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0 : 슈퍼 패밀리의 탄생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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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단 히로인 별로 세 가지 카트리지 제작이 결정 되자, 내가 없는 거리의 개발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수월하게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야시 역시 처음에는 탐탁치 않아했지만, 일단 첫 번째 캐릭터인 하세가와 미유키의 작업을 시작하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선 카트리지 하나에 한명의 캐릭터가 들어감에 따라 1부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세 히로인의 이벤트 스크립트를 단일화 할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존 보다 캐릭터 수가 줄어든 만큼 카트리지의 여유 공간이 충분했다. 이로서 모리타의 작화 퀄리티와 BGM 사운드팀의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웃는 자가 있으면 우는 자도 있으니..
후자는 바로 나였다.
‘젠장. 똑같은 시나리오로 돌려막기 할 수도 없고, 아예 캐릭터 마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잖아!!’
따라서 극히 초반의 전개를 제외하곤 1부 스토리를 전부 갈아엎어야 할 판이었다.
한명의 히로인에 집중하지만, 다른 버전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기 위해 배경 인물로 또 다른 히로인들의 인연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어야 하기에 신경써야할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마냥 죽으란 법은 없다고, 나에게 굉장한 구원 투수나 나타났으니..
그 이름은 내 여자 친구이자 현 방송국 보조 작가인 ‘이시카와 유키’님 이셨다.
“준혁씨만 괜찮다면 여기 연하 히로인으로 나오는 나나세의 이야기는 제가 써도 될까요?”
이미 마지막 시나리오 작업에서 필력을 검증 받은 그녀의 제안에 우리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키는 살짝 혀를 내밀며 말했다.
“대신 공짜는 아니에요~ 저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요구할 거예요.”
“그야 물론이지.”
모리타는 유키와 함께 작업하는 게 마냥 기쁜지 웃으며 내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 스탭 롤에도 넣어 드리겠습니다.”
“우와~ 그거 좋은데요?”
제작 스탭 롤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는 게 기분이 좋은지 유키는 우리를 향해 밝게 미소 지었다. 그때 커피를 마시던 하야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기 부장님.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정말 이런 판매 방식이 먹힐까요?”
역시나 하야시는 현재까지 게임 역사상 유래 없는 ‘내가 없는 거리’의 판매방식이 조금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세요. 아마 없어서 못 팔 겁니다. 일단 하나를 물기 시작하면 줄줄이 낚일 테니 두고 보세요.”
“뭐 드래곤 엠블렘도 그렇고 사이킥 배틀 역시 성공적인 마케팅을 보여주셨으니 이번에도 믿고 달려 보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유키, 그리고 모리타와 하야시가 제작하는 ‘내가 없는 거리’는 민텐도 슈퍼 패밀리의 런칭 타이틀을 목표로 집중 제작 기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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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29일
일본에 새로운 신형콘솔인 NEGA 드라이브가 발매되었다.
모토로라에서 개발한 자일로그 8비트 CPU 2개로 구성한 16비트 콘솔인 NEGA 드라이브는 차후 한국의 대기업을 통해 ‘알라딘 보이’라는 희한 한 작명센스로 출시될 녀석이었다.
고급스러운 블랙 색상으로 디자인 된 NEGA 드라이브는 발매 당시 컨트롤러 1개를 포함하여 정가 21,000엔이라는 초고가로 출시되었는데, 주목할 만한 타이틀은 NEGA에서 만든 ‘수왕기’ 하나뿐이었다.
수왕기는 그리스 신화풍의 게임으로 악마에게 납치당한 아테나를 구하기 위해 근육이 불끈불끈한 수인족 남자의 모험기를 그린 액션게임이었다.
아케이드 센터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던 녀석이 가정용 콘솔로 이식되어 출시된 탓에 초기 NEGA 드라이브를 견인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NEGA드라이브의 컨트롤러가 3버튼인 것은 바로 이 수왕기의 영향이 컸는데, 주먹과 발, 점프라는 3가지 액션을 사용하기 위해 3버튼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3버튼 체제는 후에 NEGA 드라이브용 게임 개발에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하긴 이 때만해도 버튼 3개면 충분한 게임들이 많았으니까..’
또한 수왕기의 컨셉은 세기말 구세주 전설이라 불리우던 만화 ‘북두의 권’을 연상시키는 걸로도 유명했는데,
스피릿 볼이라는 아이템을 계속 먹다보면 주인공의 근육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최종적으로 수인으로 변신하여 호쾌하게 적을 때려 부수는 (정말로 산산조각 부숴버린다.) 연출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 보니 연출이 상당히 고어 한데? 이걸 내가 그렇게 재밌게 했었다니, 기가 막히네..’
민텐도 회의실에 설치된 NEGA 드라이브를 플레이하던 나는 잠시 후 게임 컨트롤러를 내려놓았다.
“어떤가? 강군이 보기에 NEGA 드라이브 콘솔은?”
“확실히 16비트답게 연산처리속도가 빠르네요. 헌데 콘솔을 이끌어 갈만한 타이틀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러자 회의실 상석에서 경쟁사 기기를 바라보던 카마우치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음, 결국엔 기기 견인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런칭 타이틀이 중요하다는 말이군.”
“거기다 현재로서 NEGA 드라이브를 보조해 줄만한 서드 파티가 없는 것도 큰 문제구요.”
“으하하~ 그거야 우리 패밀리가 너무 잘나가니까 그렇지. 어느 소프트 회사가 비싼 제작비 들여서 NEGA 드라이브용 게임을 만들겠어? 다음 달에 슈퍼 마리지3만 출시되면 NEGA 드라이브 따위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겠지.”
아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시는군.
그만큼 1988년도는 민텐도 패밀리에서 수많은 명작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올 초에 출시한 드래곤 워리어 3가 사상 최대의 판매 기록을 경신하며 현재까지 일본에서만 200만장을 넘게 팔아치우고 있었고, 내가 만든 사이킥 배틀 역시 특수 칩을 사용해 제작이 더딘 상황에서도 미국 시장과 동시 발매 효과 도합 3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거기다 지난달에는 펜타곤 소프트의 파이널 프론티어 2가 주인공 파티가 전원 사망하는 충격적인 오프닝이 화제가 되어 발매 한 달 만에 50만 카피라는 대히트를 기록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전 세계인들이 기다리는 쿠마모토 시게루의 슈퍼 마리지3가 대기 중이었으니 NEGA 드라이브는 가장 최악의 시기에 런칭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 나라면 런칭 타이틀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기기 출시 일을 뒤로 미루던가 했을 텐데, NEGA는 자사 게임은 참 잘 만드는데 반해 마케팅 실력은 영 꽝이라니까..’
적어도 음속을 달리는 푸른 고슴도치 녀석이 출시 될 때까지 말이다.
그때 카마우치 사장이 조금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와 군페이씨를 향해 물었다. 대게 사장님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헛소리를 많이 하던데?
“내가 보기에 말이지. 차세대 콘솔 런칭도 나쁘지 않지만, 패밀리 콘솔에 출시 된 수많은 명작 타이틀을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아.. 거기다 새로운 기기를 런칭하면 분명 초반에 타이틀 부족 현상에 시달릴 테고..”
그러자 사장님을 바라보던 군페이씨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내년 말에 발매할 슈퍼 패밀리에 하위 호환 기능을 넣는 건 어떨까?”
“하위 호환이요?”
카마우치 사장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나와 군페이씨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이미 CPU부터 메모리 설계까지 다 끝내놓은 판국에 저건 또 무슨 어이없는 개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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