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97화 (97/252)

EP. 22 : 순례자들.. (3)

&

잠깐 TV연결만 하고 다시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한 시간이 흘러 버렸다.

잠시 기계에 문제는 없는지 슈퍼 마리지 월드를 플레이해 봤는데, 다행이도 기계와 컨트롤러 전부 이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없는 거리는 피곤한 상태에서 플레이 하는 것보단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겸허히 플레이에 임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다시 발매 현장의 이야기를 써내려보자면 우선 히로인당 1000개씩의 도합 3000개의 수량과 히로인 3명을 전부 구입할 수 있는 한정판 패키지 500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히로인 별 카트리지의 가격은 개당 8,600엔.

한정판 가격은 3개의 카트리지가 전부 들어 있는 만큼 22,000엔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발매 되었다.

장난도 정도가 있지. 22,000엔이면 슈퍼 패밀리 한 대와 거의 맞먹은 가격이다. 아무리 게임이 3개라도 저 가격에 과연 살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나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한정판으로 세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진 특수 제작된 패키지와 함께 모리타씨의 일러스트 집이 함께 동봉되어 있었는데, 행사 시작과 동시에 한정판의 잔여 개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500개의 한정판이 전부 팔려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그 사이 개별 패키지는 1개 내지 2개 정도 줄어들었을 뿐. 어젯밤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던 사람들이 한정판 패키지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개를 돌려 민텐도 행사장을 바라보니 아직도 긴 대기 줄이지만, 판매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젠장. 차라리 ‘내가 없는 거리’를 먼저사고, 슈퍼 패밀리를 샀어야하는 건데,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와아.. 진짜 저 가격에도 살 사람은 사는구나. 준혁씨 말 대로네..”

내 뒤에 있던 유키씨가 빠르게 줄어드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잠시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

“저.. 저기 이시카와 씨는 어느 히로인을 구매하실 건가요?”

“저요? 음~ 저는 오기소 나나세 시나리오요.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우치무라 히로키입니다.”

“아.. 우치무라씨는 어느 히로인을 구입하실 건가요?”

“전.. 미유키쨩을..”

“아하~ 소꿉친구 시나리오군요.”

이런.. 이미 시나리오까지 알고 있다니. 이 정도 미모에 게임에 대해서도 박식하다니. 정말로 보기 드문 처자구나..

통 성명을 하고나니 조금은 말문이 트였달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없는 거리’ 말고 좋아하는 게임을 묻자. 유키씨의 입에서 사이킥 배틀과 함께 드래곤 엠블렘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혹시 그러면 드래곤 엠블렘 행사장에도 오셨었나요?”

“네~ 그때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살아남았었는데, 결국 최종화에서 실패했어요..”

“그럼 그때 민텐도 직원에게 드래곤 엠블렘 클리어 카트리지를 받아갔던 사람이?”

“네, 바로 저예요. 그때 행사장에 계셨었군요.”

“그럼요~!! 드래곤 엠블렘은 패밀리 게임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이렇게 말이 잘 통할 줄이야.

잠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대기 줄에서 유키씨와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크큭.. 부럽냐 이것들아~

“그런데, 우치무라씨.”

“네?”

“저기, 괜찮으시겠어요?”

“뭐가요?”

“전광판에 미유키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

뭐라고!? 이런 젠장!! 세츠나와 나나세가 아직 900대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미유키의 잔여 수량은 700대 초반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도 줄이 한참 남았는데, 설마 저 인간들 전부 미유키쨩을 사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파오후.. 파오후..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미유키의 잔여 재고가 줄어들수록 심장이 쿵쾅 거렸다.

군중 심리다. 이건 군중 심리야..

세츠나나 나나세를 구입하러온 사람들도 미유키가 가장 인기가 좋으니 너도 나도 사기 시작한 거야..

줏대 없는 녀석들..

감히 나의 미유키쨩을 선점하려 하다니!! 애초에 너희가 선택한 히로인을 구입하라고!!

그렇게 심장을 쥐어 뜯는 기분으로 계산대 앞까지 돌고 돌아왔지만. 미유키의 재고 수량은 이제 21개 밖에 남지 않았다. 세츠나는 602개. 나나세는 약 491개 수량이 남은 반면 미유키는 21개라니..

이대로라면 미유키쨩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나는 까치발로 내 앞에 서있는 이들의 머릿수를 살폈다. 약 30명. 기적이 일어난다면 난 미유키쨩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 듯 전광판의 숫자가 18을 가리켰다.

3개의 계산대에서 동시에 미유키쨩을 구매한 것이다.

“아.. 안 돼..”

나도 모르게 전광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유키씨 역시 불안한 눈으로 유키의 전광판을 살피며 중얼 거렸다.

“안 돼는데.”

설마.. 유키씨. 저의 걱정을 함께 해주시는 겁니까?

신이시여.. 부디 우리의 바램을 들어주소서. 그렇게 눈물까지 찔끔 나올 정도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세츠나와 나나세의 카운트가 동시에 줄어들며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내 앞에 전광판의 숫자는 영광의 1.

무려 마지막 하나가 남은 것이다.

“잘됐네요. 우치무라씨~!!”

유키씨는 손뼉을 치며 미유키의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이시카와 씨가 기도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때 우리 차례를 알리는 안내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다음 세분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계산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앞 사람들의 결제가 끝나고 퇴장하자 나는 유키씨와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어떤 타이틀로 준비해 드릴까요?”

“아.. 그.. 저는 미유..”

그때였다.

“하세가와 미유키 주세요!! 빨리!!”

나와 유키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남자가 세 번째 계산대에서 미유키를 외쳤다.

당황한 나는 깜짝놀라 안내 직원에게 외쳤다.

“저.. 저도 미유키 주세요!!”

“네? 아.. 저기..”

순간 세 번째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마지막 남은 하세가와 미유키의 타이틀을 가져가 버렸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 미유키의 시나리오가 전부 매진 되었습니다. 혹시 다른 캐릭터의 시나리오는 어떠세요?”

... 나의 하늘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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