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 미국 시장을 공략하라!! (10)
“저기 강준혁 부장님. 토이 월드 사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는데요?”
“음?? 잠시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긴 제 발로 걷어찬 게임기가 미국에서 1년 동안 대박 히트를 치고 있는데, 더 이상 매입을 안하고 베기겠어? 오히려 이 정도까지 버텼으면 오래 버틴 거지. 나는 콜라 한 모금으로 씹고 있던 햄버거를 삼킨 뒤 전화를 받았다.
“네, M.H.E.S의 강준혁입니다.”
“미스터 강? 혹시 날 기억하나?”
낯 익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짐짓 모른척 되물었다.
“누구시죠? 그렇게 물어선 잘 모르겠는데요?”
“미국에서 가장 큰 장난감 가게와 점포수를 운영하는 토이 월드 사장. 톰 왓슨일세.”
“아~ 안녕하세요. 톰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아, 그게 실은 음..”
톰 사장은 자신이 이렇게 굽히고 들어가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지 자꾸만 말을 어물 거렸다. 안 그래도 식사시간을 방해 받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이제 곳 다른 매장 계약 건으로 나가봐야 해서요. 별일 아니면 끊겠습니다.”
“아니, 저기!! 잠깐!!!”
“뭡니까. 전화를 하셨으면 말씀을 하세요.”
“그게 계약을..”
“아~ 드디어 토이 월드에서 저희 물건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이거 참. 뉴욕에서 가장 큰 장난감 가게에서 이렇게 먼저 전화를 주시다니 영광이네요.”
“어흠~ 흠~ 알아주니 고맙군.”
어쭈? 조금 띄워줬더니 이것 봐라? 톰 사장은 잠시 헛기침을 한 뒤에 나에게 물었다.
“우선은 300대 정도 주문을 넣고 싶은데, 언제까지 가능하겠나?”
“아~ 300대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최소 납품은 500대부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시나본데, 저희는 가맹점에만 물건을 납품하기 때문에 멤버쉽 클럽에 등록을 해주셔야합니다.”
“이 봐. 미스터 강. 지금 나한테 민텐도 멤버쉽인지 뭔지에 가입을 하라고? 토이 월드가 미국 곳곳에 얼마나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가!?”
“알고 있죠. 그리고 4개월 전에 소비자 보호 단체에 고발당해서 벌금도 깨나 물으신 것도 알고 있구요. 현재 사업이 좀 휘청휘청 하시죠?”
“크으...”
“일단 저희도 다른 업체들과 함께 규정해 놓은 사항이기에 가입은 필수입니다. 어떻게, 멤버쉽 가입을 하시고 500대 발주를 하시겠어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500대를 주문하지. 지금 주문하면 언제쯤 받을 수 있나?”
어쭈? 이번엔 명령조까지? 영어에 경어와 평어에 큰 경계는 없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예우하는 단어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톰 사장의 단어 선택은 마지 자기 부하 직원에게 오더 내릴때 쓰는 듯한 명령조였다.
“흐음.. 죄송하지만 사장님. 현재 다른 매장에서 주문이 쇄도해서 좀 기다리셔야 할듯합니다. 적어도 석 달 정도는 걸리겠는데요?”
“무슨.. 석 달씩이나, 그럼 크리스마스 시즌을 넘겨 버리잖아!!!”
“그렇죠.. 애석하지만, 저희는 신용을 중요시하는 회사라 아무리 작은 매장의 약속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 역시 뉴욕에서 가장 큰 장난감 매장인 토.이.월.드의 크리스마스 시즌 납품을 놓치게 되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 그러고 보니 한 달 뒤면 크리스마스네, 벌써 내가 이곳에 온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구나. 그동안 민텐도의 패밀리는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일본과 미국시장은 거의 점령하고 있었다. 뒤늦게 게임 산업이 아직 죽지 않은 걸 눈치 챈 NEGA에서 신형 게임기 NEGA 디스크의 제작이 발표 되었지만, 이미 게임 시장 자체는 민텐도의 패밀리가 휩쓸고 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저기.. 미스터 강. 정말 미안하지만, 어떻게든 본사에 연락하여 추가 주문을 넣어 줄 수는 없는가? 부탁이네..”
“흐음.. 그런데 사장님. 제가 정말 죄송한데요. 지금 저희 멤버쉽 클럽 규정을 확인해보니 고객에게 물의를 일으킨 매장에 저희 M.E.S를 납품 할 수가 없게 되어 있군요.”
“뭐..라고..?”
“거듭 죄송하지만 뭐 아직 계약서를 작성한건 아니니 그냥 없던 일로 하죠?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나중에 토이 월드의 신용을 회복한다면 그때 다시 연락을 주세요~ 그럼 감사합니다.”
“저.. 저기!!”
왓슨 씨는 내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뭔가 말을 꺼내는 듯싶었지만, 나는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미쳤냐? 내가 너희 때문에 얼마나 열이 뻗쳤었는데, 사과 몇 마디 했다고 물건 주게?
이미 신용도가 바닥을 쳐 수장되기 일보 직전인 기업에 재고를 넣어줄 필요는 없지.
“부장님도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아직까지 내수 시장에 토이 월드의 입김은 어느정도 있는 편인데 그걸 단칼에 거절하시다니..”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잖아요. 뭐 다시 회생할지 모르지만, 미국 시민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기를 바래야죠~”
“정말 부장님같이 무서운 사람은 처음이네요. 지사장님이라면 금방 지난 일을 잊고 일단 돈 이 될테니 물건을 보내줬을 텐데, 부장님은 그렇지 않네요. 같은 동양인이라도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인가?”
금발의 미인인 비서 엘리스씨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텐도 미국지사인 M.H.E.S는 1년 만에 미국시장을 점령하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그 덕분에 회사 규모도 커져 나는 반년 전 부장으로 승진을 하였고, 영민한 비서 엘리스는 가맹점을 총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엘리스씨.”
“네, 부장님.”
“지난 6개월 동안 저를 쫓아다니면서 고생 많이 하셨죠?”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정말 부장님만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하하~ 그거 칭찬이죠?”
“음~ 반 정도는요? 호호”
“제가 일하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오셨으니, 아마 제가 자리를 비워도 잘하실 수 있겠네요.”
“그럼요~ 물론이죠.”
“그럼, 엘리스씨께서. 내년부터 저를 대신해 부장 좀 해주세요.”
“네..? 뭐라구요!?”
“전 다시 일본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NEGA에서 새로운 게임기를 개발해서 곧 출시를 앞두고 있거든요.”
“부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니요. 그럼 미국 지사는 어쩌구요!?”
“당신이 있으니까. 저도 마음 편히 가는 겁니다.”
“부장님!!! 안돼요! 절대 안돼요!!!”
안되는 게 어딨어. 1년 동안 느끼한 햄버거만 먹으며 고생만 실 컷하고, 그리고 내가 지금 일본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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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군. 그.. 정말 가려는 건가?”
“하하~ 저도 출장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네요. 처음 여기 왔을 때는 한 달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크리스마스까지 보내고 가게 될 줄이야.”
공항으로 가는 길. 야마시타씨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내손을 맞잡았다.
“그래도 강군 덕분에 이만큼 해왔다 생각하는데, 내가 너무 아쉬워서 그래..”
“이미 기초공사는 잘 닦아 놨으니, 미국에서는 걱정 없을 겁니다. 윌슨씨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못보고 가서 미안하다고..”
“윌슨씨가 많이 서운해 할 거야.”
“그렇겠죠? 하하~ 뭐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자주 연락하지.”
공항에 도착하니 어디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장님~!! 부장님!!!”
“엘리스씨?”
“야이 나쁜 자식아!! 말도 안하고 이렇게 갑자기 일본에 가버리면 어떡해!!!”
헐..? 지금 쟤가 나보고 뭐라는 거야?
“엘리스씨 어디 아파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떨렁 승진만 시켜놓고 일본으로 가버리면 나 혼자 어떡하라고!!”
눈물에 화장이 번진 엘리스는 나에게 달려와 가슴을 퍽퍽 쳐대었다. 몇 대 맞아 주던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은 뒤 곧바로 입술을 덮쳤다.
“흡!!”
“어, 음.. 저기 강군..? 허허..”
야마시타씨는 볼을 긁으며 잠시 시선을 돌렸고, 나는 그렇게 짜릿한 키스를 마친 뒤 엘리스의 볼을 감싸 쥐며 말했다.
“잘 있어요. 비서님~ 혹시 휴가 받으면 일본에 놀러 와요. 내가 맛있는 식사 대접할 게요~”
“안녕히 가세요. 부장님..”
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마친 뒤 티켓을 들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미국인들은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어댔고, 창피했던 나는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출국장 문으로 들어갔다.
아~ 이거 참. 금발의 미녀와 찐한 키스도 해보고 좋은데~? 미국에 온 보람이 있었어~!!
&
1985년. 이 시기는 게임 역사상 참 특별한 시기 중에 하나이다. 본래는 슈퍼 마리지가 발매되었던 해. 그러나 내가 1년 앞당겨 출시한 바람에 조금 김이 새어버린 감이 있지만, 이 시기에 무엇보다 빛났던 것은 바로 RPG게임의 진화였다.
흔히 TRPG라 불리며 테이블 위에서 주사위를 굴리던 놀이에서 벗어나 진정한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는 RPG가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었던 것이 바로 이 1985년이었다.
“어서 오게, 강군~!!”
“이 녀석 미국 물 좀 먹었더니 더 훤칠해 진 것 같은데!?”
내가 소속되어 있던 주식회사 민텐도는 패밀리의 대히트와 함께 장난감 회사로서의 이미지를 버리고 진정한 게임 회사로 거듭났다. 회사 규모도 더욱 커지고, 건물도 새로 들어서 있었다.
“와우.. 회사가 엄청 커졌네요?”
“그렇지? 모두 우리가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한 덕분이지.”
군페이씨는 흐뭇한 미소로 새하얀 민텐도 본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우리 뒤에서 앙칼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훌륭한 인재를 모은 내 혜안 덕분이다. 이놈들아~!!”
“아~ 카마우치 사장님. 안녕하세요.”
“너 이 녀석 회사에 왔으면 사장인 나에게 빨리 와서 보고를 해야지. 여기서 농땡이를 피우는 거야? 듣자하니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내 최고급 호텔에서 아예 전세내고 살았다면서!!”
“사장님. 그건 제 사비로 충당하지 않았습니까?”
“얼씨구 이놈보소? 1년이 지나도 네 녀석 말버릇 하난 여전 하구나.”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건강해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인마~ 나 아직 안 죽었거든? 난 2000년까지 사장질 해먹을 거야~!!”
그래요. 당신은 2002년까지 사장질을 하시더라구요. 그때 군페이씨가 안경을 쓸어 올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사장님께 진언했다.
“저기 사장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는 1999년 지구가 멸망할거라고..”
“야~이 미친놈아!!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냐!!”
음.. 역시 공돌이는 센스가 부족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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