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30화 (30/252)

EP. 8 : 스폰서 게임 (4)

-게임을 시작하시려면 스타트 버튼을 눌러주세요.-

스폰서 게임? 전에 내가 즐겼던 회사원 게임과는 완전히 형태의 게임인데? 묘한 기대감 속에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간단한 프롤로그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이 게임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프롤로그 내용은 미래에서 타임슬립 한 주인공이 넘쳐나는 자금으로 위기에 빠진 게임 회사의 경영을 지원한다는 줄거리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을 클릭할 시에 회사의 경영 상태와 자본금. 그리고 현재 개발 중인 게임 타이틀이 쓰여 있었다.

시험 삼아 현재 내가 향하고 있는 피닉스 사를 클릭하자 드래곤 워리어 2 발매를 위한 마지막 검토 중이라는 표시가 떠올랐다. 회사 재정 상태도 매우 안정적이고, 직원들의 사기도 높다. 역시 메이저급 게임 개발사라 이건가?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아 이직 권유는 거의 불가능 하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보니 외교적인 사안으로 써먹을 만하겠는데?

폭스 소프트의 풀 메탈의 개발 진척도는 52%에 달하고 있는 걸 보니 그럭저럭 순항중이군.. 호우지마씨가 메인 디렉터로 발탁 되고 나서 확실히 개발속도가 빨라졌어.. 나는 다음으로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트라이앵글 소프트를 살폈다.

-카와구치 디렉터의 킹즈 퀘스트. 5200개 판매 중. 현재 개발 중인 게임 없음.-

5200개면 완전 적자군.. 트라이앵글 사의 희대의 명작인 파이널 프론티어를 만들기도 전인데, 출시한 게임들의 연이은 판매부진으로 회사 재정이 많이 힘든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 재정 상태를 살펴보니 차후에 출시될 파이널 프론티어에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FINAL’를 붙인 절박한 심정이 이해가 가는구나.. 내가 아는 미래에서 파이널 프론티어는 시대를 주도하는 호화로운 그래픽의 선두주자였다. 센소니의 기어 스테이션에서 발매했던 파이널 프론티어 7의 테그 데모를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지..

모든 것에 ‘원조’란 참으로 대단한 효과를 지닌다. 최초로 패밀리용 RPG 게임을 만든 ‘드래곤 워리어’는 이미 국민 게임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고 현재 2탄의 카트리지 생산을 앞두고 있다.

1편에서는 용사 혼자 공주를 구했다면 이번 2탄에서는 파티 시스템이 도입 되어 동료들과 함께 마왕을 무찌르는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또한 전편과 시나리오가 이어져 이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전작에서 마왕을 무찌른 용사의 손자 손녀라니.. 1편을 즐겁게 플레이한 수많은 유저들이 2편의 발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 라면 출시가 되어도 드래곤 워리어2의 파급에 휩쓸려 묻혀버리겠군.

사실 지금이라도 내가 가서 그들을 도울 수도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무릇 바닥을 쳐본 자만이 재도약의 기회를 얻는다고 하던가? 누군가의 만화처럼 추진력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스폰서 게임이라.. 업계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니.. 이거 참 재밌는데?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이제 돈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

그날 오후 피닉스 사에 도착한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드래곤 워리어2 개발 파트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민텐도 직원 강준혁이라고 합니다.”

“아~ 준혁씨!! 반가워요~”

폭스 코리아와는 다르게 피닉스의 개발실은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이미 개발도 모두 끝난 상태라 카트리지 제작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사무실 분위기도 매우 한가했다.

“이렇게 직접 검수를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수고가 덜었네요.”

“아닙니다. 드래곤 워리어 같은 경우는 저희 패밀리 매출의 견인 효과까지 겸하는 타이틀이다 보니 카마우치 사장님께서 흔쾌히 출장 검수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민텐도에서 저희 회사를 신경 써주시는 게 느껴지는 군요.”

“물론이죠. 저희 역시 이번 드래곤 워리어2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번에도 전국 게임 매장에 유저들이 줄을 서겠지요?”

“그러고 보니 카린의 전설 때는 정말 진풍경이었습니다. 한정판 마케팅은 강준혁씨 아이디어라고 들었습니다만, 젊은 나이에 정말 대단하시네요.”

“과찬이십니다.. 하하..”

대체 이놈의 인사치례는 언제까지 할 거냐!! 결국 개발팀과 돌아가며 10분 정도 대화를 하고 나서야 검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운 타이틀곡과 함께 드래곤 워리어의 로고가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드래곤 워리어는 사운드 부분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는 듯하네요. 단조로운 비트음이지만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그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시는 분께 직업 사운드 검수를 받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카트리지 케이스의 일러스트도 지금 드래곤 볼을 연재중인 토리야마씨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1편을 출시할 때부터 계속 토리야마씨에게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기고 있지요. 아직까지는 게임화면에서 미려한 그래픽을 표현하기가 힘드니 최대한 유저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토리야마씨에게 일러스트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때만 해도 드래곤 워리어의 게임 그래픽은 매우 단조로운 컬러표현을 기용하고 있었다. 특히 1편의 용사는 필드에서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진 전사였으니까.. 그것은 2에 와서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마법 표현은 전투화면이 붉은 색과 노란색으로 깜빡거릴 뿐이었고, 전투씬 역시 어두컴컴한 화면에 몬스터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어릴 때 드래곤 워리어 4를 처음 접해보았을 때 진짜 동화 속을 모험하는 기분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추억 보정이 좀 심했나보다.’

나는 초기 캐릭터를 이름을 짓는 곳에서 ‘아아아아’를 클릭한 후 재빨리 게임을 시작했다.

“준혁씨는 용사의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별로 고민을 안 하시는군요.”

용사의 이름이 ‘아아아아’가 된 것에는 너희들이 모르는 슬픈 전설이 있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는 80년대에도 국내에서 드래곤 워리어를 즐기는 유저는 있었다. 흔히 보따리 상인이라고 부르는 업주들이 일본에서 패밀리와 게임 몇 개를 사들고 한국에 돌아와 큰 이윤을 남기고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게임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을 때. 우리가 게임 내용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게임팩에 그려진 그림이 전부였다. 91년이었나? 불법 복제인 해적판으로 국내에서도 드래곤 볼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을 무렵의 어느 날. 동네에 있는 게임 가게를 지나가던 길에 게임팩에 그려진 낯익은 일러스트 한 장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기억이 있었다.

딱 보아도 드래곤 볼과 비슷한 느낌의 그림체에 한 눈에 혹한 나는 그 날 밤 흥분과 기대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드래곤 볼 캐릭터가 그려진 그 게임이 과연 어떤 형식의 게임일지 너무나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몇날 며칠 어머니를 졸라 겨우 구입한 드래곤 워리어는 나에게 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RPG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나는 액션 게임 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당시에는 액션 장르만이 게임의 전부였다. 그게 사람이든 비행기든 자동차든 뭔가 움직여서 적을 부숴야 하는데, 이 게임은 마을을 왔다 갔다 하다가 밖에 나오면 몬스터와 싸우는 게 끝이었다. 그것도 더럽게 어려워 필드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강한 몬스터에게 당해 금방 게임 오버가 되곤 했다.

“뭐 이 따위 게임이 다 있어!!”

그 당시 굉장히 화가 난 나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드래곤 워리어4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멋진 일러스트에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 짜증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나는 드래곤 워리어를 들고 다시 게임 가게를 찾았다.

“이거 다른 게임으로 교환하고 싶어요..”

동네 PC 조립을 겸하는 게임가게 아저씨는 내가 내민 드래곤 워리어 4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잠시 후 아저씨는 흑백 프린터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게임 가게 안에 시끄러운 프린터 음이 꽤 오랫동안 울렸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이만큼 프린터하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너에겐 그냥 공짜로 주마. 그 게임은 말이다. 아저씨가 지금까지 해본 패밀리 게임 중 가장 즐겁게 한 게임이란다. 하지만 아직 어린 네가 플레이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을 거야. 무엇보다 일본어를 모르니까. 하지만 이 공략집을 참고하면서 천천히 다시 해볼래? 그러면 네가 이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진짜 재밌는 게임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아저씨에게 드래곤 워리어4의 공략집 한 뭉텅이를 받아온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패밀리에 드래곤 워리어를 꽂고 전원을 넣어보았다. 굉장히 웅장하고 멋진 타이틀 곡이 흘러 나오고 나는 아저씨가 준 공략집을 대조하며 천천히 게임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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