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14화 (114/252)

EP. 25 : 신의 손 우치무라 (3)

미유키쨩?

머릿속이 새하애지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뭐지? 잠깐만, 설마 아까 바하무트를 키우던 곳에 놓고 온 건가? 아니야 분명 대기 줄에 섰을 때까진 내가 들고 있었어.

그리고 난 배틀 존에 올라왔고, 그 다음은.. 그 다음!?

갑자기 손끝이 차가워지며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없다. 미유키쨩이 없어..”

정신없이 대기 줄 쪽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지만, 쇼핑백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분한 마음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금이라도 눈을 깜박거리면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흐를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샵 내부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자에게 말을 걸려는 찰나.

“방금 도전자 토시유키군이 몬스터 출전을 마쳤습니다~!!”

빌어먹을.. 마지막 경기가 곧 시작하려는데 여기서 그만 둘 수도 없고, 미치겠네..

피규어가 사라졌다는 걸 인식하고부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경기에 집중해야하지만 자꾸만 나의 눈은 대기줄 쪽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이번엔 우치무라씨가 몬스터 배치에 시간이 걸리는 군요. 역시 마지막 방어전이라 긴장하고 있는 걸까요?”

“네?”

사회자의 말에 겜보이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미 서로간의 몬스터를 파악하고 출전 순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젠장. 정신이 없다보니 녀석이 어떤 몬스터를 내보냈는지 파악 하지 못했어!!

진정해라. 우치무라. 우선은 대회에 집중하자.

마지막 한번만 이기면 2만엔의 상금을 얻을 수 있어. 그러면 다시 피규어를 사면 돼.

수중에 2,200엔이 남아 있고, 상금으로 받은 2만엔으로 다시 구입하면 내 수중에는 도합 4,800엔이 남게 된다.

...뭔가 계산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처음보다 2,200엔 이득이지 않은가!?

문제는 저 녀석이 어떤 몬스터를 꺼낼지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럴 때는 역시 정공법으로 상대하는 게 좋겠지?

데미지가 높은 녀석들을 앞에 두고 순식간에 배틀을 종료시킨 후에 가게안을 둘러봐야겠어. 어쩌면 내가 바하무트를 키우던 벤치에 두고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파앗!! 이윽고 나의 이도류 여검사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자, 상대방의 몬스터가 화면에 등장했다.

‘로열 가드!?’

젠장. 상성이 좋지 않다. 로열 가드는 방패 보병의 최종 진화 단계로 온몸에 철갑을 둘러 무시무시한 방어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카앙~!! 역시나 이도류 여검사의 칼이 통하질 않는다.

녀석은 거대한 방패로 여검사의 이도류를 막아내며 방어와 동시에 상대방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방패치기 스킬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녀석한테는 퐈이야의 불꽃이나 비카츄의 전격 공격과 같은 원거리 마법 공격이 약점인데, 내가 출전시킨 여검사에게는 그러한 특수 기술이 없었다.

이를 악 문 채 최후의 수단으로 최강의 스킬인 열십자 베기를 시전 했지만, 로열가드는 절대 방어 스킬로 데미지를 상쇄시키며 여검사를 더욱 코너에 몰아넣었다.

결과적으로 녀석과의 1차전은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강하다. 이 녀석.. 지금까지 싸워온 꼬맹이들이랑은 격이 달라. 전술을 아는 녀석이야.’

한 순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 몸에겐 4마리의 몬스터가 남아있다.

팟!! 곧이어 2차전으로 돌입하며 내가 꺼낸 몬스터는 물속성의 몬스터 코부기였다.

거북이 모양의 귀여운 이미지와는 달리 등딱지에서 장착한 물대포로 강력한 일격을 먹일 수 있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

그것은 바로 저쪽에서 꺼낸 몬스터가 천둥의 신 ‘오딘’이라는 것..

환수종 중에서도 바하무트 다음으로 탑 클래스를 자랑하는 천둥의 신이라니..

나의 코부기가 쏘아댄 물대포는 천둥의 신에게 아무던 데미지도 입힐 수 없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수를 읽힌 나는 두 번째 전투 역시 그의 뿜어낸 번개 한방에 무릎을 꿇어야했다.

순식간에 2연패라니 뼈아픈 타격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한번이라도 지면 나의 패배다.’

“아~!! 토시유키군. 독심술이라도 사용한 걸까요? 어쩌면 저렇게 잔인하게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몬스터를 연이어 내놓을 수 있을까요!!”

사회자는 흥분했는지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회장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배틀존을 구경하던 아이들은 토시유키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꼬맹이들을 상대로 너무 손쉽게 연승해 나갔던 내가 희대의 악당으로 비춰졌겠지..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토시유키는 마왕 그 이상으로 악랄한 존재였다.

‘한번만 더.. 딱 한번만 더 이기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말이다!!’

속으로 내지른 간절한 외침과 함께 화면 안에는 세 번째 몬스터가 등장했다.

내가 꺼낸 몬스터는 방패 보병. 원거리 마법 속성의 몬스터만 아니라면 방어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팟!! 다행히 녀석이 꺼낸 몬스터는 사무라이였다.

토시유키의 표정을 바라보니 퐈이야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사무라이’는 일본도 한 자루만 들고 다니는 ‘낭인’이다.

공격력은 이도류의 여검사와 비견하지만, 방패 보병이라면 해볼 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주의 할 점이 있다면 녀석의 스킬.

‘일섬(一閃)’

단 한 순간. 30% 확률로 적을 즉사 시킬 수 있는 사무라이의 스킬이다.

3번째 배틀은 나의 선제공격이지만, 나는 혹시 모를 스킬에 대비해 방패 보병에게 방어를 명령했다.

카앙~!!

방패 보병의 체력은 73. 방금 공격을 방어한 덕에 6의 데미지를 입었지만, ‘방패치기’의 스킬이 발동하며 사무라이 역시 5의 데미지를 입었다.

비슷한 데미지를 주고받은 것 같지만, 방패 보병의 체력이 훨씬 높았기에 결과적으론 나에게 유리한 전술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녀석이 노리는 건 한방에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일섬’

나는 거북이가 등딱지에 몸을 숨기듯이 방어 일변도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결코 가드를 열어주지 않겠다. 이대로 라면 넌 결국 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사무라이의 ‘일섬’은 아무리 기다려도 발동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번에도 방패치기 버튼을 누르려던 내 손끝이 멈추었다.

‘이 자식 설마!! 가드 데미지를 노리고 있는 건가!?’

‘일섬’은 30확률로 적을 즉사를 시킬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적에게 굉장히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방패치기로 입힌 타격만으로도 사무라이의 체력이 간당간당 할 텐데, 이렇게까지 일반 공격에 고집하는 이유. 그것은 내 남은 체력을 뛰어 넘는 스킬을 구사하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방패치기 스킬을 누르려던 손가락을 멈추고, 방향키로 스킬을 ‘절대 방어’로 바꾸어 시전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일섬(一閃)-

화면을 가득 一閃이라는 글자와 함께 사무라이의 비장의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카아아앙!!!!

“우와아아아!!”

호캐한 연출에 화면을 지켜보던 아이들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사무라이의 비장의 스킬!! 일섬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치무라씨의 방패 보병의 스킬은 과연!? 아아앗!!! 절~대 방어!!!!”

“우와아아아아!!!!”

콰아아앙!!

잠시 두 가지 스킬이 번뜩인 순간 화면 안에는 우직하게 방패를 들고 서있는 나의 방패 보병이 보였다. 절대방어의 효과로 데미지는 0.

토시유키의 얼굴에 패색이 짙어졌다.

사무라이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가드를 풀고 공격에 집중했다.

그 결과 어렵게 3차전을 승리로 마칠 수 있었다.

‘아직이다. 아직 안 끝났어..’

“그야말로 명 배틀입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군요. 그럼 4차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화면 안에 불속성의 몬스터 퐈이야가 나타났다.

그리고 상대방이 꺼내든 몬스터는 전격계 몬스터인 비카츄였다.

‘이 녀석 4번째로 방패 보병이 나올 줄 알았나보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4번째 배틀이 임했다. 신중하게 공격과 방어 스킬을 섞으며 비카츄의 데미지를 깎아 내리자, 토시유키 역시 미간을 좁히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번 턴을 넘기면 어떻게든 바하무트를 꺼낼 수 있다.’

그 순간. 약간의 운이 나에게 작용하며 퐈이야의 불꽃이 크리티컬 표시와 함께 적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좋았어!!’

한 번 수세에 몰리자 토시유키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슷한 성능을 가진 몬스터였기에 4차전 역시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결국 숨 막히는 공방이 5차전에 돌입하는 순간입니다. 자~!! 여기서 우치무라씨의 비장의 몬스터. 바하무트가 등장합니다!!”

“우와아아!! 나 바하무트 실제로 처음 봐!!”

“블랙 드래곤 바하무트. 대박 멋지다. 저기 우치무라란 사람이 이기겠는데?”

바하무트의 등장에 관중들에게서 나의 승리를 예감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냈다. 해냈어..

환수종인 바하무트에게는 약점이 없는 완전체 몬스터에 가까웠기에 내 승리를 예견하는 관중들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최강의 환수종에 대적하는 토시유키의 몬스터는!! 아? 포로리스..?”

“에에엑!? 포로리스라니. 잘나가다가 막판에 왜 저런 허약한 몬스터를 배치시켰지? 4차전까지 승부를 보려고 했던 걸까?”

바하무트의 상대로 도토리를 들고 있는 다람쥐 캐릭터가 튀어 나오자, 관중들은 상대적으로 허약한 몬스터의 등장에 경악했다.

물론 서로 몬스터 배치를 확인할 때 포로리스가 있는 걸 본 사람도 있었겠지만, 지금가지의 배틀로 포로리스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마지막엔 일이 쉽게 풀리는군..’

나는 얼빵한 표정으로 도토리를 만지작거리는 포로리스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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