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91화 (91/252)

EP. 20 : 슈퍼 패밀리의 탄생까지 (4)

“너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그 돈을 전부 저승 길 노잣돈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면 제품의 완성도에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만약 이대로 저가 제품 구성으로 콘솔을 만든다면 분명 발매이후 불량률이 증가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불만을 품겠죠.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그것은 곧 민텐도의 이미지를 해치게 될 겁니다. 수리가 몇 번 반복되다보면 자연스레 제품 자체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테고, 까다로운 소비자들이라면 전량 리콜을 요청하거나 민텐도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일 수도 있겠지요.”

이거 너무 세게 나갔나?

하지만 카마우치 사장은 저승 길 노잣돈이란 말보다 전량 리콜, 불매 운동이라는 말이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불매 운동이라고?”

“극단 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미 전 세대와는 다르게 콘솔 업계의 판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거 못 느끼시겠습니까? NEGA는 16비트 게임기 출시와 함께 얼마 전 풀 컬러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했고, 이제까지 아케이드 게임만 만들던 SMK 역시 가정용 콘솔 업계에 뛰어들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어요.”

“흐음.. 그 소식은 나도 듣긴 했다만..”

“저는 조금만 더 사장님이 욕심을 부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 주신다면 기필코 슈퍼 패밀리를 성공적으로 런칭 해보이겠습니다.”

“너 이 녀석. 그렇게 자신 있단 말이지?”

“물론이죠.”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카마우치 사장에게 나는 빙긋 웃음을 던졌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타임 슬립을 거친 나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아예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현재 시장의 궤도가 틀어진 것도 아니고, 패밀리의 시대 끝나는 오늘까지 나는 너무 큰 혁신 보다는 게임 시장의 궤도를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적어도 앞으로 몇 년 후의 미래 정도야 쉽게 예측이 가능하지..

“알았다. 그럼 이제부터 네 녀석이 올리는 보고 사항에 일체 손을 대지 않겠다.”

‘됐다.’

카마우치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군페이씨의 조언대로 카마우치 사장은 자신의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타인을 통한 확신을 갈망했다. 그것은 카마우치가 나를 신용하는 것은 민텐도의 사명으로 내걸은 100명의 사원보다 1명의 천재를 귀히 여기는 사상과도 닮아 있었다.

“실망 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도 그렇고 군페이와 시게 녀석이 칭찬하는 것만큼 네 녀석은 항상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어왔으니까.”

카마우치 사장은 굳은 표정을 풀고 나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렇게 면대 면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속이 후련하군. 매일 올라오는 결재 서류를 들여다보며 혼자서 끙끙 앓던 게 허무할 정도야.”

“저 역시 생각했던 것 보다 사장님과 이야기가 잘 풀려서 마음이 놓이네요. 하마터면 민텐도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프로젝트가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요 며칠 잠을 좀 설쳤거든요.”

테이블 앞에 서류를 정리하며 굉장히 스무스하게 퇴직에 대한 말을 내뱉자 카마우치 사장은 잠시동안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두 눈을 꿈뻑 거렸다.

“강군?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정리된 서류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번 슈퍼 패밀리가 완성을 끝으로 민텐도를 떠날까 합니다.”

“뭐라고!?”

카마우치 사장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사장실 안에 크게 울렸다.

하긴 현재 민텐도를 떠받치고 있는 서까래 중 하나가 쑥하고 뽑혀져 나가는 기분일 테니 충분히 놀랄 만하지.

“사실 퇴사에 대해선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맡은 차세대 콘솔의 개발 프로젝트를 제대로 끝마치고 싶었을 뿐이죠.”

“안 돼.”

“네?”

“가지마라.”

떠나지 말라는 카마우치 사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참담한 그의 표정에 나는 미소를 거두었다.

“우리 회사를 떠나서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글쎄요. 딱히 가고 싶은 회사는 없습니다.”

“뭐라고? 그럼 가고 싶은 회사도 없는데, 멀쩡히 다니는 회사를 왜 그만 둬!?”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다 그만 두더라도 너랑 군페이, 시게 녀석은 안 돼.”

얼라? 사장님 성격상 굉장히 쿨하게 보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하지만 나 역시도 물러설 수 없었다. 민텐도에서 지난 5년동안 일해 왔던 것은 바로 슈퍼 패밀리를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차세대 콘솔을 만들어낸 개발자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지난주에는 준페이와 따로 인터뷰까지 진행해 두었다.

아마 다음 달이면 정식으로 잡지에 소개가 될 것이고, 사이킥 배틀의 개발자이자, 슈퍼 패밀리 개발을 담당했다는 정식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거기다가 해외를 빙빙 돌며 일본 귀국을 기다리는 전 트라이앵글 사장도 돌아오라고 해야지. 두 달 전에 통화할 때는 이제 그만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통해 굉장히 난감한 적이 있었다.

아무튼 이제야 겨우 온전히 펜타곤 소프트가 내 손에 들어오려는 찰나에 더 이상 민텐도에 붙잡혀 있을 순 없지.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제 마음은 정해졌거든요. 그리고 굳이 제가 이곳에 남아있지 않아도, 군페이씨나 시게루씨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밑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구요. 왜 저를 그렇게 아쉬워하세요?”

“네 녀석이 그들을 뛰어 넘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네..?”

“어린 시절에 나는 스스로 굉장히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 그건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재라 불리 우는 족속은 아니었지. 그저 일반인들 사이에서 공부를 조금 잘하는 그런 부류였다고 할까? 하지만 군페이 녀석과 시게루, 너는 달랐지. 너희를 처음 본 순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깨달았다. 이런 녀석들이 천재라는 놈들이구나. 일반인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영역을 비집고 파고드는 비범함. 네 녀석이 처음 면접 자리에 앉아 패밀리에 로봇을 끼워 넣고 장난감이랍시고 팔라고 했을 때, 난 분명히 느꼈다. 네 녀석이 군페이와 시게루.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도 뛰어난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

“그것이 내가 널 놔줄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네가 미국에서 돌아와 시게 녀석과 군페이의 작업을 도와주었을 때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혹시나 그들의 작업을 도와주며 기술을 빼가려는 스파이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도운 작업들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럼에도 너는 항상 똑같이 너의 자리를 지켜왔다. 내가 의심했던 게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마. 그러니..”

“사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사장님 역시 지난 5년 동안 저를 겪어 오셨다면 제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정말로 결국 떠나려는 거냐?”

“맡은 일 처리는 확실히 끝내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카마우치 사장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1989년 1월 말.

카마우치 사장은 약속대로 슈퍼 패밀리의 개발진행을 전부 나에게로 일임했기에 굉장히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되던 중 미국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부장니임~~~!!!”

입국장에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큰소리로 나에게 달려오는 금발의 미녀 엘리스는 끌고오던 캐리어를 내팽겨 치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엘리스!! 자, 잠깐만!!”

갑작스러운 보디어택에 말릴 틈도 없이 내 품에 안겨온 그녀는 웃으며 내 양 볼에 사정없이 뽀뽀를 날려대었다.

“전에 찻집에서도 그렇고 우리 준혁씨는 여직원 분들에게 인기가 차~암 많네요.”

“오랜만에 보다보니.. 인사가 좀 격하네..”

“흥!!”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유키의 표정에 나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준혁~!! 우리의 지갑~”

엘리스의 등 뒤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눈을 돌리니 MIT 대학 식당가에서 만났던 존과 마이클, 그리고 롭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존과 마이클은 처음 만났을때와 별반 다를게 없었지만 롭은 덩치가 더 커진 느낌이 들었다. 수염도 이제는 산타클로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풍성해져 있었다.

저게 나보다 3살이나 어리다니 누가 믿을까?

“롭 너는 털갈이 하냐? 수염이 그게 뭐야?”

“말도 마라. 어제까지 hack 동아리 방에 틀어 박혀 이걸 만들었거든? 면도할 시간도 없었어.”

롭은 검은색 가방을 들어 올리며 살짝 윙크를 날렸다.

그러자 내 옆에 어색하게 서있던 유키가 어설픈 영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준혁씨 ‘걸 프렌드’인 유키 이시카와 라고 합니다.”

“오우!! 마이!! 갓!! 미스터 강 여자친구 완전 귀여운데?”

그들의 반 토막만한 키에 동글동글한 유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국산 공돌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일본에 왔음을 인식한 모양이었다.

나는 입국장에서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그들을 이끌고 재빨리 공항을 빠져 나왔다.

미리 첸드라에게 빌려둔 9인승 차량에 짐과 사람을 모두 실고나서 엑셀을 밟자, 묵직한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준혁 우리 배고파. 어디로 가는 거야?”

비행기에서 내린지 얼마나 됐다고 롭이 배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물었다.

“식사는 준비해 두라고 했어. 짐 풀기 전에 너희들에게 소개 시켜줄 사람이 있어서.”

“누군데?”

“내가 전에 미국에서 말했지? 사이킥 배틀의 제작 중에 내가 짠 코딩 배열을 바꾼 미친 공돌이가 하나 있다고.”

“아, 그 인도인 친구? 우리도 보고 싶었는데, 여름에 계절학기 듣느라 시간이 안 나서..”

“그러게 누가 학점 빵꾸 맞으래?”

“이게 다 네가 던지고 간 GPU 작업 때문에 날밤 까다가 수업 놓친 거거든!?”

“아, 그래? 미안하다. 대신 보수는 넉넉하게 챙겨줬잖아.”

“덕분에 부모님에게 손 안 벌리고 등록금 다 댈 수 있었지만..”

“그럼 된 거지 뭐.”

“재수 없는 자식.”

“억울하면 너도 돈 많이 벌던가~ 킥킥”

MIT 대학에서 마지막 날 나누었던 대화를 주제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자, 맨 뒷좌석에 유키와 엘리스는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었다.

&

“어!? 강이다! 강 왔다!! 강 왔으면 이제 이거 먹을 수 있냐?”

“기다려 푸말라. 손님들도 같이 온댔어.”

라이텍스의 휴일. 공장에 들어서자 첸드라를 비롯한 인도산 공돌이들이 나를 반겼다.

“준혁이가 아주 떼거지로 데려왔구나.”

“음식은 넉넉해?”

그러자 첸드라는 롭을 힐끗 바라보며 대답했다.

“글쎄. 거기 일행 중에도 푸말라 만 한 덩치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설마 모자르는 거 아냐?”

“모자르면 더 시키면 되고, 일단 들어가자.”

잠시 후 나는 공장 안에서 인도산 공돌이와 미국산 공돌이들을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었다. 각 진영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롭과 첸드라가 악수를 하고 준비 된 음식과 캔 맥주를 뜯으며 우리만의 환영회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어색했던 두 나라의 엔지니어들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금세 친해졌다. 특히나 롭이 가져온 GPU 장치는 첸드라와 푸말라가 보기에도 굉장히 흥미로운 장치인 모양이었다.

다행히 첸드라는 영어도 할 줄 알아서 의사소통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때 준혁? 굉장하지? 네가 말했던 대로 그래픽 카드를 도와주는 3D 연산 장치라고~!!”

“아.. 그래?”

“너 어째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그도 그럴게 롭이 꺼낸 장치는 어른의 팔뚝만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픽 연산 장치 주제에 데스크 탑 안에도 들어가지 못할 녀석을 어떻게 쓰란 말이야?

나는 작게 한숨을 내 쉬며 근처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담배 몇 갑을 옆에 가져다 대었다.

“좋아. 구조는 이제 대충 알겠지? 그럼 이번에는 딱 여기 담배 네 갑만 한 크기로 줄여보자.”

“뭐 이 미친놈아?”

“생각을 해봐라 롭. 데스크 탑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래픽 장치를 누가 쓰겠냐? 응?”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단 첸드라가 내 말에 동의 했다.

“하긴 준혁이 말이 맞지. 나라면 아마 두 갑만 한 사이즈로도 가능할 거 같다.”

“뭐!?”

그 순간 고개를 떨구고 있던 롭의 두 눈이 번뜩 뜨였다.

“방금 이 녀석이 뭐라고 했냐? 담배 두 갑? 그럼 나는 한 갑만 한 크기로 만들어 주지.”

“뭐 인마? 그럼 나는 반 갑만 한 걸로 만들 수 있다!!”

“이 쪼그만 인도산 원숭이 새끼가!!”

“디룩 디룩 살찐 미국 돼지 새끼가!!”

방금 전만해도 서로의 기술을 칭찬하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단숨에 180도 뒤집혔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속으로 빙긋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반응이 빨리 찾아왔는데?

“흠흠. 저기 잠깐만 진정들하고 이 것 좀 볼래?”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첸드라와 롭은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들에게 각각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진정들 하고, 맥주라도 마시면서 들어. 내가 너희 싸움 붙이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서로 부족한 부분을 배우라고 만나게 해줬는데 싸워선 곤란하지.”

“강준혁. 이 미국 녀석들 말버릇이 왜 이리 싸가지 없냐?”

“뭐라고? 누가 먼저 시비 걸었는데?”

“자자 그만들 하라니까. 꼭 그렇게들 싸우고 싶으면 주먹 말고 기술로 싸워.”

“기술?”

“거기 종이에 적혀 있는 부품들은 민텐도 슈퍼 패밀리에서 사용될 스펙들이야.”

그러자 첸드라는 내가 건넨 쪽지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렇군. 그런데 이런 거 우리한테 막 보여 줘도 되냐?”

“저번에 민텐도에서 저작권 법안이 통과 돼서 정식 라이센스를 통하지 않으면 게임기 복제는 이제 불법이야. 그리고 기기 단가도 워낙 비싸서 예전에 패밀리처럼 복제품이 나돌아 다닐 걱정이 없지. 슈퍼 패밀리를 복제 하느니 차라리 카트리지 복제해서 파는 게 훨씬 이득일 거다.”

“흐음 그렇군. 근데 그럼 이걸 왜 우리한테 보여주는 거야?”

“거기 쓰여 있는 부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솔의 프로토 타입을 만들 거야. 그리고 그래픽 처리 장치는 롭이 가져온 이 녀석을 사용한다. 담배 한 갑이 됐건 두 갑이 됐건 이 그래픽 장치는 무조건 콘솔 안에 포함 시켜야 한다. 프로토 타입 개발 기간은 딱 1년. 먼저 성공한 팀에게 성과급 1억엔 쏜다.”

“1.. 1억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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