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 두명의 천재 (1)
맴~ 맴~ 맴~ 맴~
‘아오.. 시끄러. 잠 좀 자자..’
맴~~ 맴맴~ 맴~
빌어먹을 매미 새끼들. 잠시 후 호텔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이불을 걷어 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1983년 8월 17일 한 여름. 연간 기온 중 가장 정점을 찍는 폭염의 기간이었다. 그래도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은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신식이라 그런지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나라와 고베, 교토 지역의 관광 명소를 실컷 즐긴 나는 지갑에 넣어 두었던 한 사람의 명함을 꺼내 보았다.
“한 달 동안 즐길 건 다 즐겼고, 이제 슬슬 전화를 걸어볼까?”
나는 니세코이씨에게 받은 명함을 손에 쥐고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차라라락 소리와 함께 숫자가 적힌 다이얼이 원래자리로 돌아가고 잠시 기다리자,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민텐도 휴대용 장난감 개발 파트입니다.”
“아, 실례합니다. 혹시 니세코이 군페이씨가 계신가요?”
“니세코이님이라면 자리에 계십니다만, 어디라고 전해드릴까요?”
“한국인 유학생 강준혁이라고 하면 아실 겁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심심한 기분에 목재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니 방안에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흥분에 가득한 니세코이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에 가득차있었다.
“강군!? 자넨가? 이 사람아 왜 이제야 전화를 한 건가.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 그거야 내 마음이지. 다음 날 홀랑 전화 걸어서 만나자고 하면 무게감이 떨어져 보이잖아.
“잘 지내셨나요? 여기 저기 좀 둘러보느라 연락이 늦었습니다.”
“자네 지금 어디에 있나?”
“지금은 오사카 니혼바시 근처에 있는 리쿠텐 호텔에 묵고 있어요.”
“잘 됐군. 안 그래도 내일 오사카 쪽에 볼일이 있어 가볼 참인데 잠깐 볼 수 있나?”
“그러죠. 어디서 볼까요?”
“자네가 묵고 있는 호텔 연락처 좀 알려주겠나? 내가 도착하기 전에 연락을 주지.”
“네,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오니 호텔 프론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니세코이씨와의 전화 연결이었다.
“강군. 한 시간 뒤에 도착할 예정이네만, 혹시 시간이 괜찮은가?”
“네, 그런데 어디서 뵐까요?”
“장소는 걱정 안 해도 되네. 지금 자네 호텔로 가고 있으니까.”
“네!?”
“어제 자네 전화를 받고 한숨도 못 잤다네, 바로 오늘 두 명의 천재가 만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돼서 말이야.”
두 명의 천재? 누구랑 같이 오는 건가?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나는 호텔 로비에 앉아 군페이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 약속에 철저한 사람들답게 얼마 안 있어 호텔 앞에 멈춰선 택시에서 두명의 남자가 내렸다. 한명은 익히 알고 있는 군페이씨였고, 그를따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군페이씨와 함께 호텔로 들어왔다.
“강군~!!”
“니세코이씨~ 안녕하셨어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그래 오사카 여행은 잘했나?”
“네. 역시 도쿄보다 볼게 많더군요.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아, 그렇지. 어이 쿠마모토. 인사하게 일전에 내가 이야기한 신칸센의 그 청년일세.”
“안녕하십니까. 쿠마모토 시게루라고 합니다.”
“쿠마모토 시게루씨!?”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외치자 쿠마모토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절 혹시 아세요?”
“아, 죄송합니다. 직접 본건 처음이지만, 동킹콤을 만든 디렉터 분 아니세요?”
“네. 맞아요. 동킹콤을 즐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악수를 청하는 쿠마모토씨의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세상에 전설의 디렉터를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군페이씨를 엮어서 민텐도에 들어갈 때까지는 힘들 줄 알았는데, 설마 군페이씨가 여기로 데리고 올 줄이야..
쿠마모토 시게루. 비록 게임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슈퍼마리지라는 콧수염 난 배관공 캐릭터는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카린의 전설과 동물의 마을. 폭스스타 등 민텐도를 대표하는 이 모든 게임이 앞으로 이 사람에게서 탄생할 작품들이었다.
“강 준혁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쿠마모토씨.”
“군페이 형님이 무조건 꼭 만나보라고 해서 따라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실례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쿠마모토 시게루씨는 내가 살던 2015년에는 62세의 나이로 꽤나 딱딱 이미지였는데, 1983년에서 만난 그는 갓 서른을 넘긴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였다.
“자~ 여기서 계속 이야기하기도 뭐하니, 자리를 옮기지. 조금 이르지만 점심 식사라도 함께하는 건 어떤가?”
“네, 그러죠.”
호텔에서 나온 우린 근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식사를 주문 한 뒤 나는 미소와 함께 쿠마모토씨에게 말을 걸었다.
“현재 미국 아케이드 시장에서 동킹콤이 엄청난 인기라던데 축하드려요.”
“저도 이렇게까지 제가 만든 게임이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민텐도 미국지사에서 게임센터에서 돌릴 롬 기판 하나를 요청했는데, 마침 제가 한가했던 터라 간단히 만들어 본건데..”
그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지.. 1980년 미국 아케이드 시장에 진출해있던 민텐도는 게임센터에서 가동 시킬 새로운 롬 파일을 요청했다. 하지만 ‘수익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사업에 쓸데없는 인력을 소모 시킬 순 없다’ 고 해서 차출된 것이 바로 당시 민텐도 내에서 일거리가 없던 쿠마모토씨였다.
공학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프로그래밍에 대해선 완전히 문외한 이었지만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도트를 찍어내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기에 간단한 레벨 디자인으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킹콩에게 붙잡혀간 미녀를 구해내는 동킹콤이었다.
그 게임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어마어마한 흥행을 불러 일으켰고 침체기로 들어서던 아케이드 시장에 한줄기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동킹콤의 플레이 캐릭터였던 마리지를 소재로 한 마리지 브라더스가 출시되었고, 그리고 1985년.. 대망의 슈퍼마리지가 패밀리에 등장하며 민텐도는 아케이드 사업을 철수하고 오로지 가정용 게임기 산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00명의 범재보다 1명의 천재라는 사상으로 시작된 민텐도의 게임 사업을 2015년까지 먹여 살릴 능력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80년에 출시한 동킹콤의 후속작은 언제쯤 개발 예정인가요?”
“사실 거의 다 제작이 완료 되었고, 곧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요? 혹시 어떤 게임인지 여쭤 봐도 되나요?”
아직은 게임에 대한 저작권이 빈약했던 시절이라 그런지 쿠마모토씨는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대해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살짝 발상을 뒤집어서 전작의 동킹콤에서 미녀를 구하던 주인공 캐릭터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봤습니다.”
역시 지난달에 출시한 패밀리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벌써 완성이 되어 있었군. 군페이씨는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쿠마모토씨의 마리지 브라더스는 동킹콤과 같이 하나의 스테이지 안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버섯 병사와 거북이를 물리치는 2인용 게임이었다. 나는 쿠마모토씨와 마리지 브라더스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그에게 한 가지 제의를 했다.
“그런데, 말이죠. 쿠마모토씨.”
“네. 마리지 브라더스에 대해 뭔가 의문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사실 이미 출시를 앞두고 있는 완성 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단 이 마리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네요.”
“다음 작 말씀이십니까? 아직 이 새로운 게임이 유저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장담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차기작 준비는 조금 부담스러운데..”
상대적으로 차기작의 발매 텀이 길었던 1980년대. 2015년에서는 하나의 게임을 만드는 도중에도 이미 신규 IP를 제작하는 마당이었기에 쿠마모토씨의 여유 있는 발언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껴졌다.
“마리지라는 캐릭터는 현재 제가 보기엔 동킹콤을 거치며 굉장히 친숙한 이미지가 되었죠. 따라서 당신이 만든 마리지 브라더스는 어느 정도 중박 이상을 치게 될 것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차기작에는 이 마리지라는 게임에 새로운 방식을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방식이요?”
쿠마모토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 옆에서 팔짱 끼고 있던 군페이씨는 마치 ‘시작되었군..’ 이란 듯한 묘한 미소와 함께 안경을 쓸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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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스크롤. 화면이라는 사각의 틀에서 구원할 마법의 단어. 2015년에는 흔하디흔한 플레이 방식 중에 하나지만 지금은 1983년이다. 이 시기의 모든 게임은 모니터라는 사각 틀에 갇혀 있었다. 모든 플레이의 시작과 끝은 한 화면에 표시가 되어야만 했고, 그것은 그 유명한 겔러그와 동킹콤도 마찬 가지였다.
마치 인류가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기듯이 나는 여기서 게임 계의 큰 변화를 줄 발자국을 남기려 하고 있었다.
“배경을 스크롤시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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