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57화 (57/252)

EP. 13 : 다가오는 16비트 시대 (6)

겜보이 런칭 행사가 종료된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군페이씨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방금 전 행사장을 철수한 뒤에 교토로 금의환향하였지만, 나는 아직 도쿄에 남아 있었다.

왜냐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거든.

서둘러 전철에 오른 나는 그대로 도쿄 외각 치바에 위치한 라이텍스 공장으로 향했다.

모든 커플들이 기다리는 1년 중 가장 로멘틱 하다는 밤에 나는 인도산 공돌이를 만나러가는 중이다.

“첸드라!!”

“오~!! 강준혁이다.”

저녁 식사 중이던 첸드라와 그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대었다.

“다들 신수가 훤해졌는데?”

“이게 다 강준혁 덕분이다. 푸말라 고향에 보내는 돈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푸말라 이제 결혼할 수 있다.”

투실 투실한 푸말라는 숟가락을 입에 물은 채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자 다른 인도인 친구들이 모국어로 중얼거리며 푸말라를 놀려대었다.

대충 오가는 어감을 듣자하니 푸말라는 상당히 공처가 타입인듯하다.

“그런데, 강준혁. 웬일이냐? 여기 드나드는 거 비밀 아니었나? 어차피 다른 직원들은 전부 퇴근했지만.”

“뭐 비밀까지는 아니지. 어차피 사이킥 배틀에 들어갈 특수칩 확인 차 왔다고 둘러대면 되니까. 그보다 전에 내가 부탁한 건 구해왔어?”

“물론이지!”

“그럼. 식사 중에 미안하지만, 잠깐 볼 수 있을까?”

“어차피 나는 다 먹었어. 문제없으니까 따라와라.”

잠시 후. 나는 첸드라의 안내를 받아 라이텍스 공장 내에 연구실을 찾았다. 그의 연구실은 아키바의 좁은 작업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최신 설비와 쾌적한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차세대 슈퍼 패밀리에 쓰일 CPU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게 차후에 슈퍼 패밀리에서 사용될 리코5A22 16비트 CPU칩인가..”

“현재 미국에서도 꽤나 고사양 PC로 평가받는 애플II GS의 WDC65816 CPU를 슈퍼 패밀리에 맞게 커스텀 화 시킨 거다. 미국 출시하고 2년 정도 흐른 모델이지만, 가성비면에선 그만한 녀석이 없다고 본다.”

“물론 나도 그 부분에는 동감하긴 하는데, 그래픽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나?”

“그건 어쩔 수 없다. 태생부터 빠른 연산을 처리하게 위해 나온 녀석이 아니니까. 16비트 CPU인 만큼 전체적인 퀄리티는 안정적으로 오르겠지만, 속도 부분에는 한계는 있다.”

아마 1990년대에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게이머라면 그 시절 슈퍼 패밀리와 NEGA 드라이브를 비교하면 의아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슈퍼 패밀리에는 NEGA의 간판 게임인 ‘소니크’처럼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체감시켜 주는 게임이 없었을까?

분명 NEGA 드라이브보다 더 후에 나온 기기이고, 가격도 더 비싼 모델인데 가끔은 좀 답답한 기분이 들은 적이 있었다.

반면 골목 친구네 집에 있던 ‘소니크’는 가슴이 뻥 뚫리는 스피드로 슈퍼 마리지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주었기에 가끔 서로의 게임기를 통째로 교환해서 플레이하기도 했었다.

‘슈퍼 패밀리가 NEGA 드라이브 보다 느렸던 이유를 이제 알겠군.’

민텐도는 절대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본래 콘솔 사업이란 초기 발매일로 부터 향후 5~6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고성능 모델을 맞추려 노력한다.

그게 아니라면 변화하는 게임 시장에 맞춰 1~2년 마다 새로운 콘솔을 내 놓아야 할 테니까.

기기 보급률과 게임의 개발 기간을 따져보면 하나의 콘솔은 적어도 5년을 버텨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기기의 성능이 올리기 위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게 되는데,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단가가 낮아져 나중엔 이익이 생기겠지만, 초기엔 아예 기기 하나를 팔 때마다 적자를 보고 팔아야한다.

기기 한 대의 순수한 제작비가 17,000엔이지만,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14,800엔 가량으로 판매를 한다.

한 대를 팔 때 마다 생기는 2,200엔의 손실은 게임 카트리지 판매로 메꾸는 것이 콘솔 업계의 기본적인 판매 구도였다.

하지만, 민텐도는 달랐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기를 팔 때도 이익을 남겨먹을 수 있도록 어중간한 성능의 저렴한 부품을 이용했다. 나머지는 게임의 퀄리티로 승부한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바로 눈앞에 있는 CPU였다.

‘차세대 패밀리에서 사용할 칩으로 요즘 자주 컨텍 제의가 들어오기에 첸드라에게 부탁해서 구해본건데, 역시 쓰레기 칩이네. 하긴 그 시절에도 성능으로만 따지면 NEGA 드라이브가 훨씬 훌륭했었지..’

그때 첸드라가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모든 건 프로그래머의 실력에 따라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긴 하다.”

“그야 그렇지만 기기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잖아.”

“기기의 한계라.. 킥킥 마침 잘됐다. 사실 첸드라. 강준혁 오면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다.”

“보여 주고 싶은 거? 그게 뭔데?”

“글쎄 따라와 보면 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앞장서서 걸어가던 첸드라는 이번엔 직원용 휴게실로 나를 안내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라이텍스의 직원용 휴게실에는 민텐도의 패밀리도 설치되어 있었다.

“강준혁이 만든 사이킥 배틀 우리 직원들도 즐겨하고 있다. 그림이 좀 선정적인 게 흠이지만,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재밌게 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나한테 보여 주고 싶다는 게 뭐야?”

“그게 조금 아쉬운 점이 있어서 첸드라가 손을 좀 보았다.”

“뭐라고..? 너 프로그래밍도 할 줄 알아?”

그러자 어느새 우리를 따라온 푸말라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첸드라 못하는 거 없다. 이 녀석은 천재니까.”

첸드라는 푸말라의 칭찬이 기분 좋은지 웃으며 아무런 스티커도 붙어 있지 않은 새하얀 카트리지를 패밀리에 꽂아 넣었다. 잠시 후 익숙한 사이킥 배틀의 타이틀 로고가 떠오르고, 캐릭터 선택화면이 떠올랐다.

‘음.. 아직까진 똑같은데, 달라진 건 게임성인가?’

첸드라는 캐릭터를 고르기 전 내 눈치를 살피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주인공인 아즈사 렌을 골랐다. 그리고 이어진 첫 스테이지..

“뭐야 이거?”

나도 모르게 화면을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게임이 훨씬 빨라졌다.’

첸드라가 플레이하는 사이킥 배틀은 내가 만든 것보다 게임 스피드가 약 1.5배는 더 빨라보였다.

또한 주인공을 노리는 탄막 역시 기존보다 빠르고 매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러자 첸드라는 가볍게 코를 훔치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기존에 코딩 배열은 깔끔했지만, 너무 복잡해서 첸드라가 다시 손봤다. 그래서 CPU에 걸리는 과부하가 현저히 줄어든 거다. 기존에 사이킥 배틀도 괜찮았지만, 날아다니는 상쾌함이 덜하다고 느껴서 배경 스크롤을 1.5배 속도로 바꿔봤는데, 어때? 맘에 드나?”

그 배열이 복잡하다고? 민텐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프로그래머인 하야시와 내가 둘 다 달려들어 만들어 낸 게 기존에 사이킥 배틀이었는데, 그걸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다니 첸드라 이 녀석. 생각보다 엄청난 놈이잖아!?

기존에 사이킥 배틀을 플레이 하며 뭔가 2% 정도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이 완전히 해소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팔짱을 낀 채 첸드라의 플레이를 감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첸드라.”

“응? 왜?”

“내가 아무래도 널 과소평가 한 거 같다.”

“그치? 나 잘했지?? 준혁한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마음에 드나?”

“응. 완전 마음에 들어. 그래서 말인데..”

“응..?”

“너 투 잡을 좀 뛰어야겠다.”

“투 잡? 그게 뭐냐?”

“그런 게 있어. 우선은 아까 나에게 보여준 리코5A22 CPU 복제 가능하지?”

“물론 가능하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약간이라도 좋으니 성능을 높여줘. 차세대 패밀리의 CPU는 리코가 아닌 우리 라이텍스에서 가져가야해.”

“오케이. 푸말라 준혁이 말 알아 들었지?”

“푸말라. 100% 알아들었다.”

좋아. 이로서 인도산 공돌이들의 효용가치가 늘어났다.

&

“이게.. 무슨!? 부장님!! 대체 어떻게 이런..”

내가 건넨 사이킥 배틀의 코딩 자료를 검토하던 하야시는 말도 안 되게 줄어든 수식 판정을 살피며 감탄 중이었다. 그 반응 십분 이해한다. 나 역시 처음 자료를 건네받고는 기겁했을 정도니까.

“정말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요. 이런 수식을 생각해 낼 수 있다니..”

컴퓨터와 대화하는 코딩이란 참 묘한 언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말이다.

길가다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고 치자.

마침 난 그곳을 알고 있기에 그분에게 이렇게 설명을 드렸다.

저기 앞에 슈퍼마켓 보이시죠? 저 가게를 지나면 횡단보도가 나오는데, 그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더 가시면 세탁소가 나와요.

그 세탁소를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만 걸어가시면 말씀하신 장소가 나옵니다.

하지만 첸드라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보면 된다.

직진으로 두 블럭 더 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지세요.

같은 설명이지만 내용 전달이 훨씬 짧다. 그리고 컴퓨터는 짧고 정확한 설명을 좋아한다.

그래야 다른 명령도 쉽게 처리 할 수 있으니까. 첸드라는 그 여유 용량을 배경 스크롤에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사이킥 배틀은 완전한 게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슈퍼 마리지 3랑 붙어볼만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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