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 두명의 천재 (2)
“배경을 스크롤시키는 겁니다.”
“네? 뭘 한다구요?”
처음엔 쿠마모토씨와 군페이씨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단번에 횡스크롤 방식을 이해 하긴 힘들겠지.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어 쿠마모토씨 앞에 놓고 펜을 들었다.
“자. 보세요. 이 사각틀이 게임이 표시되는 디스플레이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 쿠마모토씨의 마리지가 서있죠. 그리고..”
나는 펜을 화면 바깥으로 뻗어 내며 길게 줄을 그었다.
“그리고 이게 스테이지입니다.”
“아!!!”
그 순간 쿠마모토씨는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군페이씨는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우리를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그렇군요!! 맞아요. 꼭 시작과 끝을 한 화면에 표시할 필요가 없지요. 마치 영화관의 영사기를 돌리듯 길다란 배경을 옆으로 흘리며 캐릭터가 마치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로군요.”
역시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는 것이 이런 걸까? 단지 힌트만 주었을 뿐인데, 쿠마모토씨는 단번에 횡스크롤의 개념을 이해 해버렸다.
“군페이 형님. 형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강준혁 군은 천재에요!! 천재라구요!!”
“이.. 이 봐 시게루군. 난 아직 무슨 얘기인지 도통 모르겠네. 모니터 밖으로 삐져나온 이게 스테이지 라니 대체 무슨 소린가. 화면 밖에 스테이지를 어떻게 보여주냔 말일세..”
그러자 쿠마모토씨는 조금 더 군페이씨가 알기 쉽게 설명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던 군페이씨는 입이 쩍 벌어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자넨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지금까지 생각해온 게임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리는군.”
“이걸로 플레이어는 좀 더 게임 안에서 모험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쿠마모토씨는 내가 그려낸 횡스크롤 방식을 보며 주문을 외우듯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러지? 잠시 동안 그는 무언가를 상상하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쿠마모토 씨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음 차기작에 대한 간단한 구상을 해보았습니다.”
벌써? 그 짧은 시간 안에 차기작이 떠올랐다고? 쿠마모토씨는 탁자에 놓인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정신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벽돌과 물음표 상자. 버섯과 깃발.. 그것 들은 차후 슈퍼 마리지에 등장 할 기본 소스가 되는 아이템 들이었다.
“공주를 구하는 마리지입니다.”
“공주?”
“지금까지 공주를 구하는 건 기사였지만, 마리지는 현대인입니다. 현대인을 대변하는 그가 버섯 왕국의 공주님을 괴물에게서 구출해내는 거죠.”
쿠마모토씨의 말에 군페이씨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호오.. 이번에도 재미있는 발상이로군. 계속 해보게..”
“우선 마리지라는 캐릭터는 배관공입니다. 항상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일을 하죠. 그러니 괴물은 음.. 차갑고 축축한 느낌의 파충류 형태가 어울릴 듯 하군요. 이 괴물이 버섯 왕국에서 공주를 납치해 가고, 우연히 버섯 왕국에 떨어진 현대인 마리지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적과 싸우는 겁니다.”
뭐야 이 사람. 그 짧은 시간에 게임 하나 다 만들었네? 과연 천재는 천재구나. 나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어 쿠마모토 씨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30년 동안 게임계에 커다란 임팩트를 주게 될 희대의 명작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군페이씨는 흥미로운 미소를 띄우며 쿠마모토씨에게 물었다.
“그럼 그 괴물과 공주 캐릭터도 이름이 있어야겠군.”
그러자 쿠마모토가 나에게 물었다.
“강군. 강군이 한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 뭐가 있습니까?”
“저요? 글쎄요.”
그 순간.. 지금까지 일본을 돌며 돈까스나 덮밥같은 느끼한 것들만 먹다보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있었다. 뜨끈한 뚝배기 안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고깃국.. 거기에 밥 한 공기를 딱 말아서 김치 한 조각 올려 먹으면~ 캬~~
“국밥이요.”
“쿡팟?”
“국. 밥. 이요.”
“굽. 박?”
아무래도 둘 다 받침이 있는 글이다 보니 일본인이 발음 하긴 좀 힘들겠지.. 그러자 몇 번 국밥을 발음해보려고 노력하던 쿠마모토씨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강군의 아이디어가 추가된 작품이니 파충류 괴물 이름은 쿳파로 하죠.”
뭐라고!? 야 인마.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거냐!? 그리고 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30년 동안 마리지한테 고통 받아야 할 악당인데!! 그러자 옆에 있던 군페이씨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공주 이름은 뭘로 할 텐가?”
그때 때마침 식사 후 디저트를 내오던 여종업원이 과일을 올리며 말했다.
“후식으로 나온 복숭아입니다.”
그러자 핑크빛으로 물든 복숭아를 바라보던 쿠마모토씨가 입을 열었다.
“피치 공주라고 하면 되겠네요.”
이것이 앞으로 30년간 괴물 쿳파에게 납치 될 운명을 가진 피치 공주의 탄생이었다. 뭐가 이따위야~!!!
&
그로부터 2주가 흐르고, 나는 정장차림으로 민텐도 본사 건물 앞에 서있었다.
“하아..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군. 지난 두 달 동안 잘도 쉬었으니까,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길게 한 숨을 내쉰 나는 천천히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9월 이지만 아직도 폭염이 지속 되던 탓에 정장을 입기엔 더웠지만, 본사 건물 내부는 한기가 들 정도로 냉방이 엄청났다. 아직 냉방병에 대한 별다른 주의가 없던 시기라 그런지 거의 최저 온도로 냉방을 가동 시키고 있었다.
“추.. 추워!!”
“무슨 일로 오셨나요?”
로비에 있던 안내 직원이 건물에 들어온 나에게 물었다.
“아, 니세코이씨와 쿠마모토씨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러왔습니다만..”
“아? 그렇다면 혹시 강준혁님이 되시나요?”
“네, 맞아요.”
“한국인이시라 길래 걱정했는데,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어디로 가야하나요?”
“음, 강준혁씨는 이번에 특별 면접 대상이라 사장실에서 직접 면접을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인사과나 그런게 아니고 사장실에서 직접 면접을 본다고? 민텐도 사장인 카마우치씨랑?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며 직원에게 재차 물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면접을 보신다구요?”
“네, 저희 민텐도는 카마우치 사장님이 직접 한 분 한 분 면접을 보고 그에 맞는 부서로 배속시키고 있습니다.”
게임회사라기 보단 장난감 회사로서의 이미지가 더 부각되어 있던 민텐도는 아직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진 않았다. 나는 데스크 직원의 안내에 따라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기 전 나는 살짝 마른 침을 삼킨 뒤 가슴을 진정 시켰다. 이것도 면접이라고 떨리긴 하네..
“들어가 보세요.”
직원이 문 안쪽으로 공손이 손을 내밀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 테이블에 나를 앉힌 후 물었다.
“흠.. 자네가 한국에서 왔다는 강준혁 군인가?”
“네, 그렇습니다.”
“군페이군과 시게군이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자네를 꼭 데려오고 싶다고 나에게 사정하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나는 사실 게임이란 매체가 그리 탐탁치는 않네만, 그들이 이야기하길 앞으로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에 게임 산업이 큰 축을 맡게 될 것 같다고 하더군.”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이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뭔 질문이 이리도 많은 거냐?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질리기가 않기 때문이죠.”
“질리지가 않는다?”
“하나의 기기로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가 있구요.”
“게임기 하나로 혼자서 질리지 않게 놀 수 있다라.. 재밌군. 하지만 장난감이란 모름지기 쉽게 질려야 새로운 물건이 나가지 않겠나?”
“게임기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뭐?”
“장난감을 어른들이 갖고 놀진 않지요. 이미 일본은 많은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까운 게임 센터에만 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게임 하러온 어른들이 많이 있죠. 그만큼 게임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산업이 될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미국에서 일어난 아타리 쇼크로 70년대와는 달리 게임 산업이 침체되고 있는 와중에 현재 우리가 게임 산업에 뛰어드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군.”
“모두가 물러설 때 오히려 한 발짝 다가가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허? 나보고 오히려 이 지옥 바닥에 뛰어 들어보라고?”
“아무도 뛰어 들지 않았으니 뛰어 들기만 한다면 민텐도의 독점 시장이 될 겁니다.”
“독점이라~ 하하 그거 참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소리군.”
카마우치 사장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군페이 녀석 말대로 자네 참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군. 나이가 어리지만 마치 미래를 꽤 뚫어 보는 것처럼 확신이 담긴 목소리야.”
카마우치 사장의 말에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닌가 보군. 나이가 들면 시력을 잃어도 혜안을 얻는다더니..
“하지만 말야.. 일본 내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조그만 섬나라에 갇혀 있는 인구보다 미국 시장에서 통해야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지.”
“민텐도는 현재 미국에 지사를 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하지만 게임 산업보다는 장난감 산업에 더 주력하고 있지. 현재 미국의 게임 시장은 아타리 쇼크의 타격으로 완전 죽은 사업이 되어 버렸어. 현재 어떤 완구점에서도 우리 패밀리 게임기를 받아주질 않고 있단 말이지.”
미국 역시 1980대에는 게임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보다 장난감 가게에서 게임기를 매입하여 판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즉 아무리 훌륭한 게임기라도 장난감 가게를 뚫지 못하면 진열해 놓고 팔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게임기가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요.”
“뭐!? 게임기를 게임기가 아니라고 하고 팔라고? 자네가 아직 젊어서 뭘 모르나 본데, 그런 짓은 상품 판매 규정에 위배되는 짓이야.”
“박스 안에 대충 앞 뒤로 움직이는 로봇이라도 하나 끼워 넣고 장난감이라고 파세요.”
“뭐...?”
나의 대답에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던 카마우치 사장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해외 영업부냐? 지금 당장 내 방에 올라와서 신입 사원 데려가.”
그래서 난 그날로 게임 개발 파트도, 그렇다고 콘솔 제작 파트도 아닌 민텐도 사의 해외 영업 파트에 배속 되었다. 이거 뭔가 좀 꼬여가는 기분이 드는데? 야 인마들아!! 나 게임 개발자라고!! 너희 지금 큰 실수 하는 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