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103화 (103/252)

EP. 23 : 카게무샤 (1)

내 예상대로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는 출시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슈퍼 패밀리는 그 성능에 반해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적으로 미친 듯이 이슈가 되고 있는 ‘내가 없는 거리’를 플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기’로서 팔려나가고 있었다.

“대체 펜타곤에서 무슨 짓을 벌인 거야?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낸 슈퍼 패밀리의 스펙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게 맞게 제작할 수가 있는 거지?”

덕분에 시게씨가 만든 슈퍼 마리지 월드는 같은 날에 출시한 런칭 작품이었지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민텐도에게 있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분명 기기는 확실하게 잘 팔리는데, 그 이유가 불순하다.

딱 이런 반응이랄까?

시게씨는 자신이 만들어낸 슈퍼 마리지 월드가 찬밥 신세에 놓이자, 펜타곤 소프트를 찾아가 ‘내가 없는 거리’ 사내 보관용 카트리지 하나를 직접 구입해 왔다.

“대체 어떤 게임인지 내가 플레이 해봐야겠어!!!”

그리고 이틀 뒤..

“나나세쨩... 크흑.. 어흐흑”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심각한 내상을 입고 돌아왔다.

어이.. 그런데 나나세라뇨. 당신 그쪽 취향이었습니까..?

사태가 애매한 방향으로 흐르자, 결국 민텐도는 펜타곤 소프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얼 인정했냐고?

그야 물론 카트리지 수수료 협상이지.

펜타곤 소프트를 뒤에서 움직이던 나는 3차까지 물량을 배포한 이후. 4차 재고를 풀지 않고 있었다.

민텐도와 펜타곤의 신경전이 펼쳐진 것이다.

현재 펜타곤 소프트가 민텐도에게 지급하는 카트리지의 수수료는 개당 3000엔 가량이었다.

하드 견인의 칼자루를 거머쥔 펜타곤은 민텐도에게 그들이 제시한 수수료의 절반인 1500엔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카마우치 사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슈퍼 패밀리의 기종으로 발매된 것 팔지 않으면 너희만 손해라는 전형적인 배짱 장사였다.

그래서 며칠 후 우리는 내가 없는 거리의 NEGA 드라이브용 코딩 파일을 민텐도에 보냈다.

작화 열화가 있지만 카트리지 세 개를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으로 이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내가 없는 거리’는 모리타의 작화와 더불어 ‘시나리오’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펜타곤 소프트로 NEGA 드라이브 유저들의 이식 요청이 쇄도 하고 있었다.

펜타곤 소프트는 ‘서드파티’ 게임 개발사다. 다시 말해 민텐도 산하의 ‘퍼스트 파티’가 아니기에 어느 콘솔로 게임을 발매를 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현재 민텐도 입장으로선 제대로 하드를 견인해 줄만한 타이틀이 부족했다.

시게루씨의 ‘슈퍼 마리지 월드’는 분명 뛰어난 명작이었지만, 미소녀 3인방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이번 달 판매 순위 4위를 기록했다.

1, 2, 3위는 당연히 내가 없는 거리의 세 히로인 미유키, 나나세, 세츠나가 차지했다.

재밌는 것은 이 판매 순위에서도 이 시대 남자들의 취향이 들어났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역시나 동갑내기인 미유키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판매량이 좋은 것은 아무래도 상대하기 편한 연하. 나나세.

이 두 사람에 비교해 세츠나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나는 세 캐릭터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무조건 세츠나 였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자신보다 연상인 여성에게 약간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츠나의 판매량마저 슈퍼 마리지 월드를 가볍게 뛰어 넘으며 각 캐릭터당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대체 왜 ‘내가 없는 거리’ 재고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건지. 게임가게마다 문의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카마우치 사장이 백기를 들었다.

“새로운 콘솔의 런칭 초기니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카마우치 사장의 결정과 동시에 ‘내가 없는 거리’의 4차 판매 수량이 전국에 쏟아졌다. 그동안 입소문만으로 시나리오를 들어왔던 유저들은 가뭄에 단비 내리듯 폭발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드래곤 엠블렘, 사이킥 배틀, 내가 없는 거리까지 내가 만들어서 출시한 게임은 초반에 제대로 물량 풀린 적이 한 번도 없네..’

문득 든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카마우치 사장이 나에게 물었다.

“강군은 이번 주가 마지막 근무였나?”

“네, 사장님.”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자네가 만들어낸 슈퍼 패밀리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데, 부모가 떠나서야 되겠나?”

“어차피 저 혼자서 만들어낸 건 아닌 걸요. 사운드 칩 부분은 센소니의 쿠라카기씨에게 도움을 받았고, 커스텀 CPU는 라이텍스에서 제작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제품 설계는 군페이씨와 함께했고, 지난주에 인수인계도 마친 상태입니다.”

“정말 깔끔하게도 정리했구나.”

카마우치 사장은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것은 회의실에 함께 있는 군페이씨와 시게씨도 마찬가지였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마케팅이나 해외영업 본부 등 여러 부서의 직원들도 나의 퇴직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신세졌던 직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작별 인사를 고했다.

카마우치 사장은 특별히 송별회를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사장님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였다.

떠나는 사람은 그냥 떠날 뿐이다.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화려한 이별보단 담담한 악수로 헤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슈퍼 패밀리가 발매되고 약 4개월 뒤인 1990년 3월 말..

나는 약 7년을 몸 담았던 민텐도를 떠났다.

카마우치 사장은 언제든 돌아오면 재입사를 허락해주겠다며 끝까지 허세를 부렸고, 군페이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시게씨와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나서 나는 천천히 차에 올랐다.

“이제 뭐 할 거냐?”

“글쎄, 뭐 할까요?”

“미친 놈. 할 거 없으면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 인마.”

“킥킥. 우선 도쿄로 집을 옮기고 천천히 생각해보려구요. 어차피 배운 게 도둑질이니, 게임 업계에 있다 보면 또 만날 수 있겠죠?”

“그래. 그동안 너랑 같이 일 해서 즐거웠다. 가능하면 민텐도에서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았을 걸.”

“빈 말이라도 감사하네요.”

“빈 말 아냐~!!”

“어차피 시게씨랑 저는 같은 회사에 못 있어요.”

“왜?”

“일전에 사이킥 배틀 제작 발표회 때 기억나시죠? 저랑 판매량 내기 하자고 했었던 날.”

그러자 시게씨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민텐도 만의 게임 철학이 있는 한 제가 만드는 게임은 민텐도에선 제작이 힘들 것 같아요.”

“너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떠나는 거냐?”

“흠~ 글쎄요.”

나는 시게씨의 질문에 미소로 답한 뒤에 말을 이었다.

“금방 복귀 할 겁니다. 그럼 그때 봬요.”

“잘 가라.. 강 준혁.”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오셨군요. 준혁씨..”

“안녕하세요. 후세씨. 잘 지내셨나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내비치는 50대 중반의 남자는 반가운 미소로 나를 반겼다.

트라이앵글 소프트를 위임 받은 1986년부터 지금까지 라이텍스와 더불어 부도 위기의 공장 몇 군데를 인수하는데 도움을 주셨고, 그 외로도 자잘한 법률 문제를 상담해주곤 하셨다.

“준혁씨를 만나고 벌써 5년이 흘렀군요.”

“그러게요. 시간 참 빠르죠? 그런데 카와구치씨는 아직 안 오셨나요?”

“글쎄요. 오실 시간이 됐는데..”

그러자 때마침 변호사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 끼이익

카와구치씨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준혁씨? 준혁씨가 왜 여기에?”

“안녕하세요. 카와구치씨.”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있던 후세씨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카와구치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전에 전화 드린 후세 타츠지입니다.”

카와구치씨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후세씨에게 물었다.

“저는 사장님이 여기 계시다고 해서 온 건데..”

“물론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카와구치씨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비좁은 사무실안에는 나와 후세씨 둘 밖에 없는데도 카와구치씨는 전 사장인 ‘쿠도’씨를 찾는 모양이었다.

아~ 쿠도 씨라면 먼 이국땅을 해매다가 지난 달 일본에 돌아왔다.

나의 무리한 부탁으로 인해 약 5년가량을 반강제로 해외에서 살다온 쿠도씨는 굉장히 초췌해져 있었다.

아마도 당분간 게임 개발 사업은 꿈도 꾸지 않을 듯했다.

나는 수고해준 쿠도 사장에게 약속한 대로 3천만엔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놀고먹으면서 5년에 3천만엔이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고 생각한다.

“저기 쿠도 사장님이 어디 계시다고 말씀하신 건지.”

결국 후세씨는 껄껄 거리며 카와구치씨에게 진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눈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86년부터 펜타곤 소프트를 만들어 내고 뒤에서 묵묵히 지원 해준 건 바로 여기 있는 강 준혁씨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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