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48화 (48/252)

EP. 12 : 기묘한 마케팅 (2)

“그만 봐라. 종이에 구멍 나겠다. 인마..”

“기가 막히네.. 잠깐? 그런데 다른 잡지사가 각 캐릭터 별로 메인 표지에 올린다는 건..?”

“그래. 다음 달 모든 게임 잡지 메인 표지는 사이킥 배틀이다.”

“와~ 진짜 너.. 잔대가리 끝내준다.”

“잔대가리라니~!! 훌륭한 마케팅 실력이지~!!”

거기다가 이런 꼴릿한 일러스트를 전부 모으려면 독자들은 할 수 없이 4곳의 잡지사 책을 전부 구입해야 할 테니까~ 잡지사는 잡시사 대로 좋고, 나는 알아서 유저들끼리 입소문이 터질테니 좋으니 상부상조 하는 게지.. 나는 준페이에게서 받은 물 컵을 삼키며 싱긋 웃어보였다.

“어라? 이건 게임 카트리지네?”

“체험용 데모 카트리지다. 2 스테이지까지 즐길 수 있을 거야.”

“오~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 안 그래도 다른 리뷰어 들도 사이킥 배틀에 대해 궁금해 하던 차였는데.. 그런데 뭔가 좀 다른 카트리지보다 크네?”

“안에 패밀리의 연산을 도와줄 특수 칩을 박아 넣었거든..”

“아~ 그래서 이렇게 무식하게 크구만.. 그래도 뭔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긴 하네~ 그럼 잠깐 플레이 좀 해볼까?”

“벌써 해보게?”

“뭐 어때 다른 기자들에게 홍보도 할 겸~ 괜찮지?”

“마음대로~”

준페이는 응접실을 나서자마자 작업 중인 동료들에게 외쳤다.

“어이~!! 내가 전에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사이킥 배틀의 체험판 카트리지가 왔다!! 그때 나한테 첫 스테이지에서 죽었다고 비웃었던 놈 나와!!”

“오~? 사이킥 배틀~!? 나~!! 나 한번 해볼래!!”

체험용으로 들고 온 사이킥 배틀은 순식간에 패미통신 직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잠시 후 조그만 티비 앞에 둘러앉은 그들은 사이킥 배틀의 엄청난 탄막 연출에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십자기를 한 바퀴 돌리면서 B버튼!!”

준페이는 첫 스테이지 절반도 채 못가 죽어나가는 동료들에게 커맨드를 알려주며 비웃었다.

“씨.. 씨발 뭐가 이렇게 어려워..”

“신작 발표회 때도 유일하게 보스까지 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거든? 내가 겁나게 어렵다고 그랬지? 비켜 봐 내가 해볼라니까!!”

준페이는 패드를 던지며 포기하는 동료직원을 밀어 내고 자리에 앉았다.

“자~!! 봐라 나의 환상의 플레이를!!”

준페이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센스가 있는 편이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탄막이 집중 된가는 것을 파악하고 넓은 스테이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탄막을 피해내었다.

프로그램 상 탄막이 일정수치 이상을 넘지 않게 조율하고 있었지만, 간혹 프레임이 느려지는 부분이 존재하긴 했지만, 플레이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전보다 더 안정적인 것 같은데? 프레임이 엄청 떨어지진 않네.”

“당연하지. 코딩도 더 단조롭게 했으니까. 가끔 가변 프레임 구간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억제했다.”

잠시 후. 준페이는 첫 번째 곤충 보스와 또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전에 진 빚을 오늘 갚아주마!!”

준페이 녀석은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탄막이 뿌려진 후 프레임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보스의 필살기가 날아올 것을 직감한 그는 재빨리 화면 끝으로 캐릭터를 이동 시켜 레이저 빔을 피해내었다.

결국 준페이의 플레이에 첫 번째 보스가 쓰러지고, 준페이는 기세를 몰아 두 번째 스테이지로 돌입했다.

“으라차!!!”

적절히 베리어 스킬을 펼치며 응전했지만, 2 스테이지는 일정 범위를 뱅글 뱅글 돌아가는 탄막이 추가 되며 더욱 어려워졌다. 아무리 날고 기는 녀석이라도 두 번째 보스에 다다를 때 즈음에는 HP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과연 클리어 가능할까?”

또 다른 거대보스가 나타날지 몰라 잔뜩 긴장한 준페이 앞에는 의외로 주인공과 비슷한 크기의 초능력자 캐릭터가 등장했다.

“두 번째 보스는 같은 초능력자로군~!! 해볼 만하겠어!!”

첫 번째 스테이지의 거대 보스와는 달리, 같은 인간형 보스의 등장에 준페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피할 공간이 많아서 쉬워 보이나보지? 준페이의 여유 넘치는 표정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어디 다음호 나올 때까지 2 스테이지 클리어 하는 자가 나오나 보자.’

준페이는 가볍게 적의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커맨드를 입력하여 적을 일점사격 시키는 유도 레이저 빔을 날렸다. 그 순간.. 슈슉!!! 매력적인 보스 캐릭터가 레이저 빔이 닿는 순간 사라졌다.

“순간이동!!!!”

순식간에 보스에게 뒤를 잡힌 준페이는 서둘러 거리를 벌리려하였으나 염력을 이용해 자석처럼 주인공을 끌어 들이는 보스의 손아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보스의 거대한 레이져 공격에 주인공인 ‘아즈사 렌’이 직격타를 맞는 순간..

“허억!!!!!!!!”

화면 가득 상처 입은 아즈사 렌의 위험천만한 포즈가 튀어 나오자, 모두 컥하고 숨을 들이 마셨다. 물론 아까 준페이에게 건네준 일러스트에 비하면 조금 조악한 수준이지만, 이미 준페이의 머릿속에선 아까 본 일러스트가 오버랩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스한테 필살기를 맞아 사망하면.. 파츠가 벗겨진다. 반대로 보스를 필살기로 없애면..”

그러자 옆에 있던 기자 하나가 내말을 자르고 준페이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준페이 부탁이다. 꼭 두 번째 보스만은 필살기로 없애줘!!!”

“우오오!!!!”

수컷들의 취향 저격은 참 쉽구나.. 파츠가 날아간 일러스트 한 장이 뭐라고.. 사실 파츠가 날아가는 컨셉은 이미 게임센터에서 유명한 ‘황금의 성’이라는 게임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날아오는 적의 마법을 방패를 이용해 상, 중, 하로 막아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임이었는데, 실수로 마법에 맞으면 갑옷 파츠가 부분 별로 하나씩 날아갔다.

문제는 그게 남자 캐릭터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도 적으로 등장하는 여기사의 파츠를 다 벗기기 위해 한마음으로 응원했던 게임 센터 플레이어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물론 현재 패밀리의 스팩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부분 파츠가 날아가는 연출은 무리였기에 일러스트로 대체했지만, 아무튼 여기서도 효과는 굉장하군..

&

“벌써 가려고?”

“응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 가봐야 돼. 플레이 잘하고 기사나 잘 좀 써줘라.”

“기사는 맡겨둬라~ 내가 끝내주게 써줄 테니까~!!”

“그래, 고맙다.”

“그런데 말야.. 준혁아”

“응?”

평소답지 않게 볼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준페이의 모습에 내심 불안해졌다. 뭐지? 내가 만든 사이킥 배틀에 무슨 문제가 있나?

“너 여기 오기 전에 잡지사 네 군데에 각기 다른 캐릭터 일러스트를 줬다고 했지?”

“어.. 맞아. 왜??”

“메인 캐릭터는 3명인데 나머지 하나는 설마 두 번째 스테이지 보스였던 염동력자 캐서린 이냐?”

“맞아. 그게 왜?”

“그 일러스트는 어디 줬어?”

“여기 오기 전에 게임 월드에 넘겼는데..”

“으아아~!! 차라리 그걸 주지!!!”

“... 그쪽이 취향이었냐?”

뭐야.. 겨우 그것 때문에 그런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거냐..? 이 녀석 보기보다 여왕님 취향이었군.. 나는 괴로워하는 준페이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마라. 내가 우리 직원한테 얘기해서 너한텐 특별히 4종 세트 전부 보내주마.”

“지.. 진짜냐?”

“그래~ 인마.”

“오케이~!!! 조금 사심이 섞이긴 했지만, 워낙 게임도 훌륭하니 리뷰 잘 써주마~!!

“그럼, 진짜 간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 전철역으로 걸음을 옮기며 준페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교토에 오면 연락해라~”

“그래 인마. 수고해라~”

&

-잠시 후 이 전철은 시부야.. 시부야 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딱딱한 안내 음성 대신 직접 전철을 운전하는 기사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나왔다.

‘몇 번을 들어도 참 정감 어리네..’

나는 가벼워진 서류 가방을 들고 전철에서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늦지는 않았지만, 아슬 아슬 한데? 약속시간까지 5분 남았군..

치익.. 나는 전철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오후 6시의 시부야역은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엄청 붐비고 있는 상태였다.

‘엄청 복잡하네.. 출퇴근 시간이라 그런가?’

시부야 역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라면 자기 주인을 구한 명견 하치공 동상이 있다.

이 시대에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만나는 건 묘한 설레임이 있었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고 그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리는 두근거림이랄까?

핸드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기였기에 상대방이 어디쯤 오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런 불편함 속에서 오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되려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내가 조금 늦긴 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손목시계를 힐끗 바라 본 후에 역을 빠져 나왔다.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하치공 동상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시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속에서 어렵지 않게 유키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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