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8화 (8/252)

EP. 3 : 민텐도라는 장난감 회사. (2)

패밀리의 런칭 행사로부터 며칠 뒤 나는 교토로 향하는 신칸센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묵직한 내 가방 안에는 몇 가지 종류의 게임 & 워치가 들어 있었다.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군..”

꼬르륵.. 열차 시간 맞추려고 아침을 거르고 나왔더니 배가 고프다. 2015년 때야 출근 때문에 아침 굶는 게 다반사였는데, 이곳에 온 후로는 호텔에서 꼬박 조식을 챙겨 먹다보니 버릇이 된 건가? 남들이 보기에 한 달이 넘도록 호텔에 사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금은 1983년. 모든 물가 수준이 엄청 내려가 있었고, 내가 묵고 있는 4성급 호텔만 해도 2015년에 비교하면 하루 숙박료가 모텔 대실료보다 저렴했다.

“그래도 교토로 가게 되면 슬슬 집을 구하긴 해야 할 텐데, 막상 호텔을 나가자니 귀찮고..”

이미 교토의 호텔을 예약해둔 터라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도쿄역을 거니는 중이었다. 그때 내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길목에 도시락을 파는 식당가가 줄지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칸센은 안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지. 좋아~ 그럼 남은 시간에 도시락이나 하나 사야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천천히 식당가로 걸음을 옮겼다. 6~70년대의 경제 활성화를 거쳐 버블 경제의 끝을 향해가는 일본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활기에 넘쳐 있었다. 세계 경제 순위 2위에 빛나는 자부심이 느껴졌지만, 나에겐 그저 전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범국이라는 인상만 강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뉴스를 틀 때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히로시마 피폭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며 징징대는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참 2011년에는 후쿠시마 원폭 피해도 있었지.. 그러고 보면 일본은 방사능이랑 참 인연이 깊네.. 아주 그냥 정들겠어.

“어서오세요~ 손님 무슨 도시락을 드릴까요?”

“여기서 가장 인기 좋은 게 뭔가요?”

“저희야 새우랑 치킨 도시락이 제일 많이 나가죠~”

새우랑 치킨이라.. 역시 1980년대에도 치느님의 인기는 여전하군. 나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에게 300엔 동전을 내밀며 치킨 도시락을 주문했다. 그러자 뒤이어 다가온 한 중년의 남성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저도 치킨 도시락 하나 부탁드립니다.”

“아, 고객님 죄송하지만 치킨 도시락은 방금 이 분이 마지막 걸 구입하셔서 금방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얼마정도 걸리죠?”

“한 10분 정도인데 괜찮으세요?”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 사람 설마..

“아, 그럼 기차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이 집 치킨 도시락이 그렇게 유명한가?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눈앞의 남자에게 더 관심이 가고 있었다. 신칸센 안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이건 생각지 못한 우연인데?

“저기 괜찮으시면 제 걸 양보해 드릴게요.”

“네? 아~ 아닙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괜찮아요. 사실 새우냐 치킨이냐 망설이던 차여서 아주머니. 치킨 도시락은 이 분에게 주시고 전 새우로 주세요.”

“아,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저희 새우 도시락도 정말 맛있어요. 제가 서비스로 새우 하나 더 넣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 WIN WIN 하는 방향으로 도시락 값을 지불했다.

“아,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남자는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서둘러 신칸센 탑승장으로 달렸다. 그러고보니 나도 시간이 만만치가 않네? 우선 나도 빨리 가야겠다!! 그렇게 잠시 후. 나는 신칸센에 오르는 플렛폼에 도착해 있었다.

“A-17, A-17. 여기다.”

탑승칸을 확인한 나는 살짝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기차에 올랐다. 교토까지 3시간 반 동안 편하게 갈수 있는 비즈니스 석은 내부가 깔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 자리를 찾아 다가가자 창측 좌석에 익숙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저기. 옆에 좀 앉겠습니다.”

“아, 네 그러.. 어!?”

“아,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이거 재밌는 우연이군요. 자, 어서 앉으세요.”

나에게 자리를 권하는 이 남자는 니세코이 군페이씨.. 휴대용 게임기 게임 & 워치의 아버지이자, 2015년까지 민텐도 휴대기기를 왕좌로 이끈 겜보이를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나는 살짝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 모든 건 미래에서 가져온 게임 & 워치로 군페이씨의 위치를 파악한 뒤 티켓 창구에서 그의 옆자리를 부탁한 내 계획 중에 하나였다. 도시락 집에서 만난 건 정말 우연이긴 했지만, 덕분에 그와의 첫 만남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아까 도시락 집에선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 번의 호의에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는 건 역시 일본인답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하고 우리는 사이좋게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한 입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계속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는 통에 먹다가 사례 걸릴 뻔했다. 자판기에서 구매한 녹차로 입가심을 하고 나서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슬슬 작전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가방 안에 게임 & 워치를 꺼내는 것이었다. 우선 첫 번째로 내가 꺼낸 게임기는 BALL이었다. 그러자 게임 & 워치를 만들어낸 창시자답게 군페이 씨는 흐뭇한 눈으로 내손에 들린 게임기를 바라보았다. 자기 자식 같은 게임기를 온 국민이 즐겨주고 있으니 즐겁기도 하겠지.

뾱. 뾱. 화면 안의 작은 공이 왔다갔다 거리자 작은 비트음이 객실내에 울렸다.

“죄송합니다. 시끄러우시죠?”

나는 재빨리 볼륨 키를 내리며 군페이씨에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계속해도 괜찮아요.”

자기가 만든 게임기를 플레이하고 있어서 인지 군페이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역으로 그에게 게임 & 워치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다.

“이왕 휴대용으로 만들 거라면 이어폰 잭 정도는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네? 아, 하긴 그렇군요. 확실히 공공장소에서 사운드를 즐기려면 이어폰 잭이 필요한 거 같긴 하네요.”

“그쵸? 아무리 게임이 화면으로 즐기는 거지만, 사운드도 중요한 거잖아요.”

군페이 씨는 나의 불평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작은 수첩을 꺼내들고는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그 기계를 쓰면서 다른 불편한 점은 없나요?”

“아주 많죠.”

“그, 그렇게 많아요??”

“우선. 기계 자체가 비효율, 비양심적이에요.”

“네?”

나를 바라보던 군페이씨의 표정이 팍하고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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