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5화 (5/252)

EP. 2 : 게임 & 워치 (2)

‘실제로 급여를 꽂아주는 회사원 게임이라 이거지?’

달칵.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 위해 게임 & 워치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삑, 삑, 삑. 조용 한 사무실 안에 단조로운 효과음이 울리고, 이내 나는 배고픔조차 잊어버린채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라? 과장님 식사 안하셨어요?”

삐비빅.. GAME OVER. 약 한 시간 가까이 플레이 한 결과 내가 얻은 스코어는 37만점 이었다.

“아. 나래씨? 벌써 왔어요? 천천히 식사해도 되는데.”

“충분히 천천히 먹고 왔는데요? 그런데 식사도 거르시고 괜찮으세요?”

“전 괜찮아요. 잠깐 확인 좀 할 게 있어서..”

나는 게임 & 워치의 확인 버튼을 누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살짝 눈을 돌려 아래를 살피니 랭킹은 5위를 기록한 뒤 스코어를 급여로 환산 중이었다. 자~ 그럼 어디보자..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은행 어플을 실행해 보았다.

입금자. 게임 & 워치 37,453,000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단 한 시간 만에 3700만원을 벌어들이다니 웃음이 안 나오고 베기겠는가? 거의 하루 만에 1억에 가까운 돈이 들어왔다.

&

그날 오후. 나는 새하얀 봉투를 들고 대표이사 실을 찾았다.

“들어 와.”

끼이익.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비좁은 사무실 가죽 의자에 앉아 코를 후비던 대표이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강 과장? 무슨 일이야?”

“대표님. 저 회사 그만 두겠습니다.”

“뭐!?”

“어차피 어제 부로 부서 이동된 거 인수인계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러니 사표 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이, 강 과장. 자네 지금 이번 인사 건에 불만 있다고 시위하는 거야?”

“아니요. 그랬으면 어제 당장 그만 뒀겠죠. 그냥 하루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 회사는 더 이상 비전이 없어 보입니다.”

“뭐라고? 허~ 이거 참.”

“지난 15년 동안 다닌 회사입니다. 대졸은 아니었어도 아등바등 여기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더 이상은 못 참겠네요.”

“알았다. 알았어. 강 과장. 원하는 게 뭐야? 다시 개발실로 부서 이동 시켜줘?”

“아뇨. 그냥 퇴직을 원합니다.”

“이 사람. 아주 작정을 하고 왔구만.”

“네. 그만 두고 싶습니다.”

“대체 나가서 어디로 가려고? 그래 봤자 이 바닥에서 자네 게임 반겨줄 만한 곳은 이제 없어.”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그래서.. 제가 한번 게임을 만들어 보려구요.”

“뭐라고..?”

그것이 15년간 몸담았던 회사 대표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

“자~ 그럼 이제 시작 해볼까?”

회사를 그만두고 5일이 지난 저녁. 나는 뜨거운 물로 사워 후에 몸과 마음을 가능한 편하게 릴렉스 시켰다. 난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어. 잠시 동안 마음을 다 잡으며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부드럽게 움직인다. 좋아~ 시작하자.

달칵.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은 채 나는 게임 & 워치를 손에 들었다. 오늘 내가 노리는 것은 이 망할 게임의 1위 탈환이었다. 모든 끝장을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나였기에 지난 5일 동안 거의 내내 이 게임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현재 내 통장 잔고는 약 200억에 가까운 돈이 들어와 있었다. 어젯밤 랭킹은 2위를 탈환했지만 아쉽게 1위와 300점이 모자라 탈락한 나는 야밤에 괴성을 질러 대었다. 깜짝 놀란 아래층 사람이 초인종을 누를 정도였다.

“후우.. 할 수 있어.”

긴 한숨과 함께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지난 5일 동안 지겹게 봐왔던 회사원 게임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가볍게 삑. 삑. 삐빅.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손가락. 이미 50만점 따위는 가볍게 돌파해 나간다. 문제는 80만점부터였다. 이 빌어먹을 바이어와 오너는 마치 게임속의 주인공을 일부러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듯 했다. 하지만 포기 할 수 없지.

이제 85만점. 5만점만 더 얻으면 1위 탈환이다!! 삐비비빅. 삐비빅. 삑삑. 삐비비빅. 삐비빅. 내 평생 이 토록 하나의 게임에 집중해 본적이 있을까? 실 급여가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게임이지만 대체 1위를 하게 되면 뭐가 나올지가 더 궁금했다.

랭킹 표시의 1위 옆에는 왕관이 그려져 있었는데, 정말 뭣도 아닌 그 왕관이 너무나 탐이나 미칠 지경이었다. 안 돼지. 안 돼. 잡생각은 하지 말자. 여기서 부턴 작은 실수 하나로 곧바로 게임오버에 이어지니까.. 기계처럼 정확하게 이동 시켜 포인트를 벌어내자!!

삐빅. 삑!. 삑삑삑!!. 89만점.. 좋아!! 얼마 안 남았어!!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 했다. 손가락은 이미 감각을 잃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 할순없어. 포기 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돼!!

삑! 삐비빅!! 야이 오너 이 개새끼야!! 어디 갔어!!!

삐비비빅!! 바이어 이 미친놈아 빨랑 안 튀어와!! 으아아아!!!

뚜두두둔 뚜둔~!!!

넘었다.. 넘었어. 90만 2천점.. 그래 1등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 할 순 없지 아예 999,999점을 찍어 주마!! 이미 1위를 탈환했어도 나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이젠 숨조차 쉬는 것도 잊은 단계. 지금 버튼을 두드리는 게 내 손가락이 맞는지를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스코어에 9가 찍힌 그 순간..

뚜두두두두두두..... GAME CLEAR.

“응? 클리어라고?”

게임 & 워치에 클리어가 어딨어? 에라 모르겠다~

“푸하~~~”

나는 소파에 몸을 뉘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깼다. 끝났어..”

뚜두두둔 두둔~!! 경쾌한 효과음 소리에 게임 & 워치를 바라보니 흑백 디스플레이에 폭죽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하하.. 이렇게 보니 정말로 게임이 끝이 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 게임을 깨버렸으면 이제 더 이상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건가? 어라?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을 못했네!?

“에이.. 이미 200억이면 평생을 쓰고도 남을 돈이지..”

거기서 1억 더 얹어 봤자 거기서 거기다. 아무튼 클리어 한 보람이 크니까 됐어.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디스플레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컬러..?”

그렇다. 스톱 애니메이션을 표현해 주던 흑백 액정 디스플레이가 싹 하고 컬러풀한 디스플레이로 바뀐 것이다.

“뭐야 이게? 아직 뭐가 더 남은 건가?”

그 순간 새하얀 화면 위에 한 가지 문구가 떠올랐다.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연도를 정해주세요.-

그 문구를 보는 순간. 게임 가게의 어르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봐 젊은이. 만약에 말이야. 자네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대가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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