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81화 (81/252)

EP. 19 : -미연시 프로젝트- 내가 없는 거리. (1)

어제는 동네 분식에 오늘은 중국 요리라니..

맛있다니 다행이긴 하다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유키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차라리 탕수육까지 시키고, 군만두 서비스로 달라하세요.”

마침 배가 고팠던 터라 나는 사양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중국집 배달부가 자장면 한 그릇과 탕수육을 싣고 가게 문을 두드렸다.

“신기해. 전화 한통에 음식을 배달해주다니..”

배달 음식을 처음 본 유키는 배달부의 철가방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윽고 테이블 위에 탕수육이라는 또 다른 음식이 올라오자, 자장면 그릇을 손에 든 유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자장면 까지 얻어먹고 있던 거야?”

“그냥.. 배를 쓰다듬으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시켜주셨어요. 이렇게?”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만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저런 눈으로 저를 계속 바라보는데, 안 시켜 드릴수가 없던데요.”

진짜 어디 내놔도 굶고 다니진 않겠네..

그때였다. 뜨거운 탕수육 소스의 비닐을 벗겨낸 사장 아저씨는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대로 소스를 탕수육에 들이 붓는게 아닌가!!

으악!! 바삭한 튀김 요리에 뜨거운 소스를 들이 부어 버리다니!!

이건 튀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하지만 부어먹기의 진수를 보여주신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역시 탕수육 소스는 부어 먹어야 제 맛이죠.”

그 순간 나는 아직 소스가 묻지 않은 녀석들을 다른 그릇으로 재빨리 구출해 내었다.

“흠!?”

나의 빠른 행동에 흠칫 놀란 사장님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린 지금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 안 되겠네..’

“와.. 이건 무슨 음식이에요?”

묘한 긴장감 속에서 유키는 소스가 묻어 난 탕수육 하나를 입에 물더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젓가락을 든 손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준혁씨. 한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방금 아가씨가 맛있다고 한 거죠? 그 봐요~ 탕수육을 부어먹는 게 최고라니깐~”

아뇨. 전 그 말에 절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

잠시 후. 사장님에게 저녁까지 얻어먹고 가게를 나오니 밖에는 벌써 짙은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럼 일본에 돌아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건네 드린 드래곤 엠블렘은 당분간 사은품으로만 운용해주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사장님은 우리가 택시에 오를 때까지 가게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 배부르다. 그런데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음, 그건 비밀인데..”

“치, 드래곤 엠블렘 만든 것도 여태 숨기고, 혹시 저한테 또 숨기는 거 없어요?”

“아니, 이젠 진짜로 없어.”

그때 우리를 태우고 이동하던 운전기사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저기 어디로 모실까요?”

“아.. 죄송합니다. 남산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퇴근길이라 그런지 도심을 달리는 택시는 의외로 멈춰서기를 반복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사람들로 가득 찬 시내버스 뒷좌석에 할아버지 한분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세상에.. 아무리 담배에 대한 제제가 없던 시절이지만, 저렇게 사람이 많은 버스에서까지 담배를 태우고 싶으실까?

8~90년대는 진짜 흡연자들의 천국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택시 뒷좌석의 좌석 시트에도 담뱃불에 타들어간 자국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이 시대에 담배가 얼마였더라.. 200원? 300원?

어릴 때 아버지 술, 담배 심부름도 자주했었는데.. 나는 새삼스레 느껴지는 옛 추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옛날 생각.”

“흐음..”

유키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이왕이면 택시를 타고 남산 중턱까지 오르려고 했지만, (이 시대엔 차를 타고 정상까지 오르지 못했기에..)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걷고 싶다는 유키의 말에 남산 밑에서 내린 우리는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으~ 한국은 다 좋은데, 너무 추운 것 같아요.”

“한국에 비하면 일본은 따듯하지.”

“진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그래도?”

“정말 재밌었어요.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에 돌아가면 엄마한테 잔뜩 이야기 해드리고 싶어요. 내가 본 한국은 너무 좋았다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나랑 꼭 같이 오자고..”

솔직히 이곳에 와서 제대로 보여준 것도 없는데도 유키는 아무런 불평 없이 나를 따라와 주었다.

사실 어젯밤. 피곤에 지쳐 잠이든 그녀를 대신해 캐리어를 정리하던 중. 여행 가방에서 가이드북을 발견한 나는 탁자에 앉아 그것을 펼쳐보았다.

가이드북은 주로 서울 근교의 관광지로 체크가 되어 있었는데, 한강 시민공원이라던가 63빌딩, 남산 타워가 소개 되어 있었다.

1985년도에 완공된 63빌딩은 서울의 랜드 마크로 인기가 많았기에 그 위에는 유키가 그려 넣은 타마고상(달걀군)이 별 5개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었다.

“이 캐릭터 되게 귀엽네. 상품화해도 괜찮겠다.”

그 다음 장에는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이 소개 되어 있었는데, 밤에 오르는 등산로와 도심의 야경에 대해 자세히 기술이 되어 있었다.

“이건 무려 별이 7개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인가?”

가이드북을 덮은 나는 테라스 밖으로 보이는 남산 타워를 한번 바라본 뒤 잠들어 있는 유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1988년에 남산에 오르는 길은 내가 알던 2015년 길과는 전혀 달랐다.

도로포장은 중턱까지만 되어 있었고, 그 이외는 일반 야산이나 다름없는 등산로를 이용해야했기 때문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63빌딩을 가는 건데, 엘레베이터 타고 전망대까지 편하게 올라갔을 테니 얼마나 좋아.’

초저녁이지만 가로등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사방이 어두운 판국에 나는 숨을 몰아쉬며 남산을 올랐다. 그때 내 머리 위로 오르는 거대한 물체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남산 케이블 카였다.

‘이런 멍청한!! 저걸 두고 여길 걸어 올라오다니!! 내가 왜 저 생각을 못했지?’

속으로 스스로를 탓하며 울부짖고 있는데, 같이 걷던 유키가 내 손을 움켜쥐었다.

“좀 힘들어도.. 같이 걸으니 좋네요.”

“아.. 그래?”

이렇게까지 말하면 또 참고 올라가야지.. 남자가 돼서 힘들다고 징징 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던 나는 묵묵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산을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올랐을까? 드디어 눈앞에 남산 타워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다..”

나도 모르게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타워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야경을 보기 위해 난간에 모여 있었다.

발아래 펼쳐진 명동의 네온사인과 도심의 수많은 불빛들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가운데 유키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혁씨.”

“응?”

“우리.. 사귀는 사이 맞나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와 나의 관계는 아직 딱 부러지게 애인이라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 역시 눈치 없는 바보도 아니고, 어느 정도 그녀의 행동에서 나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곳에서 유키와 사귀게 되고 언젠가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2015년이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왜 아무 말도 안하세요?”

내가 머뭇거리자, 유키는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그 순간 유키를 처음 만났던 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뜸을 들일수록 유키의 표정은 불안감에 점점 굳어 가고 있었다.

“준혁씨?”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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