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 순례자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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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미친..”
편집장님의 제안에 사무실에서 곧장 카메라를 챙겨 들고, 가장 가까운 도쿄 타워를 찾은 나는 입에서 ‘미친’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미 우리가 한발 늦었다. 도쿄 타워는 한가로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주말 관광객들을 연상 시키듯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것도 전부 ‘남자’들로만..
다들 하나 같이 우수에 젖은 표정을 보니, ‘내가 없는 거리’를 플레이한 유저들이구만..
진짜로 게임에 나온 장소를 성지 순례하듯 돌고 있는 걸 보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이미 게임에서 등장했던 포인트의 한 가운데에는 그녀들을 기리는 추모용 국화가 가득 놓여 있었다.
‘대박이다.. 이건 진짜 대박이야..’
도쿄 타워의 전망대는 마치 장례식장을 연상 시키듯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기념품 판매원이 슬쩍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대체 오늘 무슨 날인가요? 며칠 전부터 손님들이 다 저 자리에 국화를 놓고 가시던데..”
“아.. 그게..”
이유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차마 게임 캐릭터와 연관이 있다고 말하기가 겁이 났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헛짓거리로 보일 수 있지만, 저 사람들은 지금 완전 진지하단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 한 유저의 행동에 좌중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래~!! 바로 이거야!! 뭔가 허전 하다 싶더라니!!”
“미유키쨩~!! 으허헝”
그 유저가 조심스럽게 들고 온 물건은 미유키의 영정 사진이었다.
‘하다하다.. 이젠 영정 사진이냐..’
물론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였지만, 일러스트레이터 모리타의 그림을 거의 베껴내듯 그려낸 미유키의 모습은 주인공이 죽기 직전 발랄한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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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쎄 진짜라니까요!!”
“얌마!! 뻥도 정도껏 쳐야지 뭐? 국화? 거기다 영정 사진이라고??”
“아무튼 사진 찍었으니까, 나중에 인화해서 보여드릴게요. 지금 여기 분위기 장난 아니거든요? 여기서 그거 보고 쳐 웃었다간 맞아 죽을 분위기에요.”
“진짜 그 정도냐?”
“못 믿으시겠으면 한번 와보세요.”
“야, 그거 다 촬영해서 다음 주까지 넘겨 이번호에 바로 실을 거야.”
“지금 저보고 다음 주까지 이걸 촬영하라구요?”
“이 녀석 까라면 까는 거지 뭔 말이 그리 많아.”
“네.. 알겠습니다.”
나 저 사람들 계속 쫓아다니다간 나까지 머리가 이상해 질 것 같아..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어디서 얻은 정보인지 귀신같이 ‘내가 없는 거리’의 장소를 찾아내는 어마어마한 정보력에 그들의 뒤를 밟는 것만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장소를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날 하루 종일 그들을 쫓아다닌 결과 유명한 장소의 사진은 대부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나자. 이벤트가 있었던 거리에는 이제 세 히로인의 영정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각 거리마다 영정 사진을 들고 찾아오는 유저..
이 그림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히 원작을 그린 모리타씨의 그림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 그때 도쿄 타워에서 미유키의 영정 사진을 가지고 온 그 남자일 거야.
다음 날부터 나는 아직 사람들이 찾지 못한 거리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 아직 영정 사진이 없는 곳을 발견한 나는 그곳에서 한 남자를 기다렸다.
히로인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다니는 유저를..
우연하게도 그날 저녁.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신주쿠 근처의 거리에서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근처 카페에서 몸을 녹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지켜 보았다.
사람들은 또다시 나타난 그를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었고, 그는 잠시 후 경건한 자세로 국화가 헌정 된 곳에 세 사람의 영정 사진을 내려놓았다.
“저기, 잠시 만요!!”
나는 간단히 참배 후 돌아가려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네?”
“패미통신의 잡지 기자입니다.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아뇨.. 전 그냥..”
“우치무라 히로키씨 맞죠?”
“네? 어.. 그걸 어떻게?”
“저희 잡지에 독자 투고 보내셨잖아요. 신단 세우셨다고..”
“아.. 네, 맞아요.”
“잠깐이면 되는데 몇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우치무라씨는 나의 제안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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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씨 와의 인터뷰를 끝마치고, 모든 자료를 편집부에 넘긴 뒤 뉴스를 틀어 보니 이미 사회현상으로 확산이 되어가는 ‘내가 없는 거리’에 대해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최근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로 발매된 게임 타이틀 ‘내가 없는 거리’가 큰 화제가 되며 기이한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취재 기자 카츠라기 미사토씨가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허~ 이거 참. 뉴스도 나오는 거야?”
잠시 후. 화면 안에는 약간 성격이 있어 보이는 인상의 미녀 리포터가 우에노 공원의 한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장소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두터운 점퍼를 입고 호숫가에 모여 있었다.
“여기는 최근에 발매한 슈퍼 패밀리용 게임 ‘내가 없는 거리’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장소입니다. 보시다시피 오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국화를 내려놓고 참배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요. 잠시 한 분을 모시고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잠시 후 리포터는 두 손을 모아 참배 후 돌아가는 한 유저의 팔을 붙잡고 거의 반강제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깜짝 놀란 남자는 갑작스런 인터뷰에 도망치려 했지만, 리포터는 남자의 점퍼를 꽉 틀어쥔 채로 방긋 방긋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후지 티비의 카츠라기 미사토입니다. 지금 저 곳에 참배를 하고 나오셨는데요. 혹시 내가 없는 거리라는 게임의 장소를 찾아 오신건가요?”
“네? 아.. 그게.. 네..”
굉장히 자신 없는 말투로 고개를 푹 숙이는 게이머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지만, 마치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 마냥 리포터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게임을 하게된 계기와 좋아하는 캐릭터. 이곳에 참배하러 온 이유까지 전부 털어 놓은 후에야 겨우 풀려난 게이머는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쯧쯧.. 차라리 그냥 당당히 얘기를 하지. 남자답게 말야..”
하지만, 만약에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당당히 세츠나씨의 참배를 하러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이런.. 말이 안 돼지.. 왠지 그런 말 했다간 사회에서 매장 당할 것 같아..
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짓은 패미통신의 발매이후 더욱 늘어났다.
내가 찍은 사진과 게임속의 배경을 비교하며 실제 거리의 포인트를 공략(?)해 놓은 덕에 잡지 기사를 보고 실제로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그 모습을 ‘성지순례’라 표현하였고, 그들을 ‘순례자들’이라 칭했다.
처음엔 영정사진과 국화로 시작되었지만, 유명한 거리엔 각종 팬아트와 촛불이 놓이게 되었고, 하나의 문화가 되어 갔다.
‘내가 없는 거리’는 그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 화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1990년의 봄이었다.
그리고 내가 없는 거리의 성지순례 소동은 후일 ‘오타쿠’ 문화라 불리 우는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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