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78화 (78/252)

EP. 18 : 만트라 컴퓨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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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택시에 오른 우리는 다시 명신대 근처로 향했다.

쾌청한 날씨 속에 광화문의 넓은 대로를 통과하자, 현재는 국립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과거 조선 총독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철거될 건물이었기에 나 역시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건물이었다.

그 당시 본래는 부분 부분을 떼어내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자신들이 지은 건물이니 통째로 옮기고 싶다는 일본의 요청에 다음날 김영삼 대통령은 대회의실을 비롯해 조선 총독부 건물 자체를 폭파 시키는 영상을 전 세계로 송출했다.

일본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폭탄발언을 날렸던 김영삼 대통령은 IMF사태로 국가 부도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긴 하지만, 저 건물을 없앤 것만큼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때 나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유키는 과거 일제시대의 잔재에 서둘러 눈을 돌렸다.

“지금은 저 건물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죠?”

“응.. 저 건물 뒤는 조선 시대의 왕이 살았던 궁이고..”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 기거 하는 곳 앞에 저런 건물 세웠는지.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네요.”

“…….”

“부모님께 준혁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일본이 한국에 큰 실례를 범했다고, 아마도 그건 한국이란 나라에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만큼 큰 죄이기에 준혁씨를 만날 때도 꼭 그 걸 기억해 두라고 당부하셨거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유키네 부모님은 상당히 깨어있는 분이시구나.”

“사실.. 준혁씨에게 아직 말을 안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한국분이시거든요.”

“진짜?”

“네. 아버지도 그래서 어머니와 결혼하시면서 가족들과 의절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저희 아버지는 준혁씨 이야기만 들어도 굉장히 좋아하세요.”

... 나도 모르는 새에 유키 아버님에게 점수를 따고 있었군..

그런데 유키가 올해로 20살이고 거기다 언니까지 있다고 했으니, 지금으로부터 23~4년 전이면 그 당시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유키네 아버님이 가족과 의절했다는 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유키 아버님도 정말 대단하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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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택시 기사님께서 내려준 곳은 명신대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 이었다.

이대로 쭉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어린 시절 가끔 오르내리던 백련 산이 있었다.

하지만 추억 여행은 어제로 끝이 났으니, 백련 산을 보러온 건 아니고..

택시에서 내린 다는 묵직한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매었다.

“그런 뭐예요?”

“이거? 흠.. 장사도구?”

“네? 장사요?”

사실 이 시기에 한국 땅에서 내 인맥이란 손톱만큼도 없었다.

아직까지 한국은 ‘게임’에 대해선 걸음마 수준인 단계였으니까.

물론 S기업을 통해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NEGA 디스크가 겜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오히려 민텐도의 패밀리였다.

... 아니지. 민텐도 패밀리의 기판을 복제해서 만든 가짜 오락기가 강세였다고 해야 하나?

사실 대만에서 만들어낸 짝퉁 패밀리는 어떻게 보면 진짜 패밀리보다 훨씬 더 튼튼한 부분도 있었다.

차후 한국에서 만드는 제대로 된 게임이라면 아마도 94년에 들어서 솜놀이에서 만든 ‘어크토니시아 스토리’라던가 미래내 소프트에서 만든 ‘피와 기티’, ‘프린세스 메이크’을 정식 출시했던 만트라가 있었다.

특히나 만트라는 일본의 칼콤사에서 이스 시리즈의 라이센스를 취득해 국산 게임 형태로 리메이크한 ‘이스 2 스페셜’로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 시나리오를 재구성해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들어 낸 ‘이스 2 스페셜’은 한국 게임 산업에 길이 남을 명작이자 망작으로 기억되는데..

왜 ‘망작’이냐고 기억하냐면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경험 부족으로 진행 불가능 버그를 해결하지 못한 채 출시해 버렸기 때문이다. (차후 패치를 계속 내어 엔딩을 볼 수 있었지만 통신 환경이 불안정 했던 탓에 패치를 완료해서 엔딩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이 게임엔 골 때리는 이벤트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단군신화’를 접목시켜 무려 ‘단군의 검’이라는 아이템도 습득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만트라 라는 게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냐고?

사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바로 그 만트라의 창립 멤버 중에 하나가 될 사람이거든..

유키와 함께 명신대 근처의 상점가에 들어서자 옛 기억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PC 판매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만트라 컴퓨터-

여기가 바로 드래곤 워리어4의 공략집까지 뽑아 주시며 나를 게임의 길로 인도한 아저씨네 가게다.

조그만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이 가게는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이 쇼윈도에 패밀리용 카트리지 몇 개만 놓아둔 상태였다.

그때 쇼윈도를 들여다 보던 유키가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준혁씨 여기도 드래곤 엠블렘이 있어요!!”

헐.. 진짜네. 쇼윈도 한구석에 진열된 드래곤 엠블렘은 일본 희귀품이라는 네임 텍 아래 무려 10만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뭐 일본에 중고샵에서도 현재 그 정도 금액으로 판매중이긴 하지만, ‘0’이 하나 더 붙으니 엄청 비싸 보이긴 하네..

나는 한국 땅에서 만난 드래곤 엠블렘을 잠시 바라본 후에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가게 안에 커튼을 열어젖히며 30대 중반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만트라 컴퓨터는 절반은 게임 가게이면서 절반은 아저씨의 작업실로 이용 중이었다. 식사 중이셨는지 가게 안에는 자장면 냄새가 가득했는데, 가게 안에서 담배도 태우시는지 홀아비 향기와 자장면 냄새가 끔찍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패밀리용 게임을 좀 팔고 싶어서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지금 막 오픈해서 현금이 많지는 않은데, 일단 좀 볼까요?”

묵직한 가방을 풀어 탁자 위에 올리자, 쿠웅 소리가 좁은 가게 안에 울렸다.

“... 얼마나 가져 오셨길래..”

“서른 개 정도?”

“서른 개 나요? 이거 참.. 곤란한데. 전부 매입 할 수나 있을지..”

“한번 물건을 보시고 고려해주세요.”

“그러도록 하죠.”

나는 아저씨의 깜짝 놀랄 표정을 기대하며 가방 안에서 카트리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일본에서 알 팩으로 판매된 것과는 다르게 검은 종이 패키지로 포장까지 되어 있는 드래곤 엠블렘이었다.

무심결에 나에게 카트리지를 받아든 아저씨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는지 두 눈을 꿈벅거리며 패키지를 살폈다.

“드래곤 엠블렘? 그런데 이건?”

익숙한 드래곤 엠블렘의 로고에 이토록 아저씨가 놀라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거 한글판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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