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3화 (33/252)

EP. 9 : 볼 품 없는 회사 (1)

“카와구치씨!!”

역시나 이름을 외치자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트라이앵글 사의 카와구치 히로노부씨 맞죠!?”

“절 아세요?”

“킹즈 퀘스트의 디렉터 분 아닌가요?”

“마, 맞긴 한데.. 어떻게 절..?”

“저는 민텐도 직원 강준혁이라고 합니다. 전에 패미통신에 실린 디렉터 소개 코너를 봤어요.”

“아, 그렇군요..”

그제서야 카와구치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 대한 경계를 풀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잘나가는 제작사의 출시 행사에는 민텐도 직원도 직접 나와 축하해주는 군요.”

“아, 뭐 그야 드래곤 워리어의 파급력이 워낙에 크니까요. 하하~”

“그에 비해 제가 만든 킹즈 퀘스트는 이제 겨우 6천개 정도가 나갔는데, 민텐도에서 서드 파티의 로열티를 올리는 바람에 완전히 적자를 보았죠.”

“아, 그래요?”

“아~ 그래요?? 뭡니까. 그 불쾌한 대답은 지금 저를 놀리는 겁니까?”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헌데 그 로열티를 제가 올린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저한테 화를 내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크윽..”

카와구치씨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게 억울한지,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사실 최근에 카마우치 사장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는 추세긴 하다.

멋대로 카트리지 생산 단가를 높인 것도 모자라 생산 수량까지 멋대로 상향하다보니, 최근에 게임 회사는 게임이 뜰지 안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초도 수량 1만개를 찍어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카와구치씨가 만든 킹즈 퀘스트가 발매 3개월이 지나도록 6천개 정도가 판매된 거라면 더 이상 팔리긴 어렵다.

지금도 새로운 신작이 쏟아져 나온 마당에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게임은 금새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트라이앵글은 나머지 4천개의 부진 재고를 떠안고 적자 폭탄을 맞았겠지..

아타리 쇼크를 잊기 위해 양질의 소프트를 제공하는 건 좋지만, 민텐도의 독점 시장은 게임 회사에게는 별다른 이득을 얻기 힘든 구조가 되어 있었다.

“트라이앵글 사의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군요?”

“원래 초도수량은 2천개로 잡고 팔리는 것에 봐서 더 늘리려고 했지만, 민텐도에서 받아주질 않더군요. 덕분에 우리 회사는 지금 망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정도인가요? 이런.. 혹시 그럼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은 없습니까?”

“하나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본사에서 게임 사업을 완전히 접으려는 추세라..”

뭐라고!? 안 돼!! 당신이 파이널 프론티어를 만들어야 내 계획이 제대로 실행 될 수 있다고!! 카와구치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게임이 있었는데..”

“마지막이라.. 어떤 장르를 생각해고 계시죠?”

“일단은 RPG입니다. 사실 오늘 드래곤 워리어를 구입해 참고해볼까 했는데, 행사 오픈과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가는 드래곤 워리어를 보니.. 솔직히 기가 질려 버렸어요.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 해도 이미 국민 게임이 되어버린 드래곤 워리어를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무리에요. 카와구치씨가 지금 어떤 게임을 만든다 해도 ‘현재’ 유우지씨의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를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저긴 이미 3편의 제작이 들어갔거든요.”

“크윽.. 그 말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게임마저 반드시 드래곤 워리어에 패배 할 거라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네, 맞아요. 그만큼 ‘현재’ 일본에서 파급력이 가장 큰 RPG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아직 2등석은 비어 있습니다. 우선은 거기부터 노려보는 게 어때요?”

나는 내손에 들려있던 쇼핑백을 카와구치씨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방금 전 행사장에서 구입한 드래곤 워리어2입니다.”

“이걸 왜 저한테..?”

“카와구치씨가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나본데, 저는 분명 ‘현재’로서 드래곤 워리어를 이길 수 없다고 했지. 앞으로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적이 만든 게임이 얼마나 훌륭한지. 배울 점은 배우셔야죠.”

“됐습니다. 어차피 차기 작품의 개발 승인도 나지 않을 텐데요..”

“그 부분도 제가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쉬시는 동안 플레이 해보세요. 아~ 그리고 이거 클리어 하시면 반납하셔야 되요. 저도 오늘 사서 아직 플레이 안 해봤으니까.”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와구치씨에게 억지로 쇼핑백을 들려주고는 다시 행사장으로 향했다.

&

며칠 후. 나는 도쿄에 있는 트라이앵글 사를 찾았다. 주소지 하나로 겨우겨우 찾아간 트라이앵글은 한눈에 보기에도 허름한 4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1층에 붙어 있는 낡은 전단지에는 사원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는데, 무려 시급이 1500엔에 해당했다.

평균 도쿄의 아르바이트 시급이 480엔에서 500엔인데 반해 3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시급에 나는 깜빡 놀란 나는 다시 한 번 건물을 올려다보며 중얼 거렸다.

‘아무리 봐도 시급을 1500엔이나 줄만한 회사로 보이진 않은데..’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2층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골판지 박스들이었다.

‘설마.. 이것들은?’

불길한 예감에 옆에 있는 박스를 살짝 열어 보니 게임 타이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팔리지 않고 회수된 타이틀 들이구나.. 세상에 뭐가 이리 많아?’

나는 박스들 사이로 보이는 작은 사무실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개의 박스를 옮기며 틈을 비집고 사무실 앞에 선 나는 잠시 옷차림을 정리한 뒤 노크를 해보았다.

“들어오세요.”

끼익.. 경첩에 기름칠도 하지 않았는지 기분 나쁜 소리가 문틈에서 세어 나오고, 사무실 안으로 한걸음 들어 선 나는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상자들에 또 한 번 기겁하게 되었다.

“누구세요?”

그렇게 물어볼 거면 출입구에 상자들 좀 치워두지 그랬어!? 나는 다시 한 번 상자들 틈을 가로지르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아, 그게 사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그러자 안쪽에 앉아 있던 40대정도의 남자가 얼굴에 화색을 띄며 대답했다.

“아~ 오늘 오기로 했던 면접생이로군. 이쪽으로 와요.”

면접생? 이건 뭔 개소리야!? 하지만 상자 틈 사이에 끼어 버린 나는 미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 아니 그게..”

“사무실이 좀 복잡하죠? 곧 정리 될 테니까, 안심하고 이리와요.”

그게 아니라니까 이 사람아~!!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되도 않는 트라이앵글 사무실 안에서 사장인 쿠도씨와 마주 앉아 면접을 치르고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면접생인 척해서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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