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8화 (38/252)

EP. 10 : 기묘한 게임 (3)

-야후로 되어 있던 이메일 주소를 차후 스토리에 변경이 있어 수정하였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mail protected] 대체 이게 무얼 뜻하는 걸까요? 그리고, 절대로 이 게임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To Be Continue.. 즉 후속 작을 암시하고 있다는 거죠. 아마 저 알파벳 기호는 차기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패스워드 같은데, 후속작과 이런 연결 고리를 만들어 버리면 쉽게 중고로 되 팔수도 없지요. 누군지 모르지만, 게임 시장에 대해서도 굉장히 전문적인 느낌이 들 정도의 마케팅 실력입니다.”

그때 군페이씨가 시게씨의 말한 알파벳을 중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E-메일 주소 같은데?”

역시, 민텐도 최강 공돌이답다. 1987년도 시기에 E-메일 주소 형식을 알고 있다니.. 소름끼친다. 아직 인터넷이라 불릴 만한 통신망은 군사 활용 목적의 인트라넷 정도밖에 없던 시기라 민간인이 저 뜻을 이해할 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군페이씨도 나처럼 미래에서 온 거 아냐?

“E-메일? 군페이씨는 이 알파벳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겁니까?”

“아니.. 그건 나도 모르네. 저 형식은 이를테면 통신망에서 사용하는 자네의 집주소와도 같은 것이야. 편지가 배송 될 주소를 보고 내용까지 알 순 없지 않은가?”

캬~ 비유보소. 감탄을 금치 못하겠네.. 나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군페이씨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신망? 집주소? 군페이씨.. 제가 게임만 개발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알기 쉽게 설명을 좀..”

음.. 저것보다 더 쉽게 설명이 가능 하려나? 나는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군페이씨를 대신해 시게씨에게 답해주었다.

“시게루씨 집에 전화기 있죠?”

“그럼 있지. 요새 집에 전화기 없는 사람이 어딨어?”

“전화기는 통신기기 잖아요.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그렇..지?”

“군페이씨가 말하는 건 저 알파벳이 전화번호라는거에요. 컴퓨터를 통해 멀리 있는 사람에게 저 주소로 전자우편을 보내는 거죠.”

“그래!! 강군!! 맞아~!! 내말이 그 말이야~ 역시 강군이라면 알아줄 것 같았어~!!”

제 입장에선 그 형식을 이미 알고 있는 당신이 더 괴물 같아 보입니다만.. 그때 카마우치 사장은 시게씨의 말에 두 눈을 감으며 물었다.

“끄응.. 아무튼 결론은 그런 게임의 후속작이 또 나올 수 있다는 거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시게루군. 지금 그 게임 가격이 얼마라 그랬지?”

“음.. 처음에 1000엔 으로 시작했던 가격이 현재 프리미엄이 붙어 15000엔 가까이 치솟고 있어요. 굉장히 비상식적인 가격이지만 여전히 수요는 대단합니다. 아직 클리어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유저들의 도전욕을 자극하는 면이 있고, 보통 방법으론 구할 수 없다는 희귀품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인 듯한데..”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모르지만, 한번 만나 볼 수만 있다면 억만금을 줘서라도 채용하고 싶군. 그만큼 군중심리를 이용할 줄 아는 개발자라니..”

이미 채용중이십니다만.. 카마우치 사장의 러브콜에 묘한 기분 들어 볼을 긁적이고 있는데, 군페이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게임 개발에 대해 시게루나 강군 만큼 잘 아는 건 아닌데, 시게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

“네. 저희가 만드는 카트리지는 흔히 롬 팩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아, 카마우치 사장님 롬 팩이 뭐냐면..”

그러자 카마우치 사장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군페이씨의 말을 받아쳤다.

“아오.. 그 설명하는 버릇 좀 버리고, 본론만 좀 얘기해보게..”

“아니. 이건 설명을 꼭 해드려야 이해가 가실 겁니다. ROM 이란 Read only memory. 즉 읽기만 가능한 메모리라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ROM 형식의 카트리지에 또 다른 데이터를 쓰거나 삭제, 변형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드래곤 엠블렘은 플레이 방식에 따라 데이터 자체를 삭제 시키고 있어요.”

그 순간 탁자 밑에서 펜슬을 돌리던 내 손놀림이 멈칫했다. 어라..?

“시게루군. 자네 혹시 그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 혹시 지금 가지고 있나?”

“네, 개발실에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구조 좀 파악해 보려는데, 시스템에 강력한 LOCK이 걸려있더군요..”

“그렇군. 그럼 회의가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을까? 그 카트리지의 내부를 좀 봐야겠어.”

&

결국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회의는 카마우치 사장의 한마디로 종결이 났다.

-드래곤 엠블렘과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정식 유통 시킨다.-

SRPG 장르의 매력과 시장성을 고려해 최단 기간 내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라는 지시였다.

하지만,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을 표방했다는 인식을 안고 가야하는 입장에서 시게씨는 카마우치 사장의 개발 지시를 거절했고, 나 역시 최근에 신형 콘솔 제작으로 외주 업체와 접선이 잦았던 탓에 개발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민텐도에 가장 협조적인 하청기업중 하나인 인텔릭 시스템즈에 외주 요청을 넣어 새로운 엠블렘 시리즈 개발을 맡기게 되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따온 게임이 본래 원작을 만들었던 회사로 외주 요청이 들어가다니.. 이야기가 재밌게 흘러가네?

잠시 후. 나와 시게씨 그리고 군페이씨는 개발실에 둘러 앉아 드래곤 엠블렘 카트리지를 개봉하게 되었다. 군페이씨가 직접 뜯어본다면 나만 알고 있던 비밀하나가 공개 되겠군.

일자 드라이버로 게임 카트리지를 뜯어내고 ROM 카트리지를 이루고 있는 칩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게씨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군페이씨에게 물었다.

“뭔가 좀 특이한 게 있나요?”

그러자 군페이씨는 갑자기 식은땀까지 흘려대며 중얼 거렸다.

“시게루군. 이 게임의 초기 중고 샵 가격이 천엔이었다고?”

“음.. 소문으로는 그렇더군요. 지금은 희소성에 프리미엄이 붙어 있지만..”

“이런, 어느 미친놈이 이걸 천엔도 안 되는 가격으로 중고샵에 팔아넘긴 거지?”

“왜요? 뭔가 특이한 점이 있나요?”

“우선은 이 카트리지는 드래곤 엠블렘 전용으로 제작 된 게 아냐. 다른 게임 카트리지를 공수해 와서 그 안에 다른 칩을 박아 넣어 개조한 모조품일세.”

“허~ 그 말은 지금 이미 제작 되어 출시된 게임 안에 다른 게임을 넣었다는 건가요? 그런데 군페이씨 말대로 ROM 카트리지는 데이터 삭제가 불가능하잖아요?”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경로를 교묘히 바꾸었어. 기존의 게임이 아닌 커스텀 칩에 있는 데이터를 읽을 수 있도록..”

“커스텀 칩? 그건 또 뭔가요?”

“데이터를 읽고 쓰기가 가능한 작은 저장 장치야.. 24kb 용량 안에서 마음대로 내부에 데이터를 변경할 수 있지. 그래 이거라면 플레이 방식에 따라 데이터를 아예 삭제해버리는 게 가능하지. 그런데 굳이 완성된 게임에 어째서 이런 기능을 넣었는지 의도를 알 수 없군..”

군페이씨는 내부에 달려 있는 칩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사실 의도랄 건 없는데? 굳이 의도를 물으신다면,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를 잃은 상실감. 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이건 카트리나를 잃은 시게루씨의 반응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그리고 극한의 난이도를 클리어하는 것에 대한 도전 의식?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의 기술인 ROM 형식의 데이터 칩으로는 플레이 형식에 따라 캐릭터나 게임 데이터 아예 삭제해 버리는 극단적인 연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릴 때 용산에서 보았던 신기한 롬팩을 떠올렸다.

흔히 UFO라 불리던 이것은 게임 카트리지를 복사할 수 있는 장치였다.

UFO 장치에 커스텀 팩이라 불리던 팩을 앞에 꽂고, 복사하고 싶은 게임을 뒤에 꽂아서 카피 버튼을 누르면 게임팩 안에 있는 데이터가 커스텀팩에 복사가 되는 형식이었는데, 롬팩 불법 복제의 시초라 볼수 있었다.

재밌는 건 복사된 게임을 지우고, 다른 게임을 또 입힐 수가 있었기에 혹시나 그런 기술이 현재에도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게임 & 워치를 통해 아키하바라 전자 상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첸드라라는 이름의 인도인을..

복잡하게 얽힌 아키하바라의 상가 골목에서 컴퓨터용 주변 기기를 판매하던 그는 겉으로는 PC용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그건 위장일 뿐. 내부에 따로 패밀리용 복사 팩을 만들어 불법 유통을 하고 있었다.

며칠간 그의 주변을 맴돌며 꼬리가 밟히길 기다리다가 업자에게 물건을 넘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치고 들어간 나는 경찰에 신고를 빌미로 그의 약점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느냐? 뭐 그야 뻔하지.. 인도산 공돌이를 갈아 넣어 커스텀 칩을 기존의 카트리지에 이식하는 작업을 맡겼다.

처음엔 비협조적이었던 첸드라와 그 동료들에게 불법 복제 카트리지를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안겨주자 일은 쉽게 풀렸다. 덕분에 초기 자본은 꽤나 많이 들어갔지만, 상품의 희소성으로 가치가 점점 올라 최근에 와서야 손익 분기점을 넘기 시작했다.

“이제야 드래곤 엠블렘이 왜 중고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는지 이해가 되는군.”

군페이씨는 의문이 풀렸는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 슈퍼마리지를 개발 할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시게루씨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왜 이만한 게임을 정식 루트를 통하지 않았는지 군페이씨는 아시겠습니까?”

“정식 루트를 통과해버리면 드래곤 엠블렘은 특유의 게임성을 잃어버리고 말테니까. 생각해보게 정식 유통망을 이용한다면 게임의 가격을 정해버리지 않나? 이 안에 쓰인 커스텀 칩의 가격만 8000엔이라네.

우리 민텐도는 소비자 보호법상 게임 카트리지 개당 가격을 최대 6000엔으로 정하고 있어. 만약에 이 커스텀 칩을 그대로 달고 출시했으면 어마어마한 적자를 보았을 테지..

그리고 초도 물량 1만개를 풀어버리면 지금과 같은 희소성을 얻기도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가격 형성이 자유로운 중고 시장을 노린 거겠지. 드래곤 엠블렘은 철저하게 우리 민텐도 카트리지 생산 방식의 허점을 제대로 뚫고 들어간 게임이로군..”

군페이씨의 설명에 시게루씨와 주변의 개발자들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물론 나 역시 군페이씨의 추리력에 실제로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세상에 커스텀 칩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간파해 내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

이 달 발매한 최신호 패미통신에서 참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드래곤 엠블렘을 플레이한 유저들을 한데 모아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벤트 이름이 뭐라더라..? 그.. 켠김에 왕까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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