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53화 (53/252)

EP. 13 : 다가오는 16비트 시대 (2)

수정 사항이 있습니다. 작중에 등장했던 트라이앵글 소프트 -> 스퀘어에서 트라이앵글 소프트 -> 펜타곤으로 변경했습니다.

아무래도 실명 언급이 좀 거슬려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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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펜타곤 사무실에서 카와구치씨를 만나고, 오후 무렵 느긋한 마음으로 교토에 돌아왔지만, 민텐도 본사의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었다.

“강준혁 부장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오늘 아침부터 카마우치 사장님께서 얼마나 찾으셨는데요.”

본사 로비에서 인포메이션을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어 대었다.

“아니, 출장계 보면 도쿄에 간다고 떡하니 쓰여 있을 텐데, 뭐 하러 찾아요?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떨어지나?”

“지금 그런 말씀 하실 때가 아녜요~ 아무튼 어서 사장님 방으로 가보세요.”

장시간 동안 신칸센 타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 또 무슨 일이람..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사장실로 향했다.

똑. 똑. 가볍게 노크를 두드리자 안에서 신경질 적인 카마우치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와!!”

어이쿠.. 이거 화가 잔뜩 나셨군. 이젠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네. 나는 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문고리를 돌려 사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실 안에는 군페이 씨와 시게씨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그때 상석에서 이마를 주무르고 있던 카마우치 사장이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강준혁~!! 너 인마. 어딜 갔다가 이제 와~!!”

“출장계 못 보셨어요? 도쿄에 잡지사에 홍보용 카트리지랑 전단 돌리러 갔다 왔는데요?”

“야 인마. 넌 부장씩이나 돼서 뭘 그렇게 뻔질라게 도쿄를 쏘다녀. 그냥 홍보물 따위 우편으로 보내면 땡이지~!! 매달 네 녀석이 청구하는 출장 교통비가 직원 한명 분 월급이여~!! 아주 신칸센 자리하나 전세를 내지 그러냐?”

“아니, 이제까지 출장 다닐 땐 조용하시다가 갑자기 왜 이러세요?”

“너 오늘 아침 신문 봤냐?”

“봤지요. 설마 지금 NEGA 드라이브 발표 한 것 때문에 이러고 계신겁니까?”

“그래 이 녀석아. 경쟁사인 NEGA가 먼저 차세대기를 발표 해버렸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냐?”

“그게 뭐 어떠세요? 오히려 우리한테는 더 좋지 않나요?”

“뭐라고?”

아무렇지 않게 툭하고 내뱉은 말에 사장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팍 하고 찌그러졌다. 그때 카마우치 사장 옆에서 나를 바라보던 군페이씨가 말했다.

“우리한테 더 좋은 일이라고?”

“물론이죠. 아직 검증이 안된 16비트 시장에 자기네 돈 써가서 상황보고를 해주겠다는데,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딨어요?”

“강군. 하지만 시장의 선점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우리 패밀리용 게임들이 NEGA의 새로운 게임들과 스펙의 격차가 너무 커져버려..”

“군페이씨. 한 세대가 바뀔 때 콘솔의 본래 스펙은 언제 나온다 생각하세요? 초창기 시절부터 콘솔의 성능을 100% 끌어낼 소프트 회사는 없어요. 적어도 스펙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어디까지 오브젝트를 활용할 수 있는지 한계점을 조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그려려면 적어도 1~2년 정도의 기간은 필요하지. 예를 들어 초창기에 시게루군이 만든 슈퍼 마리지 1과 지금 만들고 있는 3는 같은 콘솔이라도 그래픽 자체가 다르니..”

“맞아요. 제가 현재 만들고 있는 사이킥 배틀도 초창기에 패밀리에선 절대 구현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게임들을 만들고 있고, 곧 출시를 앞두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내년에 NEGA 드라이브가 출시한다고 해도 초기엔 현재 게임과 별 다를 게 없을 겁니다.”

그러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NEGA 드라이브는 현재 차세대기를 만들겠다고 발표만 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빨라도 1년 정도 후에나 출시가 되겠지요. 저는 오히려 그것이 NEGA의 목을 더 조이는 효과를 가져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시게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째서..?”

“지금 시게루씨가 만들고 있는 슈퍼 마리지3 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지요?”

“그래. 맞아..”

“그런데 만약 1년 뒤 우리 회사에서 새로운 콘솔을 내겠다고 오늘 발표해 버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지금 출시해 봐야 1년 후에 새로운 콘솔에 묻혀 구세대 기종의 게임이 되어 버릴 텐데? 두 달 뒤에 카트리지 생산 작업까지 마치고 나면 남은 시간은 고작 10개월입니다. 그런 시기에 새 콘솔을 기다리는 게이머들이 슈퍼 마리지 3를 사줄까요?”

“개발자 입장에선 그 보다 뒤통수 맞는 일이 없지. 차라리 새 기종의 스펙을 연구해서 새 콘솔용으로 개발을 돌리는 게 낫지.”

“그럼 기기 보급률은 어쩌구요? 지금 현재 우리 패밀리 보급률이 일본에서만 3천만대에 달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신형기기가 나오면 곧바로 3천만대 사줄 것 같나요? 어림없죠. 첫 출시 한 달간 잘 나가봐야 10만대입니다. 그런데 또 거기서 10만대 사간 분들이 슈퍼 마리지 3를 반드시 사줄까요? 물론 마리지의 네임 벨류가 있으니 잘나가긴 하겠지만 절반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또 슈퍼 마리지의 판매량은 반으로 줄어들죠?”

“젠장.. 구형 기기로 출시하기도 뭐하고, 신형으로 내기도 뭐하군..”

“바로 그겁니다. 오늘까지 NEGA 디스크 게임을 만들던 서드 파티 회사들이 딱 그 기분일겁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를 내보죠. 그렇게 자사의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던 서드 파티들이 다음 중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첫 번째. 에라~ 모르겠다. 그냥 출시하자. 두 번째 1년 뒤에 내자. 하지만 이 경우는 웬만한 메이저급 아니곤 못하겠죠? 1년 동안 완성된 게임이 자금 회수가 안 될 테니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세 번째. 최대한 NEGA 디스크와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타 기종으로 이식 시켜 출시한다. 자~ 다음 중 그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

“그럼 설마..”

“때마침 저희에겐 라이텍스에서 만들어낸 특수칩으로 인해 패밀리의 기기성능이 기존 보다 업그레이드 된 상태입니다. 본체 성능으로만 따진다면 NEGA 디스크보다 떨어지지만, 특수칩을 달게 되면 NEGA 디스크용 스펙을 그대로 코딩해오는 건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때는 도리어 카마우치 사장님이 서드 파티 쪽에 활로를 열어줘야 할 때죠.”

“설마 로열티 가격을 더 낮춰주자고?”

“라이텍스의 특수칩을 구입해야할 자금이 필요한 때에 민텐도가 카트리지에 대한 로열티를 낮춰 준다면 NEGA에 붙어 있던 세컨드 파티들을 단숨에 우리 쪽으로 기울일 수 있죠. 상대가 강수를 두었다면 우린 초강수로 맞서면 됩니다.”

내 말은 여기서 끝이다. 뭐 할 말들 있으면 더 해보던지?

하지만 그들은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늘 NEGA 드라이브의 발표가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경영 타이밍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카마우치 사장은 미간을 좁히며 내 의견에 파고들 곳을 찾아보려했지만, 결국 포기했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은 정말이지. 말로 이겨먹을 수가 없네. 무슨 보고서라도 작성한 것 마냥 저렇게 따박 따박 치고 들어오니 할 말이 없다.”

“NEGA 드라이브가 차세대 콘솔 네임을 발표했지만, 우리가 이런 순간을 예상 못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신형 콘솔 기획 부서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네 담당인 패밀리의 후속기종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냐?”

“현재 컨트롤러는 최종 디자인이 완료되어 제작 중에 있어요.”

“컨트롤러라면 게임 패드? 본기기 말고 패드부터 만들었다고?”

“기기 스펙보다는 컨트롤러가 중요합니다. 게임기에서 가장 튼튼하게 만들어야할 부분이라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아마 다들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그것보다 NEGA에서 한건 터뜨려 주었으니 우리도 내일 자 조간신문에 하나 터뜨려보죠?”

“무엇을 이슈로..?”

“군페이씨의 역작 휴대용 겜보이 발매일을 좀 앞당겨 보죠. 지금 우리가 선점해야할 건 16비트 콘솔 시장이 아니라 휴대용 게임기 시장이니까요.”

그러자 군페이씨가 난감한 표정으로 카마우치 사장의 눈치를 보았다.

“아.. 하지만 휴대용 겜보이는 아직 최종적 소비자 가격에 대한 결론이 안 나있는 상태라..”

“지금 최종 가격이 어느 정도죠?”

“디스플레이 제조를 맡긴 샤프 쪽에 들어간 비용이 커서 14,800엔으로 잡아두긴 했지만, 과연 소비자 들이 그만한 가격을 이해해줄지 모르겠어.”

“그럼 1주일 앞당겨서 크리스마스에 12,800엔으로 판매하죠. 그리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14,800엔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초기 출하 한정판 형식으로 어때요?”

“1주일 동안 손해를 보고 장사를 하자는 건가?”

“저희가 언제는 패밀리 팔아서 돈 벌었나요? 카트리지 팔아서 돈 벌었죠. 패밀리 카트리지에서 낮춘 로열티는 휴대용 겜보이가 보급만 잘되면 얼마든지 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 강군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뭘 어째? 당장 조간 신문사에 전화 돌려!!”

카마우치 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장실에 모여 있던 경영진들은 순식간에 사장실을 빠져 나가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긴 가격 때문에 출시 타이밍만 잡고 있던 휴대용 겜보이의 출시일이 갑자기 결정이 나버렸으니 마케팅 부서가 뒤집어 지겠군.

어느새 사장실에는 나와 카마우치 사장 둘만 남아 있었다. 대충 한 건 처리한 것 같으니 나도 이만 돌아가 볼까?

“그럼. 전 이만 퇴근을..”

그때 탁자 위로 두 손을 깍지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카마우치 사장이 입을 열었다.

“강군. 잠깐 자리에 좀 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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