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66화 (66/252)

EP. 15 : 그리고 전설로.. (2)

“저기요? 인터뷰 좀..”

“네? 인터뷰라면 제 옆에 있는..”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시게씨는 어느 새 저 멀리 인파 속에 섞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무슨 드래곤볼도 아니고, 순간이동이냐??

“보아하니 직장인 같으신데, 평일 아침에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나요? 역시 대인기 RPG 게임인 드래곤 워리어 3를 구입하러 오신건가요?”

미사토씨는 인터뷰가 급한지 곧바로 본론부터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답 했다.

“아니오.”

“네?”

예상했던 대답이 빗나가자 미사토씨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광장에 모여 있던 게이머들은 인터뷰하는 내 모습이 신기한지 조금씩 주변에 모여들고 있었다. 어쩌면 리포터인 미사토씨의 미모 때문일 수도 있고~

직접적인 인터뷰는 싫지만, 남이 하는 걸 구경하는 건 상관없나보군.

미사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밝게 웃으며 재차 질문했다.

“그럼 오늘 아키하바라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시장 조사를 나왔습니다. 사실 전 민텐도 소속 직원이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드래곤 워리어 3의 반응을 살펴보시기 나오신 거로군요~”

이 아가씨가 건수만 있으면 무조건 드래곤 워리어랑 엮어버리려고 하네..

그래서 대답했다.

“아니오.”

“네?”

그녀의 한쪽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미사토는 자신의 생각대로 인터뷰가 잘 안 풀리자, 은근히 짜증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녀가 노리는 인터뷰 대상은 학교나 직장을 땡땡이 치고 드래곤 워리어를 사러온 사람들이었을 테니까.

“그, 그럼 어떤 시장 조사를 위해 나오셨나요?”

“사실 오늘 발매하는 게임은 드래곤 워리어 3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 게임은 제목이 뭔가요?”

“사이킥 배틀이라는 제목의 게임입니다.”

그때 등 뒤에 모여 있던 사람 중에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사이킥 배틀이 오늘 발매라구!?”

“난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지난 달 패미통신에도 봄 발매 예정이라고만 쓰여 있어서..”

“그치? 이러면 구입해야할 타이틀이 겹치잖아!?”

“그럼 뭐부터 사야하지!? 미치겠네..”

“뭘 고민해. 그냥 둘 다 사면되지!! 둘 다 사고 이번 달은 컵라면으로 때운다.”

“오오!! 정답이다!! 진정한 남자라면 일단 사이킥 배틀은 사고 보자!!”

“우오오!!!”

마지막 남자의 말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동시에 함성을 질렀다.

그렇지. 고민 따위 할 거 없이 지르는 거다. 물론.. 지를 수 있을 만큼 물량이 널널 하다면 말이지.. 나는 주변의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사토씨에게 물었다.

“이거 지금 생방송인가요?”

“아뇨. 녹화라 편집한 뒤에 저녁 뉴스에 나갈 건데요?”

“그럼 제가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아, 네. 그러세요.”

미사토씨의 허락에 나는 품안에서 황금색 티켓을 꺼내 보였다.

살짝 흐린 날씨 탓에 번쩍 거리는 느낌은 없었지만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이건 사이킥 배틀의 패키지 안에 랜덤으로 들어가 있는 골든 티켓입니다. 수량은 총 500개. 이걸 가지신 분은 올 여름 민텐도에서 주최하는 사이킥 배틀 행사에 자동으로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외쳤다.

“무슨 행사입니까!? 그 티켓이 없으면 참가할 수 없는 행사입니까!?”

“아뇨. 티켓이 없어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참가 방법은 사이킥 배틀의 올 클리어 세이브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카트리지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사이킥 배틀 행사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고, 참가자 분들끼리 대회를 열어 상금을 수여할 생각입니다. 자세한 건 이번 달 말에 발매하는 패미통신을 봐주세요.”

“올 클리어 한 카트리지 자체가 입장권이구나.. 신기한데?”

“나 저번에 행사장에서 체험판 해봤는데, 그 게임 장난 아니게 어려워. 2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하면 체험판 카트리지 준다길래 3번 정도 도전해 봤는데, 첫 판도 못 깼다니까..”

“진짜 그 정도야? 아씨.. 드래곤 워리어 말고 사이킥 배틀 살까? 돈 얼마 없는데..”

내가 꺼내 보인 골든 티켓을 확인한 게이머들을 시작으로 사이킥 배틀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미사토는 잠시 주변의 살피다가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서 몇 걸음 떨어졌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뉴스 매체를 통해 제가 만든 게임을 홍보중인데요?”

그녀는 자기가 나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깨달고는 금방 얼굴이 새빨개졌다. 표정을 보니 무척이나 화가 난 모양이다.

“마음에 안 드시면 리포터님이 그냥 편집해 주세요.”

“당연하죠!! 뉴스 통해서 자사 게임 홍보를 하시다니, 진짜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요.”

“하하~ 미안해요. 그럼 전 이만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나는 씩씩 거리는 미사토를 뒤로 하고 아직도 인파에 섞여 있는 시게씨를 불렀다.

“시게씨!! 빨리 와요.”

“어? 응. 그래~”

시게씨는 힐끔힐끔 미사토씨를 바라보며 나에게 달려왔다.

“야, 너 안 떨렸냐?”

“뭐가 떨려요? 생방송도 아닌데.”

“저렇게 커다란 카메라를 눈앞에서 들이대고, 미녀 리포터가 옆에 바싹 붙어서 물어보는데, 하나도 안 떨렸다고!?”

“그보다 배고픈데, 어차피 시간도 남았고 아침이나 먹으러 갈래요?”

“넌 이 상황에 밥이 넘어 가냐? 난 슈퍼마리지 처음 출시한 날에 물도 한 모금 못 마셨는데..”

“어차피 사이킥 배틀 개점하고 10분만 지나면 전량 소진이에요. 밥이나 먹고 드래곤 워리어 행사장 구경이나 가죠.”

“10분 만에 전량 소진이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 골든 티켓은 또 뭐고!?”

“식당가서 알려드릴게요.”

&

나와 시게씨는 장소를 옮겨 역 근처의 요시노야에 들어섰다.

요시노야는 소고기 덮밥인 규동을 전문으로 하는 체인점인데, 전국 어딜 가도 역 근처에 하나쯤은 꼭 있는 음식점이다. 가격이 싼 대신 맛은 그냥 그럭저럭..

솔직히 요즘 유행하는 맥도널드처럼 규동을 패스트 푸드화 시켰다고 보면 된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규동을 헤집으며 시게루씨에게 말했다.

“200개에요.”

“뭐가?”

“오늘 아키하바라 지역에 나간 사이킥 배틀 초도 물량이요.”

“푸웁!!”

컵에 물을 따라 마시던 시게씨는 내 말에 삼키던 물을 도로 뿜어냈다.

“아이.. 식사하는데, 더럽게..”

“야!? 말이 돼? 그럴 거면 아예 팔지를 말던가..”

“그래서 따로 발매일 고지 없이 깜짝 출시한 건데요?”

“그래도 그렇지. 200개면 진짜 오픈하고 10분만에 다 팔리겠다. 그럼 매일 200개만 풀 거야?”

“아뇨. 삼일 뒤에 100개 풀 건데요.”

“쿨럭.. 쿨럭..”

시게씨는 아예 사래가 들었는지 물 컵을 부여잡은 채 계속 기침을 해대었다. 나는 괴로워하는 시게씨의 등을 몇 번 쳐 주고 다시 식사에 집중하였다.

“그럼 그 골든 티켓은 뭐야?”

“말 그대로 골든 티켓이에요. 시게씨 혹시 찰리와 초콜릿공장이라는 소설 알아요?”

“알지. 어린이 동화잖아?”

“동화라뇨. 훌륭한 마케팅 서적이지.”

“마케팅 서적?”

“전 세계 수 백 만개의 초콜릿을 납품하면서 공장 안을 견학 할 수 있는 황금 티켓은 딱 5장밖에 없잖아요. 윌리 웡카에 비교하면 일본 국내에서 500개인 나는 완전 관대한 거죠.”

내 말에 시게씨는 할 말을 잃은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주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사겠다는 사람에게도 안 팔고 배짱을 부리고 있으니 그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만도 했다.

잠시 후 시게씨는 규동을 깨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신작 발표회 때 사람들 반응이 하도 좋아서 질투가 조금 나긴 했었다. 그래서 좀 찌질해 보여도 슈퍼 마리지 3랑 판매량 내기를 제안했던 거고, 그런데 말이야.”

시게씨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재차 물었다.

“너 혹시 슈퍼 마리지 3가 이번에 나왔어도 똑같이 하려고 했었냐?”

“네.”

“무서운 녀석..”

“어차피 사이킥 배틀은 특수칩 때문에 일반 카트리지보다 생산 속도가 느려서 시게씨랑 판매량 대결을 했어도 제가 졌을 거예요.”

“판매량은 앞서겠지만, 정작 유저들이 원하는 건 사이킥 배틀이었겠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으니까..”

정답이다. 시게씨의 해석은 정확히 내가 노린 핀 포인트였다. 많이 만들 수가 없다면 아예 적게 풀어 인기를 꾸준히 지속 시켜 나가는 것이다.

출하가 될 때마다 하루만에 완판이 되는 게임 타이틀.. 얼마나 매력적인 수식어인가?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 통에 나는 서둘러 돈부리(규동이 담긴 그릇) 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밥을 삼켰다.

&

식사 후. 아키바에 다시 나오니 인근 게임 샵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제가 4번째로 줄섰는데, 왜 사이킥 배틀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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