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44화 (44/252)

EP. 11 : 케이스 바이 케이스 (4)

“십자키를 한 바퀴 돌리면서 B버튼.”

“시.. 십자키를 한바퀴?”

그렇다.. 사이킥 배틀은 최초의 커멘드 입력 슈팅 게임이었다.

내 조언에 따라 준페이가 커멘트 입력을 마치자. 파앙!! 경쾌한 효과음이 터지며 캐릭터 주위로 생성된 푸르스름한 베리어가 적들의 탄막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우와아!!”

기대 이상의 연출에 게임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잠시 한숨 돌린 준페이는 재빨리 비어있는 공간으로 빠져 나와 다시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시 밀려드는 탄막에 둘러싸인 준페이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탄막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사이킥 배틀 1스테이지의 탄막은 작고 동글동글한 것과 얇고 길다란 것 두 가지가 각기 다른 스피드로 플레이어에게 향하고 있었다. 준페이 역시 처음 해보는 플레이에 모든 탄막을 전부 피할 순 없었기에 부분부분 날아오는 탄막은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때 게임을 바라보던 한 직원이 말했다.

“적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죽지 않네? 화면 상단에 있는 게 체력 표시인가?”

“사이킥 배틀은 일반적인 슈팅 게임과는 다르게 적의 공격을 한번 맞았다고 폭사하는 건 아닙니다. 격투 게임처럼 HP가 있고, 특수 공격을 사용하는 SP 게이지가 있습니다. SP게이지는 적을 격추시키거나 아이템을 먹어 회복할 수 있어요. 준페이씨 십자키를 앞 뒤 앞 뒤로 이동한 뒤에 B버튼을 눌러 보세요.”

준페이는 나의 조언에 따라 캐릭터를 앞뒤로 움직이며 B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캐릭터 주위로 여러 다발의 레이저 빔이 기괴한 각도로 꺾어져 나가며 적들을 일순간에 소멸 시켜버렸다.

“오오!!! 멋진데!?”

“다음은 상 하 상 하 B버튼”

쩌엉!!!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함께 화면 가득 매워져 있던 탄막들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준페이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플레이 감각을 익힌 준페이는 이후 능숙하게 SP를 채워나가며 스테이지 첫 번째 거대한 곤충 모양의 보스와 대적하게 되었다.

탄막을 피해야하는 슈팅게임에서 거대한 보스가 주는 위압감 타 게임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 보스의 몸집이 커진 만큼 플레이어가 피해야할 공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보스는 좀 사악한 게..

“커헉!! 이게 뭐야!!!”

미사일이 알을 까거든..

처음엔 서서히 플레이어의 숨통을 조여 오듯 날아오던 거대한 탄막은 일정 지점에서 사방으로 퍼지게 설계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연용 컴퓨터 CPU에 엄청난 과부가가 걸리며 급속도로 플레이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은 탄막이라도 날아가는 궤도를 설정하고, 플레이어에 닿았을 경우 데미지를 깎아내야 하는 타격 판정이 존재했기에 수많은 탄의 표현은 시스템에 커다란 무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준페이는 이를 악물은 상태로 천천히 탄막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하게 느껴지면서도 짜릿한 스릴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오.. 마치 슬로우 모션 같군..”

그리고 더 이상 탄막 수의 표현이 불가능 한 한계에 달한 시점. 표현 가능한 탄막의 수를 벗어 날 경우를 대비해 나는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거대한 곤충 보스의 입이 쩍하고 벌어진 것이다.

“뭐야!?”

콰오오옹~!!! 화면 절반 이상을 삼켜 버리는 거대한 레이저 포로 인해 탄막은 말끔히 사리지고, 덤으로 어느 정도 HP를 유지했던 쥰페이의 캐릭터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으아아아!!”

퍼엉~~!!! GAME OVER. 결국 준페이는 첫 번째 보스를 클리어 하지 못하고, 게임을 종료 당했다. 이 게임은 HP가 있는 대신 한번 목숨을 잃으면 그대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슈팅 게임에서 첫 스테이지도 클리어 하지 못하다니..”

준페이는 꽤나 충격을 먹었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준페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보였다.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솔직히 보스를 깨셨으면 좀 곤란 했거든요. 아직 개발 진행이 첫 스테이지만 준비한터라 저도 설마 클리어 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 했습니다.”

그런데 시연이 끝났는데 왜 이리 조용하지? 나는 그래도 박수나 환호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살짝 고개를 돌려 참석자들은 바라보니 다들 하나 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그럼 이상으로 사이킥 배틀의 발표회를 마치겠..”

“우와아아아아!!!!!!!!!”

마치 정지되었던 시간이 풀린 듯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연대 앞에 앉아 있던 준페이 역시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이게 처음으로 만든 게임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

“완전히 새로운 슈팅 게임을 보는 것 같았어!!”

사회를 보고 있던 군페이씨 마저도 나에게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강군이 만드는 거라면 엄청난 녀석이 나올 줄 알았지. 대단해. 깜짝 놀랐어~!!”

“하하.. 감사합니다. 군페이씨.”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단 한명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의자에 기댄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시게루씨는 잠시 후 발표 회장을 나섰다.

민텐도의 신작 게임 발표회는 대성공이었다. 카마우치 사장은 슈퍼 마리지 3와 사이킥 배틀을 본 참석자들의 반응에 성공을 직감했는지 매우 흡족해 하고 있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신작 게임을 시연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재밌는 것은 초기에 큰 호흥을 얻었던 슈퍼 마리지 3보다 사이킥 배틀 쪽에 시연자가 더 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빗발치는 탄막 슈팅이 참가자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사이킥 배틀 첫 스테이지의 반도 채 못가서 게임 오버를 당하기 일 수 였다.

“이거 봐~!! 내가 못한 게 아니라니까? 이 게임이 더럽게 어려운거지..”

준페이는 무너지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보스랑 대적 했던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생글 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너한테 시연하라고 한 거야. 플레이어가 너무 쉽게 죽어버리면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전에 끝나버리니까.”

“너 이 녀석. 날 이용 했구나~!!”

“뭐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그걸 또 이용했다고 생각 하냐? 너도 재밌게 했잖아.”

“음~ 솔직히 짜릿하긴 하더라. 사람들 반응도 좋고.. 내가 보기엔 처음에 발표한 슈퍼 마리지3보다 호흥도가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러자 근처에 있던 민텐도 직원 몇몇이 준페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민텐도 내의 개발자들에게 쿠마모토 시게루씨는 거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준페이는 따가운 눈총에 애써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바.. 밖에서 바람이나 좀 쐴까? 담배나 한 대 태울겸?”

“그래. 커피나 한잔 하자.”

잠시 후 본사 건물 바깥으로 나오자 준페이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푸하~ 분위기 살벌하네.”

“그러게 왜 그런 소리를 했어~ 킥킥”

“아니, 솔직히 말해 그렇잖아. 내 눈이 옹이구멍도 아니고, 딱 봐도 이렇게 티가 날 정도인데?”

“그만 해라. 누가 듣겠다.”

자판기 커피를 건네자. 준페이는 툴툴거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준혁아. 네가 만든 사이킥 배틀 말인데, 네가 소개할 때는 대전 액션이라 했잖아. 그런데 플레이 스타일은 일반적인 슈팅이랑 크게 다른 점은 없던데? 커멘드 요소는 신기 하긴 했지만..”

“아, 그게.. 아직 구현단계지만, 캐릭터 두 명이서 대전도 가능하게 만들 거거든”

“아~ 그렇군. 그런데 그러면 너무 캐릭터 수가 적지 않나? 고작 3명뿐이잖아.”

“두번째 스테이지 부터는 보스 캐릭터가 주인공처럼 초능력자라 클리어 하면 사용할 수 있게 배치해두려고, 최종적으로 6명까지 늘어 날거야.”

“조작 캐릭터가 늘어나는 클리어 요소 구만~!! 기똥찬데?”

준페이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때 자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시게씨였다.

“강군. 게임 개발자가 유저들에게 거짓말을 해선 안 되지.”

“여기 계셨군요. 시게씨. 그런데 제가 거짓말을 하다뇨?”

“네가 만든 사이킥 배틀.. 그 정도 탄막 구현이 현재 패밀리 성능에서 돌아갈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준페이는 갑작스레 나타난 시게씨의 모습에 손으로 입을 가리다가 담뱃불에 데일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거 봐라.. 옛 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엔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았냐..

시게씨는 평소와는 달리 굉장히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시연장에서 참석자들의 반응이 조금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만들 수 있어요.”

“뭐라고..?”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음.. 그건 지금 당장 알려드릴 수 없지만, 기필코 패밀리 기종에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까?”

“무슨 내기를..?”

“네가 만든 사이킥 배틀과 내가 만든 슈퍼 마리지 3 둘 중에 어느 게 더 많이 판매 될지?”

헐.. 이건 또 뭔 집안싸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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