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 신의 손 우치무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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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유리 장식장 안에서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수영복 차림의 미유키쨩을 바라보면 저 것 만큼은 꼭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다. 17,800엔..
유명한 피규어 제작자인 호토부키아에서 여름 한정 특판으로 나온 ‘내가 없는 거리’ 세 히로인의 수영복 버전..
피규어의 제조와 도색은 모리타씨가 직접 검수했기에 그야말로 극강의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최근에 게임이란 컨텐츠가 점점 더 발전해 나가자, 아키하바라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피규어와 브로마이드 같은 캐릭터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대형 샵이 들어섰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아도 한곳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서 우리 같은 게이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아 사람이 많이 몰려도 전혀 덥지가 않다.
현재 내가 있는 코너는 펜타곤 소프트에서 내놓은 희대의 명작 미소녀 게임. ‘내가 없는 거리’ 전용 코너였다.
지난 5월에 출시한 OVA (Original Video Animation) 전편은 이미 소장하고 있고, 최근에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생활비와 아르바이트 월급의 절반을 투자해 겨우 손에 넣은 ‘내가 없는 거리’ 한정판은 나의 보물 1호이다.
그것들만 구하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일 뿐이었다.
이렇게 내 눈 앞에..
그녀가 있잖아..
17,800엔짜리.. 초 고 퀄리티 피규어가.. 3개나..
‘사.. 사고 싶다.’
하지만 이젠 수중에 돈이 없다. 월세와 기타 관리비를 제하고 남은 돈은 약 2만엔 남짓..
저걸 사버리면 2,200엔으로 한 달을 버텨내야 할 판이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것은 남은 2,200엔으로 컵라면 몇 개를 살 수 있을까? 계산을 돌리고 있는 내 머릿속이었다.
‘아쉽지만 포기하자..’
이미 집에 있는 브로마이드로도 충분하잖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매장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한 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진짜 퀄리티 죽인다..”
“커헉.. 17,800엔? 비싸!! ..그런데 사고 싶다.”
“여름 한정. 수영복 버전이라니.. 그럼 다 팔리면 이제 안 나오는 거잖아.”
이제.. 안 나온다고?
“이것도 분명 시간 지나서 구하면 몇 만 엔은 가격이 뛸 거야. 차라리 지금 정가로 사는 게 싼 편이지.”
그래 저 녀석 말이 맞아..
분명히 나라면 나중에 반드시 손에 넣고 말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대체 저 피규어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상상 조차 가지 않았다.
“그럼 그냥 살까?”
“질러~ 나중에 되팔아도 남는 장사라니깐~ 킥킥~”
“그럴까? 그럼 일단 하나만 사보자. 뭘로하지..?”
너희 같은 녀석들 때문에 순수한 우리 콜렉터들이 피해를 보는 거다.
결국 그들의 대화에 분노한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점원을 불렀다.
너희들처럼 불순한 자들에게 미유키 한정 피규어를 넘길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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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사.. 샀다. 사버렸어.’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오른손에는 미유키 여름 한정판 피규어가 들려있었다.
오늘이 8일인데!! 수중에 남은 돈이 2,200엔이라니, 큰일 났다!!
하지만 그런 불안한 마음도 오른손에 들려 있는 피규어 박스를 바라보면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아르바이트 장소가 덮밥집이라 하루에 밥은 한 끼 먹을 수 있겠군..’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역으로 향하던 중 최근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타마고 몬스터 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가게안의 열기가 후끈 느껴질 정도로 정신없어 보였다.
특히나 몬스터 배틀 존에서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있는 사회자가 배틀 중인 아이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있었다.
“자!! 이것으로 마지막 배틀. 도전자가 꺼내든 몬스터는 과연 무엇일까요!?”
주말마다 진행 중인 타마고 몬스터 토너먼트.
휴대용 겜보이에는 영상을 출력하는 OUT PUT 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틀존의 무대에서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 방송용 카메라로 겜보이의 화면을 직접 촬영해 가운데 있는 거대한 프로젝터로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플레이어는 영상 장비가 세팅 되어 있는 단상 위에 게임기를 올려두고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잠시 구경 좀 해볼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기에 나는 슬쩍 타마고 샵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배틀존과 어드벤쳐 존에 우글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여전히 가챠 기계 앞에는 줄을 서서 타마고를 뽑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달걀 모양의 자동판매기의 지폐 투입구에 1,000엔짜리를 두 장을 넣고 가운데 레버를 돌리면 새하얀 프라스틱 캡슐이 굴러 떨어졌다.
밀봉 비닐을 벗긴 뒤에 캡슐을 돌리면 안에는 간단한 설명서와 함께 다양한 색상의 타마고상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 눈처럼 새하얀 타마고는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라 하여 펜타곤 소프트에서 제작한 파이널 프론티어의 환수종 몬스터 데이터가 들어있었다.
방금 가챠를 돌린 사람들에게서도 5명 중에 2명은 새하얀 타마고를 뽑은 걸 보니 한정 수량이라기 보단 파이널 프론티어 홍보를 위한 특별판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때 내 눈에 행사장 전면에 붙어 있는 전단 문구가 보였다.
-제 3회 타마고 몬스터 최강의 몬스터를 찾아라!! 도전자들의 몬스터 배틀을 10회 방어 시 상금 2만엔.-
어? 상금?? 그것도 2만엔이나!?
방금 전 미유키의 한정 피규어를 구입하느라 써버린 생활비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
다행히 아키하바라에 오는 동안 심심할 것 같아 휴대용 겜보이를 들고 온 나는 재빨리 게임기를 꺼내어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 순간.. 삐빅 소리와 함께 어제부터 진화 상태에 들어간 타마고상이 알람을 울려대었다.
삐빅 삐비빅~!!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발매 당시부터 플레이 해 온 타마고상을 움켜쥐었다.
내가 가진 타마고상은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 잘하면 이번엔 환수종이 등장할 수도 있었기에 마치 포커에서 카드를 쪼듯이 천천히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려 보았다.
화면 상단에 보이는 것은 뾰족한 무언가..
조금 더 손가락을 내려 보자 그것이 날개에 돋아난 용의 발톱이라는 걸 느낀 순간 등줄기가 시원할 정도로 소름이 몰려 왔다.
‘설마.. 설마..’
마른침을 삼키며 손가락을 끝까지 내리자, 타마고상의 화면 안에는 거대한 날개를 회치고 있는 검은 드래곤의 모습이 보였다.
‘바..하.. 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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