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45화 (45/252)

EP. 11 : 케이스 바이 케이스 (5)

&

“너 그때 사이킥 배틀 해봤냐? 강 부장님 게임 진짜 어마어마하더라. 완전 스케일이 달라..”

“그래봤자 슈팅 게임이잖아. 내가 보기엔 이번에 나온 슈퍼 마리지3가 최고야. 이번에도 완전 대박 히트 칠 것 같아.”

“그래봤자 슈팅 게임? 너 사이킥 배틀 안 해봤구나? 몰입도가 장난 아니라니까?”

간만에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 직원 두 명이 들어왔다.

“아, 강부장님..”

둘은 나를 보고선 흠칫 놀라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커피 드시러 오셨어요?”

“아.. 네. 휴게 시간이라..”

“저도 마찬가지에요. 앉아요. 제가 커피 한잔 뽑아 드릴게요.”

“아, 아뇨. 안 그러셔도 됩니다.”

“뭐 직원들끼리 커피 한잔 할 수도 있지. 별거 아니니까 드세요.”

두 남자는 내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건네자 앉았다 일어섰다는 반복하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뭘 이리 쫄아.. 신입사원인가?

“둘 다 신입이에요?”

“네? 아, 저희는 두 달 전에 입사한 동기입니다.”

“두 달이나..? 미안해요. 외근이 잦은 편이라 얼굴을 익힐 시간이 없어서.. 하하”

“괜찮습니다. 신형 콘솔 기획도 준비 중이시고 거기다가 이번엔 게임 개발까지.. 엄청 바쁘시겠죠.”

괜히 내가 여기 있으면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아까운 휴식 시간만 날리겠군.. 나는 짧게 몇 마디를 더 건네다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휴게실을 나섰다.

그러자 슬쩍 닫힌 문 너머로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캬~ 강부장님 멋지다. 저 여유.. 나이는 나랑 비슷하신 거 같은데 완전 엘리트 느낌이야.”

“들어 보니 미국 지사에서 일할 때 크게 한건 올렸다더라. 시게루님이나 군페이님이 랑도 친해 보이고~ 실력과 인맥.. 같은 또래에선 이미 따라갈 수가 없지..”

‘음~ 신입 직원들에게 나에 대한 이미지는 저렇구나..’

신작 게임 발표 이후 민텐도 내부에서 묘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나와 시게루씨의 게임에 대해 어떤 작품 더 나은가에 대해 토론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까. 같은 회사에서 출시할 퍼스트 게임끼리 이러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선의의 경쟁이라기 보단 파벌 싸움 느낌이군.

더 이상 같은 개발실에서 양 쪽의 게임을 개발하기에 무리가 있다 판단한 나는 최소한의 인원을 꾸려 차세대 콘솔 개발 부서에 배치 시켰다. 덕분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다른 부서에 비해 조금 난잡한 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신형 콘솔의 컨트롤러를 담당하는 기무라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부장님 이번에 새로나온 컨트롤러 컨셉트인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네, 그러죠.”

기무라에서 건네받은 신형 컨트롤러의 초안은 내가 알고 있던 슈퍼 패밀리의 컨트롤러 보다는 NEGA 쪽 컨트롤러 이미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나쁘진 않은데, 조금만 더 수정해보시겠어요? 아직 시간 여유는 있으니 디자인 팀에서 조금 더 다양한 컨셉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부장님께서 따로 요청하실만한 사항이 없으신가요?”

“버튼은.. 조금 더 늘려 볼까요?”

“버튼이요? 안 그래도 개발진과 의논한 결과 기존에 2버튼에서 4버튼으로 늘리긴 했는데..”

“앞으로 게임은 좀 더 복잡해질 거예요. 지금이야 점프나 공격 같은 단조로운 형식이지만, 게임의 장르가 발전할수록 다양한 요구사항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 혹시 생각해 두신 버튼 개수가 있으신가요?”

“6버튼 시스템은 어떨까요? 최근에 게임센터에 가보니 조금 골 때리는 격투게임이 하나 있더군요.”

“골 때리는 격투 게임이요?”

1987년. 게임센터에 업주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문제작이 하나 출시되었다.

왜 문제작이냐? 그것은 기존에 게임 센터에서 암암리에 세워둔 룰을 깨부쉈기 때문이었다.

게임 센터란 일반인들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선 흔히 ‘오락실’이라고 불렸다.

‘오락’이라는 유쾌하고 기분 좋은 단어를 섞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의 이미지는 비행 청소년이 흡연을 하고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빼앗는 불량한 곳으로 낙인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게임이 좋아 몇 백원만 수중에 있다면 쫀듸기도 포기하고 달려갔던 그 곳이 오락실이었지만..

아무튼 1987년 말 즈음에 일본 게임센터 업주들은 하나의 게임 출시에 굉장히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바로 최초로 6버튼을 이용한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어’의 등장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들은 코인회수가 용이한 대전 격투 게임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까? 그것은 바로 버튼의 개수 때문이었다.

기존의 아케이드 게임은 버튼수가 많아봐야 4개가 전부였다.

아니, 보통은 2~3개면 충분했기에 4개도 솔직히 꺼려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등장한 격투 게임이 6개의 버튼을 사용하는 바람에 업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판을 개조하거나 전용기기를 들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지같은 커맨드 조작 방식 덕분에 스트리트 파이어는 출시 후 금세 인기가 사그라  들었다.

분명 커맨드에는 장풍 기술과 어퍼컷 기술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레버를 돌려 보아도 기술은 나가지가 않았다.

또한 강, 중, 약으로 따로 설정된 팔과 다리 버튼을 플레이어들이 잘 소화하지 못한 탓도 컸다.

결국 골치 덩어리로 전락한 이 게임은 차후 2에서 기존에 모든 스타일을 버리고 거듭나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을 것이 분명 했다.

“부장님. 혹시 스트리트 파이어 하나 때문에 6버튼을 하시자는 건 아니요?”

“왜요? 그러면 안 되나요? 하하..”

“물론 조작 버튼 추가가 안 될 건 없지만, 전면에 여섯 버튼을 배치할 경우엔 상대적으로 크기가 커져서 아이들이 쓰기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꼭 버튼 6개를 전면에 둘 필요가 있나요?”

“네? 그럼 나머지 버튼은 어디에..?”

마침 내 책상 위에 패밀리용 컨트롤러가 놓여져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기무라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번 쥐어 보세요.”

“네..? 아, 네..”

그러자 내게서 컨트롤러를 받아든 기무라의 양쪽 집게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컨트롤러의 윗부분을 향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뒤에 말을 이었다.

“스톱~! 바로 거기. 기무라씨가 집게 손가락을 대고 있는 그 부분에 버튼을 만들죠.”

“아~~~!!!! 여기구나..”

기무라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한 건은 끝났고, 다음은 사이킥 배틀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도트 찍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리타씨를 찾았다.

“모리타 일러스트 작업은 어때?”

“순조롭습니다. 작업도 즐겁구요. 사이킥 배틀의 주인공 캐릭터를 전부 여자로 배치한 부장님의 과감함에 경탄할 지경입니다~!!”

“그.. 그래요?”

“전 믿어요. 언젠가 미소녀나 섹시 컨셉의 캐릭터들이 게임계를 지배하는 그 날이 올 거라는 걸~!!”

묘하게 항상 하이텐션을 유지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모리타는 어떤 의미에선 시대를 앞서나가는 진정한 선구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그는 절대로 남자 캐릭터를 그리지 않는다.

조그만 도트 안에서도 캐릭터의 특징 강조하여 게임안의 캐릭터와 일러스트의 위화감을 최대한 배제 시킨 것도 그의 도움이 크게 작용 했다.

“이봐 모리타 조금 조용히 좀 할 수 없나?”

“미안 하야시. 코딩 짜는데 방해가 됐구나..”

모리타의 사과에 일절 대꾸도 없이 다시 작업에 몰두 중인 하야시는 코딩 작업에선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실력파였다.

하지만 신경질 적인 성격 탓에 대인 관계에 문제가 좀 있지..

조금은 설렁설렁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시게씨의 개발 환경은 그와는 맞지가 않았다.

모든 작업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 원하는 하야시는 다른 직원들이 농땡이 치는 꼴을 보지 못했고, 그랬기에 개발 1팀과 잦은 불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명의 상등품 오타쿠를 내 밑으로 데려왔다.

한명은 미소녀에 관해서는 멈출 줄 모르고 미친 듯이 도트를 찍어내는 도트 머신. 그리고 그 오브젝트를 넘겨받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코딩을 짜내는 코딩 머신..

“그런데 부장님. 이거 정말 부장님께서 주신 스크립트 대로 구현해도 됩니까? 이거 용량 초과인데? 절대 현재 패밀리로 못 돌립니다.”

“상관없어요. 뒷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코딩 작업만 제대로 해주세요.”

그러자 뒤이어 모리타가 나에게 물었다.

“부장님. 전에 말씀 하신 그거.. 진짜 하실 겁니까?”

“왜요? 자신 없어요?”

“아, 아뇨~!!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임 소재가 떨어지면 조금 골치 아파져서..”

“되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겁니다. 나중에 법률 적으로 제재 당하면 답도 없으니까 실행하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리타.. 목소리가 너무 커..”

“아, 미안. 하야시..”

저 두 명의 오타쿠가 만들어 낼 희대의 슈팅 게임이 나도 기대가 되긴 하는 구나..

&

그 후. 나와 시게씨는 이따금 복도에서 마주쳐도 별로 말이 없었다.

예전에 드래곤 워리어 때도 그랬지만, 시게씨는 게임에 대해서 라면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 지곤 했다.

발표회가 있었던 그날에도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홀로 의자에 기대어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 직장 동료보다는 라이벌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사실 그런 시게씨의 반응에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현 민텐도 최고 개발자가 나를 라이벌로 인정한 것이니까..

그런데 슈퍼 마리지 3가 얼마나 팔려 나갔더라?

퇴근 후에 집에서 혼자 있던 나는 궁금증에 게임 & 워치를 펼쳐 들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경쾌한 효과음이 터져 나왔다.

-빠밤~ 숨겨진 도전 과제. 비밀의 게임 개발자 미션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차후 당신이 정체를 드러냈을 경우 게이머들 간에 당신에 대한 인지도가 200% 향상됩니다.-

-빠밤~ 첫 게임 타이틀 사이킥 배틀의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발 팀원의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빠밤~ 당신의 회사인 펜타곤의 야마구치님이 파이널 프론티어 2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빠밤~ 민텐도사의 쿠마모토 시게루님이 당신에 대해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간에 게임업계에 일어났던 작은 사건 사고가 전부 알림으로 들어와 있었다. 몇가지 중요한 알람을 체크 한 뒤에 검색창에 슈퍼 마리지 3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슈퍼 마리지 3  민텐도 패밀리용으로 제작된 아케이드 게임으로 전 세계를 통틀어 4천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것은 순수하게 민텐도에서 출하된 정품 카트리지의 판매 개수입니다.>

미친.. 정품만 4천만장이라니, 기절초풍하겠네..

나는 슈퍼 마리지 3의 어마어마한 판매량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잠시 신호음이 들린 후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여보시오라니.. 이 무슨 건방진 전화 예절이냐?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푸말라씨. 첸드라 있나요?”

“첸드라 일한다. 바꿔 줄까?”

“네.”

잠시 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인도어가 잠시 오간 뒤 첸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혁이냐? 약속했던 확장 카트리지 다 만들어서 요즘 너무 한가하다. 우리들 고향에 돈 보내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 거리 없냐?”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첸드라. 부탁 하나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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