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9화 (39/252)

EP. 10 : 기묘한 게임 (4)

이 달 발매한 최신호 패미통신에서 참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드래곤 엠블렘을 플레이한 유저들을 한데 모아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벤트 명이 뭐라더라 켠김에 왕까지..랬나?

총 25스테이지까지 준비한 드래곤 엠블렘의 공략을 위해 공문을 내걸자,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행사에 참가의사를 밝혔고, 그런 유저들의 반응을 조사를 위해 민텐도 대표로 나와 시게씨가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벌써 게임 개발만 5년차이지만, 이런 진귀한 행사는 처음 본다.”

아침을 거르고 온 탓에 제과점 빵과 우유를 삼키며 시게씨가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 있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유저들은 저마다 비장한 표정으로 행사장에 마련된 각자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패미통신에서 준비한 드래곤 엠블렘은 총 100대.. 전국에 중고 매장을 싹쓸이 해서 얻어낸 패미통신 최대 행사였기에 나와 시게씨를 포함한 100명의 유저들이 드래곤 엠블렘을 클리어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플레이어는 대부분 남자였지만, 중간중간 여성유저도 섞여 있었는데 성비로 치면 9:1 수준이랄까? 그래도 이 시기에 여성 유저는 거의 천연 기념물 수준이었기에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충분했다.

“안녕하십니까~ 유저 여러분. 이번 드래곤 엠블렘 토벌대의 참가자겸 사회를 맡게 된 패미통신 기자. 이시모토 준페이입니다.”

토벌대라니.. 이름 한번 살벌하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이라면 드래곤 엠블렘의 극악무도한 난이도에 몇 번이고 무릎을 꿇은 용사중의 용사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가지 저희 패미통신에서 알아낸 정보를 알려드리고 곧바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쪽을 봐주세요!!”

군페이가 행사장 벽면을 가리키자 프로젝터를 이용한 간단한 게임 소개가 펼쳐졌다.

“드래곤 엠블렘을 개발한 회사와 제작자는 아직까지 비밀에 묻혀 있습니다. 아마도 게임을 클리어 한다면 스탭롤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니 오늘 여러분들 중에 누군가가 이 게임을 클리어 한다면 우리는 이 게임이 대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그 수수께끼가 풀리게 될 것입니다~!!”

“우오오오!!!!!!!”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마왕을 타도하기 위해 모여든 병사들의 사기가 대단했다. 중간 중간의 여성 유저들까지도 목청껏 소리치는게 뭔가 악에 바친듯해 보일 정도였다.

하긴 초기에 천엔에 구입했다가 나중엔 20000엔가량 주고 사도 클리어를 못했으니 악에 바칠만 하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들의 외침에 동조했다.

준페이는 회장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 뒤 설명을 계속했다.

“여러분 떠올려 보십시오.. 저는 이 게임을 5개나 구입했습니다. 최고로 오래간 스테이지는 18스테이지. 암흑룡의 성전에서 무릎을 꿇어야했습니다. 5개중 1개는 지인의 도움으로 플레이를 시작했으나, 그 이후 구입한 4개의 카트리지의 가격만 7만엔의 돈을 꼴아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금액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도 비슷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전 20만엔이나 썼다구요!!!!”

한 유저가 진심으로 빡친 목소리로 소리치자, 준페이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건 그쪽이 게임에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얼굴이 붉어진 플레이어는 굳게 입을 다물었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게스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거나, 인신 모독하는 발언이 공공연했기에 약간의 비꼼은 일본인들 특유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자~ 진정들 하시고, 방금 이야기 하신 유저 분처럼 이 게임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분도 있기에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게임 안에서 적에게 사망한 캐릭터는 그래도 데이터가 삭제된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테니, 그건 넘어 가도록 하고 병사의 클래스에 관한 상성 관계를 간략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창병은 기병에게 효과 적이고, 기병은 검사한테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검사는 창병에게 효과적인 가위바위보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죠. 궁수는 두 칸 뒤에서 적을 공격하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며 용기사에게 효과 적입니다. 하지만 방어력이 낮으니 조심하세요.

용기사는 모든 클래스에 효과적인 공격을 하지만 화살엔 쥐약입니다. 딱!! 여기 까지만 알고 주의하시며 플레이 하시면 우리는 오늘 분명 이 게임의 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우와아아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게임을 클리어 하신 유저가 있으시다면, 저희 패미통신에 카트리지를 기증해 주시는 분에 한해 10만엔의 상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부디 꼭 이 자리에서 최초 클리어 유저가 탄생하길 바랍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해 주세요!!”

“오우!!!”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과도 같은 함성과 함께 행사장 곳곳에서 게임에서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의 서곡이 흘렀다.

“크흐~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보자.”

아까부터 묘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시게씨의 모습에 웃음을 삼키며 나 역시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그럼.. 이제 클리어를 해볼까?

행사가 시작하고 약 1시간이 흐르고, 스테이지 5장쯤에서 20명의 유저가 대거 탈락했다.

최초에 등장하는 거대 괴수의 공격을 단 한 명의 캐릭터도 잃지 않고 6장으로 넘어가는 게 포인트인 5장에선 나 역시 신중하게 주인공 캐릭터를 앞장 세워 적의 눈길을 끌며 궁수로 지속 적인 데미지를 가한 결과 첫 번째 난관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명이라도 캐릭터를 잃은 유저는 8장부터 서서히 적군의 공세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10장에서 약 30명의 유저가 또다시 대거 탈락했다.

“아~ 여러분. 조금 더 힘을 내주세요. 이 게임은 체스와 마찬가지입니다. 캐릭터 이동 하나하나에 신중하지 않으면 금방 벨런스가 붕괴되기에 캐릭터를 하나라도 잃는 순간 이미 클리어가 불가능 합니다. 혹시 10장까지 캐릭터를 하나도 잃지 않은 유저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그러자 나와 시게씨를 포함한 약 20명가량의 유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아직 가능성은 있습니다. 할 수 있어요!! 여러분 부디 이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힘내라~!! 우와아아!!”

응원하는 플레이어 들 중에는 예전에 서점에서 보았던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저 녀석들도 게임을 구해서 해봤구나.

10장부터 드래곤 엠블렘은 스토리상 적군의 마왕이 깨어나며 난이도가 대폭 상승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골고루 캐릭터를 키우지 않았다면 슬슬 적의 공세에 버티기 힘들어진다.

옆에 앉아 있는 시게루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적의 파상 공세에 맞서 최대한 적을 뭉쳐둔 뒤에 마법사의 공격으로 범위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15장.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성검을 찾아 나서는 스테이지에서 시게씨는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상점에서 회복 지팡이의 보급을 깜빡하고 스테이지를 시작해버린 것이다. 드래곤 엠블렘은 스테이지 시작과 동시에 기존 세이브 데이터를 지워버리는 오토세이브 방식을 차용했기에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으아아아!!!! 실수했다!!”

시게씨의 비명이 행사장에 길게 울려 퍼졌다. 그는 최대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카트리나가.. 카트리나가!!!!! 으아아~!!”

또 다시 여주인공을 잃고 말았다. 카트리나는 대사제이기에 체력은 약하지만 아군의 회복을 담당하기에 전력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를 15장에서 잃었다는 것은 이미 게임 클리어는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었다.

패닉에 빠진 시게루씨는 냉정함을 잃고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친 결과 18장 암흑룡의 성전에서 참패를 맛보게 되었다.

“비.. 빌어먹을.. 결국 여기까진가..”

아침 9시에 시작한 행사는 오후 6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100명의 유저들 중에 나를 포함한 11명이 스테이지 20장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중에 아직까지 단 한명의 캐릭터도 잃지 않는 유저는 4명. 놀랍게도 그중엔 여성 유저도 한명이 끼어있었다.

“아아~ 치열합니다. 극악무도, 흉악무도한 드래곤 엠블렘의 클리어를 위한 여정에 11명의 플레이어가 고군분투중입니다. 아~!! 방금 말씀 드린 순간.. 2명의 플레이어가 게임오버를 당했네요. 이제 9명!! 여러분들의 응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미 19스테이지에서 게임오버 당한 준페이는 사회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 역시 21장에 들어서자 욕이 나올 정도로 게임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디자인한 레벨이지만, 이건 좀 심하긴 하다.’

최전방에는 빛의 검을 장착한 주인공의 절대적인 공격력과 중 장갑으로 탱커 역할을 담당하는 보병 기사는 이미 최종 클래스 단계로 진화한 상태로 보스와 마주하고 있었고, 그들 뒤의 카트리나 역시 대 사제에서 신의 사자로 마지막 클래스에 달한 상태였다.

궁수는 매의 눈 스킬을 입수해 10칸 밖에서 초장거리 저격으로 주인공 일행을 돕고 있었고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캐릭터들은 적군의 조무래기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커버를 치고 있었다.

“대체 이 게임의 끝은 어디 일까요? 100명의 유저들에게 조사 결과 20장이 최종장을 예상했지만 이미 게임은 23장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9시.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유저들 모두 단 한분도 돌아가지 않고 숨죽여 게임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23장에 마침내 등장한 마왕!! 그리고 남은 유저는 5명!! 그중에 놀랍게도 아직까지 모든 캐릭터를 잃지 않고 돌입한 유저가 두 분이 있습니다.

바로 민텐도 소속 직원인 한국인 강준혁씨와 미모의 여성 플레이어 유키씨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두 명 중에 한분이 이 게임의 끝장을 볼 것만 같은 데요~!!”

23장.. 마왕 쓰러지다. 편은 오히려 최종장인 25장보다 훨씬 어렵다. 그 이유는..

“아!! 마침내!! 마왕이 쓰러졌습니다!! 드디어 주인공 일행을 그토록 고생 시킨 마왕이 지금 방금 사토시라는 플레이어의 손에 최초로 쓰러졌습니다~!!”

“우와아아앙~!!”

마왕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흩어져서 생존자들의 게임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사토시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마왕의 침몰에 안심하는 와중에 게임 안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때 화면 안에 메시지 창이 떠오르며 암흑신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다.

“아.. 암흑신!? 설마 지금? 이런!!”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마왕의 몸 안에서 암흑신이 깨어남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캐릭터들에게 크리티컬 데미지가 들어갔다.

“안 돼!!!”

일격에 사토시라는 플레이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반수 가까이의 캐릭터를 모두 잃었다. 그리고 깨어난 암흑신의 마법 한방에 플레이 화면에는 붉은 표시로 GAME OVER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런 젠장 맞을!!!”

콰앙!! 뒤통수를 얻어맞은 레벨 디자인에 화가 난 사토시는 게임 패드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의 숭고한 희생 덕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는 마왕을 죽이기 전 아군을 최대한 뒤로 물러서게 하는 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두 명의 궁수로 초장거리 저격을 이용해 마왕을 물리친 덕분에 암흑신 강림까지 한명의 캐릭터도 잃지 않았다.

23장에서 주인공 일행에게 타격을 입은 암흑신은 최종전쟁을 예고하며 사라지고, 드래곤 엠블렘의 스토리는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었다.

“후우... 피곤하네..”

무사히 23장을 돌파한 플레이어는 유키씨와 나 단 둘 뿐이다. 하지만 유키씨 역시 23장에서 궁수 한명과 사제 하나, 탱커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24장에 돌입하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벤트 회장의 관계자 역시 탈락한 플레이어 들이 게임 화면을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전면에 설치된 거대한 프로젝터에 게임 화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화질 열화가 심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유저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 거의 다 오게 되었습니다. 유키씨와 강준혁씨. 100명의 유저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힘내라~!! 우리에게 이 게임의 끝을 보여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응원 소리와 함께 한차례 나와 눈이 마주친 유키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24장에 돌입하였다. 암흑신과의 최종 결전은 24장과 25장. 두 스테이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이미 23장에서 중요 전력을 잃어버린 유키씨는 초반부터 적의 공세에 밀려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25장의 결전에 대비해 신궁의 클래스에 도달한 두 명의 궁수를 이용해 밀려오는 적들을 가볍게 쳐내고 있었다. 결국 신궁 캐릭터가 한 명뿐인 유키씨는 전력에 구멍이 생기며 적군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 24장에서 유키씨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녀 역시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군요. 대체 이 빌어먹을 게임을 만든 제작자가 누구길래 이토록 아름다운 미인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걸까요~!!”

저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나는 준페이의 어이없는 해설에 헛웃음을 삼키며 게임에 집중했다. 그때 게임을 마치고 회장을 벗어나던 유키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부디 끝까지 힘내주세요..”

“아, 네..”

나는 몰려드는 적군을 차례차례 커버 하며 적의 공격이 멈추길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적군 모든 병사가 쓰러지고 암흑신만을 남겨 두었다. 이미 최종 클래스에 마지막 레벨을 찍은 주인공과 그 동료들은 암흑신을 둘러쌓은 채 파상공격을 펼치기 시작했고, 회장 안의 사람들 손에 땀을 쥐며 나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24장의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주인공 앞에서 암흑신이 2차 변신을 시도했다.

그 순간 시게루씨가 그토록 사랑에 마지않던 여주인공 카트리나와 또 다른 여주인공 격인 마법사 미레아가 암흑신을 막아서며 게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떠오른 상태 메시지에 나는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카트리나와 미레아.. 둘 중에 누구를 희생 시켜 주인공을 지키겠습니까?-

“뭐라고!!!!!!!!!!!!!!!!!!”

“씨발!!! 안 돼!!!”

“으아아!!! 개발자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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