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74화 (74/252)

EP. 17 : 한국으로.. (2)

“아, 저 아가씨 엄청 귀여워 어떡해~”

스튜어디스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니 구석 쪽 의자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유키가 보였다.

“저기 유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지금 엄청 창피하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라..”

“글쎄, 지금은 말 걸지 말아달라니까요..”

“아니.. 거기 네 자리 아니거든? 빈자리라고 아무데나 앉으면 안 돼.”

“아..”

결국 슬쩍 고개를 내밀어 내가 가리키고 있는 자리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화났어?”

“아뇨.. 단지 너무 창피해요.”

“미안. 그때 교토에서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보길래 장난 좀 친 건데, 진짜로 믿을 줄은 몰랐어.”

“스튜어디스 언니들 얼굴을 못 보겠어요..”

“걱정 마. 요새 비행기 타는 사람 한 두 명은 꼭 그래. 별 거 아냐.”

“진짜요?”

빼꼼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유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유키는 기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와아.. 근데 비행기란게 생각보다 사람을 별로 안태우네요? 여기 끽해야 12명 정도 타겠는데요?”

“음.. 그게 궁금하면 아래층에 한 번 다녀와 볼래?”

“아래층이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계단 아래쪽을 살피러 간 유키는 잠시 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아래층에 사람 엄청 많아요. 의자들도 빽빽하고,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널널해요?”

“시외버스 타본 적 있지?”

“네.”

“버스로 치면 우등 좌석이라 생각하면 돼. 가격이 좀 쎄지만..”

“얼만 데요?”

“아래층 좌석이랑 비교하면 1.5에서 2배 정도?”

“네에!?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면서요.”

“뭐 그냥 편하게 가는 거지. 이코노미는 좌석 간격이 좁거든.”

“전 버스에서도 우등 좌석표 끊어본 적이 없는데..”

“왕복 비행기 표는 내가 부담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히 앉아. 곧 이륙하겠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피커에서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승객 여러분께 알립니다. 잠시 후 이 비행기는 목적지인 서울 김포 국제공항을 향해 곧 이륙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옆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착용한 유키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자. 마른침을 삼키며 나에게 물었다.

“하늘로 날아가면 기분이 어때요?”

“음.. 놀이기구 탈 때랑 비슷해. 나름 재밌어.”

“저 놀이 기구 타는 거에 굉장히 약한데..”

이윽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도착한 비행기가 천천히 속도를 높이자, 유키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기.. 나 손 좀 잡아줘요.”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나는 살짝 웃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행기가 둥실 떠오르자, 나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떴다.. 어떡해..”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순식간에 상공을 날아오르자 조그만 창가를 통해 일본 열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와아..”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만이 느끼는 황홀한 풍경에 유키는 창밖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비행기가 구름 위로 날아오르자, 새하얀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회사 동료들이 해외여행 다녀올 때 사진으로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예쁜 것 같아요.”

어느새 긴장도 풀렸는지 유키는 방긋 웃으며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나도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땐 지금의 그녀랑 비슷한 반응이었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면서 처음 비행기를 탔던 순간을 떠올리자, 옛 추억에 나도 모르게 빙긋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키는 한 시간 동안 질리지도 않는지 연신 창밖을 바라보다가 때때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 데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유키는 필름 카메라 조작이 굉장히 뛰어 났다.

디지털 카메라처럼 바로 사진을 체크해 볼 수도 없는데도 그녀는 곧 잘 필름 카메라의 조리개 수치를 바꿔가며 한 장씩 사진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비행기 착륙을 알리는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

김포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린 유키의 첫 소감은..

“어.. 엄청 추워요. 원래 한국은 이렇게 춥나요?”

김포 공항은 나리타 공항 처럼 비행기를 연결해주는 이동식 통로를 대어 주는게 아니라 계단식 탑차가 와서 활주로에 승객을 내려주는 시스템이었다.

때는 2월 말에서 3월로 이어지는 꽃샘추위. 유키는 얇은 코트 자락을 움켜쥐며 덜덜 떨고 있었다.

하긴 한국이 일본보다 좀 춥긴 하지. 나는 코끝을 훔치며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한국은 좀 추울 거라고 미리 말해주는 걸 깜박했네. 이거라도 두르면 좀 나아질 거야. 조금 있으면 공항 안으로 데려다 줄 터미널 버스가 올테니까 조금만 참아”

“고마워요.”

길고 지루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출국장을 빠져 나오자. 김포공항에는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88올림픽의 익숙한 선전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 보니 한국에 온 게 슬슬 실감이 나고 있었다.

“와~ 호도리다. 귀여워~!!”

공항을 둘러보던 유키가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었다.

아.. 기억난다. 저 녀석..

어릴 때 호돌이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동네 슈퍼에서 팔아서 몇 번 사먹었는데, 그 당시엔 몰랐지만, 호돌이 머리를 분리해서 숟가락으로 안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퍼먹어야하는 다소 싸이코 패스 적인 디자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 먹으면 저금통으로 쓸 수 있었는데, 먹기도 불편하거니와 동네 아이들 하나씩 들고 다니며 너도 나도 호돌이 대가리부터 따고 봤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누가 그런 디자인을 생각해 낸 건지.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우선 호텔에 가서 짐부터 맡겨 놓고 이동하자.”

“네~”

유키는 처음 와보는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행여 나를 잃어버릴까 서둘러 나를 쫓아왔다.

공항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 호텔이 있는 명동을 부탁하자, 중년의 기사 아저씨는 친절히 유키의 짐까지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전 버스도 괜찮은데, 택시 요금 비싸지 않아요?”

“괜찮아. 한국은 일본이랑 달리 택시 기본요금 600원이라 저렴한 편이야.”

“600원이요? 엔이 아니라?”

결론은 이대로 명동까지 가도 5000원도 안 나온다는 거지.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다. 타임 슬립이후 거의 5년이 흘러서야 이곳에 오게 되다니..

사실 조금 일찍 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너무 어릴 적에 살았던 곳은 집 주위와 골목길은 기억이 났어도, 자세 한 위치까지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나마 지금 내가 가려는 동네가 오래된 기억 속에 정확한 위치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과연 누가 살고 있을지. 혹시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계신다면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조금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안색이 별로 안 좋네요? 어디 아파요?”

“아니. 그냥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혹시 저 때문에? 제가 괜히 따라온 건 아닌지..”

“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냐. 오히려 같이 오니 마음이 한결 나은 것 같아.”

그건 진심이었다.

혼자 이곳에 있는 것보다 유키와 함께 있는 편이 나에겐 위로가 되고 있으니까.

유키는 창밖으로 흘러가는 낯선 서울의 풍경에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

김포에서 호텔이 있는 명동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우린 곧 예약해둔 호텔에 짐을 풀 수 있었다.

테라스 정면으로 남산 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스위트룸은 전망이 훌륭했다. 이곳에서도 유키는 조그만 두 손에 카메라를 꼭 쥐고 셔터를 눌러대었다.

“미안하지만 바로 가볼 곳이 있는데, 피곤하면 호텔에서 쉴래?”

“아뇨. 저도 같이 가요.”

추운 서울 날씨에 두툼한 회색 코트로 갈아입은 유키는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매고 호텔을 나섰다.

마음 같아선 함께 명동이라도 한 바퀴 돌며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우선은 내가 살던 동네가 먼저였다.

“미안. 되도록 일찍 끝내고 저녁에는 서울 구경 시켜줄게.”

그러자 유키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으음~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오히려 준혁씨가 살던 동네가 더 궁금한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는 한 차례 유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에 호텔 앞에 대기중인 택시에 올랐다.

“남가좌동 명신대 쪽으로 가주세요.”

“명신대요?”

“네. 왜요?”

“아뇨.. 그.. 오늘이 금요일이라 학교 앞까지는 못갈 거 같은데, 일단 근처까지 가볼게요.”

음? 금요일이랑 대학교 앞이 무슨 상관이지?

이윽고 명동을 빠져나온 택시는 신촌을 지나 성산회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어머니와 자주 시장을 보러왔던 모래내 시장을 지나 택시는 북가좌동의 커다란 언덕을 넘어 남가좌동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님. 명신대는 내리막길 끝에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되거든요. 더 이상 차가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서 여기 내려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요금을 지불하고 유키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 나는 왜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학교 앞까지 가는 게 무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런.. 오늘 대학생들 금요 집회가 있는 날이었구나..

“준혁씨.. 여기 왜 이렇게 경찰들이 많아요?”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 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 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뜻은 반드시 이루리라.

승리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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