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5 : 그리고 전설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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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미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소화한 나와 군페이씨는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배웅해준 엘리스와 야마시타씨. 그리고 윌슨씨는 우리가 출국장을 떠날 때까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 달이라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금방 지나가 버린 느낌이군.”
“그래도 미국 내에서도 겜보이 반응이 괜찮던데요? 정식으로 발매하면 기대해볼만 하겠어요.”
“강군이 만든 사이킥 배틀의 인기도 만만치 않던데? 발매 시기만 잘 맞추면 분명 흥행할거야.”
“어? 군페이씨에게 말씀 안 드렸었나요? 사이킥 배틀 발매일 잡혔는데요.”
“뭐라고? 언제로?”
“2월 10일이요.”
“뭐!? 일본에 도착하고 3일 뒤잖아? 아니 그것보다 2월 10일이면..”
“네. 드래곤 워리어 3랑 발매일이 같아요.”
드래곤 워리어 3의 부제는 ‘그리고 전설로..’ 정말 말 그대로 1,2의 판매량을 씹어 먹는 전설의 게임으로 기억될 타이틀이었다.
“아무리 그동안 홍보를 했더라도 신규 IP인 사이킥 배틀로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분명 판매량에 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괜찮아요. 어차피 사이킥 배틀은 특수칩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 하거든요.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 점도 있지요.”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 시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이 점?”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이랄까..?”
그래.. 누구나 돈 만 있으면 플레이 할 수 있는 타이틀 보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극 소량의 마케팅.. 예를 들면 83년으로 타임 슬립하기 전에 전국을 뒤 흔들었던 ‘허니버터칩’처럼 ‘못’ 파는 게 아니라 ‘안’ 팔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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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2월 10일 수요일. 도쿄 아키하바라로 가는 전철 안..
평범한 사람들에겐 별다를 게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게이머. 특이 드래곤 워리어의 발매를 손꼽아 기다린 자들에게 오늘은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학교로 등교하던 아이들 중에 10명중 한 두명은 등굣길에 모습을 감추고, 성실히 직장을 다니던 직원도 2월 10일에는 연차를 썼다.
출근 중으로 보이는 회사원도 아까부터 자꾸 손목시계를 힐끗 거리며 노선도를 확인하는 걸 보니 머릿속으로 은근히 고민중인 듯 하다.
‘지금.. 아키바에 가서 드래곤 워리어3를 사야할까?’
‘퇴근하고 갔는데 다 팔렸으면 어쩌지?’
‘아냐 수량은 충분할거야.’
‘그런데 2도 발매일 첫날에 완판 됐었잖아!?’
‘그러니까 3는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을까?’
‘지금 아키바에가서 게임을 사고 출근하는 건 어떨까?’
‘도착하자마자 살수나 있을까?’
전철 안에 있던 남자들의 고민하는 표정에 나는 웃음을 삼키며 의자에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시게루씨가 말을 걸어왔다.
“야, 넌 긴장도 안 되냐?”
“뭐가요?”
“네가 만든 사이킥 배틀도 오늘 발매잖아.”
“아.. 그렇죠.”
“아.. 그렇죠? 이 녀석 반응이 왜 이리 무덤덤해? 드래곤 워리어3랑 상대한다고 벌써 포기 한 거냐?”
“그럴리가요? 사이킥 배틀은 홍보 방식이 좀 독특한 편이라 첫날 판매량은 별로 기대 안하고 있어요.”
쿠마모토 시게루의 슈퍼 마리지3는 1988년 가을로 출시를 연기했다.
나의 사이킥 배틀과 판매량 대결을 선언하였지만, 특유의 장인 정신이 발동한 탓에 시스템 적으로 손 볼 구석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나야 애초부터 시게씨의 내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지만, 조금 싱거운 결말이랄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사이킥 배틀의 발매 일을 앞당겨 드래곤 워리어 3에 타겟을 맞추었다. 물론 초기에는 반대여론이 있었지만, 일본의 국민 RPG 게임이라는 전설의 타이틀과 한번쯤 맞대결을 해보고 싶었던 내 오기가 발동했다고나 할까?
잠시 후. 우리를 태운 전철이 아키하바라에 도착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변에 학교도 없는데,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질 않나. 열려진 전철의 문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회사원 하나가 닫히는 전철 문을 비집고 빠져 나오자 그를 따라 몇몇의 회사원이 그를 따라 내린 뒤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저거 설마 다들 드래곤 워리어3 때문에..?”
“일단 내려가 볼까요?”
설마 하는 마음에 아키바 역을 빠져 나오자 역 앞 광장은 어마어마한 인파로 뒤섞여 있었다.
“히익.. 세상에 오늘 평일 아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 그러게요.”
역 주변의 게임 가게마다 길게 늘어선 줄. 그리고 가게 앞 스피커에는 계속 드래곤 워리어의 타이틀 음악이 흘러나와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역 앞 광장에는 뉴스 기자로 보이는 여성 리포터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현재 아키바의 상황을 보도 중이었다.
“민텐도 패밀리용으로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 워리어 3편의 발매일이 다가왔습니다. 지금 도쿄 아키하바라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데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 다수가 가게 앞에서 게임이 판매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직장인들도 많이 보이는데요. 잠시 한 분과 인터뷰를 좀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TV에 얼굴이 나오는 게 부끄러운지 그녀가 내미는 마이크를 피해 범죄자 마냥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어차피 게임 하나 사러 온 거 뭘 그리 부끄러워하지? 아, 혹시 학교나 직장 땡땡이 쳤는데, 뉴스에 나올까봐 그러나?
여성 리포터는 아무도 자신의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자 곤란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와 시게씨를 발견하더니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곁에 서있던 시게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와.. 저 리포터 엄청 예쁘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요. 거기 두 분 직장인이시죠!?”
어라? 설마 지금 우리한테 인터뷰 요청을 하려는 건가?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리포터는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에게 손짓하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예상 밖의 전개에 시게씨는 얼굴이 빨개지며 나에게 외쳤다.
“야!! 도망치자!!”
“네? 왜요??”
“응? 어.. 그러니까 저 카메라가 우릴 찍으려고 하잖아.”
“찍히면 어때서요?”
오히려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인데?
“안녕하세요. 후지TV의 카츠라기 미사토라고 합니다. 잠시만 인터뷰에 응해주시겠어요.”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정도 외모에 이름이 카츠라기 미사토라니.. 당신 1995년 되면 아마 인기가 하늘을 찌를지도..
“저기요? 인터뷰 좀..”
“네? 인터뷰라면 제 옆에 있는..”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시게씨는 어느 새 저 멀리 인파 속에 섞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무슨 드래곤볼도 아니고, 순간이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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