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6화 (26/252)

EP. 7 : 카린의 전설 (3)

대박이다.. 행사장까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아무리 줄서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라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카린의 전설 판매는 오후 2시부터 시작이라고!!

“가, 강군. 나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 부축 좀 해줘.”

“정신 차리고 빨리 와요. 행사장 직원들도 시게씨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길고 긴 행렬을 지나 판매점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행렬 맨 앞에 대기 중인 내 또래의 남자 손님에게 물었다.

“추운 날씨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민텐도 직원 강 준혁이라고 합니다만, 혹시 언제부터 기다리셨나요?”

“어제 오전 10시부터 기다렸습니다. 하하.. 패미통신 기사를 보고 이번 카린의 전설 초회 한정판이 너무나 갖고 싶어서..”

세상에 12월 강 추위에 24시간을 기다렸다고!? 환장하겠네..

“열의에 감사드려요. 제가 사장님께 따로 말씀드릴 테니, 이따가 괜찮으시면 기념 촬영 한 장 부탁드립니다.”

“아, 네~!! 혹시 옆에 계신 분이 쿠마모토 시게루씨인가요!? 동킹콤 때부터 완전 팬입니다. 이번 카린의 전설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자 시게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이번 카린의 전설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

시간이 흐를수록 행렬은 점점 길어지더니 오후에 접어들자 행사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모두가 카린의 전설을 구매하러 온 유저들이라니 정말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이 현상은 방송국까지 귀에 들어가 지금은 취재를 나온 기자가 시게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 앞에 혼란을 막기 위해 행사 도우미 몇 명을 대동해 곳곳 마다 피켓 배치시킨 뒤 돌아오자 카마우치 사장과 군페이씨가 행사장에 도착해 있었다.

“야, 인마~!! 강부장!!”

입이 귀에 걸린 카마우치 사장이 덩실덩실 춤을 추듯 나에게 달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응!? 방금 연락 받았는데, 오사카와 교토, 그리고 후쿠오카까지 카린의 전설 판매가 장난 아니라는군. 오늘 하루 만에 초도물량으로 준비한 3만개가 전부 나갈 기세라고!!”

하~ 진짜 내심 기대는 했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데? 보통 일반적인 타이틀. 거기다 신작일 경우에 초도 카트리지 생산 수량은 보통 5천개 정도로 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매장에서 모두 소화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는데, 이번 카린의 전설은 우리 민텐도에서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거는 타이틀이었기에 한정 수량 골드 색상을 전면에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보았다.

메인 디렉터는 이미 마리지 브라더스와 슈퍼 마리지등으로 민텐도 게임의 간판스타가 된 쿠마모토 시게루였기에 유저들의 기대심리가 증폭 되었고, 패미통신 역시 게임계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최초의 잡지사로서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호화로운 특집 기사를 내었다.

그렇게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카린의 전설은 출시 전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고, 드래곤 워리어의 붐이 조금 수그러든 틈을 타 엄청난 반등 효과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대망의 오후 2시..

행사 매장에 카린의 전설 오프닝 송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차례차례 대기표를 들고와 게임을 구입해가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준비한 150개의 황금 카트리지는 이미 행사 개시 15분 만에 동이 나버렸다.

물론 행사 개시 전에 고지해두었기에 큰 혼란은 없었지만 아쉬워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러자 계산대를 지켜보던 카마우치 사장 역시 유저들과 함께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봐. 그러니까 내가 한 1만개 정도 준비하자고 했잖아.”

“아뇨. 만약 1만개를 준비했다면 결코 이런 효과는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한정판이라는 그 수량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이니까요.”

“강군.. 넌 무슨 만능선수냐? 처음엔 콘솔 하드 기획자인줄 알았더니, 게임도 만들고, 미국에 보내봤더니 영업을 다하질 않나, 거기다 이젠 마케팅까지 하고 있군. 아, 그러고 보니 군페이 녀석이 여기 행사장에서 무슨 발표를 한다며? 사장인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고 군페이랑 진행한 게 대체 뭐야?”

카마우치 사장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모른 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건 나와 군페이씨, 그리고 시게루씨의 합작 프로젝트였는데 카린의 전설에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일 걸로 예상한 나의 치밀한 계획 중에 하나였다.

“앞으로 한 시간 뒤에 발표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 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러고 보면 행사장 내부에는 ‘3시 33분 최초 공개’ 라고 쓰여 있는 문구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유저들은 저마다 3이라는 숫자가 카린의 전설에 나오는 3개의 보석을 암시하는 거라며 벌써 후속작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었다.

이미 카린의 전설을 구매한 사람들 역시 3시 33분에 대한 궁금증으로 쉽게 행사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러 큰 행사장을 잡아 놔서 다행이군..

우리는 어제 아침부터 장장 28시간을 대기한 첫 번째 구매 고객에게 시게루씨의 사인이 들어간 게임 타이틀과 마리지 캐릭터 인형등 소정의 사은품을 지급하였고 함께 기념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렸던 3시 33분. 행사장에 있던 군페이씨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잠시 행사장 내부가 어두워지는 듯싶더니 준비 된 작은 단상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뭐야? 뭐지!?”

게임을 구입하던 사람들마저 수근 거리며 단상을 바라보자 군페이씨가 슬쩍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흠.. 우선 저희 민텐도사의 카린의 전설을 구매하러 오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새로운 휴대용 기기의 탄생을 알려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군페이씨의 발표에 행사장은 금세 사람들의 환호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군페이씨 앞에 있던 한 유저가 외쳤다.

“휴대용 기기? 설마 새로운 게임 & 워치를 발표하는 건가요?”

“오~ 눈치가 빠르신데요? 바로 맞췄습니다.”

군페이씨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녹색의 게임 & 워치 기계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카린의 전설를 테마로 한 게임 & 워치 기계였다. 그러자 내 곁에서 단상을 지켜보던 카마우치 사장이 말했다.

“뭐야? 저건 내가 이미 승인해준 건이잖아. 이게 무슨 나조차 놀랄 깜짝 발표라는 거냐? 물론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는 완전 빅뉴스긴 한가보군. 반응이 나쁘진 않네~”

“글쎄, 잠깐만 더 기다려 보세요.”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단상을 바라보았다. 단상 위의 군페이씨는 새로운 게임 & 워치를 펼쳐 보이며 유저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직 프로젝터가 없던 시기여서 그런지 앞에 있는 유저들에게 간단히 기기를 만져보게 하던 군페이씨는 다음 달 패미통신에서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될 것이라고 소개를 마친 뒤 다시 품안에 게임 & 워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러분께 깜짝 발표가 남아있습니다.”

군페이씨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뒷주머니에서 묵직한 기계 하나를 꺼내 들며 외쳤다.

“세계 최초로 카트리지 교환 방식을 채용한 휴대용 콘솔 겜보이입니다.”

“우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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