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16화 (116/252)

EP. 25 : 신의 손 우치무라 (5)

미야자키씨의 칭찬에 기분이 들뜬 나는 근처에 있던 서른 명 가량의 아이들에게 데이터를 옮겨준 후에야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오를 수 있었다.

피곤하다. 집에 가서 짐만 내려놓고 바로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해야겠군.

그래도 미유키쨩도 무사히 돌아왔고..

미야자키라는 분도 알게 되었으니. 오늘은 복이 넘치는 날이다.

17,800엔이라는 거금을 들였지만, 몬스터 배틀에서 패배하였지만, 오늘은 기쁜 날이다.

무조건 기쁜 날이다~

잠시 후. 전철에서 내린 나는 촉박한 시간 쫓겨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었기에 역 안은 굉장히 붐비고 있었다.

바쁘다 바뻐~ 그렇게 역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스치며 계단을 내려오던 도중.

중년의 아저씨와 정면으로 맞닥 들였다.

사람과 마주치면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오른쪽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면 나와 똑같이 움직이고, 다시 왼쪽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면 또 다시 내 앞을 가로 막는..

그 순간 전철이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울리자, 아저씨는 거칠게 나를 밀치며 계단을 뛰어 올랐다. 하지만 그 바람에 피규어가 담긴 쇼핑백이 내 손을 빠져나가며 계단을 굴렀고, 때마침 계단을 내려가던 아가씨가 그대로 쇼핑백을 밟아 버렸다.

파악~!! 와그작..

듣기만 해도 굉장히 불길한 소음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발밑에 떨어져서..”

“아.. 아닙니다.”

바로 박스를 열어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나 역시 시간이 촉박하다.

부디 미유키쨩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쇼핑백을 챙겨들고 무작정 역을 빠져 나온 나는 헉헉 거리며 집으로 달렸다.

그렇게 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치무라형!!”

“어? 요다 무슨 일이냐? 나 지금 좀 바쁜데..”

나를 부른 녀석의 이름은 요다 준이치.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포스 마스터 ‘요다’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일본에서는 반에 한 두명 정도 있는 조금 특이한 ‘성’씨 중에 하나이다.

그런 요다 녀석은 내가 사는 3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집 꼬맹이였다.

“대체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내가 오늘 하루 종일 형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날? 왜??”

“엄마가 타마고 몬스터 뽑아도 된다고 허락해주셨어~!! 드디어 5연속으로 파이널 프론티어 타마고를 뽑아낸 형의 실력을 보여줄 차례야~”

“지금 뽑아 달라고?”

“응!! 그것 때문에 학교 끝나고 여기서 형만 기다렸단 말야.”

“그런데 형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좀 바빠서..”

“뭐야~ 지금 가버리면 언제 뽑아주려고?”

“그게.. 내일은 안 될까?”

“내일? 나보고 내일까지 참으라고?”

요다는 내 말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얼굴로 울먹거렸다.

그냥 돈 넣고 뽑으면 되는 걸, 왜 굳이 내가 뽑아주길 바라는 건지..

우연히 동네 아이들 대신 레버를 돌려주다보니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가 연속으로 나온 것뿐인데,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에게 ‘신의 손’이라고 경탄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건 내 도움을 받지 않고 타마고를 뽑은 녀석들은 전부 일반 타마고가 나와서 이 동네에는 미신처럼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도는 모양이었다.

“그깟 레버 하나 돌리는데, 얼마나 시간 걸린다고~”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 미야자키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치무라씨는 참 친절하시네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요다의 고집스러운 표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대신 일반 타마고가 나와도 날 원망하기 없기다.”

“아싸~ 신난다~”

내 대답에 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내 뒤를 따랐다.

“서둘러. 형 오늘 진짜 바쁘니까. 레버만 돌려주고 바로 갈 거야.”

다행이도 근처 문방구에 타마고 몬스터를 취급하기에 돈만 넣고 레버를 돌리는데 1분도 걸리지가 않았다.

그래도 요다 녀석이 원하는 타마고를 뽑아주기 위해 잠시 돈을 이마에 얹혀 놓고 기도를 드린 뒤 지폐 투입구에 1,000엔짜리 두장을 집어 넣었다.

기이잉 소리와 함께 레버 위에 녹색 불이 들어오고 나는 잠시 마른 침을 삼킨 후. 힘차레 레버를 돌렸다.

‘나와랏!!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여~!!’

도르르르~

이윽고 상품을 꺼내는 배출구로 새하얀 캡슐이 굴러 나왔다.

원래라면 레버만 돌려주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궁금했던 나는 캡슐을 요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열어 봐.”

한 껏 기대에 찬 눈으로 캡슐을 비틀어 연 요다는 잠시 후. 시무룩한 울상을 지었다.

“왜..? 안 나왔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요다는 내게 자신의 타마고상을 보여주었다.

“괜찮아. 요다. 형이 오늘 아키바에 있는 타마고 샵에 다녀왔는데, 일반 몬스터를 가지고도 굉장한.. 어?”

“굉장한 뭐? 뭔데 왜 얘기를 하다가 말어?”

“아니.. 그 굉장한 플레이어를 만났는데.. 잠깐 그 타마고 좀 줘 볼래?”

“왜?”

“아니 그게 좀 이상해서..”

내가 알기로 타마고상 중에 ‘검은 색’은 없다.

하지만 요다 녀석이 나에게 내민 타마고는 온천 달걀처럼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설마 새로운 버전의 타마고상이 들어온 건가?

요다에게 타마고상을 건네받은 나는 좌우로 타마고상을 살펴 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는데.. 음!?’

그 순간 손가락 끝으로 음각으로 파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어 타마고상을 가까이 대고 음각의 문장을 살펴 본 나는 하마터면 요다의 타마고상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건.. 드래곤 엠블렘의 문장이잖아?’

아니 어떻게 펜타곤 소프트의 물건에서 드래곤 엠블렘의 문장이..

“뭐야? 왜 그래 형?”

“요다야. 너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가 갖고 싶다고 했지?”

“응. 왜?”

“형 거랑 바꿀래? 형 타마고에 환수종 ‘바하무트’ 데이터가 들어있는데..”

그러자 요다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내손에서 검은 타마고상을 낚아 채갔다.

“싫어~ 베에에~~”

요다는 유치한 꼬맹이답게 눈 밑을 손가락으로 끌어 내리며 메롱을 내뱉더니 후다닥 집으로 달려갔다.

‘젠장..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들은 싫다니까..’

&

다음 날.

새벽에 덮밥 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온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피곤하다..”

내가 일하는 덮밥 집은 24시간 오픈인 매장으로 나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심야조를 맡고 있었다.

규동이라 불리 우는 불고기 덮밥은 한 그릇에 210엔. 싼 가격에 한 끼 배부르게 먹기엔 충분한 녀석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는 ‘풍속업소’가 많아서 새벽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기에 현재 난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드래곤 엠블렘의 타마고라니, 설마 그런 게 존재할 줄이야.”

아르바이트 내내 요다의 타마고상이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그 안에 들어있는 몬스터 데이터는 무얼까?

어쩌면 ‘성녀 카트리나’로 진화하거나, ‘폭염술사 미레아’가 나올 수도 있어. 아니면 드래곤 엠블렘에서 성검을 휘두르던 ‘용사 크로엘’이 나올 수도..

나는 피곤했지만, 지난달에 발행된 패미통신을 꺼내어 펼쳐보았다.

혹시나 내가 놓친 공략에 ‘드래곤 엠블렘의 타마고’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타마고 몬스터에 공략을 찾아보아도 그런 정보는 실려 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어두워서 문장을 잘못 본 게 아닐까?’

그러면 그 검은 외관은 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미치겠군. 나중에 요다 녀석에게 물어서 자세히 알아 봐야 해야겠다.’

일단 지금은 중요히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놓여진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푸른 쇼핑백의 한 가운데 선명히 찍힌 발자국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제는 바쁘기도 하고, 차마 열어보기 두려워 상태를 살피지 않았는데..

‘와그작’ 소리가 어찌나 불길하게 들렸는지..

“괜찮지? 괜찮을 거야.”

심호흡을 하며 조심스레 상자를 꺼내어 보는 순간.

안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설마 아닐 거야.

그래~!! 분명 수영복 패키지에 포함 되어 있는 수박 모형이 안에서 굴러가는 소리일 거야.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신께 기도하며 패키지를 전부 꺼내어 보았다.

“으아아악!!!!!!”

쿵쿵쿵쿵!!

내 비명 소리에 옆집에서 벽을 쿵쿵 쳐대었다. 조용히 좀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이 광경에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끄윽 끄윽’ 거리는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토막 살인이다.’

발 뒷꿈치의 강한 압력을 견디기에 미유키쨩의 몸은 너무나 가냘팠던 걸까?

그녀의 몸은 패키지 안에서 산산히 부서져 있었다.

“미유키쨩. 어떻게 이럴 수가..”

침착하자. 우치무라.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해.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녀를 박스에서 꺼내 보았다.

허리와 다리. 그리고 팔과 목이 어긋난 미유키의 피규어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던 나는 잠시 후 한가지 결단을 내렸다.

‘고쳐 보겠어!!’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맥가이버의 테마곡이 울려퍼졌다.

‘우선 내가 구입한 미유키의 피규어는 수영복 버전이다. 매끄럽게 인체를 표현한 피규어 이기에 옷자락 같은 거추장스러운 표현은 없다. 그것은 즉!! 색을 모두 배제해 버리면 알몸과도 같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상처 부위를 감쌀 수 있는 옷으로 커버할 수 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내가 상상했던 모습의 그녀를 만들어 보이겠어!!

일단 결심이 서자, 나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비록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은 도색을 다시 하자.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지? 아세톤!! 그래 아세톤이다. 대량의 아세톤이 필요해.’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은 나는 얼마 안 남은 돈으로 근처 화장품 가게에서 아세톤을 구입해 정성스레 미유키의 피규어를 닦아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 내가 신의 손을 빌려서라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너의 모습을 완성 시켜줄 테니..’

그 날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하고는 피규어의 복구 작업에 매달렸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는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는 곧 잘 들어 보았다.

내가 그린 히로인들의 일러스트도 다들 좋아해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미유키의 도색을 모두 벗겨낸 나는 양 손에 착 감기는 얇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여러 색의 에나멜 도료를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시작한다.”

긴 숨을 몰아쉬며 작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딩동~!!

내 방에 초인종이 울렸다.

“우치무라형~!! 안에 있어?”

요다 녀석인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고무장갑을 곱게 벗어두고 문을 열자. 굉장히 심통 난 표정의 요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타마고상이라는 게 이렇게 키우기 힘든 거야?”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다른 애들 거는 멀쩡히 잘만 키우는데, 왜 내 것만 진화도 해보기 전에 죽어 버리냐구~!!”

“뭐라고..?”

“형. 저번에 내 거랑 타마고상 바꾸자고 했었지? 혹시 지금도 바꿀 수 있을까?”

“어? 어어. 뭐 괜찮아.”

“진짜? 그럼 아직 안에 바하무트가 들어있는 거야?”

그때 이후로 새로운 타마고를 키우지 않았기에 아직은 데이터가 살아 있을 터였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요다는 나에게 검은색 타마고상을 내밀며 말했다.

“바꾸자. 내 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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