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09화 (109/252)

EP. 24 : 악마의 달걀 (2)

&

첸드라를 만나고 며칠 지난 1990년의 4월 초.

나는 펜타곤 사무실을 찾았다. 때마침 펜타곤 소프트는 파이널 프론티어 3 발매를 목전에 두고 사무실 분위기는 꽤나 한가로웠다.

“아, 부장님. 오셨어요?”

마침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모리타가 나를 반겼다.

“에이, 이제 그 부장님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저도 이제 민텐도 사원도 아니고..”

“어차피 저희 개발 2팀으로 오시면 또 부장직 달고 오실 거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나는 모리타의 말에 피식 웃음을 던지며 펜타곤 식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미 예전부터 자주 들락거리며 얼굴을 익혀서 그런지 다들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부장님도 커피 드실래요? 어차피 한잔 더 내리면 되는데?”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리타씨.”

잠시 후. 대표이사 실에서 카와구치씨와 인사를 나누는 중에 모리타가 커피를 들고 왔다.

“모리타씨 잠깐 앉으세요. 하야시씨도 불렀으니 곧 올 겁니다.”

“음? 저희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하야시씨가 오면 같이 말씀 드릴게요.”

그러자 카와구치씨가 미소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또 제 2개발팀 인원으로 뭔가를 꾸미시는 건가요?”

“일전에 펜타곤 소프트에 들어갈 때 제가 큰 선물을 가지고 오겠다던 말 기억하시죠?”

“아, 네. 물론..”

그때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울리며 하야시가 들어왔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어?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모리타도 하야시도 저 부장님 소리는 끝까지 붙이는구나..

나는 하야시에게 비어 있는 의자를 권했다.

그럼 주역들이 다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나는 가방에서 며칠 간 정리한 휴대용 게임기 ‘타마고상’의 기획안을 한부씩 건네주었다.

“타마고상?”

“이 캐릭터는 누가 그린 건가요? 뭔가 동글동글한 모습이 엄청 귀여운데요?”

“아, 그건 이 게임의 메인 캐릭터인 타마고상입니다. 유키가 직접 디자인 했어요.”

“네에!? 유키씨가 직접? 센스가 굉장한데요.”

카와구치과 하야시 역시 모리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타마고상의 진화과정을 보면서 이 게임의 시스템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가장먼저 기획서의 검토를 마친 카와구치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요컨대 전자기기를 이용한 애완동물 기르기네요.”

“비슷합니다. 타마고상이 몬스터로 진화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확실히 먹이의 배합이라던가 훈련의 강도에 따라 마지막에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게 흥미가 당기는 군요. 분명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입니다. 나쁘지 않은데요?”

이번에는 하야시가 검토를 마치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굉장히 심플한데요? 이 정도라면 일주일 만에 코딩 작업 끝낼 수도 있겠습니다. 먹고, 자고, 훈련하고, 부장님이 생각하신 것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단조로운 구성이네요?”

그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두 번째 기획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민텐도의 휴대용 게임보이 카트리지로 제작 예정인 ‘타마고 몬스터’의 기획안이었다.

“이것은 타마고상의 데이터를 이용해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게임의 기획서입니다.”

그러자 그 순간 하야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타마고.. 몬스터? 그런데 부장님. 방금 뭐를 이용한다구요? 타마고상의 데이터?”

“일단 한 번 천천히 읽어 보세요.”

하야시는 불안한 표정으로 내가 건네는 기획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긴 순간..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타마고상 안에서 진화가 완료된 몬스터는 데이터 케이블을 이용해 카트리지 안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는 이 몬스터 데이터를 이용해 자신만의 부대를 만들 수가 있었고, 그 부대를 이용해 게임 안에 마련된 스토리를 즐기며 싸워나갈 수 있었다.

특히나 카트리지 안으로 옮겨진 몬스터는 스토리 안에서 최종 진화를 한 번 더 거듭하게 되는 요소가 있어 타마고상을 즐긴 유저라면 반드시 카트리지 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특히 휴대용 겜보이의 데이터 케이블을 친구의 겜보이에 연결해 몬스터들끼리 배틀 할 수 있는 요소에선 카와구치씨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겜보이가 발매되고 아직까지 제대로 데이터 케이블을 사용한 게임이 드문 시기였기에 ‘타마고상’이 보여준 데이터 연계 요소는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이런 데이터 교환 방식이 가능한가요?”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자신이 키운 몬스터로 친구와 대결하는 요소는 ‘타마고 몬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반드시 구현해야 합니다. 저도 같이 도울 테니 열심히 해봐요.”

하야시는 내 말에 기획서로 얼굴을 가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제까지 조용히 기획서를 살피던 모리타가 굉장히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부장님.. 문제가 있어요.”

“네? 무슨 문제가..?”

모리타는 기획서 안에 그려진 유키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살피며 울상을 지었다.

“작화 스타일이 저랑 너무 안 맞을 거 같은데요. 몇 가지라면 괜찮지만, 딱 봐도 수십종이 넘어가는 몬스터를 전부 디자인하기엔 너무 벅차 보여요..”

아.. 맞다. 당신은 미소녀 전문 작가였지..

민텐도에서도 동킹콤 그리기 싫어 나온 사람에게 수십종의 몬스터를 그리라는 건 굉장히 고역이 아닐수 없겠지.

하지만 이번 타마고 몬스터에서 모리타가 걱정할 부분은 전혀 없었다.

“걱정 말아요. 모리타씨.”

“네?”

“모리타씨는 모리타씨가 가장 자신 있는 캐릭터 몇 개만 그려주세요.”

“그럼 나머지 몬스터들은?”

“이번 타마고 몬스터에 출연하는 몬스터들은 아마추어 작가들부터 프로 작가들까지 섭외해 콜라보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될 거거든요.”

“콜라보레이션이요?”

“이 부분은 저보단 카와구치씨께서 조금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도쿄 내에 있는 ‘일러스트 전문학교’를 대상으로 캐릭터 공모전을 개최해보는 건 어떤가요?”

“캐릭터 공모전이요?”

“아무래도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몬스터의 기획이 나오긴 어려우니까요. 파이널 프론티어와 내가 없는 거리를 발매한 펜타곤 소프트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개최하는 겁니다.”

“과연.. 좋은 생각입니다. 숨은 인재도 발굴할 수 있고, 다양한 컨셉의 몬스터 기획도 받아 볼 수 있고, 아마 학교 측에서도 요즘 같은 시기에 적극 환영할 겁니다.”

“거기서 하나 더 부탁드릴 게 있는데..”

“뭔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파이널 프론티어에 등장했던 몬스터들도 이 타마고 몬스터에 같이 참전 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네에?”

“전부는 아니고, 파이널 프론티어를 대표할만한 몬스터들로요. 예를 들어 환수종의 바하무트라던가, 소환수의 시바 같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로..”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대체 어떤 걸 기획 하시는 건가요?”

카와구치씨의 물음에 나는 마지막으로 타마고상과 타마고 몬스터를 이용한 유통 구조 기획안을 꺼내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작성한 세 가지의 기획서는 굉장히 많은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끝내줄 거야.’

마지막 기획서를 받아든 카와구치씨의 표정은 기획서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씩 얼굴이 굳어져 갔다.

“파이널 프론티어의 타마고..?”

기획서 마지막 장에 그려진 달걀의 표면에는 파이널 프론티어라는 문자가 표면에 도르르 말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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