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71화 (71/252)

EP. 16 : 모리타와 하야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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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개발 1팀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 카와구치 씨를 따로 불러 휴게실로 향했다.

“어떤가요? 카와구치씨가 보기에 저 두 사람은?”

“두 분 다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모리타씨는 이미 우리 아마노씨가 인정하는 캐릭터 디자이너이고, 하야시씨 역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군요. 역시 현업에 계신 분들이라 그런지 배울 점도 많았습니다.”

“그렇죠? 저와 함께 사이킥 배틀을 만든 귀중한 인재들이니까 실력은 저도 보증합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게 저희 민텐도가 나아가는 방향과 잘 맞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모리타씨는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실력이 여성 캐릭터에 국한 되어 있고, 하야시씨는 훌륭한 코딩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직원들 간에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죠. 할 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성격이랄까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카와구치씨에게 먼저 물어 보고 싶습니다. 단도직입 적으로 저 둘을 펜타곤 소프트에 들이는 건 어떨까요?”

“네?”

“이대로 민텐도에 두기엔 아까운 실력들이에요. 현재 민텐도는 시게씨를 중심으로 수많은 프로그래머들과 캐릭터 디자이너 들이 있어요. 저대로 두면 분명 실력이 녹슬 겁니다. 모리타씨만 해도 다음 달 부터는 동킹콤 프로젝트에 소속 될 예정이라..”

“아마노씨가 극찬하는 캐릭터 디자이너가 동킹콤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카와구치씨 생각도 저와 같군요.”

“현재 저희로서는 파이널 프론티어의 막바지 작업 중이라 손이 정말 부족하긴 한데..”

“그렇다면 서로에게 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야 두 분 모두 펜타곤으로 오신다면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다만 사장님도 안 계신 와중에 제 마음대로 직원 수를 늘려도 될까 싶기도 하고..”

“사원 영입은 전처럼 담당 변호사측에 일임하시면 됩니다. 파이널 프론티어 2 역시 곧 출시 예정이라 수익이 생길테니 너무 걱정 하실 건 없을 것 같아요.”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들 의사도 들어 봐야하지 않을까요? 민텐도라는 대기업을 두고 저희 펜타곤에 만족 할지..”

“그건 제가 따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개발실에 돌아가시면 하야시씨와 모리타씨 좀 이쪽으로 불러주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죠.”

카와구치씨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모리타와 하야시씨가 함께 휴게실로 들어왔다.

“부장님 여기 계셨군요. 저는 갑자기 사라지셔서 저희를 두고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설마 제가 그럴리가요. 펜타곤 소프트는 어떠셨나요?”

그러자 모리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최고입니다. 아마노 선생님까지 뵙게 돼서 정말 좋았어요. 다른 직원들도 친절하시고, 작은 회사지만, 민텐도에는 없는 가족 같은 동료애가 있더군요.”

그거야.. 당신은 스승이 이곳에 있으니 가족 같은 느낌이 들겠지. 나는 모리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야시씨에게 물었다.

“하야시씨는 어떤가요?”

나의 물음에 하야시는 안경을 쓸어 올리며 잠시 뜸을 들였다.

“적어도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업무 분위기는 아니더군요. 카와구치씨가 분위기도 잘 잡아 주는 것 같고, 무엇보다 사무실이 정리된 느낌이라 일에 집중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요약하면 펜타곤 소프트가 마음에 든다는 얘기죠?”

“뭐.. 요약 하면 그렇습니다.”

“좋아요. 방금 카와구치씨랑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그 역시 두 분이 마음에 꼭 드는 모양이더군요. 펜타곤 소프트는 민텐도 랑은 달리 작은 회사에요. 내세울만한 성공작은 현재로선 파이널 프론티어 시리즈 단 하나뿐입니다.”

그러자 모리타와 하야시씨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설마 지금 부장님 말씀은.. 저희에게 이직을 제의 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그래도 이건 좀..”

그들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나지만, 그래도 같은 직장의 상사가 다른 직장에 이직을 건의하는 일은 절대로 흔치 않으니까.

특히나 교토에서 도쿄의 펜타곤 소프트에 입사 하려면 집도 옮겨야하니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둘 다 아직 미혼이니 집을 옮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듯한데..

민텐도처럼 펜타곤 소프트 역시 사원들을 위한 오피스텔의 월세를 절반씩 부담해주고 있으니까. 나머진 그들의 각오 뿐.

그때 모리타가 특유의 느린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옮기겠습니다.”

“어이, 모리타.. 너..”

“사실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저는 민텐도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지만, 매번 저에게 돌아오는 일은 그저 자잘한 아이템이나 배경 작업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캐릭터를 그리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속한 팀에선 저질스런 그림만 그린다고, 변태 취급 받다보니 자연스레 동료들과도 거리가 생겨서 포기할까도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부장님께서 함께 사이킥 배틀을 만들자 했을 땐 솔직히 엄청 기뻤습니다. 드디어 저를 인정해주신 분이 나타났다고 생각했거든요. 민텐도에서 일하는 4년 동안 사이킥 배틀을 만들었던 작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조금은 가능성이 열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제가 돌아간 곳은 본래 있던 자리였어요.”

“모리타씨의 캐릭터 디자인은 훌륭합니다. 사이킥 배틀이 이만큼 인기를 얻은건 다 모리타 씨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해요. 부장님. 이번 사이킥 배틀을 계기로 역시 저는 제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펜타곤 소프트는 제 스승인 아마노 선생님도 계시니 이곳에서 일하며 좀 더 제가 원하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습니다..”

좋아.. 우선은 발군의 캐릭터 디자이너 하나는 포획 했고, 다른 한명인 이 깐깐한 코딩 머신은 어떻게 데려오지?“

모리타와는 달리 하야시는 민텐도 내에서도 실력하나 만큼은 인정하는 프로그래머였기에 그가 이직을 정하는 건 쉽지 않을 듯 했다.

“모리타씨는 그럼 결정 되었고.. 하야시씨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잠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저도 지금 당장 펜타곤 소프트로 옮기라 권하는 건 아녜요.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따로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펜타곤이 민텐도에 비해 작은 회사긴 하지만, 결코 복지 수준이 나쁘지 않아요. 더구나 민텐도에서 데려 오는 만큼 대우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야시씨 현재 펜타곤 소프트 개발 2팀 비어 있는 거 아세요?”

“개발 팀 하나가 비어있다 구요?”

“하야시씨 실력이라면 차기 소프트 개발이 들어갈 시에 팀장도 맡아 볼 수 있겠죠.”

“제가.. 팀장을?”

오케이. 흔들린다. 흔들려..

하야시씨는 냉철한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야망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항상 대인 관계에 시달리는 하야시의 업무는 차라리 혼자 독방에 가둬두고 코딩을 짜라고 시키거나 아예 높은 자리에서 밑에 직원을 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하야시는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딱히 간섭하는 편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대로 저희가 옮긴다고 해도 막바지 작업 중인 파이널 프론티어에 끼어들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 다 이곳에 오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 될 테니까요.”

“펜타곤 소프트의 새로운 프로젝트요?”

“음.. 아직 프로젝트 명은 미정이긴 하지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뒤에 말을 이었다.

“혹시 두 분.. 연애 해보신적 있으세요?”

그러자 모리타와 하야시는 둘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쯧쯧.. 내가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들을 보니 타임슬립하기 전에 내 인생이 떠오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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