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 기묘한 게임 (5)
-카트리나와 미레아.. 둘 중에 누구를 희생 시켜 주인공을 지키겠습니까?-
“뭐라고!!!!!!!!!!!!!!!!!!”
“씨발!!! 안 돼!!!”
“으아아!!! 개발자 개새끼야!!!”
회장 안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는 일동 패닉에 빠졌다. 그렇다.. 드래곤 엠블렘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여주인공 한명의 희생이 무조건 필요했던 것이다. 아군의 회복을 담당하는 최고 사제와 범위 공격의 최강자인 마법사.. 이 두 명의 미녀 중에 한명의 희생으로 25장에 돌입할 수 있는 시스템. 하지만 현재 25장에 돌입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나 혼자 뿐이었다.
“이런.. 이러언~!!!! 정말 흉악하기 그지없는 스토리입니다!! 최고의 힐러냐, 최고의 마법사냐.. 우리는 지금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제작자는 우리더러 저 둘 중에 한명을 선택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하라는 걸까요. 정말 이 게임을 만든 놈은 빌어먹을 디렉터입니다~!!”
최후의 선택지를 앞에 두고 드래곤 엠블렘을 만들어낸 나는 회장에 모인 유저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쳐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참 들어도 기분 좋은 욕이군.. 그만큼 두 명의 캐릭터는 1장부터 주인공과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진정한 동료였기에 누구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최종장을 앞두고 회장 안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두 명중 누구를 희생시키느냐에 즉석에서 투표가 열린 것이다. 유저들끼리 상의를 하는 와중에 나는 잠시 음료수를 삼키며 쉬고 있었다. 그러자 시게씨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카트리나를 살려라. 제발 준혁아. 그녀는 죽게 두면 안 돼.. 최종장에서 힐러는 꼭 필요하다니까?”
“시게씨.. 이거 그냥 게임이에요.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세요..?”
시게씨는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됐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그때 준페이 역시 나에게 슬쩍 다가와 입을 열었다.
“남자라면 섹시 마도사 미레아지. 회복이고 나발이고 단박에 그녀의 마법으로 제압해버려~ 난 미레아에 한 표다. 준혁아.”
“하하.. 그래?”
“아, 글쎄 카트리나를 살리라고!!”
“미레아 라니깐요!!!”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그때 나와 함께 마지막까지 플레이 하던 유키씨가 다가왔다.
“준혁씨..? 라고 불러도 되죠?”
“네.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제가 보기엔 다음 스테이지가 최종장 같은데, 부디 클리어할 수 있도록 준혁씨가 전력에 도움이 되는 캐릭터를 선택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회장 안이 조용해졌다. 그렇다. 중요한건 게임 클리어다. 지금까지 내 플레이를 본 유저들라면 다음번에 드래곤 엠블렘을 손에 넣었을 때 분명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자 회장 안에 있던 유저들은 나를 응원하며 선택권을 나에게 넘겼다.
“일단 유저들의 투표 결과는 52:48로 미레아의 희생을 선택하였습니다만, 우리는 마지막 남은 플레이어 강준혁씨의 선택에 모든 걸 맡기기로 했습니다. 제 마음 같아선 고추 달린 주인공을 희생 시키고 싶지만, 정말 잔인한 플레이 방식이 아닐 수 없군요.. 자~!! 강준혁씨 선택하세요~!! 누구를 희생 시키겠습니까!?”
회장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며 집중하는 유저들을 한번 둘러본 나는 잠시 후 카트리나를 선택했다. 아직은 섹시 보다 숭고한 이미지의 여성상이 선호 되는 시기였기에 그녀의 희생을 선택하는 편이 유저들에게 좀 더 감동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다.
“안 돼에~!!!!”
시게씨의 비명과 함께 주인공 앞을 막아선 카트리나는 암흑신의 공격을 대신 받아 사망하고 주인공은 쓰러진 카트리나를 끌어안은 채 최종 각성 클래스 신성의 검투사가 되어 암흑신과 맞서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밌는 건 누굴 희생 시키느냐에 따라 각성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 카트리나 대신미레아를 희생 시켰다면 주인공은 폭풍의 광전사로 돌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둘 다 사망한 상태라면 어떻게 되냐구? 그러면 각성은 없다. 따라서 클리어가 굉장히 힘들어 지고, 운이 좋아 클리어 한다고 쳐도 진 엔딩 따위는 없다.
“우오.. 주인공이 분노했어. 어마어마한 공격력이다.”
몸주변에 푸른 오오라를 띄고 있는 주인공이 게임 안에서 화려한 검격을 펼치자 유저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남자들이라면 ‘각성’, ‘변신’, ‘합체’에 미치도록 열광하는 특징이 있지.. 아니다. 21세기에도 남자는 별반 다를 게 없긴 하구나..
“가라~!! 암흑신을 없애버려!!!”
주인공의 각성 탓에 최종장은 오히려 23장이나 24장보다 쉬운 편이었다. 거의 1:1로 암흑신과 맞붙은 주인공은 엄청난 공격력으로 암흑신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완전이 감정이 이입된 유저들은 고래고래 소리치며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암흑신은 주인공의 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와아아아~!!!!! 끝났다~!! 엔딩이다!!!”
“후우.. 끝났네..”
나 역시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혈투를 마치니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것만 같았다. 회장의 거대한 프로젝터에서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카트리나의 장례식이 거행되자, 유저들은 마지막 선택의 강요에 분개하며 눈물로 그녀의 장례식을 지켜보았다.
엔딩은 숭고한 그녀의 희생과 주인공의 각성에 감탄하며 유저들은 저마다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훌륭한 게임이었어. 진짜 대단한 스토리야..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군..”
시게씨 역시 먹먹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유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감동에 젖어 있었고, 준페이는 후련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드래곤 엠블렘을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패밀리 게임을 즐겨하는 한국인 개발자입니다. 드래곤 엠블렘은 제가 1년이란 시간 동안 혼자서 만들어낸 게임입니다.-
“하.. 한국인 개발자라고!?”
“저 드래곤 엠블렘을 혼자서 만들었다고!?”
최초의 메시지에 회장 안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일본의 게임 회사가 만들어낸 게임일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외국에서 만들어낸 게임이라니.. 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분께 최초로 선보인 이 게임의 장르는 시뮬레이션 RPG입니다. 극단적인 연출을 위해 유저 분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이 메시지를 보는 분이라면 지금까지 플레이 해왔던 어느 게임보다 감동과 성취감에 젖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클리어 데이터는 차후 이어지는 후속편에서 추가 요소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부디 카트리지를 잘 보관하시어 새롭게 이어지는 스토리를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우와아.. 역시 후속편이 나오는구나!!! 우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내가 최초로 읽게 될 줄이야.. 나는 싱긋 웃으며 패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준페이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강준혁씨? 혹시 이 드레곤 엠블렘의 카트리지를 저희 패미통신에 넘기실 생각은 없나요? 10만엔의 상금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행사장에 있던 한 유저가 외쳤다.
“저한테 파세요!! 제가 12만엔 드릴께요~!!”
“아뇨!! 저한테 파세요!! 15만엔 드리겠습니다~!!!”
헐.. 즉석 경매냐? 나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입찰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래곤 엠블렘의 유저 층은 어린이들 보다 2~30대의 어른들이 훨씬 많았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유저들이다보니 가격은 순식간에 30만엔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저기.. 잠시만요.”
내가 그들을 진정 시키자, 가격을 입찰한 유저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민텐도 직원입니다. 경매를 유도해서 이 게임을 넘기고 싶지 않아요. 저는 여러분들과 패미통신에서 제공한 이벤트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생각합니다. 이 드래곤 엠블렘의 클리어 카트리지는 마지막에 안타깝게 떨어진 유키씨에게 증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옆에 있던 유키는 나의 말에 깜짝 놀라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나는 살짝 웃으며 패밀리에서 카트리지를 뽑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받아요. 유키씨는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아.. 이걸 제가 받아도 될지..”
“소중히 보관해 주세요. 나중에 연결되는 요소가 있다고 하니까..”
“감.. 사합니다.”
유키씨는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준페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녀석은 깜짝 놀라 어버버 거리며 사회를 이어갔다.
“이.. 이로써 드래곤 엠블렘의 토벌 미션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강준혁씨의 플레이 데이터는 다음 달 패미통신에 기재하여 유저 분들 모두가 클리어 할 수 있도록 자세히 수록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금까지 사회의 이미모토 준페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의 박수 속에 패미통신의 이벤트가 막을 내렸다. 내가 클리어한 드래곤 엠블렘의 카트리지가 유키에게 전달되었지만, 아무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게이머로서 훌륭했기 때문이리라.. 뭐 그녀의 미모 역시 일조한 게 있고..
“저기..”
행사를 마치고 시게씨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등 뒤에서 유키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곤 조그만 메모지 하나를 건네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이거.. 제 연락처인데, 괜찮으시면 연락주세요.. 그럼 실례 했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메모지를 손에 든 채로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게씨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주 한건 제대로 터뜨리셨네요~ 강준혁군? 킥킥”
“놀리지 마세요. 시게씨..”
“저 외모에 게임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잘해 봐 인마~ 요새 저런 여자가 어딨어~”
“하하.. 글쎄요..”
“그런데, 대단하긴 대단하다. 드래곤 엠블렘.. 어떻게 플레이어에게 그런 선택권을 넘겨줄 수 있지? 거기다 모든 레벨 디자인을 혼자 만들어 내었고 말야..”
“그러게요.. 저도 24장에선 진짜 놀랐어요.”
“뭔가 게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느낀 하루인 것 같아. 한국에 그런 엄청난 녀석이 숨어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당신 바로 옆에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풀죽어 있는 시게씨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우리 라멘이나 하나 먹고 갈까요?”
“네가 쏘는 거냐?”
“아~ 진짜 직장 상사가 쪼잔하게..”
“너랑 나랑 월급 차이 얼마나 난다고 그래 강부장~!!”
“알겠습니다. 제가 살게요~”
“교자(군만두 도 사줭~~~”
“으이구~ 진짜..”
&
-드래곤 엠블렘 본격 해체!! 이제 당신도 클리어 할 수 있다!!!-
나의 플레이 데이터를 등에 업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패미통신은 역대 최다 발행 부수를 순식간에 돌파하며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준페이는 드래곤 엠블렘에게 40점 만점의 리뷰 점수를 내주면서도 오히려 리뷰 점수가 40점이 한계인 게 안타까울 정도라며 극찬 했기에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렇군. 이제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클리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수요가 더 늘어 가겠지?
돈을 버는 건 좋지만, 너무 중고 가격이 치솟아 버리면 다양한 유저가 플레이 할 수 없다. 다음 수를 준비해야겠어..
도쿄 출장 중에 아키바 뒷골목에 들린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에 장막을 걷고 첸드라의 작업장에 들어갔다.
“강~ 강~ 강이 왔다.”
“오~ 강이다. 우리 열심히 일한다. 보.. 보수 원한다. 마니 원한다.”
오랜만에 작업장에 들리자 첸드라의 동료들이 나를 바라보며 인사하였다. 아직 일본어에 서투른 그들은 말을 버벅이며 히죽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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