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43화 (43/252)

EP. 11 : 케이스 바이 케이스 (3)

그날 밤. 회사에서 퇴근 한 나는 내 방 전화기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전화기 앞에는 유키씨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와~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 되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화기 앞에서 찌질 거린다고 생각하겠지만, 2015년에 살았던 나에게 남에 집에 전화를 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핸드폰이라도 있었다면 먼저 문자를 보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다짜고짜 전화부터 해야 하다니.. 잠시 수화기를 들고 망설이던 나는 천천히 전화기에 달린 다이얼을 돌려 보았다.

차르륵 소리와 함께 태엽이 감아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고, 이윽고 수화기에서 신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이.. 일단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기 유키씨.. 인가요?”

“아, 유키요? 전 유키 언니인데, 잠시만요~”

윽.. 언니가 있었구나.. 잠시 수화기 너머로 유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시카와 유키입니다.”

“아.. 저.. 그게 전에 드래곤 엠블렘 행사장에서 봤었죠? 강준혁이라고 합니다.”

“아~!! 준혁씨군요~ 안녕하세요.”

“네, 일이 바빠서 연락이 늦었네요.”

“그랬구나.. 전 연락이 없어서 그냥 잊어버리신 줄 알았어요.”

“아.. 아뇨 잊은 건 아니고, 갑작스레 받은 연락처라 좀 어색하기도 하고..”

“저도 그때 엄청 용기 내서 연락처 드린 거거든요?”

“미안해요. 대신 다음에 도쿄 가면 밥 한 번 살게요.”

“언제 오시는데요?”

보통 일본인이라면 이런 말에는 그냥 ‘아니에요~ 괜찮습니다’라고 할 법한테 의외로 스트레이트로 물어보는군.

마침 파이널 프론티어의 차기작으로 펜타곤 소프트에 볼일이 있던 터라 나는 다음에 도쿄에 가기 전에 연락하겠다고 약속 한 뒤에야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 이거 참 83년으로 넘어와도 여자랑 대화하는 건 은근히 긴장되네.. 본사의 여직원들이랑 대화하는 건 상관없는데.. 참 희한해..”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삑~ 디리리리릭~~

이 시대의 컴퓨터는 참 재밌다. 나도 처음에 윈도우 형식이 아닌 프롬프트 형식의 PC를 사용했을 때에는 모든 게 굉장히 어색하게 느꼈지만 지금은 완벽히 익숙해졌다.

프롬프트 명령으로 현재 작업 중인 코딩을 불러온 뒤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래곤 엠블렘의 확장 시나리오 계획은 이미 발매 전부터 생각해두었던 터라 무리 없이 확장 카트리지에 이식을 완료했고, 최근에 나는 또 다른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장르는.. 탄막 슈팅 대전 액션? 정도라 정해두었다.

드래곤 엠블렘은 내가 만들었지만 내 이름까지 공표된 것은 아니었기에 이번에 만드는 작품은 민텐도 라이센스로 내 이름을 걸고 개발할 생각이었다.

&

며칠 후. 민텐도 본사 회의실에서 새로운 게임 제작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이 열렸다. 발표회에는 민텐도 직원뿐만 아니라 패미통신에서 나온 기자들도 몇몇 참석해 있었다.

최초 발표는 시게씨의 슈퍼 마리지 3였다.

게임의 배경 디자인은 단막극의 커튼콜을 차용해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독특한 연출을 선보였다.

특히나 저번에 우동 사건 이후로 너구리 꼬리를 달고 등장한 슈퍼 마리지의 모습은 발표회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도 귀엽다는 평이 자자했다.

너구리 마리지는 일정 스피드 이상 달린 뒤에 점프 버튼을 연타하면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었는데, 깜짝 시연을 보이자 다들 날아오르는 마리오의 모습에 자지러지듯 웃어대었다.

시게씨는 이 요소를 이용해 각 스테이지의 랜드마다 숨겨진 루트를 만들어 다른 스테이지로 건너뛰거나 특이한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차후 마리지 시리즈의 근간을 이루는 아이템은 3에서 죄다 쏟아져 나오는구나.. 너구리로 변신하는 나뭇잎이라던가, 스테이지 마다 숨겨진 루트라던가..’

마지막으로 너구리의 변신 묘기로 불상으로 변하는 마리지를 끝으로 시게씨의 프리젠테이션이 종료 되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래 이런 게 슈퍼 마리지지~!! 시게 녀석이 드디어 정신 차렸군.”

카마우치 사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물개 박수를 쳐대었다. 프리젠테이션 사회를 맡고 있던 군페이씨는 잠시 좌중의 분위기를 진정 시킨 후 다음 게임을 소개하였다. 다음 게임은 현재 아케이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 혼두라의 패밀리 버전. 그리고 더블 드래곤이 소개 되었다.

둘 다 2인용 플레이가 가능하고 현재 아케이드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었기에 회장의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패미통신의 기자 준페이가 군페이씨에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카린의 전설에서 발표하신 신형 휴대용 게임기의 발매는 언제입니까? 가격은요!?”

그러자 군페이씨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매를 검토 중입니다. 유저들의 기대치가 높은 만큼 저희 민텐도에서도 최선을 다해 가격을 조정 중입니다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아마 다음 달 정도즈음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듯하군요.”

“오오오!!!”

“그럼 다음 게임을 마지막으로 이번 신작 발표회를 마치게 되겠는데요. 이번 신작 게임을 담당하는 디렉터는 저 역시 매우 기대가 큰데요.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오리사냥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안 했고, 시게씨와 함께 여러 민텐도 게임의 보조 디렉터로 활약해온 저희 민텐도의 숨겨진 개발자. 강준혁 군을 소개합니다.”

“오오~!!! 덕 헌트의 최초 아이디어 제공자라고?”

“시게씨 말로는 굉장히 유능한 친구라던데, 한국인이라더군요.”

“한국인..? 그러고 보면 드래곤 엠블렘의 기획자도 한국인이라고 했었지?”

군페이씨의 소개에 회장 안이 수근 거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플로피 디스켓을 꺼내들고 단상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신 가운데 저의 첫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군페이씨의 소개대로 저는 아직까지 보조 역할만 수행해 왔을 뿐 메인 디렉터로서 실적을 올릴만한 게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드래곤 엠블렘이 큰 화제가 되었지요? 저 역시 그와 같은 한국인으로서 패밀리 게이머들을 만족할만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 기획한 게임입니다. 장르는 ‘탄막 슈팅 대전 액션’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입니다.”

“탄..막 슈팅.. 대전 액션? 뭐지 그게? 슈팅인가?”

“액션 아냐? 그런데 대전이면 둘이서 싸우는 건가?”

애매모호한 장르 명에 사람들의 수근 거림이 들려오자, 나는 플로티 디스켓을 시연 장치에 꽂은 뒤에 전원을 올렸다.

“혹시 직접 체험해 보실 분 계신가요?”

그러자 뒤에 앉아 있던 준페이가 재빨리 손을 번쩍 들었다.

“이시모토 준페이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준페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단상으로 나왔다.

사실 행사 전 준페이를 만났을 때 사전에 고지해 두었다. 단상에서 체험자를 부르면 제깍 손들고 튀어 나오라고..

물론 다른 사람도 괜찮긴 하지만, 너무 쉽게 죽어버리면 재미가 없기에 어느 정도 난이도에도 시연을 해보일 수 있는 준페이가 제격이었다.

“앞에 놓여 있는 패드를 들어 주시고, 우선 데모로 만든 첫 번째 스테이지를 즐겨주세요. 아~ 게임의 제목은 사이킥 배틀입니다.”

“사이킥 배틀? 초능력 싸움이라.. 뭐 나쁘지 않은데?”

민텐도의 로고가 지나고 사이킥 배틀이라는 문구와 함게 경쾌한 BGM이 흐르자 회장안의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준페이가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매력 적인 3명의 여 주인공들이 떠오르며 캐릭터 선택이 이어졌다.

“여자!? 슈팅 게임이라 하지 않았나?”

“파일럿일 수도 있잖아.”

“아.. 그렇구나..”

이때만 해도 슈팅 게임은 1945나 트윈디의 영향으로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싸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뜬금없이 미모의 여성들이 나오자 파일럿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페이가 고른 캐릭터는 그대로 멋진 컷신과 함께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스테이지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초능력자라는 거군!!”

사이킥 배틀은 횡 스크롤 타입의 슈팅 게임이었다. 굳이 비교해 보자면 오락실에서 한번 쯤 플레이 해보았던 ‘텐가이’가 롤 모델이랄까?

준페이는 스무스하게 앞 뒤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조작하다가 A버튼을 누르자 푸른 빛깔의 미사일이 적에게 날아갔다.

“흐음.. 스테이지로 진입하는 연출은 색다른데, 내용은 평범한 슈팅 게임이군요.”

역시 이 녀석은 친구가 만든 게임도 대놓고 까는구나. 하긴 그래서 더 믿음이 가긴 하지만..

“조금 더 플레이 해보세요.”

슈팅 게임은 딱히 공략이랄 게 없다. 적이 쏘아대는 미사일을 피함과 동시에 격추시키면 그만인 단순한 플레이 방법으로 누구나 손쉽게 적응이 가능했다.

주인공을 노리는 적들 역시 초능력자들도 화면은 순식간에 여러 초능력자들이 몰려와 수많은 탄막을 쏘아 대고 있었다.

“어... 흐어어..!?”

처음에 한 두 개 날아오는 탄막을 가볍게 피해내던 준페이는 점점 화면 가득 차오르는 탄막을 바라보며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긴 전에도 게임 센터에서 이런 신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지. 준페이 녀석은 무언가 한 가지에 엄청 몰입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희안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내 프리젠테이션은 한 남자의 괴이한 신음소리를 제외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사이킥 배틀의 모든 탄막의 속도는 일정치가 않았다.

어떤 탄막은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가 하면 어떤 탄막은 숨 막히게 느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게 화면 가득 차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으어어!!! 으어아아아!!!!”

준페이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모든 탄막을 기가 막히게 피해내고 있었다.

“오~~ 저거 대단한데? 저 사람 패미통신 기자랬나? 게임 내용도 훌륭하지만 어떻게 저 수많은 탄막을 피할 수 있지?”

“그.. 그러게? 난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인데..?”

“으아아~!! 폭탄!! 폭탄!! 이거 폭탄 없어요?”

더 이상 피할 공간을 찾지 못하자 준페이는 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슈팅게임에서 폭탄은 순간 캐릭터에게 무적시간을 내려주는 긴급 회피 용도로 자주 사용되었다.

“십자키를 한바퀴 돌리면서 B버튼.”

“시.. 십자키를 한바퀴?”

그렇다.. 사이킥 배틀은 최초의 커멘드 입력 슈팅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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