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마켓 1983-4화 (4/252)

EP. 2 : 게임 & 워치 (1)

쏴아아~~ 집에 돌아온 나는 먼저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쳤다. 대체 방금 전에 나에게 일어난 일은 무얼까? 그냥 내가 술에 취해 이상한 몽상을 한건 아닐까 싶었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온 거실 탁자에는 여전히 어르신에게 받은 게임 & 워치가 놓여 있었다.

“이상하네..”

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탁자 위의 게임 & 워치를 집어 들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라면 빨리 자는 게 좋겠지만, 황당한 일을 겪고 나니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달칵. 게임 & 워치의 뚜껑에 달린 경첩이 기분 좋게 열렸다. 지금도 휴대용 기기의 왕좌로 군림하고 있는 민텐도 3GS의 더블 스크린 채용은 바로 이 게임 & 워치의 디자인에서 가져 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할 정도였다.

“확실히 간단하지만 재밌어. 그래 이런 게 바로 게임이란 거지.”

띡. 띡. 띠딕. 단조로운 효과음이 거실에 울렸다. 티비도 켜지 않고 어느새 나는 온 신경을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슬로우한 진행 방식이지만 점수가 10만점에 이르자 조금씩 스피드가 빨라졌다. 바이어는 자꾸만 약속시간을 딜레이 시키고 오너는 어딜 그리 뺀질 나게 다니는지 자꾸만 자리를 비워대고 있었다.

“여기 나오는 오너는 꼭 우리 회사 대표이사 같구만, 킥킥.”

곧이어 여유 있게 등장하는 바이어를 바라보면서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새끼는 딱 봐도 한 팀장이네. 맨날 회의 시간도 제 멋대로 정하고 늦게 들어오는..”

질수 없지. 질 수 없어. 나는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미친 듯이 주인공을 움직여 일을 날랐다. 생전 처음해보는 게임임에도 아무런 튜토리얼 없이 곧바로 게임에 적응해 나갈 수 있게 제작 된 레벨 디자인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삑삑삑!! 삑삑!! 삑! 삐비빅!!

내가 놀리는 손놀림의 속도에 따라 효과음이 점점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새 30만점이 넘어 가고 게임속의 주인공은 이제 마치 분신술을 하는 홍길동처럼 좌우로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삐이이익.. GAME OVER.

결국 부장의 잦은 자리 비움에 쌓여 있는 결재 서류를 넘길 수 없던 나는 결국 52만점이라는 스코어를 세우고 게임을 종료 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 손가락 아파.. 지금 몇 시지?”

자는 저린 손가락의 마디를 풀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2시 반!? 미친 이걸 내가 1시간 반 동안 하고 있었다고!?”

좋은 게임은 마치 타임머신과도 같다. 게임에 집중하는 동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느낌. 나는 황당한 기분에 쓰게 웃으며 게임 & 워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위쪽 화면에 게임 스코어에 따른 랭킹 표시가 나와 있었다. 총 528,200점을 얻은 나의 랭킹은 3위였다. 2등은 80만점. 1등은 90만점. 이걸 어떻게 1등을 하냐~

나는 확인 버튼을 누른 채 화면을 넘겼다. 그러자 위쪽 화면에 다른 표시가 떠올랐다.

-당신이 획득한 스코어를 급여로 환산합니다. 이번 플레이에서 당신이 얻은 급여는 5,282,000엔입니다.-

“어라? 급여..? 아~ 맞다 이거 회사원 게임이었지. 스코어를 따면 그걸 환산해서 급여로 표시해주는 거구나. 재밌네~”

스코어 표시 아래쪽에는 누적 급여 표시가 있어 내가 플레이한 스코어에 따라 계속 플러스를 시켜주는 듯 했다.

“한 시간 반 만에 5천만원을 넘게 벌었네. 허허~”

비록 소중한 새벽 잠 한 시간 반을 투자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게임 안에서는 부자가 된 기분에 나는 게임 & 워치를 덮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게임가게에 있었던 일이 여전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정신 적으로 피로감을 느낀 나는 곧 잠이 들었다.

&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된 개발팀의 강준혁 과장입니다.”

새로운 부서에서의 첫 인사. 고객 만족 팀은 개발 부서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직원들과 안면은 있지만, 딱히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업무 시간 내내 개발실에 틀어박혀 있던 나였으니.. 아무래도 다른 부서 직원들과 친해지기가 힘들긴 했지..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나는 비어 있는 과장 자리에 소품을 내려놓았다.

“우선 난 신경 쓰지 말고 평소 하던데 일들 보세요. 저도 적응을 좀 해야 하니까. 하하..”

그러자 좁은 사무실에 직원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좌천’이란 말도 들린 듯하다. 좌천.. 그래 맞는 말이지. 개발실 팀장에서 고객 만족 팀 과장이면 귀향살이도 이런 귀향이 없을 정도니까.

아직은 딱히 바쁠 게 없는 오전 업무시간. 나는 조금 직원들과 가까워져볼까 하는 마음에 회사 밑에 커피숍에 들렀다.

“아메리카노 8잔이요.”

커피를 주문 한 나는 커피가 나올 동안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커피 8잔에 36,000원이라. 웬만한 식비보다 금액이 더나오네. 이번 달 잔고가 얼마나 남았더라? 혼자 살고 있어도 은행 융자금 갚느라 월급이 들어오는 데로 퍼 나가는 마당이라 36,000원도 크게 느껴졌다. 어쩌면 직원들에게 돌린 이 커피 때문에 난 몇 일 동안 점심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잠시 후. 스마트 폰으로 통장 조회를 한 나는 나도 모르게 헉하고 마른 숨을 삼켰다.

“뭐, 뭐야 이거?”

잔액 5,300만원? 내 통장에 5천만원이 넘게 있을 리가 없는데? 뭐지, 신종 사기인가? 나는 서둘러 거래내역을 살펴보았다. 새벽 2시 32분. 입금자. 게임 & 워치 52,820,000원.

나는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눈을 비벼 보았다. 하지만 통장에 들어온 금액은 정확히 어제 내가 클리어한 게임 스코어 점수와 같은 금액이었다. 단지 엔화가 원화로 바뀌었을 뿐.

“저기~!! 손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종업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불렀는지 종업원의 표정에 살짝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 좀 하느라..”

나는 서둘러 커피를 받아든 뒤에 커피숍을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 되지 않았던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었다.

진정해라.. 강준혁. 지금 너에게 굉장히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하지만 침착해야 해. 침착해야 한다. 잠시 후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커피를 들고 고객 만족 팀 사무실에 돌아왔다.

“커피들 마셔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는 친해지지 못한 부서 직원들에게 손수 커피를 하나씩 들려주자 그나마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드는 듯했다.

&

그날 점심시간. 부서 직원들이 모두 식사를 가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가방에서 게임 & 워치를 꺼내들었다. 출근할 때 어제 일을 떠올리며 챙겨 오긴 했는데, 막상 이렇게 다시 보니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급여를 꽂아주는 회사원 게임이라 이거지?’

달칵.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 위해 게임 & 워치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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