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3 : 다가오는 16비트 시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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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페이씨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행사장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대기 줄은 행사장 바깥으로 끝없이 이어져있었다.
체험용 기기를 올려둔 진열대조차도 최신형 휴대기기를 만져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부장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새벽에 봉고차 안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대던 미나씨는 이번엔 손님들의 응대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제가 응대할 테니 좀 쉬고 와요.”
“감사합니다.”
하긴 하이힐 신고 하루 종일 서있으려면 다리가 아프기도 하겠지. 미나와 업무를 교대한 나는 행사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중에 체험대에서 겜보이를 만져보던 학생이 놀라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가벼워..”
음.. 솔직히 까놓고 가벼운 무게는 아닐 텐데?
솔직히 디자인만 따지면 벽돌이랑 별반 다를 게 없고, 무게역시 220g라고 기록해 놓았지만, 건전지를 제외한 무게이다 보니 건전지 4개를 추가하면 약 300g 가까이 나가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초소형 전자기기인 센소니에서 만들어낸 ‘워크맨’에 비교하자면 컴팩트한 크기이긴 하다.
내 눈에는 우습게 보여도 그들에겐 혁신적인 물건이란 거겠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이킥 배틀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새벽까지 함께 커피를 돌렸던 홍보팀 남자 직원 카시와바씨가 나에게 달려 왔다.
“겜보이도 흥행이지만, 사이킥 배틀을 체험해보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오신 손님들도 무시 못 할 수준인데요?”
“당연히 잘 돼야죠. 이것 때문에 쓸데없는 것에 돈 낭비한다고 카마우치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었으니까요.”
휴대용 겜보이의 런칭 행사도 행사지만, 내가 굳이 이 행사장에 직접 지원을 나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해 소량으로 제작한 데모용 카트리지는 현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왜냐고? 그건 바로 저 문구 때문이지.
-화제의 신작 사이킥 배틀에 도전하라!!-
1. 첫 번째 스테이지 클리어 시 원하시는 캐릭터의 일러스트 증정.
2. 두 번째 스테이지 클리어 시 사이킥 배틀 체험판 카트리지 증정.
사은품은 간단했지만,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지난 달 네 군데의 게임 잡지사 메인표지를 장식한 만큼 인지도가 확 올라간 상태에서 게임에 대한 리뷰 기사도 제법 잘 뽑혀 나왔다.
덕분에 이번 달에는 처음으로 슈퍼 마리지3의 기대순위를 앞질러 1위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난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이번 달에 출간한 패미통신의 사이킥 배틀 기사에 하단부에 체험일자와 장소를 기재한 것이다.
내가 제안한 이벤트 기획에 군페이씨 역시 콜라보 효과를 기대하며 승낙해 주었다.
덕분에 행사장 한 켠에서는 군페이씨의 겜보이가.. 그리고 반대편에선 나의 사이킥 배틀이 어마어마하게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행사장 앞을 지나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사이킥 배틀의 플레이를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숨막히는 탄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 아깝다!!”
1스테이지 보스의 체력을 얼마 안 남겨 두고 게임 오버당한 플레이어가 고개 떨구자, 곧바로 다음 도전자가 나섰다.
“아직까지 사은품으로 체험용 카트리지를 받은 분은 없군요.”
“첫번째 보스 클리어는 몇 분이 나왔는데, 난이도가 워낙 높다보니. 하지만 그런 점에서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지 계속 대기 줄이 늘어가고 있어요.”
“어느 정도 감을 익히면 조금씩 나타나겠지요. 이제 행사 첫날이니까. 너무 빨리 소진 되어 버리면 재미없잖아요.”
“그렇겠죠? 잡지사 메인 표지로 나왔던 일러스트들도 인기라 4종을 다 모으기 위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도전하시는 분도 계셔서 조금 곤란합니다.”
“너무 심하면 카시와바씨가 제제 좀 해주세요. 다양한 유저들이 체험해 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니까.”
“네, 알겠습니다.”
‘과연 행사기간 동안 체험판 카트리지가 몇 개나 나갈지 나도 기대가 되는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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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보이의 성공적인 런칭 행사는 개시 후 단 4일 만에 전량 소진 되어 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예측한 재고 소진 예상일보다 6일이나 빨랐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보니 아이들 선물용으로 많이 구입한 모양인데, 재밌는 것은 이 4일 동안 판매한 30만대 초도 수량은 민텐도의 패밀리와 NEGA 디스크를 모두 합친 판매량보다 더 많았다.
아이들 장난감 치고는 너무 비싸 실패할거라고 예측했던 민텐도 경영진은 이 놀라운 판매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추가 재생산 분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지만, 소비자들의 어마어마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당분간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휴대용 겜보이의 흥행에 더불어 가장 득을 많이 본 곳은 흑백 액정화면을 만들어 민텐도에 납품한 ‘샤프’였다. 겜보이의 액정을 단독으로 납품하게 된 샤프는 일본의 경기 침체로 기울어 지던 경영상태가 일순간에 복구가 될 만큼 큰 수익을 누렸다.
샤프의 사장인 마치다씨와 민텐도의 카마우치는 굉장히 막역한 사이였기에 서로 윈윈하는 방향으로 액정을 공급한 모양이었다.
휴대용 겜보이는 전력소비량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STN 반사식 흑백액정을 사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AA건전지를 4개로 최대 5시간(연속 플레이시) 정도 밖에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STN 액정은 빛 반사에 취약했기에 대낮에는 햇빛에 의한 난반사로 화면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백라이트 기능도 없었기에 밤에 불을 꺼놓고 플레이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TV를 사용하지 않고도 혼자서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메리트 하나에 이 모든 단점을 뒤엎고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8비트 콘솔 게임의 시대가 막을 내리려는 찰나에 그 유지를 휴대용 겜보이가 이어 받은 셈이었다.
“야!! 나도 한판만 시켜주라~ 응?”
“싫어~ 정하고 싶으면 너도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던가~”
“치사한 놈.”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 역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는데, 학교 가방을 매고 귀가중인 꼬맹이 두 명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통통한 체형의 꼬마 녀석 옷차림을 보아 조금 사는 집 아이 같은데, 친구가 시켜달라면 한판 정도 양보해 줄 수도 있지. 욕심도 많네.
마치 도라에몽에 나오는 퉁퉁이와 비실이를 보는 듯 하군.
나는 피식 웃음을 던지며 아이들 곁을 스쳐 지났다.
겜보이 런칭 행사가 종료된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군페이씨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방금 전 행사장을 철수한 뒤에 교토로 금의환향하였지만, 나는 아직 도쿄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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