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69화 (69/252)

EP. 16 : 모리타와 하야시. (1)

사이킥 배틀은 런칭 이후 연일 순조롭게(?) 판매가 진행 되고 있었다.

특히나 체험판과는 달리 정식 버전에서는 첸드라의 코딩으로 인해 더욱 스피디해진 연출로 모든 잡지에서 호평 일색이었다. 여전히 물량 수급에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동시대의 게임과는 차별화된 연출과 그래픽으로 유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이킥 배틀 카트리지는 비싼 가격 임에도 입고와 동시에 전부 판매가 완료 되었기에 카마우치 사장은 ‘프리오더’라는 주문 방식에 매우 흡족함을 표했다.

하지만 웃는 자가 있다면 우는 자도 있으니..

“야. 장난 하지 말고, 우라 코드(치트 키) 내놔.”

“천하의 준페이도 결국 패드 던지고 항복한 거냐?”

“야~이 미친 놈아. 게임 클리어는 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이거 정말 클리어 가능 한 거 맞아?”

“물론. 그러니까 엔딩과 함께 클리어 특전으로 보스 캐릭터들도 사용 할 수 있게 해두었지.”

“으아아!! 잔인한 자식아. 나는 류 화영을 사용해 보고 싶단 말이다!!!!”

류 화영.

사이킥 배틀의 최종 보스인 그녀는 최근에 사이킥 배틀 유저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지만, 워낙 사기적인 전투 능력에 애증의 캐릭터로 불리 우고 있었다.

순간이동, 체술 회피, 상대방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내 다시 되돌려 버리는 강력한 베리어와 화면을 가득 메우는 다 연발 레이저 빔.

특히나 순식간에 파고 들어와 뒤돌려 차기 한방으로 플레이어를 즉살시켜 버리는 순각살(瞬脚殺)이란 기술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악명이 높았다.

“혹시 누군가 클리어 했다는 제보는 없어?”

“이거 공략이나 좀 빨리 내달라는 제보 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빨리 우라 코드 달라구!! 나 유저들한테 잡혀 먹는 꼴 보고 싶어?”

실망이네. 그래도 죽자고 파고들었다면 한 두 명은 나왔을 줄 알았는데. 나는 피식 웃음을 삼키며 준페이를 다독였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면 치트 대신 내가 힌트 하나 알려줄게.”

“정말? 뭔데?”

“류화영 스테이지는 원래 초반에는 이길 수가 없어.”

“뭐!?”

“무조건 버텨야 돼. 10분 동안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잘 피해 다녀 봐. 그럼 내가 말한 의미를 알게 될 거야.”

“흐음.. 뭔가 이벤트가 있는 건가?”

이래서 눈치 빠른 게임 기자들은 싫다니깐..

“그래. 한번 죽어라 버텨 봐라.”

“악마 같은 자식.. 알았다. 클리어 하면 다시 연락할게.”

준페이는 툴툴 거렸지만, 이벤트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무슨 이벤트 인지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8~90년대의 게임은 참 불친절하다.

2000년대의 게임이야 ‘튜토리얼’ 시스템이 워낙에 활성화 되어 있었기에 게임 초반에 어떤 버튼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고, 지도에는 어디로 가야 이벤트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게임은 그렇게 스스로 난이도를 낮추는 짓은 하지 않는다.

진행 도중 난관에 부딪힌 플레이어가 스스로의 힘으로 클리어 했을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느껴질 테니까.

그래서 류화영과의 보스전에 10분을 버티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고?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조작 중인 캐릭터를 제외한 2명의 아군이 지원을 나오게 된다.

본래 이 시나리오는 기기의 성능 상 포기한 부분이었는데, 첸드라의 코딩 능력 덕분에 실현이 가능해졌다.

모리타는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게임임에도 마지막 이벤트 장면에서는 눈물을 줄줄 쏟아내며 나와 함께 디버그 검사를 마쳤다.

여태까지 내가 개발한 게임 중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사이킥 배틀의 발매가 끝나고, 함께 개발을 담당했던 모리타와 하야시도 본래 자신들이 속해 있던 부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에 휴게실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리타를 보았다.

“모리타씨?”

“아.. 부장님. 안녕하세요.”

“왜 이 시간에 휴게실에 있어요? 식사는 했어요?”

“아뇨. 그냥 입맛이 없어서..”

모리타는 나를 향해 힘없이 웃으며 자판기 커피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잠시 그와 이야기라도 할 겸 휴게실에 들어온 나는 자판기에 동전을 밀어 넣으며 모리타 에게 물었다.

“요새 일은 어때요? 부서 사람들은 잘해 줘요?”

그러자 모리타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부장님이랑 일할 때가 훨씬 좋았어요. 제가 속한 개발 2팀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긴 한데, 아무래도 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더구나 플렛폼도 휴대용 겜보이로 잡아가고 있고..”

휴대용 겜보이라면.. 화려한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모리타에겐 완전 쥐약이긴 하지..

그의 일러스트 능력은 발군이지만, 미소녀 캐릭터에 한정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민텐도는 미소녀나 섹시 코드보다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 위주로 게임 개발을 이끌어가는 편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만든 사이킥 배틀은 민텐도로서 굉장히 의외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나 역시 초반엔 너무 선정적이다는 이유로 경영진에서 반발이 꽤 심했었으니까.

“아직 구상 단계긴 하지만 시게씨의 슈퍼 마리지 3 개발이 끝나는 대로 겜보이용 동킹콤 개발에 들어갈 것 같아요.”

이런.. 사이킥 배틀 공헌도 1위에 빛나는 미소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고작 축생이나 그리라고 시키다니.. 이게 말이나 돼?

“이거 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부장님. 혹시 사이킥 배틀 2 만드실 생각 없으세요?”

“사이킥 배틀 2? 물론 만들 생각이야 있긴 하지만.. 패밀리로 2를 낼 생각은 없어요. 아마 차세대 기종으로 개발할 생각이긴 한데..”

“하아.. 그렇다면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리겠네요.”

“그렇겠죠? 하하..”

“오전에도 잠깐 펜을 들어 보았는데, 도저히 그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더군요. 류 화영이나 아즈사 렌을 그릴 때는 그렇게 잘 그려졌었는데, 덕분에 팀장님에게 오전 내내 뭐했냐고 엄청 깨졌습니다.”

사이킥 배틀 때는 하루에 4~5장씩 고 퀄리티 일러스트를 뽑아내더니 역시 취향이 문제인가..

“그런데 하야시씨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 녀석은 슈퍼 마리지 3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개발 1실에 들어간 걸로 아는데..”

그때 양반은 못되는지 하야시가 휴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하야시는 우리를 보지 못했는지 휴게실에 들어오자마자 거칠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야시씨?”

“아!? 부장님!!”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에휴.. 아닙니다.”

안 봐도 뻔하지. 하야시 성격에 개발 1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닐 테니까.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 한숨을 내뱉으며 나에게 물었다.

“부장님. 혹시 사이킥 배틀 2 만드실 생각 없습니까?”

... 아니 이 사람들이 둘이서 짰나.. 대체 왜 이래?

“역시 하야시도 나랑 같은 생각이구나. 부장님!! 진짜 저희 좀 살려 주세요. 미소녀를 그리고 싶어요. 이대로 동킹콤을 그리느니 차라리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중입니다.”

“저 역시 개발 1팀이랑은 절대 같이 일 못합니다. 오늘 오전 중에만 발견 한 디버그가 수두룩한데 너무 태평해요. 시 덥지 않은 농담이나 해대 길래 몇 마디 충고했더니, 완전히 사람을 이상한 취급하고 말야.. 시게씨도 그런 면에선 부장답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셔야 하는데, 그런 성격도 아니시고.. 차라리 부장님이랑 일했을 때가 훨씬 편했어요. 배울 점도 많았고..”

역시나.. 하야시 성격에 개발 1팀 분위기는 전혀 안 맞을 것 같더라니..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모리타와 하야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소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코딩 머신이라..

이 두 명의 조합이 그렇게 나쁘진 않은데..

나는 잠시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떼었다.

“모리타씨와 하야시씨. 두 분 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함께 사이킥 배틀을 만들어낸 팀원이라 그런지.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현재로선 사이킥 배틀 2를 제작 할 마음은 없어요..”

“이런...”

“하아...”

내 대답에 두 사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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