. 즉 왼쪽과 오른쪽으로 밖에 움직일 수가 없기에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선 달리기 버튼 밖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불이 꺼진 아무도 없는 학교에 대한 공포.

어렸을 때 흔히들 들어본 학교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이 귀까지 찢어진 빨간 마스크.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 혼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

어두운 교실에 혼자서 공부중인 학생.

전교 2등의 질투로 인해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전교 1등이 거꾸로 뒤집힌 채 머리를 찍으며 학교를 배회하는 이곳이 바로 ‘발렌타인 데이’의 무대였다.

미야자키씨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으스스하지만 낯익은 BGM에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퍼뜩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장님.. 이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아닌가요?”

“맞아요. 사운드 템포를 굉장히 느리게 늘린 거예요.”

“어쩐지 많이 들어봤다 싶었더니..”

이윽고 주인공이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고, 미야자키씨는 조심스레 남자 주인공을 앞뒤로 움직여 보았다.

주인공의 조작은 좌우 방향키를 사용하고, 책상 밑으로 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버튼 조작에서는 달리기 버튼과 물건 사용하기가 있었는데, 독특한 것은

‘숨참기’라는 버튼이 있었다.

Y버튼을 누르면 주인공은 숨을 멈출수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는 귀신의 눈을 피해 숨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호흡 게이지가 있어 계속 숨을 참을 수 없게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잠시 후. 나의 설명을 모두 들은 미야자키씨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구 교사 건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구 교사와 신 교사 두 개의 건물이 있었는데, 어드벤쳐 장르답게 퍼즐 요소도 준비해 두었다.

끼이이익.....

듣기에도 굉장히 거북스러운 경첩소리가 울리고, 어두운 구 교사에 발을 들인 미야자키씨는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부터 찾았다.

삐걱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울리며 벽에 설치된 스위치를 찾은 미야자키는 선택 버튼으로 불을 켜 보았다.

어두운 복도에 불이 켜지자, 미야자키씨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아아앙!!!!!!

천둥소리와 함께 복도에 설치 된 전등이 깜박 거리더니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반복해서 울리던 BGM도 어느새 잦아들고, 어두운 복도는 번개가 내려칠 때마다 잠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나요..?”

미야자키씨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2층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로 방향키를 조작해 주인공을 이동 시켰다. 화면 위에 보이는 미니 맵으로 계단의 위치를 파악한 미야자키씨가 다시 한걸음을 떼려는 찰나.

화면이 새하얗게 번쩍이더니 화면의 왼쪽 끝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게..? 뭐죠?”

밧줄에 목이 걸린 채 좌우로 흔들거리는 그 것은 누가 봐도 정상 적인 캐릭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 EP. 19 : 노블리스 오블리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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