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20화 (20/252)

EP. 6 : 미국 시장을 공략하라!! (7)

‘아직까지 버텨보겠다. 이거지?’

토이 월드는 이곳 말고도 다른 도시에서도 거대한 점포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체인점이었다. 덩치가 큰 만큼 사람도 많이 찾는 곳이었기에 모든 장난감 회사는 이곳에 물건을 들여 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토이 월드가 직접 장난감 회사에 수주를 넣는 일은 드물었고 보통은 영업 담당이 직접 샘플이나 카달로그를 들고 찾아가 물건 발주는 부탁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잠시 토이월드의 매장을 둘러본 뒤에 슬쩍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네..”

가게안의 모습은 반년 전에 비해 더 호화로워진 분위기였다. 영화에서 보던 장난감 왕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랄까? 하지만 가게 안에서는 여전히 비디오 게임 코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하군.”

나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가게를 살피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는데,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나조차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한 아이가 엄마 손을 흔들며 물었다.

“마미~ M.E.S랑 슈퍼 마리지는 어디 있어요?”

“글쎄.. 워낙에 매장이 넓다 보니 잘 모르겠네? 그래도 이렇게 큰 매장이니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우선 점원에게 물어봐야겠구나.”

어라? M.E.S를 사러 온 고객인가 보구나. 가게 한켠에서 장난감을 살펴보던 중 호기심이 동한 나는 아이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들의 뒤를 쫓았다.

“저기, 이곳에 슈퍼 마리지를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기를 팔고 있나요?”

아이 엄마는 M.E.S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자 가게 점원은 살짝 안경을 치켜 올리며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음? 내가 알기로 토이월드에는 민텐도 기기가 들어가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 점원은 무엇을 소개해주려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매장 직원이 안내한 곳은 가게의 가장 구석에 위치한 아타리 사의 부진 재고들이 즐기한 곳이었다.

“현재 저희는 미국 최대의 게임회사인 아타리의 콘솔기기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트리지 역시 개당 1달러 수준에 판매하고 있지요. 기기 가격이 비싸고 아직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은 M.E.S 보다 훨씬 나으실 겁니다.”

... 저 새끼가 지금 고객을 호구로 보나? 나는 기가 차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엄마 손을 잡고 있던 꼬마아이가 지원에게 물었다.

“저는 M.E.S를 원해요. 덕헌트랑 슈퍼 마리지가 하고 싶다구요.”

“꼬마야~ 어차피 게임은 다 비슷한 거야. 민텐도 역시 게임 회사니 조금만 기다리면 아타리 전용으로 카트리지를 내어줄 거란다.”

“어? 정말요?”

“누가 망해버린 아타리 2600 기기에 저희 슈퍼 마리지를 발매해 준다고 했나요?”

결국 참다못한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깜짝 놀란 점원은 휘둥그레 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물거렸다.

“누.. 누구세요?”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아이 어머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M.E.S 기기를 판매하고 있는 본사 직원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게임과 기계는 여기 점원이 추천하는 아타리 사에는 발매 계획이 없습니다. 여기서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3블럭 정도 내려가시면 토이박스라는 작은 장난감 가게가 있어요. 그곳에서 이 명함을 보여 드리면 가게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실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이 엄마는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와 함께 매장을 나섰다. 그러자 나 때문에 고객을 놓친 점원은 나를 노려보며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뭔데 남에 가게에 와서 손님을 채갑니까?”

“그러는 당신은 뭐 길래 근거 없는 소리로 손님을 현혹 시킵니까?”

“뭐라고? 이 노란 원숭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냐?”

“지금 제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겁니까? 여긴 손님을 이런식으로 대하나요?”

점원의 호통에 내가 더 큰소리로 외치자, 주말에 가게를 둘러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로 전에 나와 야마시타씨를 내동댕이쳤던 스미스라는 직원이 서둘러 다가와 우리를 진정 시켰다.

“무슨 일인가? 제이슨”

“이 사람이 제가 응대 중이던 고객에게 다가와 다른 가게를 알려주며 그쪽에서 물건을 구매하라고 유도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영업 방해입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스미스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신은..?”

“안녕하세요. 스미스씨 잘 지내셨나요?”

“M.H.E.S 직원 이었던?”

“기억력이 좋으신데요? 그때 딱 한번 봤었는데”

“성함이 미스터 강 이셨죠?”

“네, 맞아요.”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저희 사장님이 다시 보고 싶어 하시는데, 시간 좀 내주실수 있나요?”

얼씨구..? 내가 그 인간을 왜 다시 봐야하지? 나는 잠시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스미스씨에게 대답했다.

“아쉽지만 제가 현재 미팅이 잡혀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혹시 급하시면 저희 M.H.E.S 사무실에 연락을 주세요.”

‘너희가 과연 머리 숙이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말이지~’

나는 스미스씨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준 뒤에 매장 문을 나섰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결국 토이 월드에서 연락은 없었다. 아마도 아타리의 부진 재고를 털어내느라 고객 눈탱이 치기만 바쁜 거겠지.. 그럴수록 기업은 신용을 잃어가기 마련인데, 토이월드의 사장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백치인 모양이다.

&

한번 외근을 나갔다 돌아오면 내 책상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넘쳐흘렀다. 대부분 신규 입점 매장의 인센티브와 진열비에 대한 계약 서류들이었는데, 엘리스가 결재 서류를 시간대 별로 차곡 차곡 모아 책상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면 검토후 사인을 마치는게 본사에서 주된 업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장님. 이건 어느 고객한테서 온 문의 사항인데 읽어 보시겠어요?”

“음? 고객한테서요?”

“최근에 제품의 판매 가격이 매장 마다 판이하게 다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어요.”

“그럴리가요. 저희가 관리하는 매장에서는 무조건 정찰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게 물건 수급이 부족해서 프리미엄 현상이 일어나고 있나본데요?”

“하아, 이런 너무 잘 팔려도 탈이군.”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객에게서 온 편지를 펼쳐 들어 보았다.

-M.H.E.S 영업 담당자님께-

저는 게임을 좋아하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는 슈퍼 마리지를 너무나 좋아해요. 언제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슈퍼마리지와 마리지 브라더스. 그리고 덕헌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종종 조르곤 합니다.

이 세상에 아이를 이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의 학업이 걱정 되지만,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바람에 지난주에 토이월드에서 M.E.S를 구매하였습니다.

잠깐만 토이월드에서 M.E.S를 샀다고? 이게 뭔 소리야. 뭔가 좀 이상한데?

아시다시피 토이월드는 굉장히 규모가 큰 장난감 매장으로 다양한 회사의 물건을 취급하기로 유명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큼 신용도도 높은 편이에요. 하지만 그곳에서 M.E.S를 구입한 저는 너무 높은 가격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전자총과 로봇이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299불라는 가격은 너무 높게 잡혀 있는 것 같아서요.

299불라니.. 2~30불도 아니고 100불을 더 붙여 팔았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 편지를 자세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워낙 졸라서 사주긴 했지만, 제가 알기로 M.E.S의 가격은 199불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격의 차이가 생길 수 있는지 매장 직원에게 물었지만, 납득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다른 상가들 역시 M.E.S를 판매하고 있었지만, 가격은 토이월드와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M.H.E.S에서 이 부분을 확실히 조사하여 더 이상 소비자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하아.. 미치겠네..”

“저도 읽어 봤는데, 정말 화가 나더군요.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회사에서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죠?”

“돈이 되니까요..”

“네?”

“전 일단 여기 적혀 있는 토이월드 매장에 좀 다녀올게요. 엘리스는 일단 현재 각 매장으로 출고 준비 중인 모든 기기의 배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해 주세요.”

“과, 과장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사태가 해결 될 때까지 재고 수급을 멈추란 말입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은 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회사 앞에 대기 중이던 택시에 올라 토이 월드 매장으로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제의 토이 월드 체인점 앞에 선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Good afternoon, Ladies and gentleman. Welcome to Toyworld! A land full of joy and wonder.” (안녕하세요. 고객님 즐거움이 가득한 토이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은 개뿔 용팔이 같은 새끼들이!!”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환영 인사를 건네는 직원을 향해 한국말로 대답하자,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네?”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에 영어로 물었다.

“M.E.S를 사러왔는데요. 여기서 팔고 있나요?”

“아~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점원은 내가 영어를 할 줄 알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카운터로 안내했다. 잠시 후 카운터 밑에서 M.E.S게임기를 꺼내든 점원은 밝은 미소로 원하는 게 이게 맞냐고 물었다. 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에 가격을 묻자, 그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299불입니다.”

“... 이 새끼가 장난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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