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 신의 손 우치무라 (4)
그오오오..
화면의 절반가량을 메우고 있는 바하무트의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두 번의 패배를 딛고 일어나 연승으로 5차전까지 버텨온 나의 근성에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자~ 덤벼라. 어떤 공격이든 받아주마.’
5번째 전투는 도전자인 토시유키의 선공이었다.
그런데 포로리스의 스킬이 뭐가 있더라?
타마고 몬스터의 공략집은 봐두었지만, 포로리스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거의 애완동물 취급 받는 녀석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긴 어떤 공격이 튀어 나온들 어떠리. 환수종 바하무트 앞에서 하급 몬스터의 모든 공격은 거의 무의미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배틀!! 다소 맥이 빠지는 전개이긴 합니다만, 과연 저 작고 귀여운 포로리스의 공격이 최강의 몬스터 바하무트에게 통할까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토시유키의 포로리스가 움직였다.
-나 때릴 거야?-
음..?
아무런 공격이 없다.
뭐지.. 공격 스킬이 아닌가?
다람쥐 모습의 동물계 몬스터 포로리스는 요상한 스킬만 사용한 채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온 턴에 공격을 시도했다.
우선은 기본 공격인 용의 발톱이다!!
그때였다.
-포로리스가 너무나 귀여워 바하무트는 공격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이런 미친..
“여기서 포로리스의 스킬이 발동 됩니다!! 바하무트 포로리스를 공격하지 못 하는군요~!!”
“왜지? 다른 몬스터는 공격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메시지에 배틀존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진행자 역시 어째서 바하무트가 공격을 할 수 없는지 궁금해졌기에 직접 토시유키에게 스킬의 효과를 물어 보았다.
“토시유키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아, 그게 포로리스의 ‘나 때릴 거야?’ 스킬은 자신보다 레어도 랭크가 3이상 차이가 나는 몬스터의 공격을 2턴 간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자 회장 안에 보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뭐라고!? 대박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포로리스를 꺼낸 거구나..”
희귀도 랭크가 1인 포로리스와 5인 바하무트는 확실히 3이상의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당했다.. 설마 이런 패를 준비해 두었을 줄이야..
다음 턴에 포로리스는 깡총 거리며 뛰어와 일반 공격을 날렸다.
3의 데미지. 간지러운 공격이었지만, 고작 레벨 8인 바하무트의 최대 체력은 42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음 턴. 토시유키는 다시 한번 포로리스의 ‘나 때릴 거야?’ 스킬을 시전 했고, 바하무트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포로리스의 일반 공격을 계속해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굉장합니다. 포로리스. 그 누가 이 상황을 예견이나 했을까요? 포로리스 배틀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와아아아!!!!”
누구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포로리스가 일순간 사람들에게 영웅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단은 버텨야 한다!!
작은 공격이라도 계속해서 받다보면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결국 나는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를 선택했다.
어차피 저 스킬을 영원히 쓸 수는 없을 테니까. 저 포로리의 레벨이 몇인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성장 시켰어도 하나의 스킬은 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6번이 한계였다.
그때부터 토시유키와 나의 묘한 심리전이 펼쳐졌다.
공격을 멈추고 방어로 전략을 바꾸자 토시유키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반 공격으로 도발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나를 가지고 노는 구나!!’
화가 난 나는 다음 턴에서 라이트닝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나 때릴 거야?’ 스킬이 발동되며 그것을 무효화 시켰고, 토시유키는 손쉽게 두 번의 공격을 더 성공시켰다.
스킬의 남은 횟수는 앞으로 세 번.
바하무트의 체력은 28로 줄어들어 있었다.
“와~ 저러다가 진짜로 포로리스가 이기는 거 아냐?”
사람들은 점점 깎여나가는 바하무트의 체력을 바라보며 압도적으로 끝날 줄 알았던 5차전을 숨죽여 감상하고 있었다.
만약에 나 역시 밖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감탄사를 내보낼 정도로 짜릿한 전율을 느꼈겠지만, 지금 나에겐 이 모든 상황이 절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큰 맘 먹고 구입한 미유키의 피규어도 잃어버리고, 마지막엔 이런 거지같은 몬스터에게 발목이 잡히다니..’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머릿속이 온통 저 다람쥐 새끼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걸 조종하는 토시유키라는 고등학생은 심리전의 달인이랄까?
그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바하무트에게 공격을 허용시키지 않고 있었다.
방어만 계속하면 언젠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격으로 패턴을 바꾸면 스킬이 바하무트의 공격을 상쇄 시킨다.
그 순간 타마고 몬스터의 스토리에서 한 NPC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약한 몬스터 강한 몬스터 따위는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다. 타마고 몬스터의 세계에 약한 몬스터는 없다!!-
그 말대로다.
완벽한 벨런스로 짜여진 몬스터 배틀 시스템.. 최강의 환수종 조차 꼼짝도 할 수 없도록 묶어 버리는 ‘천적’이 존재하다니..
그리고 그 모든 정보를 꿰뚫고 몬스터를 부리는 괴물 같은 플레이어 토시유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적어도 바하무트의 레벨이 10을 넘겼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지진 않았을 텐데..
-우오오오......-
검은 드래곤은 포로리스의 마지막 공격에 절규하며 산산히 흩어져 버리고..
배틀존은 토시유키의 플레이게 감탄한 유저들의 함성이 쏟아져 내렸다.
“우와아아아~!!!”
“나 소름 돋았어..”
“미친.. 진짜로 이겨버렸네..”
“우치무라씨 안타깝게 마지막 방어전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하지만, 5마리의 타마고 몬스터만으로 훌륭한 배틀을 펼쳐 보인 우치무라씨에게도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짝짝짝~
“아까웠어요~”
“바하무트 진짜 멋지다..”
쓸쓸한 발걸음으로 배틀존을 내려온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하무트를 키웠던 테이블에 가보았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미유키쨩의 피규어는 찾을 수가 없었다.
‘크흑. 망했다...’
배틀존에서는 새로운 승자 토시유키에게 도전하는 참가자들의 배틀이 진행 되었고, 나는 사라진 피규어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가게 안을 살피고 다녔다. 그때마다 배틀존에 있던 꼬맹이들이 달려와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형. 혹시 바하무트 데이터 좀 교환해 주시면 안돼요?”
“형. 저도요~ 저도 바하무트 갖고 싶어요~ 네?”
“아니.. 내가 지금은 좀 바빠서 다음에 해줄게..”
“다음 언제요? 형 여기 언제 또 오세요?”
안 그래도 미유키쨩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꼬맹이들까지 들러붙어서 데이터 교환을 해달라고 졸라대니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그때 등 뒤에서 또 다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바쁘다고!!”
한껏 신경질을 부리며 고개를 돌리니 아까 나에게 데이터 케이블을 빌려주었던 여직원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손에 낯익은 쇼핑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저기, 아까 배틀존 신청자 테이블에 이걸 두고 가셔서 카운터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렇구나. 신청 서류를 빨리 제출하려다가 깜빡 잊었던 거구나..
“흑.. 으윽..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바로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카운터에 손님들 챙기다가 정신이 없어서..”
“아니에요. 전 누가 훔쳐간 줄 알고, 크윽.”
“내가 없는 거리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이에요.”
나에게 쇼핑백을 건네며 살포시 웃어 보이는 직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멍하니 쇼핑백을 받아든 채 그녀의 명찰을 바라보니 ‘미야자키’ 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미야자키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고마워요.”
“다음부턴 조심해주세요. 도난 사고가 일어 날 수도 있거든요.”
“네.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그때 미야자키씨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저기, 답례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아, 그럼요.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괜찮으시면, 저랑 타마고 몬스터 데이터 교환 안하실래요?”
“네..?”
“사실 아까 데이터 케이블 빌려드리면서 가지고 계신 몬스터를 봤거든요. 저도 타마고 몬스터를 하고 있는데, 바하무트가 너무 멋져서..”
“네! 지금 당장 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배회 하고 있던 꼬맹이들이 득달같이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예요. 형!! 아까 내가 부탁할 때는 바쁘다고 다음에 해준다더니~!!”
“어머, 바쁘세요..?”
“아닙니다!! 너희도 지금 다 데이터 교환 해줄게.”
“정말요? 우와!! 친구한테 자랑해야지~”
미야자키씨는 웃으며 친구들한테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치무라씨는 친절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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