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 순례자들.. (7)
-준페이의 직장. 패미통신 편집실 -
새벽에 오오타니 세츠나씨의 시나리오의 모든 루트를 끝마친 나는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체 이 게임의 리뷰를 어떻게 써내려갈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게임 발매 후. 1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모든 루트를 이 잡듯이 뒤지며 해피엔딩을 찾아보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란 없었다.
이벤트 달성률 95% 나머지 5%에 희망을 걸고 데이터를 승계시켜 다시 게임을 시작한 것이 어제 초저녁이었다.
그리고 내가 얻어 낸 결과는 딱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감동만이 존재했다.
“편지라니..”
데이터 승계 후에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시점에서 하나의 이벤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편지쓰기’ 라는 커멘드가 떠올랐다.
그리고 각 장소에서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을 편지로 옮겨 적으며 주인공은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플레이한 오오타니 세츠나는 굉장히 성숙한 이미지의 여인이었다.
미유키나 나나세의 시나리오처럼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였다.
“있잖아.. 준페이군. 원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냥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주인공의 죽음 앞에도 초연했다.
세츠나씨의 시나리오에서 서브 캐릭터로 등장하는 미유키와 나나세를 위로하며 자신의 슬픔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녀가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역시 전.. 아직도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약간의 음질 열화가 있지만, 세츠나씨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정말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대체 이 게임을 누가 기획 한 걸까?”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에 작화를 맡은 모리타씨에게 직접 물어도 시나리오 작가 ‘K’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었다.
나름 친하게 지내는 펜타곤 직원 하나를 붙잡고 협박하듯이 캐물었지만, 개발 2팀에서 제작된 ‘내가 없는 거리’는 모든 게 비밀에 휩싸여있다고 했다.
목소리 녹음은 카트리지 제작 단계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모리타씨도 몰랐던 요소라고 한다.
“대체 누구냐. 누가 이런 어마어마한 시나리오를..”
&
며칠 동안 편집부에 쇄도하던 또 다른 공략 루트의 문의 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모두 깨달았을 것이다.
이 게임에 도망갈 구멍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걸.
그럴 거라면 세이브 파일 지우는 것에 추억을 잊겠냐는 말 따위 써놓지도 않았겠지..
처음부터 아주 작정을 하고 치고 들어온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일까? 게임이 발매 후 며칠이 지나자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 차마 웃어넘기기도 힘들었던 사연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날 편집부로 날아온 독자 투고 일러스트 한 장을 보고 우린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치무라 히로키라는 독자에게서 온 사연이었는데..
미유키의 시나리오를 끝마친 날을 기일로 정해 자기 방에 신단(神壇)을 모신 것이다.
게임 캐릭터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신단을 모시다니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인가..
“이 사람 장난 아닌데? 완전 진심모드야..”
“편집장님 이거 잡지에 실어도 될까요? 문제 생길지도 모르는데?”
“준페이.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건 그만큼 대박이라는 말 아니겠어? 내가 책임질테니까 이번 독자 투고 사연 전부 실어. 아!! 그래 아예 ‘내가 없는 거리’에 대한 독자 투고 사연만 전문으로 칼럼을 하나 만들자!!”
“네에?”
그것은 신규 게임 타이틀에 있어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고작 발매 2주 된 타이틀에 따로 칼럼을 만들어주다니..
하지만 편집장님의 말도 틀린게 아닌게 현재 슈퍼 패밀리의 하드 캐리를 하고 있는 타이틀은 민텐도의 대표 게임 ‘슈퍼 마리지 월드’가 아니었다.
각 캐릭터 별로 3개의 카트리지로 제작 되었지만, 초회 수량으로 준비한 3500개의 타이틀이 행사장에서 순식간에 팔려 나가고, 그것도 지금은 재고 부족으로 구입하지 못한 유저들은 방바닥만 긁고 있는 실정이었다.
편집부에 도착한 타이틀 역시 각 히로인 별로 하나씩만 전달되었는데, 이 게임의 공략을 신청한 직원이 10명이 넘을 정도였다.
물론 짬밥 순대로 선택권이 있었기에 나는 세 개의 타이틀 중에 오오타니 세츠나씨의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리뷰어인 내가 공략을 자처하자, 게임 공략 팀의 몇몇 직원이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런 시선 따위 싸그리 무시해 버렸다.
이미 내 돈 주고 사고 싶어도, 시장엔 재고 한 톨 안남아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라도 플레이 해볼수 있다는게 기적이었다.
‘차라리 슈퍼 패밀리 행사장 말고, 펜타곤 행사장을 맡았으면 담당자에게 얘기해서 재고 하나라도 뺄 수 있었을 텐데..’
현재 ‘내가 없는 거리’의 중고 샵에서 매입으로 제시한 금액은 카트리지 하나당 13,000엔이었었다. 판매가격은 18,000엔.. 그런데도 물건이 없다.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지..
슈퍼 마리지 월드는 널리고 널려서 슈퍼에서 과자 사먹듯 구입할 수 있는 반면 이건 사고 싶어도 살수가 없었다.
한정판 가격이 나왔을 때 22,000엔이라는 가격이 제시 되었을 때 편집부 몇몇은 누가 그 가격에 게임을 사냐며 비웃었지만, 그 사람들 지금 완전 계탔다.
단 500개의 수량으로 제작된 한정판의 현재 가격은 약 10만엔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파는 사람이 없다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운드 트랙이 정말 어마어마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총 2장으로 구성된 사운드 트랙의 마지막 보너스 트랙이 가관이었는데..
이 보너스 트랙에 히로인 세 명의 마지막 대사가 무려 ‘풀 보이스’로 실려 있었다.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한 게이머들은 이 한정판을 신물(神物)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격이 저렇게 올라도 파는 사람이 없겠지..
결국 우리는 편집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번호 패미통신은 ‘내가 없는 거리’의 특집을 맡게 되었다.
대충 회의를 정리하고 편집부로 돌아가려는데, 편집장님이 나를 불렀다.
“어이 준페이 군.”
“네.”
“잠깐, 이리 와 봐.”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이번에 나온 내가 없는 거리 말이야. 들어보니 실제로 도쿄에 있는 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하더군. 독자들 사연에도 우리 동네랑 비슷한 거리가 보인다는 것 같고..”
“가상의 도쿄지만, 몇몇 군데에서 정말로 존재하는 거리인 것 같다는 생각은 저도 해보았습니다.”
“네 생각도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이 거리들을 특집으로 구성해 보는 건 어떨까?”
“게임 그래픽만으로 그려진 장소를 실제로 찾아가 보자구요?”
“내가 사진에 관심이 좀 있는데 말야. 내가 보기에 여기 나오는 장소는 실제로 카메라를 촬영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작화를 맡긴 게 틀림없어. 분명히 찾아가 보면 어느 포인트에서 찍었는지 각이 나올 거라니깐?”
“그 말씀은 저보고 직접 가보라는 말씀이세요?”
“너 이번에 리뷰도 다 끝냈잖아. 또 할 거 있어?”
“뭐.. 슈퍼 마리지 월드나 리뷰하려고 했죠.”
“그건 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네가 카메라 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 좀 찍어봐. 우선 우에노 공원이나 도쿄 타워는 쉽잖아.”
“흐음..”
게임 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본다라.. 나름 재밌겠는데?
나는 빙긋 웃으며 편집장님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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