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6화 (36/252)

EP. 10 : 기묘한 게임 (1)

&

1987년의 어느 봄 날.. 파이널 프론티어라는 게임이 소리 소문 없이 출시되었다.

크리스탈의 가호를 받아 어둠을 물리치는 전사에 대한 이야기는 발매 초기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게임 발매 후 1주일 동안 파이널 프론티어는 야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에 힘입어 약 3천개 정도가 팔려 나갔다. 물론 전작인 킹즈 퀘스트의 판매량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지만, 카와구치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 디렉터로서 제 자질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침울한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나 역시 본사에서 일이 바빠 최근에 도쿄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기에 지금 나는 퇴근 후 기숙사에서 카와구치씨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너무 그렇게 침울해 하실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번 달에 출간 될 패미통신의 리뷰도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그래도 제가 준비했던 마지막 게임을 끝까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씨. 정말로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그 동안 출시 준비로 고생하셨는데, 며칠 마음 비우고 푹 쉬세요.”

“안 그래도 바다낚시나 며칠 다녀올까 생각중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먼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면 좋은 소식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말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그럼 다녀와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카와구치씨와 연락을 끊은 나는 곧바로 패미통신 기자인 준페이에게 연락을 넣었다.

이전에 카린의 전설 황금 카트리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언질해 준 덕에 지금에 와서는 나와 꽤나 가까운 친구 중에 하나였다.

인터넷이 없는 시기에 유일한 게임 정보는 오직 잡지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게임의 마케팅 역시 마찬가지 방식을 통해야만 했다. 잠시 후. 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연신 타자를 쳐대는 소리가 수화기 넘어도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패미통신의 이시모토 준페이입니다.”

“준페이냐? 아직 퇴근 안했네?”

나와 동갑인 준페이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 듯 말을 빨리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덕분에 준페이의 말은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감 날짜 때문에 죽겠다 죽겠어. 해야 할 게임은 산더미인데, 이걸 언제 다 해보고 리뷰기사를 써야할지 돌아버리겠다.”

“많이 바쁘구나, 혹시 10일 전쯤에 출시한 파이널 프론티어 리뷰 점수 나왔어?”

“파이널 프론티어? 글쎄.. 나만 리뷰 기사를 쓰는 게 아니니까. 아마 다른 사람이 해보지 않았을까?”

“해보지 않았을까? 라니.. 무슨 대답이 그래?”

“너도 알다시피 요즘 패밀리로 나오는 게임이 한 두 개냐? 내가 지금 몸이 3개라도 모자라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라니까?”

“고양이가 썼든 강아지가 썼든 아무튼 파이널 프론티어 리뷰 작성이 들어갔는지 좀 알아봐줘.”

“지금?”

“응. 지금.”

“야야, 나 좀 봐줘라~ 응? 나 지금 이틀째 집에도 못 들어갔단 말야~”

“저런, 저런.. 그러니 어서 확인 좀 해주고, 집에 들어가 쉬어~”

“독한 새끼.”

“칭찬 고맙다.”

곧 이어 준페이가 다른 직원들에게 파이널 프론티어 리뷰를 작성한 사람이 있냐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니. 아직 쓴사람이 없다는데? 이번에 출시된 게임이 많아서 파이널 프론티어 리뷰는 다음 달로 미뤄야겠다.”

“뭐!? 야 방금 나온 최신 게임을 다음 달 리뷰로 밀어버리면 그게 무슨 게임 잡지야?”

“방금 나온 최신 게임이 한 두 개여야 말이지. 나야 리뷰어지만 게임 공략 팀 애들은 거의 반 시체 상태나 다름없어. 쟤네 2주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게임만 하고 있다니까?”

“그럼 나를 봐서 네가 파이널 프론티어 리뷰 좀 써줘라. 그리고 어떻게든 이번 달 최신호에 좀 실어 봐.”

“으잉? 뭐라구!?”

“너 전에 카린의 전설 한정판 기사 대박 터져서 나한테 빚 하나졌지? 그거 갚는다고 생각해.”

“준혁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부탁한다. 준페이. 친구 잖냐~ 응?”

“아~ 진짜 오늘은 집에 좀 가려고 했더니만..”

“그래도 플레이 해 봐. 내가 추천 하는 녀석이니 재밌을 거야.”

“네 말이니까 바로 해보긴 할텐데, 너 쓰레기 게임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마감 끝나면 좋은데 가서 술 한 잔 살테니 힘 좀 써봐~!!”

“조.. 좋은데? 그래 알았어. 너 그 약속 꼭 지켜라~!!”

“알았다. 인마~ 수고해.”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뒤 나는 오사카의 한 대형 서점에 들렀다. 잡지 코너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줄지어 서서 패미통신을 읽고 있었다.

“와~ 이번에도 신작이 엄청 많이 나왔네. 용돈도 다 떨어졌는데, 뭘 사지?”

“오래할 수 있는 거 사. RPG 같은 거~”

“안 그래도 드래곤 워리어 2 지난주에 다 깼는데,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스토리가 좀 유치해.. 새로 나온 것들 중에 할만한 게 있으려나?”

그러자 옆에서 리뷰 기사를 읽고 있던 한 학생이 대답했다.

“파이널 프론티어..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RPG 전문 준페이 기자가 40점 만점에 36점 줬어.”

“진짜? 드래곤 워리어 2가 38점이었잖아.”

친구들의 관심이 몰리자. 남학생은 그들에게 리뷰 기사를 대신 읽어주기 시작했다.

“파이널 프론티어. 펜타곤 소프트라는 새로운 회사의 첫 작품. 빛의 전사 주인공이 크리스탈의 가호를 받아 어둠의 세력을 홀로 무찌르는 내용. 아름다운 BGM과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가 언 듯 보기에 드래곤 워리어 1과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파이널 프론티어 만의 독특한 전투씬이 발군. 드래곤 워리어와는 또 다른 매력의 판타지를 느낄 수 있다.”

“묘한데? 결국 드래곤 워리어의 아류작이라는 소린가?”

“일단 전투가 재밌다고 하잖아, 리뷰 점수도 괜찮으니 해볼만 할 거 같은데?”

“음~ 고민 되네. 일단 게임 샵에 가서 아저씨한테 재밌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때 한쪽 편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학생 하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 혹시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 알아?”

그 순간 그들 곁에서 책장을 넘기던 내 손끝도 멈추었다.

“드래곤 엠블렘? 그게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맞아. 어디서 만든 건데? 그것도 RPG 게임이야?”

친구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학생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입주변을 어물거리며 이야길 할까 말까 망설이던 녀석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아.. 아냐. 모르면 됐어.”

“뭐야~ 치사하게 비밀이냐? 무슨 게임이길래 그래?”

“그래~ 재밌으면 같이 해보게 좀 알려줘 봐~”

본래 사람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못 참는 법. 이야기를 꺼내다 말은 학생은 친구들에게 갖은 질타에 못 이겨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사촌 형한테 들은 이야기야. 그저께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엄청난 게임을 손에 넣은 것 같다고 자랑했어. 그 외엔 나도 잘 모른다구..”

“게임이 출시 됐으면 잡지에 실렸겠지. 언제 나온 건데?”

“몰라.. 그냥 도시괴담처럼 도는 소문인데, 그 게임은 출시된 적이 없데..”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던 나는 그 학생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음~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친구들은 아리송한 친구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본격적으로 캐묻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명은 서점 안에 있는 게임 잡지들을 뒤적거리며 패밀리 게임의 발매 일자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게임 없는데?”

“그러니까 아까 출시된 적 없다고 했잖아..”

“뭐야 그게? 그런데 너희 사촌형은 출시도 안 된 게임을 어떻게 해봤데!?”

“그게.. 중고 게임 샵에서 구했다던데?”

“출시되지도 않은 게임을 중고 게임 샵에서 구입했다고!? 도대체 무슨 게임이야? 장르가 뭔데?”

“그게 그 형도 처음해보는 장르래. 배경은 판타지인데, 화면 안에 캐릭터들이 체스판 같은 맵 위에 서 있고 그것들을 움직여서 적과 싸우는 게임이라는데. 문제는..”

“문제는..?”

“캐릭터가 적에게 당해 사망하면 그 게임 안에서 데이터가 사라진데..”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캐릭터가 죽으면 아예 사라져 버린다는거야?”

“그렇지..”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가 콧방귀를 끼며 비웃었다.

“그럼 기계를 껐다 키면 되지. 아님 세이브지점으로 로드해서 다시 하던가.”

“그게 로드해도 마찬가지로 그 캐릭터가 없다고 하더라구..”

“뭐라구!? 그럼 아예 처음부터 하는 건?”

“그것도 안 돼. 모든 캐릭터가 죽으면 그냥 게임 오버야. 그리고 다시는 플레이 할 수 없어.”

“미친.. 제작자가 어디야? 그딴 게임을 만들어 놓고, 돈 받아먹고 팔고 있다는 거야? 당장 항의해야지.”

“제작자는 안 써있데.. 그래서 항의할 고객센터도 없어. 아까 말한데로 그 게임은 중고 샵에서 케이스 없이 알 팩으로 구입한 게임이고, 가격은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1000엔이었데..”

“천엔!? 그렇게 싸? 말도 안 돼. 너희 사촌형이 거짓말하는 거 아냐?”

“그럴 사람은 아닌데, 아무튼 그 형은 모든 캐릭터를 잃어서 결국 게임 오버 당했어.. 그래서 최근에 각 중고샵을 돌아다니며 드래곤 엠블렘이라는 게임을 찾고 있나 봐..”

“헐.. 쩌네.. 혹시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한번 찾아볼까. 그 게임?”

곧이어 아이들이 우르르 서점을 몰려나가자, 서점 주인은 아이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들아!! 서점에선 조용해야지!!

나는 서점 밖으로 나서자마자 골목길로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책을 덮었다. 아무나 플레이 해볼 수 없는 신비한 게임. 드래곤 엠블렘..

아까 학생이 말한 게임의 설명은 나름 정확한 편이었다.

마치 체스판처럼 줄이 그어져 있는 판타지 배경의 맵에서 아군을 한명씩 움직여 적들과 싸우는 방식의 이 게임은 훗날 시뮬레이션 RPG라 불리 우는 장르였다.

드래곤 엠블렘이란 타이틀은 타임 슬립 이후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단독으로 만들어낸 첫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게임 역사상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물론 클리어는 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절대 단 한 번에 클리어를 할 수는 없었다. 캐릭터가 단 하나라도 사망하는 순간. 드래곤 엠블렘은 절대로 클리어 할 수 없는 게임이 되어 버렸으니까..

나는 이 게임을 민텐도의 카트리지 공장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장에 뿌릴 수가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 했냐고?

우선 첫 번째로 정식 유통망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까 학생의 말처럼 나는 이 게임을 개당 500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중고 샵에 넘겼다.

그리고 그들은 두 배로 금액을 올려 천 엔을 받고 유저에게 판매를 한 것이다.

주말 오사카를 중심으로 눈에 띄는 각 게임 매장마다 2~3개 정도의 카트리지를 팔았다. 처음 약 200개 정도의 타이틀을 뿌린 나는 입소문이 돌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서두를 건 없었다. 나도 일하느라 바빴으니까. 가끔 퇴근 후에 게임 샵에 들러 내가 판매한 드래곤 엠블렘이 남아 있는지 확인만 해볼 뿐 별다른 조치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장소를 오가며 드래곤 엠블렘을 뿌린 결과.. 이상한 도시 전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악마 같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환상의 게임..-

나는 주말마다 조금씩 카트리지를 모아 소량으로 중고 게임 샵에 팔았다. 대체 어디서 민텐도의 게임 카트리지를 손에 넣었냐고 묻는다면.. 설마, 내가 트라이앵글에서 거둬들인 부진 재고들을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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