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1화 (31/252)

EP. 8 : 스폰서 게임 (5)

굉장히 웅장하고 멋진 타이틀곡이 흘러나오고 나는 아저씨가 준 공략집을 대조하며 천천히 게임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먼저 이 게임은 레벨이란 게 존재했다.

즉 무턱대고 마을 근처의 동굴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을 주변에서 약한 몬스터를 잡으며 레벨을 올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주변 몬스터를 잡는데 익숙해지면 동굴에서도 처음처럼 죽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 그리고 마을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탑으로 향하는 전사의 이야기에 나는 금세 흠뻑 빠져들었다.

드래곤 워리어 4의 이야기는 그 당시 RPG로서는 굉장히 특이한 옴니버스 식 스토리를 구현하고 있었는데, 1장은 전사 라이안. 2장은 산마리아 왕국의 격투가가 꿈인 공주님의 이야기. 3장은 무기상인 톨네코의 이야기. 4장은 무녀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최종장인 5장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나오는 스토리였다.

그중 5장 초반에서 용사를 살리기 위해 여자 친구가 마법을 이용해 용사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대신 죽음에 이르는 스토리를 보고는 방에서 혼자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주인공 마을에 나오는 BGM이 너무나 슬퍼 가끔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폐허가 되어 버린 주인공 마을에 들러 한동안 가만히 있어 보기도 하고, 폐허가 된 공간에서 동료들과 주인공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빈약한 그래픽의 시대에는 그렇게 상상력으로 커버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는데..

아, 잠깐 이야기가 딴 곳으로 빠졌군..

아무튼 그렇게 일본어 까막눈이었던 시절에 주인공의 이름은 다들 ‘아아아아’로 통일 되었다.

왜냐하면 일어의 첫행 시작이‘아’로 시작했기 때문이지.

어차피 무슨 글인지 읽지도 못하는데, 이름이 뭔 상관이었겠냐 만은.. 그때 개발실 문이 열리며 30대 초반 정도의 남성이 들어왔다.

“아이쿠, 안녕들하십니까~”

“아~!! 토리야마 선생님!! 오셨군요.”

“드래곤 워리어 2의 검수를 여기서 한다고 해서 잠깐 들러 보았습니다.”

음!? 드래곤 볼 작가인 토리야마씨가 왔다고? 나는 재빨리 패드를 탁자에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와 눈이 마주친 토리야마씨는 단번에 내가 민텐도에서 나온 직원임을 알아보고 악수를 청해왔다.

“아~ 당신이 민텐도에서 나온 직원분이시군요. 성함이..?”

“강준혁이라고 합니다. 민텐도 내에서는 신규 콘솔에 관한 부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젊어 보이시는데, 벌써 한 부서를 담당하는 관리자라니 대단하군요.”

“작가님의 드래곤볼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사실 슬램덩크를 더 좋아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필요는 없지. 1986년도에 토리야마씨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상태였다.

이후로 모든 드래곤 워리어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맡게 되고, 나중에는 직접 캐릭터 검수까지 하게 될 그는 앞으로도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피닉스사와 인연이 깊었다.

이런 인물도 하나 알아두면 나쁘지 않겠지? 토리야마씨와 악수를 마친 나는 다른 개발자들과 함께 다시 검수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이미 1편이 대 히트를 친 마당이라 2편의 검수는 하나마나 상관이 없었다.

민텐도의 검수란 이 게임의 버그까지 샅샅이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이것이 게임으로 플레이할만한 틀을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파악이었기 때문이다.

“버그는 다 잡으신 거죠?”

그러자 메인 디렉터였던 유우지씨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카트리지 생산 후 진행 불가 버그 있을 경우 전량 리콜 사태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어느 회사든 버그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전작에는 주인공 혼자였는데, 이번 작부터는 파티플레이가 가능 하군요. 덕분에 전투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적들이 상향 조정 되어 그런지 은근히 긴장감이 넘치네요.”

“동료 개개인에도 스토리를 넣어 유대감을 더 높혔죠. 아마 유저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합니다.”

역시 게임 개발자라면 유저를 먼저 생각해야지. 그 점에서 드래곤 워리어의 메인 디렉터 유우지씨의 그런 면에서 굉장히 철저한 기획자였다.

“패미통신 리뷰에서도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으니 발매 후 대박 터질 일만 남으셨네요.”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지만, 과연 카린의 전설 만큼의 진풍경을 연출 할 수 있을까요. 저도 그 때 현장에 있었는데, 정말 유저들의 반응이 어마어마 하더군요. 특히 한정판으로 내놓았던 500개의 황금 카트리지는 암암리에 2~3만엔에 거래가 되고 있다고 하던데 알고 계세요?”

“몇몇 비양심적인 가게 사장들이 제때 물건을 판매 안하고 따로 빼놓은 거겠지요. 그런 매장은 적발과 동시에 저희가 납품을 아예 끊어 버리곤 하죠. 그 어떤 경우라도 유저를 엿 먹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토리야마씨와 유우지씨는 내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 2시간 정도의 시스템 검수를 마친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우지씨는 기대에 찬 눈초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직접 검수해주시러 온 준혁씨께는 실례 되지만 간단히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이 사람도 아까는 별로 기대 안한다더니, 검수 끝나자마자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잠시

“흐음.. 솔직히 말씀 드려도 되요?”

“아, 네. 물론입니다.”

“전작에 비해서 딱히 재밌는 점을 모르겠어요.”

“네?”

“음~ 물론 동료시스템도 좋고, 배를 탈 수 있어서 바다로 나아가는 면도 새롭지만, 1년 동안 준비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풍성하진 않네요.”

“아, 그런가요..”

“설마 3편에서도 2 주인공의 후손들이 나오진 않겠죠? 드래곤 워리어의 메인 스토리는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의 이야기가 전부 인지라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냥 드래곤 워리어를 재밌게 즐긴 게이머로서 첨언을 드리자면.. 음 스토리의 진행 방식을 옴니버스로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옴니버스 형식..?”

“가령.. 모두가 기다린 3편의 이야기는 실은 1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 용사 전설의 시초와 같은 느낌으로?”

“아!! 그것 괜찮네요~!! 비슷한 세계관이지만 마지막 엔딩을 기점으로 다시 1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기발합니다~!! 아주 좋아요~!! 시게루씨에게 들은 대로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참고가 되었습니다.”

뭐야? 시게루와 유우지씨가 서로 알고 지내온 사이였구나.. 사실 이번 출장 검수에 대한 최초의 의견도 시게씨의 제안이었다. 다들 바쁜 시기라 내가 간다고 했을 때 묘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런 의미였군..

&

교토로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나는 옆자리의 남자가 곤히 잠든 틈을 타 게임 & 워치를 열어보았다. 스폰서 게임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각종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토리야마님과 지인 관계가 생성 되었습니다.-

-유우지님과 지인 관계가 생성 되었습니다.-

-유우지님의 호감도가 3포인트 올랐습니다. 10포인트 달성 시 교우 관계가 랭크 업 합니다.-

미연시 게임이냐!!

남자한테 호감도가 상승하다니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다. 갑작스런 한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사람들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역시나 군페이씨와 시게씨가 친분 관계 중에 제일 높은 랭크를 유지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죄다 남자들 뿐이네..’

하긴 80년대에 여성 프로듀서가 몇이나 있겠냐만은.. 나는 입맛을 다시며 페이지를 넘기던 중 카마우치 사장의 얼굴에서 페이지를 멈추었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얼굴 옆에 말풍선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2015년에 스마트폰에서 즐겨 사용했던 카톡의 상태 메시지를 보는 것 같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카마우치 사장의 말풍선을 클릭해보았다.

-강준혁은 능력이 뛰어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위험한 녀석이다. 너무 키워줘선 안 되겠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