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2 : 순례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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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돌아가서도 잘 부탁한다.”
내 작별 인사에 롭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히 말해. 네가 말한 컨셉을 100% 수용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겠다. 첸드라랑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우리는 GPU쪽 성능에만 집중하기로 했으니까.”
“알았다. 혹시 개발 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엘리스한테 얘기하면 될 거야.”
그러자 내 곁에서 함께 롭을 배웅해주던 첸드라가 입을 열었다.
“잘 가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도 된다. 첸드라 항상 라이텍스에 있으니까.”
“오케이. 이왕 손잡은 거, 같이 멋진 물건 한 번 만들어 보자구~!!”
처음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더니, 한 달 동안 라이텍스 공장에서 함께 구르며 꽤나 친해진 모양이네..
보편적으로 콘솔에 익숙한 첸드라는 자신이 모르는 영역인 그래픽 카드 부분을 롭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자신이 맡기로 하였다.
이미 첸드라는 기존에 리코 CPU를 복제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콘솔 지식은 아무래도 첸드라가 더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미국은 성과급을 정확히 반으로 나누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롭은 3D 가속 장치 뿐만 아니라 카트리지 형식에 들어가는 그래픽 카드 제조를 위해 미국에 돌아가면 기술 자문을 얻을 곳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어느 정도 돈이 깨질 것은 각오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롭 일행이 떠나기 전 그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혹시 MIT 졸업자나 아는 인맥 중에 IBM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을 좀 찾아볼래?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프리먼 커티스? 잭슨 황? 누구야 이 사람들은?”
“사실 나도 만나본 적은 없어. 대신 그래픽 기술로는 IBM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인물들이라고 전에 잡지에서 봤거든. 아마 너희가 만든 GPU 장치를 보여주면 관심을 가질 거야.”
“그래? 흐음.. 미국에 돌아가면 한 번 알아볼게.”
내가 롭에게 알려준 프리먼 커티스와 잭슨 황은 차후에 엠비디어라는 그래픽 카드 회사의 창립자들이었다. 만약 그들과 어떻게든 끈을 댈 수만 있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잠시 후.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자, 엘리스와 롭 일행은 작별인사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미래를 위한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1년 안에 나는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의 개발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바쁜 시간을 보냈다.
무려 6년의 세월을 버텨온 패밀리의 성능을 한계까지 뽑아내는 명작들과 함께 패밀리의 자기 세대의 끝을 알리고 있었고, 슈퍼 패밀리에 왕좌를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만트라 소프트가 89년 1월에 국내 최초로 게임 전문 잡지를 발간해 내었다.
내가 한국에 방문했던 때가 88년 초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11개월 만에 창간호가 나온 것이다.
물론 나와 만트라 사장님은 조금 더 빨리 일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게임’을 주제로 한 잡지 자체가 황당하게도 불 온전 도서라는 낙인이 찍히며 이것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결국 타협을 위해 출판 업계를 손에 쥐고 있는 문화부 쪽에 뒷돈이 조금 들어갔고, 그러고 나서야 국내 최초의 게임 전문 잡지 ‘게임 월드’가 발행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만트라 소프트는 이미 파이널 프론티어 1과 칼콤의 YS 1의 성공적인 한글화 런칭으로 국내에서 유일한 퍼블리셔도 명성을 쌓아나가고 있었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게임 월드’는 초판 발행 10만부를 2주 만에 전부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해냈다.
물론 그만한 성공에는 ‘드래곤 엠블렘 한글판’ 응모권이 일조한 부분도 있지만..
만트라 컴퓨터의 사장님이셨던 김한석씨는 장사 수완이 좋은 편이었다.
파이널 프론티어 한글판 역시 섣불리 카트리지를 전국에 뿌리기보다 만트라 소프트를 소비자 들에게 알리기 위해 직접 유통을 관리하는 전문 매장을 만들어 큰 효과를 보았다.
한국의 게이머들 역시 처음 보는 카트리지의 패키지 디자인에 좋은 반응을 얻어 기대 이상의 판매를 올렸다. (그래봐야 2만 카피를 살짝 넘기는 것에 불과했지만..)
김한석 사장님은 큰 수익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나에게 사과했지만,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파이널 프론티어와 YS의 한글판을 한국에 선 보인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펜타곤 소프트에서는 패밀리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파이널 프론티어 3’의 제작과 동시에 ‘내가 없는 거리’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모리타와 하야시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그것을 게임화 시키는데 일조 했고, 유키 역시 자신이 맡은 ‘나나세’의 시나리오에 온갖 애정을 쏟고 있었다.
초반엔 비슷하지만, 중반부터는 확연히 다른 세 히로인의 이야기는 펜타곤 소프트 내에서도 굉장히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3개의 카트리지를 따로 사용하는 만큼 히로인 개개인 마다 각기 다른 3개의 엔딩과 이벤트 들을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님? 이거 용량이 조금 남는데요?”
“용량이 남아요?”
“뭐 아주 크진 않지만, 30kb정도? 모리타에게 부탁해서 일러스트라도 한 장 넣을까요?”
“이미 엔딩 일러스트까지 다 넣은 마당에 또 추가하긴 좀 그런데.. 이벤트를 추가하자니 그건 용량이 부족하고..”
“그럼 그냥 비워둔 채로 출시할까요? 딱히 추가할 부분도 없을 듯한데..”
“아, 잠깐만요. 그 부분은 일단 비워두세요. 제가 나중에 따로 추가할게 있으니.”
“부장님이 직접 손보시게요?”
“네. 일단은 그냥 비워 두세요.”
하야시는 내 요청에 잠시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따로 뭔가 꾸미고 계시는 게 있나보군요.”
“조금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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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9년의 11월. 민텐도 슈퍼 패밀리의 런칭 일이 다가왔다.
6버튼 게임 패드 2개를 포함해 정가 25000엔에 출시된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는 출시 당일 엄청난 인파를 불러 모았다.
NEGA 드라이브의 런칭 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몰려든 인파에 민텐도 마케팅 부서 인력을 전부 동원해도 모자를 판국이었다.
라이벌 회사인 NEGA는 슈퍼 패밀리의 발매 일에 맞추어 NEGA 드라이브를 할인행사로 맞받아 쳤지만, 대중의 관심은 모두 민텐도의 슈퍼 패밀리로 향해 있었다.
“역시 슈퍼 패밀리가 처음부터 선전하는 군요~!!”
함께 행사장을 지켜보는 인물은 슈퍼 패밀리에서 사운드 칩 개발에 일조한 센소니의 직원 쿠라카기 켄타로씨였다.
그는 고단가의 PCM 사운드 칩을 슈퍼 패밀리 만을 위해 따로 제작해줄 정도로 민텐도의 게임 사업에 열정적으로 편을 들고 있었다.
카마우치 사장과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자신이 만든 사운드 칩의 장점을 피력한 끝에 결국 카마우치 사장은 쿠라카기 씨에게 사운드 칩 납품을 허락했다.
‘차후에 서로 물고 뜯을 쿠라카기씨와 카마우치 사장이 나란히 함께 웃고 있다니 이거 참 아이러니 하군..’
나는 캔 커피로 목을 축이며 건너편 펜타곤 소프트의 행사장을 바라보았다.
민텐도 행사장의 맞은편에는 슈퍼 패밀리의 런칭과 함께 ‘내가 없는 거리’의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저는 아직도 당신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단 한 줄의 선전 문구와 아름다운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진 일러스트 하나로 단번에 시선을 휘어잡은 펜타곤 소프트는 민텐도와 조율하여 오후에 행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미려한 캐릭터의 뒷모습에 슈퍼 패밀리를 구입한 유저들은 곧장 펜타곤 소프트의 행사장으로 달려가 일대에 큰 혼잡을 빗어내고 있었다.
“대기 줄은 이쪽으로 한 줄로 서주시기 바랍니다.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렬로 서주시기 바랍니다~!!”
슬쩍 민텐도의 행사장을 빠져나와 펜타곤 소프트를 바라보자 카와구치씨와 함께 펜타곤 소프트 전 직원이 행사 도우미를 서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모리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다른 펜타곤은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모리타 만은 쌀쌀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조그만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또다른 줄이 길게 서 있었는데, 줄을 서있는 사람들 마다 사이킥 배틀의 타이틀이나 일러스트를 들고 서있었다.
그렇다.
오늘은 ‘내가 없는 거리’의 런칭과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 모리타 신페이의 팬 싸인회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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