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58화 (58/252)

EP. 14 : 미국산 공돌이들 (1)

&

1988년. 1월 1일.

신정 휴무일로 집에 있던 나는 간만에 게임 & 워치로 업계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패밀리가 출시된 후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패밀리는 전성기보다 화려한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출시되는 게임들마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유지 되어 있었고, 게임센터와는 노선이 다른 RPG류나 초고난이도 게임이 대거 등장하며 기존에는 가볍게 휴식 겸 즐기던 게임들이 약간의 스트레스 작용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드래곤 엠블렘을 시작으로 플레이어의 도전 욕구를 자극 하는 게임으로는 캡코에서 나온 횡스크롤 액션 게임 ‘로크맨’과 ‘마계기사’도 유명했는데 둘 다 짜증을 일으킬 정도의 극악 난이도를 자랑했는데.

특히나 ‘마계기사’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BGM과 끝없이 튀어나오는 좀비 때로 1스테이지 조차 넘지 못하고 포기 한 유저가 수두룩할 정도였다.

“마계기사. 하긴 그 게임도 더럽게 어렵긴 했었지..”

로크맨이야 어느 정도 보스의 패턴을 익히면 클리어 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마계기사는 진짜 패드를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을 유발하는 게임 중에 하나였다.

“그나저나 슈퍼 마리지 3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난데없이 드래곤 워리어3 발매일까지 잡혀 버렸네..”

이미 국민 RPG게임으로 왕좌에 올라있는 초대형 타이틀의 컴백이 결정되었다.

슈퍼 마리지 3와 드래곤 워리어 3, 사이킥 배틀의 발매일이 얼추 비슷하게 잡히면서 게임 업계는 전란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물론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야 축제와도 같겠지만, 3개의 타이틀 모두 판매량에 기대를 걸만한 대형 타이틀이라 그런지 좀처럼 발매시기를 잡지 못하던 찰나.

드래곤 워리어 3가 가장 먼저 선제공격을 펼쳐왔다. 1988년 2월 10일 발매결정.

지난달까지만 해도 1988년 봄 예정이었기에 4~5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2월 10일이라니..

-따르르릉~~ 따르르릉~-

“음? 누구지..?”

갑작스레 울려온 전화에 수화기를 들어 올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씨~!! 저예요.”

“유키?”

그녀는 뭔가 좋은 일이 있는지 목소리가 굉장히 격앙되어 있었다.

“저 됐어요!”

“뭐가요?”

“신인작가 공모전이요. 준혁씨가 저에게 얘기했던 아이디어가 당선됐어요!”

“아, 진짜요?”

헐.. 이 시기에 먹방 컨셉이 통했다고? 이거 참. 그냥 2015년에 즐겨보던 드라마를 얘기해 준 것 뿐인데, 덜컥 당선이 되 버리다니 황당함을 넘어 신기하게 느껴지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 방송국일이 바빠서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래도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자마자 바로 전화해주는 그녀가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그럼 곧 TV에서 유키씨가 만든 방송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아, 그건 아니에요. 이건 그냥 새로운 프로그램 편성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인 뿐이라. 당선작이라고 바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구나. 그건 좀 아쉬운데요?”

“그래도 신인 작가로서 타이틀을 하나 얻은 셈이죠. 심사위원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드라마 제작도 가능할 거 같긴 한데.”

“굉장하네요. 올해는 유키씨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래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새해 인사도 못 드렸네요. 준혁씨. 그게.. 음.. 세헤 봇 마니 바드세요?”

봇 많이 받으라니.. 유키는 따로 한국의 새해 인사말을 적어두었는지 국어 책처럼 읽어 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새해 인사에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수화기 너머로 부끄러운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음이 많이 이상하죠? 한국어 너무 어려워요.”

“요새 한국어 배워요?”

“네. 그런데 배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힘들어요. 따로 학원도 없고 그냥 서점에서 한국어 회화책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독학은 많이 힘들텐데, 나중에 궁금한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네. 그럴게요. 그런데 준혁씨. 오늘도 집에 있는 거예요? 신년인데 한국에 안가봐도 되요?”

“음.. 그게 요새 좀 마무리 지을 일이 많아서..”

“그렇구나.. 그럼 혹시 이번 주말엔 뭐하세요?”

“주말에 딱히 할 일은 없는데요?”

“그럼 저 주말에 교토에 놀러 가도 돼요?”

“아, 뭐.. 안될 건 없는데.”

“그럼 이번 공모전에 신세 진 것도 있고, 제가 교토에 가서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교토까지 직접 오셔서요?”

“실은 교토 구경도 하고 싶어서요. 도쿄보단 오사카 지역이 볼 것도 많으니까요.”

“하긴 그렇긴 하지만..”

“싫으.. 세요?”

“아니요. 싫긴요. 오히려 다행이네요..”

“다행이요?”

“네. 사실 다음 주에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거든요.”

“미국으로요? 왜요? 얼마나요?”

한꺼번에 3개를 물어보면 뭐부터 대답해야지? 나는 잠시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 한뒤에 입을 열었다.

“새로 발매하는 게임에 대해 홍보 차 한 달 정도 체류할 것 같아요.”

“한 달이나요?”

“그래도 다행히 유키씨는 보고 갈 수 있겠네요.”

“그럼 이번 주말에 꼭 갈게요. 기다려요.”

“네. 오실 때 연락 주시면 역 앞에 마중 나가 있을게요.”

“네~ 그럼 푹 쉬세요.”

유키와 통화를 종료한 후. 나는 책상 위에 놓아둔 여권을 바라보았다.

이번 미국 출장은 군페이씨와 함께 휴대용 겜보이의 시장 조사와 사이킥 배틀의 홍보가 주목적이었기에 지난번처럼 길진 않을 것이었다.

‘엘리스랑 윌슨씨.. 다들 잘 지내려나?’

잠시 옛 생각에 빙긋 웃어 보았다. 물론 가끔 통화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3년 만이었기에 나름 설레이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엘리스는 그동안 일본어가 많이 늘어 거의 일본인 수준으로 유창하게 일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야마시타씨 말로는 풍기는 뉘앙스가 언젠가 본사로 발령을 내달라고 할 것 같다 던데, 어떻게 되려는지.

사실 이번 미국행에서 게임의 홍보도 중요하지만, 나름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일정을 길게 잡아두었는데, 다행히 군페이씨는 시장조사는 길면 길수록 좋다고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뭐, 군페이씨 에게 있어 나랑 다녀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내가 또 원채 잠자리가 까다로워서 호텔은 개인 사비로 끝내주는 곳에 다닐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첸드라도 훌륭하지만, 나에겐 더 많은 공돌이가 필요하다. 얼마를 줘서라도 내 쪽으로 끌고 와야 할 사람이 미국에 널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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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미국이라고? 그래도 사내 연초 파티는 참석하고 가지 그러냐. 너랑 군페이가 빠져 버리면 테가 안 나잖아.”

“시게루씨가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 본사 직원들끼리만 하는 사내 파티인데, 굳이 제가 꼭 있을 필요도 없구요.”

“이 녀석아. 스미레가 오기로 했단 말이야~!!”

‘사실 미국에 가는 이유 중에 약 절반가량이 그 아가씨 때문입니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억지로 삼키며 옆에 있는 군페이씨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주변이 실룩이는 것을 보니 카마우치 사장 앞에서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군. 스미레는 나중에 천천히 소개해주기로 하고, 우선은 일이 먼저니. 다음주에 간다고 했지? 잘 다녀오게.”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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